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헌혈하면 뭐 주나 보니…

차라리 주지 말지…주고도 욕먹네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헌혈은 건강한 사람이 아무 대가 없이 자신의 혈액을 기증하는 사랑의 실천이자 생명을 나누는 고귀한 행동이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헌혈 장려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헌혈자들에게 기념품을 제공하는 취지도 따지고 보면 사람들이 헌혈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다. 안타깝게도 얼마전부터 헌혈기념품의 조악한 품질이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자칫 헌혈의 기본 취지를 해치거나 헌혈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마저 훼손시킬까 우려되는 부분이다.

겨울철이 되면 매번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린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였다. 각종 회식, 모임 등으로 단체 및 개인 헌혈자가 감소하는 데다 추운 날씨 때문에 원활한 헌혈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혈액원에서는 동절기 헌혈 참여를 늘리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실행 중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위치한 헌혈의 집 운영시간을 연장하거나 ‘스마트 헌혈’ 앱을 통해 쉽게 헌혈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불량품 속출

헌혈을 장려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헌혈의 필요성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단순히 또 다른 형태의 기부라는 의미를 앞세우는 낡은 방식은 잘 통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스스로 헌혈의 집을 찾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 최근 현헐 기념품이 한층 다양해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등록헌혈자들에게는 기존 혜택 이외에 기념품을 추가 제공하기까지 한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가 기념품을 제공하는 것은 헌혈자 확대를 위해서다. 1981년 80만명을 조금 웃돌았던 헌혈자 수는 1995년 200만명을 넘어선 데 이어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300만명을 돌파했다. 참여 독려, 기념품 증정 등 꾸준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05년부터는 문화상품권, 영화관람권 등이 추가됐다. 다만 현금성이 높은 기념품이 ‘자발적 무상헌혈’의 의미를 무색하게 한다는 비판이 일자 2011년부터 문화상품권 지급은 중단됐다.


헌혈자가 300만명을 넘어선 배경에는 헌혈자의 수요를 반영한 기념품 선정이 있었다. 헌혈 기념품의 종류는 매년 ‘기념품 선정위원회’를 통해 정해진다. 전년도 기념품과 최근 유행, 헌혈자의 선호도 등을 고려해 예비 후보군을 선별하고, 헌혈자·적십자사 직원·외부 전문가 등의 의견을 반영해 결정한다.

생필품을 주로 제공했으나 최근에는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은 품목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기부권, 외식상품권, 영화관람권, 남성용 화장품 등 종류도 한층 다양해졌다. 헌혈 장소별 선호도와 재고 차이 때문에 모든 품목을 구비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기본 품목은 거의 비슷하다. 해당 기념품은 혈액관리본부 산정예산에 맞춰 구입 계약한다. 기념품 구입 책정 금액은 물품 변동에 따라 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영화관람권·배터리 등으로 참여 독려
저품질에 불만…오작동·잦은 고장도

문제는 제아무리 선의에 입각한 제공이라고 해도 헌혈 기념품 상당수가 조악한 품질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데 있다. 기본적으로 나눔의 의미를 더하는 것이기에 별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경우도 있지만 정작 이런 사례를 경험한 사람들의 입장은 다르다.

직장인 30대 직장인 Y씨는 틈나는 대로 헌혈에 꾸준히 참여해왔다. 어느덧 100번 째 헌혈을 코앞에 둔 그는 기념품으로 받은 영화관람권을 사용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새롭게 기념품에 추가된 휴대폰 보조배터리를 선택하면서 아찔한 경험을 겪었다. 충전을 하려고 보니 충전은 되지 않고 배터리에서 하얗게 연기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놀란 그는 얼른 휴대폰을 배터리에서 분리시켰고 다행히 휴대폰에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배터리에서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더니 어느새 녹기 시작했다. 자칫 잘못하면 대형 화재사고로 이어질 수 있던 사안이었다.

기분은 나빴지만 운이 없었다고 치부하고 다음번 헌혈에서 다시 보조배터리를 선택했다. 이번에도 문제였다. 자신이 쓰고 있는 아이폰에서는 보조배터리가 인증되지 않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결국 Y씨가 선택한 헌혈기념품은 두 번에 걸쳐 무용지물이었던 셈이다.


Y씨는 “차라리 받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갈텐데 불량품을 받고 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며 “선의에서 시작한 헌혈인데 굳이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애매했지만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 필요는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Y씨 이외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우산, 카드지갑 등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일법한 헌혈 기념품을 받고 비슷한 토로를 하고 있다. 조악한 품질에 대한 불만이 대부분이었다. 접이식 우산의 경우 몇 번 사용으로 고장나기 일쑤고 카드지갑은 마감처리가 깔끔하지 못해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물론 '헌혈은 사랑'이라는 캠페인에서 알 수 있듯이 헌혈 자체를 어떤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건 접근 방식에서부터 옳은 일이 아니다. 헌혈자가 헌혈 후 기념품을 받는 대신 그 금액만큼을 기부하는 ‘헌혈기부권’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소정의 기념품이 헌혈의 집으로 발길을 닿게 하는 촉매제가 된다면 단순히 기념품을 수단으로 바라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취지 해칠라

이런 사람들에게는 불량 기념품이 선의를 해치는 기분 나쁜 경험으로 비춰질 수 있다. 최근 SNS를 통해 퍼지기 시작한 헌혈의 유해성 논란으로 혈액 확보가 더 어려워진 것을 감안하면 세세한 관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헌혈 괴담’ 진실은?

헌혈 괴담이 SNS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헌혈에 사용된 기구를 통해 질병이 옮겨지거나 헌혈을 하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소문이다. 물론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기우에 불과하다.

바늘이나 혈액팩 등 헌혈에 사용되는 모든 기구들은 무균처리되어 있으며, 한 번 사용한 후에는 모두 폐기처분하기 때문에 헌혈로 인해 에이즈 등 다른 질병에 감염될 위험이 전혀 없다. 실제로 헌혈의집에서 헌혈할 때 간호사들이 들고오는 바늘, 팩 등의 물품은 헌혈자가 보는 앞에서 밀봉처리된 비닐봉지를 뜯어 사용한다.

보건복지부는 안정적인 혈액 수급을 위해 최근 말라리아 위험 지역(경기도 김포시, 파주시, 연천군, 고양시 일산 동구, 고양시 일산 서구, 동두천시, 인천 옹진군, 인천 중구, 인천 서구, 인천 동구, 강원도 철원군, 고성군) 거주자들에 대해 한시적으로 헌혈을 허용하기로 했다. 말라리아 지역에서 채혈한 혈액은 14일 냉장 보관 후 검사를 거쳐 출고되며, 혈액 속 말라리아 원충은 14일 내에 모두 사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혈액원 관계자는 “최근 SNS를 통해 ‘헌혈을 하면 노화가 촉진된다’ 등 헌혈과 관련된 확인되지 않는 사실들이 유포되고 있어 혈액을 확보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며 “겨울은 계절적으로 혈액을 확보하는 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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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