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착한바보 신드롬 앞과 뒤

얼마나 안타까웠으면…고객들이 돕는다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직장인 신씨는 영화 상영 전 나오는 광고에서 눈에 확 띄는 키보드를 접했다. 자세히 보니 LG전자 제품이었다. 휴대성을 극대화한 이 제품을 보자마자 신씨는 왜 대대적인 광고를 하지 않는지 의아했다. 대박 아이템이 될 가능성이 커보였기 때문이다. 마케팅에 조금만 더 신경 쓴다면 화제가 되는 건 순식간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제품은 굉장히 잘 뽑는데 딱히 사고 싶진 않다.”

가전과 IT기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LG전자를 평가하는 단적인 표현이다. 치명적인 단점마저 아이덴티티로 포장하는 애플과는 그야말로 극과 극이다. 오죽하면 마케팅 능력이 바보 수준이라는 비판마저 들릴까. 놀랍게도 마냥 답답했던 LG전자의 마케팅 전략이 어느 순간부터 ‘착한바보’로 둔갑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제품은 호평
마케팅은 글쎄

삼성전자의 경쟁자 혹은 대항마로 불리지만 사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수평적인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외형 차이가 극명하다. 매출은 물론이고 대다수 제품군에서 현격한 점유율 격차를 실감하고 있다. 단순 품질 차이라면 그나마 수긍할 법 하건만 LG전자 제품 사용자들은 보통 성능과 디자인 양쪽에서 후한 평가를 내리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쯤 되면 LG전자가 매번 열세에 놓이는 근원적인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바로 마케팅이다.

LG전자의 마케팅 전략은 예전부터 조롱의 대상이었다. 제품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지 못한 채 사장시키거나 후발주자의 추격을 허용하는 일이 빈번했다. 반대로 경쟁사들이 선점한 시장에 진입하고자 할 경우 오랜 시간동안 제자리를 잡지 못한 채 방황하다가 철수 혹은 명맥만 유지하는 모양새가 계속됐다.

다양한 이유를 꼽을 수 있겠지만 맞춤형 마케팅 전략의 부재가 컸다. 전통적 마케팅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에 비판이 계속된 건 당연했다. 그런데 최근 LG전자의 마케팅을 바라보는 시선에 극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어리숙한 모습이 뚝심 혹은 장인정신 쯤으로 비춰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순간 착한바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마저 덧씌워졌다.

거듭된 마케팅 전략 실패가 전화위복? 
치명적 단점마저 포장하는 애플과 비교

LG전자를 설명하는 착한바보라는 표현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작됐다. 자신을 LG전자 제품 애호가라고 밝힌 한 사람이 마케팅 부재로 고전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 나머지 스스로 LG전자 홍보에 나선 것이다.

이 사람이 모아서 엮은 LG전자 제품의 뛰어난 특징은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때부터 LG전자 제품 홍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차츰 늘어났고 특히 뛰어난 내구성에 대한 찬사가 줄을 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사례는 토네이도를 이겨낸 냉장고였다.

지난 2012년 남아프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남쪽으로 90㎞ 떨어진 데니스빌(Deneysville)에 토네이도가 급습했다. 1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중상을 입는 등 피해가 속출한 대형 자연재해였다. 이곳에 사는 마크 로우씨도 토네이도에 피해를 입긴 마찬가지였다. 집이 파괴 되고 가재도구는 바람에 날아갔고 성한 물건을 찾기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LG전자 냉장고는 별 탈 없었다.

그의 집에서 사용 중이던 LG전자 냉장고는 강력한 토네이도 바람에 의해 집 밖으로 날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이상 없이 정상 작동됐다. 외관이 조금 손상되고 내부 선반이 흐트러졌을 뿐이었다. 냉장고에 감탄한 마크 로우씨는 이후 우수한 제품을 만드는 LG전자에 찬사를 보내며 직접 찍은 사진을 LG전자에 이메일로 보내기까지 햇다.

LG전자 휴대폰이 총탄을 막아 생명을 구한 기적도 다시 한 번 회자됐다. 지난 2005년 보석상으로 일하는 대런 프라이어는 무단 침입한 권총 강도로부터 총격을 받았으나 총탄이 재킷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휴대폰에 맞고 튕겨져 나가 생명을 건졌다. 휴대폰 배터리 부분이 충격을 흡수하면서 총탄을 튕겨낸 것이다. 이 소식은 영국의 유력 일간지에 연일 대서특필됐고 현지에서 LG전자 휴대폰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그러나 이 소식은 국내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9층에서 떨어졌는데 멀쩡했던 스마트폰의 사례도 퍼져나갔다. 한 네티즌이 LG전자 최신 스마트폰 ‘V10’을 아파트 9층에서 이불을 털다가 실수로 떨어뜨린 후 상태를 찍어 올렸다. 박살났다고 생각했던 스마트폰은 놀랍게도 약간 휘어졌을 뿐 멀쩡했다. 사용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또 다른 사람은 LG전자 스마트폰 실험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의 스마트폰은 끓는 기름에 넣고 튀겼음에도 멀쩡했다. 순식간에 이 영상은 4000건 이상 리트윗 됐고 LG전자 스마트폰의 내구성은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뛰어난 성능
부족한 마케팅

LG전자 마케팅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회사 이미지는 긍정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내구성뿐만 아니라 제품 전반의 성능을 재조명하는 분위기마저 감돈다. 지금껏 효율적인 마케팅이 수반되지 않았던 제품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것이다. 물론 이들 제품은 기본적으로 높은 만족도를 충족시킨다.

초경량 노트북 ‘그램’은 14인치 모델의 무게가 980g에 불과하다. 비슷한 스펙을 지닌 제품 가운데 가장 가볍다. 더 놀라운 점은 이 제품의 실제 무게가 963g이라는 사실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더 가볍다고 광고해도 될 만한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도료 오차 10g, 저울 오차 5g까지 감안해 980g으로 표기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어떻게든 좋게 포장하기보다 고객의 오해를 없애는 게 최우선이라는 뜻밖의 대답이었다.

LG전자의 플래그십 스마트폰 V10은 애플, 삼성전자의 경쟁모델과 대결에서 사실상 실패한 모델로 귀결된다. 안타까운 점은 DSD 재생 기능, 쿼드비트3 Tune By AKG 등 고급 오디오에 들어가는 사양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사장됐다는 사실이다. 금색 스테인리스 베젤에 실제로 20K 금도금이 돼 있다고 밝혀진 것도 판매가 이뤄진 이후였다.

사용자들이 직접 나서 제품 홍보
줄 잇는 찬사…양심기업으로 재평가

20만원대 모니터에 수백만원대 제품에만 제한적으로 탑재되는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 기능이 쓰였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대대적인 마케팅이 이뤄졌다면 훨씬 큰 반향을 이끌어냈을 제품이 분명하지만 LG전자는 홈페이지와 카탈로그에 이 기능을 표기한 게 전부였다.

최근 케이블TV와 극장에서 한정적으로 홍보를 진행하고 있는 4단 접이식 롤리 키보드 역시 마찬가지다.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벌이다 보니 노출 빈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이들 제품들의 공통점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고민하게 할 만한 제대로 된 정보 전달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제품의 스펙을 낮춰 알리거나 중요사항을 누락시키기까지 했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제품의 특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마케팅을 하는 게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제기할 정도였다. 별 것 아닌듯한 특징을 핵심 키워드로 잡고 제품의 특성과 연결짓는 애플, 삼성전자의 마케팅 방식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마케팅 바보
'착한바보'로

한발 더 나아가 LG그룹이 펼치는 사회 공헌사업과 잘 알려지지 않은 선행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물론 지금껏 사람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일들이었다. 이렇다 보니 네티즌들이 직접 LG를 마케팅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LG는 복지시설 가전제품을 평생 AS 해준다"는 글이 올라왔다.

복지시설에 기부를 좀 하려고 알아보는데 시설 실무자가 "LG는 복지시설 것은 무제한 무료로 서비스해준다"고 언급한 사실을 알린 것이다. "기왕이면 LG 제품으로 부탁한다"고 시설 실무자가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사회복지시설이나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정, 조손가정, 장애인이 이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LG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이 쏟아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에 대해 LG전자는 “사회적 약자 배려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지난 2004년부터 진행해오고 있다”며 “우리 회사가 가진 재능기부를 통해 기업의 당연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목함지뢰 부상 장병 2명에게 5억씩 위로금을 줬는데 과세될 처지에 놓이자 이마저 내줬다는 이야기도 널리 퍼지고 있다. 지난해 8월 위로금 쾌척 당시보다 넉 달 후 위로금 과세 여부가 논란이 됐을 때 LG가 부상 장병에게 위로금을 줬다는 게 더 크게 알려졌다. 보면 볼수록 호감이라고 칭찬도 더해졌다.

이렇듯 소소한 사례가 모이자 급기야 LG전자를 ‘양심기업’으로 떠받드는 묘한 분위기마저 연출되고 있다. 심지어 LG 창업자가 거액의 독립운동자금을 내주었다는 뚜렷이 확인되지 않은 내용조차 떠도는 상황이다.

물론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상당수다. 일각에서는 착한바보 신드롬으로 불리는 정황이 고도의 마케팅 수단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금껏 LG전자가 보여준 마케팅 활용 능력을 감안하면 착한바보 이미지를 일부러 덧씌운다는 주장은 그다지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사용자들이 직접 나서야 할 만큼 LG전자의 마케팅 전략이 그동안 소비자들의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반증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보다 못해 네티즌이 직접 LG를 마케팅 한다’는 식의 제목이 달린 우호적인 글이 퍼지는 상황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기업이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과는 확실히 궤를 달리한다.

의도치 않은
양심기업 훈장

달리 말하자면 자신들의 강점을 알리기에 모자란 상황에서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LG전자의 행보를 꼬집는 셈이다. 착한바보라는 긍정적 이미지와 포장에 서툰 대기업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동시에 함축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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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