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정보 장사’ 홈플러스 무죄 논란

이건 누가 봐도…또 봐주기?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전자상거래, 고객관리, 금융거래 등 각 분야에서 정보통신기술이 일상화되면서 개인정보의 중요성은 한층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기관 혹은 기업에서는 고객의 개인정보를 자신들의 또 다른 돈줄로 바라보는 인상이 짙다. 분명 개인정보보호법의 큰 테두리에 반하지만 마땅한 처벌을 기대하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홈플러스에서 촉발된 고객 개인정보 유출 논란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안이다.

 

경품행사에 응모한 고객의 개인정보를 보험사에 팔아 넘겨 이득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홈플러스 경영진과 법인에 내려진 1심 법원의 무죄 판단이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고객의 개인정보를 사고 판 업체에게 면죄부를 준 것은 물론, 사실상 업체들의 개인정보 장사를 용인한 판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개인정보 장사
사실상 용인?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부상준 부장판사는 지난 8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도성환 홈플러스 전 사장과 홈플러스 법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에 연루된 홈플러스 직원 3명과 보험사 직원 2명에게도 무죄 판결을 내렸다.

홈플러스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논란은 약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11년 12월부터 2014년 6월까지 11회에 걸쳐 진행된 경품행사에서 홈플러스는 고객의 개인정보 약 700만건을 불법 수집한 혐의로 검찰로부터 기소됐다. 이 과정에서 7개 보험사에 한 건당 1980원씩 총 148억원에 개인정보를 판매한 행위가 포착됐다.

홈플러스 전·현직 보험서비스팀장 3명은 사전 동의 없이 보험사 2곳에 1694만건의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제공해 83억5000여만원의 판매수익을 얻었다. 정보를 구입해 마케팅에 활용한 생명보험사 마케팅 직원 2명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개인정보 보험사에 팔아 230억 수익
도성환 전 사장 등 1심 거센 후폭풍

그러나 법원의 입장은 달랐다. 홈플러스가 법상 고지 의무가 있는 사항을 경품 응모권에 모두 기재했기 때문에 부정한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취득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현행법은 개인정보 제공 주체의 동의를 받을 때 알려야할 사항에 개인정보 취득 이후 어떠한 처리를 하는지, 유상으로 판매하는지 등을 포함하지 않는다. 이를 토대로 홈플러스의 고객 개인정보 판매가 부정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부 부장판사는 “응모자 중 30%는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아 경품 추첨 대상에서 제외됐다”며 “고객 입장에서 경품 당첨이 되려면 개인정보를 제공해야하고 또 그 개인정보가 보험사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홈플러스가 회원 정보를 보험사에 넘겨 정보를 거르게 한 뒤 되돌려 받은 것에 대해서도 보험사는 홈플러스의 개인정보 처리 업무를 위탁받았을 뿐이라고 해석했다. 위탁의 경우 특별히 정보제공 주체로부터 동의를 받도록 요구받지 않는다는 해석에 근거한 판단이다. 고지 과정에서 절차를 위반한 것은 과태료나 행정제재 사유가 될 순 있어도 범죄가 될 순 없다고 반박해온 홈플러스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팔아넘긴 정보
또 다른 돈줄

고객 개인정보를 보험사에 팔아넘긴 홈플러스에 무죄가 선고된 직후 법원은 즉각적인 후폭풍에 직면했다. 검찰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판결에 대한 비난의 강도가 거세지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검사 이정수)는 지난 11일, 해당 사건에 대해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일단 검찰은 홈플러스가 개인정보를 유출해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는 주장을 굽힐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앞서 검찰은 홈플러스가 개인정보 판매 사업을 고객을 위한 사은행사인 것처럼 위장했다고 보고 전 사장에게 징역 2년, 홈플러스에 벌금 7500만원과 추징금 231억7000만원을 구형한 바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 같은 사업 자체를 계속 허용하는 것은 정보 주체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정보 주체의 권리 보장 측면에서 다시 판단해달라는 취지로 항소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홈플러스는 경품 행사에서 보험모집 대상자 선별에 필요한 생년월일과 자녀수, 부모동거 여부 등을 함께 쓰게 했고, 누락할 경우 경품 추첨에서 배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견상 고객 사은행사였을 뿐 경품행사가 사실상 응모고객의 개인정보를 빼내려는 목적이었다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민단체 “말도 안 된다” 반발
민사재판 앞두고 여파에 주목

경품에 당첨되면 문자메시지로 알려준다며 연락처를 적게 했지만 홈플러스는 1·2등 당첨자에게 연락도 하지 않았다. 당첨자가 어렵사리 당첨사실을 알고 먼저 연락하면 홈플러스 상품권으로 갈음하기도 했다. 

소비자 동의없이 보험회사와 개인정보를 주고 받은 부분을 정상적인 기업행위로 판단한 것도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의 취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재판부가 경품행사로 개인정보를 취득하고 이를 보험사 등에 넘겨서 대가를 받았다는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한데다, 경품 행사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접수한 고객 정보를 보험사에 넘기기 위해서였다는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등 13개 소비자단체 역시 공동성명을 내고 법원의 결정을 강력히 규탄하고 나섰다. 법원이 개인정보보호법 입법취지를 무시하고 대기업의 손을 들어줬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소비자단체들은 “법원이 업체 간 무분별한 개인정보의 공유와 활용으로 악용될 소지를 마련해 준 것”이라며 “법원이 앞장서서 소비자들의 개인정보를 침해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소비자단체들의 항의 수위는 시간이 갈수록 거세지는 양상이다. 지난 13일, 참여연대 등 13개 시민단체는 홈플러스의 고객정보 불법판매 행위에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에 1㎜ 크기로 작성한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재판부의 무죄 판결에 대한 항의 차원이다.

법원은 홈플러스가 개인정보 관련 고지사항 글자 크기를 1㎜로 한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러 작게 해서 내용을 읽을 수 없게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바 있다. 다른 응모권이나 복권 등의 글자 크기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본 셈이다.

시민단체는 재판부에 “첨부한 1㎜ 크기 서한 내용이 보이냐”고 묻고는 “이는 누가 보더라도 도저히 인지할 수 없을 정도다. 경품에 응모했던 소비자들 역시 대부분 동일한 대답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 깨알글씨
사실상 면죄부

홈플러스 고객정보 장사 무죄 판결은 소비자들이 홈플러스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의 승패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2년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피해를 본 KT 가입자들이 낸 소송에서는 법원이 ‘개인정보 유출 방지의무’를 다하지 않은 책임을 KT에 물었던 전례가 있다. 다만 이번 경우는 고의적 고객 정보 유출이라는 점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지 속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서울중앙지법에 제기된 홈플러스 개인정보 불법판매 관련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다수의 시민단체들이 개별적으로 소송을 대리하는 형식이다. 여기에 참여한 소비자는 2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법인 예율이 지난해 2월 소비자 154명을 대리해 홈플러스를 상대로 4620만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낸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와 진보네트워크센터가 1074명의 회원과 함께 홈플러스와 보험사 2곳을 상대로 3억2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부산 YMCA 시민권익센터 김지현 변호사도 소비자 684명을 대리해 2억55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 외에도 여러 법무법인들이 인터넷상에 카페를 개설하고 소송인단을 모집해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대규모 집단소송이 이어질 경우 손해배상액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고의적인 불법행위로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면 홈플러스는 재산상의 손해가 입증되지 않아도 위자료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다만 시민단체는 형사재판이 민사소송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겪는 피해를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형사재판을 통해 또 한 번 입증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악용 가능성
동일사례 우려


이번 판결을 기점으로 수많은 개인정보들이 유사한 형태로 넘어갈 수 있는 문을 열었다고 볼 수도 있다. 비슷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마트 개인 정보 유출건에 대해서도 어떤 판결이 내려질 지 주목된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오락가락’ 배임 판결 5500억 날려도 ‘무죄’

캐나다 정유업체 ‘하베스트’(Harvest Trust Energy)를 부실 인수한 혐의로 기소된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이 무죄를 선고 받고 석방됐다. 강 전 사장은 검찰이 해외 자원외교 비리를 수사하며 에너지공기업 고위 관계자를 기소한 첫 사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김동아)는 지난 8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강 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하베스트 인수는 한국석유공사법 상 해외자원개발사업의 취지에 부합한다”며 “당시 독점협상권과 관련해 기한 내 실사를 처리해야 할 사정이 있었고 인수 포기를 결정하는 것이 옳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베스트 인수 과정에서 석유공사가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입증 자료가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또한 인수 여부는 기본적으로 정책 판단에 대한 것으로 형사상 배임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실상 강 전 사장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여긴 셈이다.

강영원 전 사장 혐의 벗어
검 “이해할 수 없는 처사”

강 전 사장은 2009년 10월 캐나다 자원개발 회사 하베스트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부실 계열사인 노스아틀랜틱리파이닝(NARL)을 시장 평가액보다 높은 가격에 사들여 석유공사에 손실을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조사 결과 석유공사는 하베스트 인수 계약을 체결하며 NARL을 시장 가격보다 5500억원 높은 1조3700억원에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투자의 적정성과 자산 가치 평가 등에 대한 내부 검토나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투자자문사가 만든 자료를 그대로 믿고 인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번 판결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지난 11일 예고 없이 서울고검 기자실을 찾아 항소 계획을 공식 브리핑했다. 검찰청의 수사를 총괄 지휘하는 검사장이 하급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건을 두고 공식석상에서 직접 항소 방침을 밝힌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 지검장은 “석유공사가 하베스트 정유공장 인수 당시 나랏돈 5500억원의 손실을 안겼고 결국 1조30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손실이 났다”며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았다”고 강조했다.

특히 “1심 판결처럼 경영판단을 지나치게 폭넓게 해석하기 시작하면 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주게 되며 그나마 유일하게 존재하는 검찰 수사를 통한 사후 통제를 질식시키는 결과가 된다”며 재판부의 판단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검찰은 앞선 결심공판에서 강 전 사장의 배임으로 인한 피해 금액이 매우 크고 국민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야기했다는 점에서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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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