청년펀드 외면한 회장들 누구?

대통령도 냈는데…그러거나 말거나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출범 5개월째를 바라보는 청년희망펀드가 어느덧 누적기부금액 1000억원을 달성했다. 기업 총수들이 앞 다투어 기부행렬에 동참한 까닭이다. 물론 생색내기에 그치거나 여태 요지부동인 총수들도 제법 보인다. 대통령이 적극 독려하고 나선 작금의 분위기가 불편할 법 하건만 별로 신경도 안 쓰는 눈치다. 자발적 참여라는 기본 취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탓인지도 모른다.

청년희망펀드는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지난 9월 조성된 펀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제안하고 직접 기부한 이후 재벌 총수들의 릴레이식 동참이 이어지면서 재원 마련에 탄력이 붙은 상황이다.

밉 보일라∼

청년희망펀드 기금 마련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핀 건 이건희 회장이다. 출범 초기 삼성그룹이 이 회장 명의로 200억원을 내놓자 총수들의 참여는 한층 빨라졌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50억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60억원, 구본무 LG그룹 회장 70억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70억원,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30억원을 기부한 것도 이 무렵이다. 재벌 총수들의 기부행렬은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기부금 액수에 일정한 규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바로 재계 서열이다. 조금씩 액수의 차이는 있지만 총수 이름을 앞세워 기부가 이뤄지고 있으며 기업 규모가 기부금을 책정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반 움직임이 없는 기업들도 상당수 눈에 띈다. 2015년 4월 기준 상호출자제한 일반기업집단에 지정된 49개 기업 가운데 지난 22일까지 청년희망펀드에 기부금을 낸 기업은 총 25곳. 나머지 24곳은 아직까지 청년희망펀드 기부행렬에 동참하지 않았다. 특히 재계 서열 하단에 위치한 기업들의 청년희망펀드 참여가 소극적이다.


실제로 10대 기업 중에서는 현대중공업을 제외한 모든 곳이 청년희망펀드에 기부했고 30대 기업으로 범위를 넓히더라도 약 2/3가 동참했다. 나머지 19개 가운데 청년희망펀드에 기부한 기업은 단 5곳에 불과하다.

청년희망펀드에 동참한 총수 가운데 유독 짠물 나는 기부금 액수를 책정한 기업의 이름 역시 하단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가장 통 큰 기부를 한 반면 재계 48위 중흥건설의 정원주 사장은 지난해 10월 청년희망펀드에 자산 1억원을 기부하는데 그쳤다. 백복인 대표와 임원들이 7000만원을 기부한 KT&G는 총수가 따로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라는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

물론 기부행렬에 동참하지 않거나 인색한 기업을 향해 손가락질 하긴 힘든 노릇이다. 자발적 참여를 원칙으로 하는데다 기업별로 난감한 상황에 직면한 경우가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일단 총수 경영권 체제가 아닌 기업의 경우 기부금을 선뜻 내기 어려운 당면과제에 놓여 있다. 현대중공업, KT가 대표적이다. 두 회사 모두 오너가 없다.

현대중공업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대주주로 있지만 정 이사장이 1988년 사장직을 그만 둔 이후 현재까지 경영 현안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 KT는 2002년 민영화 이후 국민연금공단과 소액주주들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전문경영인이 회사 경영의 전권을 쥐고 있지만 주주들의 눈치를 보며 모든 경영 현안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당연히 청년희망펀드 기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기부 방식을 두고 방침을 정했지만 내부에서 잡음마저 흘러나온다. 비슷한 처지인 포스코가 일찌감치 전 임원이 매달 급여의 일정 부분을 청년희망펀드에 기부하기로 한 것도 부담스럽다.

출범 5개월째 벌써 1000억원 돌파
주요 오너들 기부…미참여 총수도

어려운 회사사정으로 자금 한 푼이 아쉬운 기업들도 더러 보인다. 대우조선해양, 동부, OCI, 동국제강 등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얼마전 산업은행의 추가 자금 지원이 결정되고 나서야 겨우 기사회생했고 대우그룹 공중분해 이후 수차례 매물로 나온 대우건설 역시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삼구 회장이 이제서야 회사를 수습하는 양상이고 동부그룹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외에도 외국계 회사인 S-oil, 한국지엠과 얼마 전 주인이 바뀐 홈플러스, 총수일가에서 사회 공헌에 힘써온 대림 등은 청년희망펀드 동참 유무 논란에서 한발 비껴나 있다.


문제는 나머지 회사들이다. 한동안 큰 잡음이 부각되지 않았음에도 별다른 사유 없이 청년희망펀드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세아, 현대산업개발, 이랜드, 하이트진로 등 누구나 알법한 기업들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세아그룹은 지난해 포스코와 현대제철 뒤를 이어 55년만에 철강업계 3위로 오르며 불황 속 홀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영업이익 역시 3분기 누적 3162억원으로 동국제강 735억원, 동부제철 686억원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영업이익 정상화라는 목표 아래 업계 최고의 수익성을 올리는 동시에 재무건전성 강화에 성공했다. 3분기 기준 현대산업개발의 누적실적은 매출액 3조3840억원, 영업이익 2417억원, 당기순이익 1868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매출은 4.8%, 영업이익은 62.2%, 당기순이익은 204.2%씩 각각 증가했다. 특히 시내면세점 사업 진출, 아이콘트롤스 상장 등도 성공적으로 이뤄내며 그룹 포트폴리오 확장이라는 성과까지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랜드는 단기적으로 국내 사업에 부침을 겪고 있지만 중국시장에서 패션과 유통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2020년 중국 유통사업에서 매장 100여곳, 매출 15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0년까지 총 25조원의 매출을 일궈내 중국 최대의 유통·패션·외식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포부이다.

하이트진로의 지난해 3분기 누계 영업이익은 1026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29.1% 올랐다. 당기순이익은 390억원으로 49.4% 성장, 실적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지난해 말 단행된 소주가격 인상이 올해 실적 전망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물론 기부행렬에 동참하지 않은 기업들이 계속 지금의 노선을 거듭할 것이라고 속단하긴 이르다. 기업들이 체감하는 압박은 상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고용 절벽을 해결하자는 취지와 박 대통령의 적극적인 행보를 무작정 지나치기 힘든 까닭이다. 실제로 기부를 무시하자니 정부 안팎에서 들어올 눈치가 부담된다는 기업들의 하소연도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절반만 동참

건설업계 관계자는 “총수들의 이름이 표면화된 형식으로 기부가 이뤄지다보니 액수와 시기에 있어 고민이 따른다”며 “청년희망펀드의 취지를 적극 공감하지만 알게 모르게 눈치를 봐야하는 기업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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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