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돈 돌려준' 착한 회장님 열전

없으면 아껴쓰고 있을땐 나눠쓴다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독립운동가이자 유한양행 창업주인 고 유일한 박사는 기업경영의 목표는 이윤추구가 아닌 사회헌신이라고 누차 강조했다. 공익활동에 앞장섰던 그의 행적은 죽은 지 40년이 훌쩍 지나도록 참된 기업인의 표상으로 남아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동안 그를 대체할만한 존경받을만한 기업인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딸 맥스의 출산 소식과 함께 재산의 99%를 생전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던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에게 전 세계는 환호했다. “재산 대신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저커버그의 뜻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미약하게나마 국내에서도 ‘자선 자본주의’ 물결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고생한 직원에
주식 무상지급

대규모 신약 수출 계약건으로 제약업계 최대 주식부호로 올라선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은 얼마 전 통 큰 결정을 했다. 지난 4일 한미약품은 임 회장이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주식 약 90만주를 한미약품 그룹 직원 약 2800명에게 지급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장 마감일을 기준으로 결정된 무상지급 주식 90만주는 임 회장이 보유한 개인 주식의 약 4.3%, 한미사이언스 전체 발행 주식의 1.6%에 해당한다. 2015년 12월30일 종가 기준 한미약품 주가가 12만9000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총액 규모는 1100억원이다. 한미약품 임직원은 월 급여의 1000%에 해당하는 금액을 주식으로 지급받는다. 직원 1인당 평균 약 4000만원을 받는 셈이다.

임 회장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땀 흘려가며 큰 성취를 이룬 주역인 한미약품 그룹의 모든 임직원들에게 고마움과 함께 마음의 빚을 느껴왔다”며 “이번 결정이 고난의 시기를 함께 이겨낸 그룹 임직원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2015년 한 해 동안 글로벌 제약기업인 일라이릴리, 베링거인겔하임, 사노피, 얀센 등에 총 8조원 규모의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이 발표될 때마다 한미약품, 한미사이언스의 주가는 크게 뛰었다. 2015년에 1만5200원으로 시작한 한미사이언스 주가는 지난해 말 기준 12만9000원으로 올랐다. 그사이 임 회장은 2조원이 넘는 평가 차익을 거두며 제약업계 최고 주식 부호가 됐다.

보유 주식 떼 임직원에 보너스로
“회사는 직원 것” 상생 오너들 늘어

이명근 성우하이텍 회장은 임 회장보다 먼저 본인 소유의 회사 주식을 내놓았다. 지난해 12월23일 이 회장은 본인 보유의 회사 주식 일부를 전 직원에게 무상으로 지급했다.

발표가 있던 날 성우하이텍 종가는 주당 9000원이었고 직원들이 받은 주식은 1인당 평균 983만원씩 총 164억6505만원에 이른다. 또한 주식 지급일로부터 만 3년 이내 주가가 주당 1만5000원에 미달할 경우 차액에 대한 보상을 원하면 증권거래세 및 매도수수료를 차감한 금액을 보전해주기로 했다.

법인에서 주식의 일부를 직원에게 지급하는 게 아니라 최대주주가 전 직원에게 주식의 일부를 무상으로 지급한다는 점에서 이 회장의 결정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회사 측은 지난 1997년 해외시장에 진출한 후 세계 75위에 부품회사로 선정되기까지 함께 고생한 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한 순수한 보상의 의미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회장의 결정으로 성우하이텍, 아산성우하이텍 전직원은 회사에 기여한 공로에 따라 근속연수를 기준으로 총 182만9450주를 지급받게 된다. 이는 전체 발행주식 6000만주의 3.05%에 해당한다. 이 회장의 지분은 42.26%에서 39.21%로 줄었다.

코스닥 상장기업 링네트는 2000년 창사 이래 지금껏 임직원에게 285만주에 이르는 자사주를 무상으로 지급해왔다. 이 회사를 진두지휘하는 이주석 대표의 대범한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까지 총 285만주(전체주식대비 19.5%)를 지급됐으며 그 사이 링네트는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2010년부터 최근 5년간 ROE 평균 15.6%를 유지하고 신용등급을 A+로 높이는 등 비약적인 성장이 눈에 띈다.

링네트 관계자는 “창사 이래 한 번도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며 “우리사주조합을 통해 종업원들이 ‘내가 회사의 주인’이라는 인식과 사업에 대한 열정으로 생산성과 수익성이 좋아 지게 된 결과”라고 밝혔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5년째 통 큰 배당금 기부를 이어가면서 금융투자업계의 기부왕으로 불린다. 2010년부터 박 회장이 시작한 배당금 전액 기부는 올해로 무려 5년째 이어지고 있다. 5년 연속 누적된 배당금 금액 기부는 168억원에 이른다. 올해 역시 별다른 사유가 없는 한 배당금 기부가 계속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박 회장의 기부 행보는 ‘돈은 꽃이다’라는 평소 그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기부금 전액은 다양한 복지사업과 장학생 육성에 쓰이고 있는데 결국 '배려있는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박 회장의 소신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 설립연도 다음해인 1998년 미래에셋육영재단을 만들었고, 2000년 75억원의 사재를 출연해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을 설립했다. 돈 버는 일도 중요지만 미래의 희망인 젊은이들을 육성하는 일을 진행하는 박현주 재단도 벌써 15년째 이어지고 있다.

기부가 생활
쓰임새 다양

임 회장과 이 회장이 함께 고생한 회사 구성원들에게 몫을 돌렸다면 포괄적인 쓰임새를 고려해 자산을 쾌척한 기업인들도 눈에 띈다.

지난해 8월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은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에 사재 2000억원을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이 명예회장이 출연하기로 한 비상장회사 주식에는 대림산업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대림코퍼레이션 주식이 포함됐다. 지주회사의 주식을 사회에 기부하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이 명예회장이 순수한 개인 재산을 2000억원이나 기부했다는 사실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왔다. 기업 명의의 기부는 활성화돼 있지만, 기업인이 개인재산을 털어 돈을 내는 일은 많지 않은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명예회장처럼 대기업 오너 경영인이 자발적으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것은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명예회장이 외부 재단에 기부한 것도 대기업 오너 사이에서는 이례적이다. 회사 소유의 재단이 아닌 점에서 사회적 의미는 더 클 수밖에 없다. 더 적극적인 사회 공헌활동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오뚜기 창업주인 함태호 명예회장의 통큰 기부 역시 충분히 박수받을 만한 일이었다. 지난해 11월 함 명예회장은 자신이 소유한 회사 주식 3만주를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에 기부했다. 함 명예회장의 보유주식은 기부 직전 60만543주에서 57만543주로 줄었는데 사용처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3만주가 기부로 쓰였다는 사실은 나중에 가서야 알려졌다.

복지사업에 남몰래 기부
순수 개인재산 통큰 쾌척
연봉 삭감 등 분담 노력도


오뚜기 관계자는 “함 명예회장이 밀알재단의 장애인 자활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주식 기부도 해당 재단 쪽으로 결정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간 오뚜기가 지원해오고 있던 밀알복지재단에 개인적으로 기부한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아들인 함영준 오뚜기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함 명예회장은 대표적인 사회공헌 기업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철학에 따라 오뚜기는 1992년부터 심장병 어린이 후원사업을 통해 지난해까지 약 4000명에 이르는 심장병 환자들에게 수술비를 지원했다.
 

이번에 함 명예회장이 주식을 기부한 밀알복지재단과는 2012년부터 인연이 닿았다. 주로 장애인들의 자활을 돕는 이 재단에 오뚜기 측은 선물세트 조립 임가공을 위탁해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고향인 전남 순천시에 통 큰 기부를 약속했다. 순천시는 최근 이 회장이 고향인 순천시에 전남공무원교육원이 유치된다면 교육원 시설(교육동 1만㎡, 생활관 2500㎡) 건축비용 250여억원을 투자해 직접 건립한 후 순천시에 기증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그간 전국의 110여개 학교에 기숙사·도서관·체육관 등을 건립·기증하는 등 교육재는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신념을 누누이 밝힌 바 있다. 해외에도 600여개의 학교를 지어주는 등 교육기부에 각별한 열정을 보여 왔다. 부영그룹은 지난해 매출액 대비 기부금 비중이 가장 높은 기업이었다.

자발적 연봉삭감
구조조정 최소화


경기 불황의 여파로 기업의 구조조정이 한창인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연봉을 삭감하거나 인력 감축 최소화를 결단한 경영진도 상당수에 이른다.

지난해 9월 한동우 신한금융그룹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은 각각 연봉의 30%를 반납하기로 했다. 연간 총보수가 5억원 이상인 등기임원 연봉을 공개하도록 한 자본시장법 규정에 따라 발표된 지난해 김정태 회장 연봉은 17억3700만원, 한동우 회장은 12억3300만원이다. 윤종규 회장은 지난해 총보수가 5억원 미만이어서 공개 대상이 아니었다.

이번 보수 반납 결의는 3대 금융지주 회장 조찬 회동에서 논의돼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3대 금융지주 회장은 청년 일자리 창출, 경제 활성화를 위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뜻을 함께했다. 저금리, 저성장 기조 지속 등 갈수록 어려워지는 금융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자구노력의 필요성을 공감했다고 봐도 무방한 사안이다.

3대 금융지주 회장의 연봉 30% 반납 선언 이후 ‘연봉 반납’ 움직임은 전 금융권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금융권 협회장, 지주 계열사 은행장, 카드 보험 사장들도 자발적으로 연봉반납에 동참할 뜻을 밝히며 일자리 창출에 발벗고 나섰다. 3대 금융그룹은 연봉 반납으로 마련된 재원을 계열사 인턴, 신입사원, 경력직 사원 등 연간 신규 채용 확대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에도 몇 차례 수장들의 자진 연봉 삭감은 있었지만 이렇게 급물살을 타고 금융권 전역으로 퍼져 나가긴 처음”이라며 “경기불황에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금융권 수장들이 앞장서 연봉을 삭감한다고 나서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사태가 새해를 앞두고 극적으로 타결된 가운데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 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에게도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쌍용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30일 쌍용차 노사는 2009년 법정관리에 따른 대규모 해고 사태 이후 해고자 복직을 위해 종적으로 결의했다. 쌍용차 노사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희망퇴직자 가운데 입사 지원자에 한해 기술직 신규인력 채용 수요가 있으면 단계적으로 채용하기로 뜻을 모았다.

쌍용차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모기업인 쌍용그룹이 무너지면서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이 여파로 쌍용차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인한 희망퇴직이나 정리해고로 많은 근로자가 직장을 잃었다. 노조는 이에 반발해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파업에 들어간 바 있고, 일부는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등 비극이 초래된 바 있다.

이러한 노·사간의 극한대립은 마힌드라그룹이 쌍용차의 새 주인으로 등장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지난 1월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과 쌍용차, 쌍용차 노동조합,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의 만남에서 소통이 본격 시작됐다. 당시 마힌드라 회장은 "쌍용차의 경영상황이 개선되면 2009년 퇴직했던 생산직 인원들을 단계적으로 복직시키겠다"고 밝혔다. 이후 쌍용차는 주력 제품인티볼리를 내세워 부활하고 있고 마힌드라 회장도 통큰 결단으로 화답했다.

함께 일군 수익
구성원과 함께

일각에서는 사회 지도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사회공헌활동에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다른 조건 없이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나눠주는 통 큰 회장님들의 담대한 결정은 분명 박수 받아 마땅하다. 세상에 내 돈 아깝지 않은 사람은 없다. 형식과 내용은 다르지만 이들의 행동은 일종의 청량제 역할을 한다. 보다 나은 사회를 꿈꾸는 데 위아래가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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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