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착한바보 신드롬 앞과 뒤

얼마나 안타까웠으면…고객들이 돕는다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직장인 신씨는 영화 상영 전 나오는 광고에서 눈에 확 띄는 키보드를 접했다. 자세히 보니 LG전자 제품이었다. 휴대성을 극대화한 이 제품을 보자마자 신씨는 왜 대대적인 광고를 하지 않는지 의아했다. 대박 아이템이 될 가능성이 커보였기 때문이다. 마케팅에 조금만 더 신경 쓴다면 화제가 되는 건 순식간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제품은 굉장히 잘 뽑는데 딱히 사고 싶진 않다.”

가전과 IT기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LG전자를 평가하는 단적인 표현이다. 치명적인 단점마저 아이덴티티로 포장하는 애플과는 그야말로 극과 극이다. 오죽하면 마케팅 능력이 바보 수준이라는 비판마저 들릴까. 놀랍게도 마냥 답답했던 LG전자의 마케팅 전략이 어느 순간부터 ‘착한바보’로 둔갑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제품은 호평
마케팅은 글쎄

삼성전자의 경쟁자 혹은 대항마로 불리지만 사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수평적인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외형 차이가 극명하다. 매출은 물론이고 대다수 제품군에서 현격한 점유율 격차를 실감하고 있다. 단순 품질 차이라면 그나마 수긍할 법 하건만 LG전자 제품 사용자들은 보통 성능과 디자인 양쪽에서 후한 평가를 내리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쯤 되면 LG전자가 매번 열세에 놓이는 근원적인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바로 마케팅이다.

LG전자의 마케팅 전략은 예전부터 조롱의 대상이었다. 제품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지 못한 채 사장시키거나 후발주자의 추격을 허용하는 일이 빈번했다. 반대로 경쟁사들이 선점한 시장에 진입하고자 할 경우 오랜 시간동안 제자리를 잡지 못한 채 방황하다가 철수 혹은 명맥만 유지하는 모양새가 계속됐다.


다양한 이유를 꼽을 수 있겠지만 맞춤형 마케팅 전략의 부재가 컸다. 전통적 마케팅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에 비판이 계속된 건 당연했다. 그런데 최근 LG전자의 마케팅을 바라보는 시선에 극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어리숙한 모습이 뚝심 혹은 장인정신 쯤으로 비춰지기 시작한 것이다. 일순간 착한바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마저 덧씌워졌다.

거듭된 마케팅 전략 실패가 전화위복? 
치명적 단점마저 포장하는 애플과 비교

LG전자를 설명하는 착한바보라는 표현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작됐다. 자신을 LG전자 제품 애호가라고 밝힌 한 사람이 마케팅 부재로 고전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 나머지 스스로 LG전자 홍보에 나선 것이다.

이 사람이 모아서 엮은 LG전자 제품의 뛰어난 특징은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때부터 LG전자 제품 홍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차츰 늘어났고 특히 뛰어난 내구성에 대한 찬사가 줄을 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사례는 토네이도를 이겨낸 냉장고였다.

지난 2012년 남아프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남쪽으로 90㎞ 떨어진 데니스빌(Deneysville)에 토네이도가 급습했다. 1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중상을 입는 등 피해가 속출한 대형 자연재해였다. 이곳에 사는 마크 로우씨도 토네이도에 피해를 입긴 마찬가지였다. 집이 파괴 되고 가재도구는 바람에 날아갔고 성한 물건을 찾기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LG전자 냉장고는 별 탈 없었다.

그의 집에서 사용 중이던 LG전자 냉장고는 강력한 토네이도 바람에 의해 집 밖으로 날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이상 없이 정상 작동됐다. 외관이 조금 손상되고 내부 선반이 흐트러졌을 뿐이었다. 냉장고에 감탄한 마크 로우씨는 이후 우수한 제품을 만드는 LG전자에 찬사를 보내며 직접 찍은 사진을 LG전자에 이메일로 보내기까지 햇다.


LG전자 휴대폰이 총탄을 막아 생명을 구한 기적도 다시 한 번 회자됐다. 지난 2005년 보석상으로 일하는 대런 프라이어는 무단 침입한 권총 강도로부터 총격을 받았으나 총탄이 재킷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휴대폰에 맞고 튕겨져 나가 생명을 건졌다. 휴대폰 배터리 부분이 충격을 흡수하면서 총탄을 튕겨낸 것이다. 이 소식은 영국의 유력 일간지에 연일 대서특필됐고 현지에서 LG전자 휴대폰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그러나 이 소식은 국내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9층에서 떨어졌는데 멀쩡했던 스마트폰의 사례도 퍼져나갔다. 한 네티즌이 LG전자 최신 스마트폰 ‘V10’을 아파트 9층에서 이불을 털다가 실수로 떨어뜨린 후 상태를 찍어 올렸다. 박살났다고 생각했던 스마트폰은 놀랍게도 약간 휘어졌을 뿐 멀쩡했다. 사용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또 다른 사람은 LG전자 스마트폰 실험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의 스마트폰은 끓는 기름에 넣고 튀겼음에도 멀쩡했다. 순식간에 이 영상은 4000건 이상 리트윗 됐고 LG전자 스마트폰의 내구성은 다시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뛰어난 성능
부족한 마케팅

LG전자 마케팅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회사 이미지는 긍정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내구성뿐만 아니라 제품 전반의 성능을 재조명하는 분위기마저 감돈다. 지금껏 효율적인 마케팅이 수반되지 않았던 제품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것이다. 물론 이들 제품은 기본적으로 높은 만족도를 충족시킨다.

초경량 노트북 ‘그램’은 14인치 모델의 무게가 980g에 불과하다. 비슷한 스펙을 지닌 제품 가운데 가장 가볍다. 더 놀라운 점은 이 제품의 실제 무게가 963g이라는 사실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더 가볍다고 광고해도 될 만한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도료 오차 10g, 저울 오차 5g까지 감안해 980g으로 표기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어떻게든 좋게 포장하기보다 고객의 오해를 없애는 게 최우선이라는 뜻밖의 대답이었다.

LG전자의 플래그십 스마트폰 V10은 애플, 삼성전자의 경쟁모델과 대결에서 사실상 실패한 모델로 귀결된다. 안타까운 점은 DSD 재생 기능, 쿼드비트3 Tune By AKG 등 고급 오디오에 들어가는 사양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사장됐다는 사실이다. 금색 스테인리스 베젤에 실제로 20K 금도금이 돼 있다고 밝혀진 것도 판매가 이뤄진 이후였다.

사용자들이 직접 나서 제품 홍보
줄 잇는 찬사…양심기업으로 재평가

20만원대 모니터에 수백만원대 제품에만 제한적으로 탑재되는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 기능이 쓰였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대대적인 마케팅이 이뤄졌다면 훨씬 큰 반향을 이끌어냈을 제품이 분명하지만 LG전자는 홈페이지와 카탈로그에 이 기능을 표기한 게 전부였다.

최근 케이블TV와 극장에서 한정적으로 홍보를 진행하고 있는 4단 접이식 롤리 키보드 역시 마찬가지다.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벌이다 보니 노출 빈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이들 제품들의 공통점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고민하게 할 만한 제대로 된 정보 전달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제품의 스펙을 낮춰 알리거나 중요사항을 누락시키기까지 했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제품의 특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마케팅을 하는 게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제기할 정도였다. 별 것 아닌듯한 특징을 핵심 키워드로 잡고 제품의 특성과 연결짓는 애플, 삼성전자의 마케팅 방식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마케팅 바보
'착한바보'로

한발 더 나아가 LG그룹이 펼치는 사회 공헌사업과 잘 알려지지 않은 선행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물론 지금껏 사람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일들이었다. 이렇다 보니 네티즌들이 직접 LG를 마케팅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LG는 복지시설 가전제품을 평생 AS 해준다"는 글이 올라왔다.

복지시설에 기부를 좀 하려고 알아보는데 시설 실무자가 "LG는 복지시설 것은 무제한 무료로 서비스해준다"고 언급한 사실을 알린 것이다. "기왕이면 LG 제품으로 부탁한다"고 시설 실무자가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사회복지시설이나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정, 조손가정, 장애인이 이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LG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이 쏟아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에 대해 LG전자는 “사회적 약자 배려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지난 2004년부터 진행해오고 있다”며 “우리 회사가 가진 재능기부를 통해 기업의 당연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목함지뢰 부상 장병 2명에게 5억씩 위로금을 줬는데 과세될 처지에 놓이자 이마저 내줬다는 이야기도 널리 퍼지고 있다. 지난해 8월 위로금 쾌척 당시보다 넉 달 후 위로금 과세 여부가 논란이 됐을 때 LG가 부상 장병에게 위로금을 줬다는 게 더 크게 알려졌다. 보면 볼수록 호감이라고 칭찬도 더해졌다.


이렇듯 소소한 사례가 모이자 급기야 LG전자를 ‘양심기업’으로 떠받드는 묘한 분위기마저 연출되고 있다. 심지어 LG 창업자가 거액의 독립운동자금을 내주었다는 뚜렷이 확인되지 않은 내용조차 떠도는 상황이다.

물론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상당수다. 일각에서는 착한바보 신드롬으로 불리는 정황이 고도의 마케팅 수단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금껏 LG전자가 보여준 마케팅 활용 능력을 감안하면 착한바보 이미지를 일부러 덧씌운다는 주장은 그다지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사용자들이 직접 나서야 할 만큼 LG전자의 마케팅 전략이 그동안 소비자들의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반증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보다 못해 네티즌이 직접 LG를 마케팅 한다’는 식의 제목이 달린 우호적인 글이 퍼지는 상황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기업이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과는 확실히 궤를 달리한다.

의도치 않은
양심기업 훈장

달리 말하자면 자신들의 강점을 알리기에 모자란 상황에서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LG전자의 행보를 꼬집는 셈이다. 착한바보라는 긍정적 이미지와 포장에 서툰 대기업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동시에 함축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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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