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추적> 자승 측근 동국대 보광스님의 비밀

스님이 재산 소유 왜?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이른바 '동국대 사태'가 일단락됐다. 총장 및 이사장 선임 과정에서 외압 시비에 휘말린 이사회는 지난 3일 전원 사퇴를 약속했다. 종단 내 권력투쟁의 불씨가 학교로 옮아 붙은 이번 사건은 조계종 지도부가 신임 총장을 감싸면서 파문이 확대됐다. 총장을 비호하는 배후로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이 지목된 가운데 이들의 숨겨진 '인연'에 관심이 집중된다.

권력이 있는 곳에는 파벌이 존재한다. 집권세력과 대안세력(또는 견제세력)으로 양분된 이들은 서로 권력을 갖기 위해 싸운다. 국회에는 여당과 야당이 있고, 여당인 새누리당 안에도 친박과 비박이 있다.

종교집단도 예외는 아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이하 조계종)에는 중앙종회라는 대의기구가 있다. 중앙종회에서 여당은 불교광장이며, 야당은 삼화도량이다. 조계종의 대통령격인 자승 총무원장은 불교광장 소속이다.

‘자승 천하’
동국대 접수

불교광장은 지난해 10월 열린 제16대 중앙종회의원 선거에서 54석(친여 성향 10석 포함)을 얻어 15석을 얻은 삼화도량을 압도했다. 앞서 자승 원장은 지난 2013년 10월 조계종 총무원장 가운데는 최초로 연임에 성공했다. 국가조직에 비유하면 행정부와 국회를 동시에 장악한 것이다.

중앙종회 선거 직후 조계종은 '전리품'인 동국대를 손에 넣으려 했다. 2014년 기준 동국대의 한해 예산은 6300억원 규모로 조계종 연예산인 450억원보다 10배 이상 많았다. 더구나 동국대에는 스님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넘쳐났다. 2014년 12월11일 자승 원장 등 조계종 간부 5명은 김희옥 당시 동국대 총장과 동국대 이사장 정련스님을 서울 코리아나호텔 일식당으로 불러냈다.


당시 동국대에선 차기 총장 선거를 둘러싼 공방이 가열되고 있었다. 연임을 노리는 김 총장과 '삼수생'인 보광스님 간의 물밑 경쟁이 치열했다. 그런데 조계종 간부들은 코리아나호텔 일식당에서 "종단의 뜻"이라며 김 총장의 후보직 사퇴를 권유했다. 같은 달 16일 정련스님은 동국대 이사회에서 이 같은 의혹을 폭로했다.

이른바 '조계종 외압' 시비는 동국대가 1년 가까이 내분을 겪게 된 원인이 됐다. 단독후보가 된 보광스님은 종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총장에 선출됐다.

반면 삼화도량 소속으로 자승 원장과 대립각을 세우던 영담스님은 지난 5월 자신이 몸담은 동국대 이사회에서 해임됐다. 해임 논의는 자승 원장의 사람으로 불리는 일면스님(현재 이사장직 사퇴)이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면스님은 정련스님의 임기가 지난 3월 만료되자 신임 동국대 이사장에 선출됐다.

자승 취임하자
요직으로 영전

불교계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이 같은 '권력 독점' 시도가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조계종에 여당과 야당이 있다면 동국대 이사진에는 야당 몫을 남겨두는 게 관행이었다"라고 말했다.

동국대 사태의 불씨는 '비선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지난 3월 이른바 '9인회'라는 사조직을 언급한 영담스님은 "자승 원장을 지지하는 9인회 멤버 가운데 보광스님과 일면스님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지난 4일 조계종 측은 관련 문의에 대한 답변을 주지 않았다.

보광스님은 자승 원장의 측근으로 불린다. 지난 2013년 자승 원장이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 출마하자 보광스님은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에 부각된 '연구자'로서의 면모 외에 정치적인 이력이 숨어 있는 셈이다. 또한 동국대 사정에 밝은 복수 관계자는 "보광스님이 상당한 규모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취재 결과 청계산 인근에선 보광스님 명의로 된 부동산이 확인됐다. 사찰이 소유권을 갖고 있는 건물에선 유료 낚시터가 운영되고 있었다. 아울러 보광스님이 창립한 학회의 핵심 간부들은 자승 원장의 '중앙집권화' 정책에 적극 협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의혹을 관통하는 두 가지 키워드는 '돈'과 '권력'이다.

먼저 지난 1월 보광스님은 연구 논문 표절 의혹에 휩싸였다. 당시 동국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표절 판정에 나섰다. 같은 달 14일 보광스님은 "논문 내용이 일부 비슷한 것 뿐"이라며 동국대 이사회에 반론문을 제출했다. "표절로 볼 수 없다"라는 의견을 담은 공문과 함께였다. 공문을 발급한 기관은 대각사상연구원과 한국정토학회로 확인된다.

자승 원장 조계종 행정부·의회 차례로 장악
조계종 내 비선 의혹…정토학회 파워그룹 부상?

보광스님은 1998년 대각사상연구원을 만든 장본인이다. 1998년 3월부터 현재까지 대각사상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정토학회 역시 1988년 5월 발기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998년 2월 정식 출범한 한국정토학회의 초대 이사 가운데는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눈에 띈다. 보광스님은 창립 이래 기획·재정을 총괄하는 총무이사로 활동했다.

두 학회는 각각 불교 이론을 연구하는 모임이다. 세부 연구 분야는 다르지만 임원 구성은 상당 부분 일치한다. 신규탁 연세대 교수는 지난 2000년부터 한국정토학회 이사를 맡았다. 신 교수는 대각사상연구원의 연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2014년 한국정토학회 회장(9기)에 취임한 신 교수는 보광스님의 논문 표절 의혹을 적극 반박했다.

보광스님은 한국정토학회에서 지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5기 회장직을 수행했다. 2008년 6기 회장에 취임한 태원스님은 대각사상연구원의 감사였다. 2010년 7기 회장에 내정된 도업스님도 같은 시기 대각사상연구원의 이사장을 지냈다. 이외에 한국정토학회 이사진과 대각사상연구원 연구진에 함께 등재된 인물은 동국대 김모 교수 등 5명이 더 있었다.

보광스님이 조계종 내 요직을 꿰찬 시점은 회장 임기가 완료된 2008년 이후다. 구체적으로 자승 원장의 총무원장 취임 시기(2009년 11월)와 맞물린다. 2010년 1월 제14대 중앙종회의원에 선출된 보광스님은 같은 해 6월 조계종 화쟁위원회 화쟁위원으로 내정됐다.

또 보광스님은 같은 해 7월 조계종 장학위원회 장학위원장으로 위촉돼 3연임에 성공했다. 장학위원장의 역할은 스님들을 상대로 장학금을 주는 것이다. 당시 조계종은 학기별 국내 기준 최대 1000만원, 해외 기준 최대 3000만원까지 장학금 지급을 약속했다.

자승과 인연
대각회 협조

자승 원장은 취임 후 대형사찰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는 데 공을 들였다. 조계종에 비타협적인 재단과 분원들이 주요 대상이었다. 이 같은 고민 속에 등장한 승부수가 '법인관리법'이다. 법인관리법에는 조계종 산하 200여개에 달하는 법인을 통합·관리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등록제'를 표방한 법인관리법은 '재단에 대한 통제와 규제'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대형사찰들은 조계종이 재단 재산을 빼앗거나 이사회에 개입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반발했다. 법인관리법 시행 과정에서 조계종과 대립한 재단은 선학원과 대각회다. 이들은 규모 면에서 조계종 총무원의 재정적인 지원 없이도 자립이 가능했다.

이 가운데 대각회 이사회는 지난해 8월 법인관리법을 수용하기로 의결했다. 당시 대각회 이사장은 한국정토학회 회장을 지낸 도업스님이다. 도업스님은 지난 7월 또 다른 한국정토학회 회원인 혜총스님에게 이사장직을 넘겼다. 혜총스님은 취임 일성으로 "대각회와 조계종은 한 몸"이라고 말했다.


한국정토학회 9기 회장을 역임한 성운스님은 자신이 속한 선학원에 반기를 들었다. 성운스님은 지난 8월 조계종이 선학원을 상대로 제기한 '이사회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에 원고로 참여했다. 앞서 선학원 이사회는 법인관리법 시행에 협조하기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성운스님은 직원 수 500여명에 달하는 사회복지법인 인덕원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16일 성운스님은 '제27회 대한불교조계종 포교대상'을 수상했다. 이날 자승 원장은 성운스님에게 직접 상패를 전달했다.

불자 가운데 비교적 큰 조직을 이끄는 스님들과 자승 원장의 공조는 자연스런 일이다. 한국정토학회 6~8기 회장은 각각 대형 사회복지법인(또는 재단법인)의 이사장을 지냈다.

반면 보광스님은 대형 법인을 대표해 본 경험이 없다. 다만 자신이 주지로 있는 성남 정토사에서 불교대학을 운영하는 등 학교사업에 관심을 보여 온 것으로 전해진다. 동국대 총장에도 세 차례 도전할 만큼 의욕을 드러냈다.

흔히 보광스님은 "사업 수완이 좋은 인물"로 평가된다. 보광스님은 지난 2004년 "주지스님도 CEO가 돼야 한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불교 전문지에 기고한 바 있다. 실제 보광스님은 시가 수십억원으로 추정되는 부동산을 사찰 명의와 개인 명의로 소유하고 있다. 정토사가 있는 청계산 일대는 물론이고, 2007년까지 충북 음성군 소재 임야 4만2600㎡를 소유했다. 해당 임야는 2007년 2월5일 출연을 통해 대각회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중점 추진 '법인관리법' 학회 출신 외곽지원
본인 부동산 담보 대출로 4억5천 근저당 설정


1986년 보광스님은 현 주소지인 경기 성남시 상적동 338번지 땅과 건물을 사들였다. 이어 1990년에는 경북 예천군에 있는 땅 1063㎡를 매입했다. 예천군 땅은 2003년 2월 신모씨에게 매매됐다. 보광스님은 당시 '양어장 불사금' 부채를 갚기 위해 땅을 팔았다고 밝혔다.

스님이 밝힌 양어장은 정토사 인근의 Y낚시터와 주소지가 일치한다. 보광스님은 2002년 5월 Y낚시터 부지(상적동 338-2) 등 6필지(상적동 360 등)의 지분을 사들였다. 계약에 따라 1만4000여㎡ 땅과 낚시장 건물의 지분 50%(1/2)는 보광스님에게 넘어갔다.

Y낚시터 관계자는 지난 2일 "영업을 안 한 지 오래됐고, 스님도 관련이 없다"라고 했지만 지난 8월까지 낚시터는 정상 운영됐다. 동국대 측은 지난 4일 "총장님(보광스님)께서 양어장이 오염된 것을 안타까워 하다가 지분을 매입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보광스님이 1997년부터 인수·매입한 정토사 인근 땅은 확인된 것만 29필지에 이르렀다. 이 땅의 일부는 2000년 8월22일 대각회로 증여되거나 2007년 2월5일 같은 곳에 출연됐다. 2007년 2월은 대선을 앞두고 종교인 과세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던 시기다.

지난 3일 기준 보광스님이 개인 명의(속명 한태식)로 갖고 있던 땅은 14필지(상적동 344-1, 354 등)다. 관련 등기부등본을 살피면 보광스님은 2001년 12월31일 상적동 354번지 등 19필지를 금융권 담보로 제공해 4억원가량(채권최고액 4억5500만원)을 대출받았다. 조계종 승려법 제30조 2항에 따르면 승려는 종단의 공익과 중생 구제의 목적 외에는 본인이나 세속의 가족을 위해 개인 명의의 재산을 취득해선 안 된다.

보광스님 명의로 된 땅은 모두 '자연녹지'로 대각회로 넘긴 '제1종 일반주거지역'과 구별된다. 세법상 자연녹지를 재단(대각회)에 출연하면 과세(또는 강제매각)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지난 4일 통화한 정토사 관계자는 "업무를 맡은 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른다. 스님과 연락할 방법은 없다"라고 말했다.

낚시터 운영?
과세에 대비?

지난 3일 동국대 이사회는 "현 이사장을 포함한 모든 임원은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전원 사퇴하고자 한다"라는 내용의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사퇴 요구를 함께 받은 보광스님은 유구무언이다. 총장을 비호하는 배후로 자승 원장이 지목된 것은 괜한 트집 잡기가 아니다.

조계종 측은 지난 4일 승려법 위반 의혹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호법부에서 처리할 일"이라고 말했다. 호법부 측은 7일 오전까지 관련 문의에 대한 답변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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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