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사’ 손해사정 브로커의 세계

“1억 받을 거 2억 받아드립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보험사는 매달 보험료를 꼬박꼬박 받아가면서 막상 보험금을 줄 때는 미적거린다. 심지어 손해사정사를 통해 어떻게든 보험금을 깎을 궁리만 한다. 반면 고객들은 한 푼이라도 더 받고 싶은 마음이다. 주기 싫은 이와 받고 싶은 이의 사이에서 손해사정사 브로커는 오늘도 줄타기한다.

 

“수수료는 10∼15%입니다. 보험금 3000만원 이하는 맡지 않습니다. 돈이 안 되잖아요.” 지난 20일 기자와 만난 한 손해사정사 브로커의 말이다. 그는 국내 대기업인 S보험사 출신으로 현재는 회사를 나와 독립 손해사정사 겸 '브로커'로 일하고 있다.

“더 받게 해줄게”

독립손해사정사는 대형 보험사에 비해 전문적 지식이 부족한 보험소비자를 보호하고자 보험업법에 규정된 직업이다. 보다 보험소비자에게 유리한 증거들을 수집하는 업무를 하며, 보험금 감액과 면책을 방어하는 일을 한다.

한국손해사정사회에 따르면, 손해사정사는 총 5184명(2013년 11월 말 기준)이고, 이 중 807명이 보험회사 등에 속하지 않은 독립손해사정사다. 보험소비자는 보험사에 속한 손해사정사들이 보상금 등을 제대로 산정해 줄 것 같지 않을 경우 독립손해사정사를 고용한다.

하지만 이 중 일부는 특정 병원이나 보험소비자와 짜고 보험사기를 저지르며, 보험사와 협상을 벌이는 브로커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사고가 발생했을 때 독립손해사정사가 평소 알고 지내던 병원에 보험소비자를 소개해주거나, 과다한 보험금을 탈 수 있도록 진단서 등을 받아 내 수수료와 보험금 일부를 받는 것이다. 이런 독립손해사정사들은 건당 50여만원에 허위 장애진단서를 발급하고, 손해액 확정 금액의 수수료를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보험 사기로 적발된 사람은 8만4000명이고 적발 금액은 6000억원에 달하는데, 보험 사기에는 대부분 브로커가 끼어 있고 이 중 20∼30% 정도가 독립손해사정사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병원 입원실을 돌아다니며 브로커로 활동하는 이들은 2000여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병원을 직접 돌아다니며 고객을 확보하는 ‘영업 사무장’으로 통한다. 이들은 병원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아는 의사가 있으니 그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식으로 환자 가족들에게 권한다. 이에 대해 한 손해사정사는 “친분있는 의사를 통해 보험금을 타기에 유리한 진단서를 끊어내고, 자신은 환자를 데려간 대가로 병원에서 리베이트를 받는 구조”라고 귀띔했다.

브로커 A씨의 경우에는 보험금 1억 이상 환자의 사건만 수임한다. A씨는 “보험금이 적으면 돈이 안 된다. 환자의 상태를 보고 수임한다. 무조건 최고액을 받아줄 수 있다”고 말했다. A씨의 보험금 수수료는 15%다. 만약 환자가 3억원의 보험금을 타낸다면 4500만원을 떼가는 셈이다. 이어 A씨는 “이렇게 수수료가 있어도 환자에게는 이득이다. 솔직히 요즘 보험사들은 어떻게든 보험금 깎기에 바쁘다”고 말했다.

이처럼 보험사기가 브로커를 통해 판을 치지만,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도 있다. 해가 갈수록 보험사들은 손해사정사를 통해 어떻게든 ‘보험금 깎기’를 하거나 보상에 미적거리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신학용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게 제출한 생명보험사 보험금 청구 및 지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25개 생명보험사와 14개 손해보험사가 2010년부터 5년간 보험금 신청을 받고서 지급기일인 10일이 지나서 준 돈이 총 1조4623억원이다. 이 금액들은 보험사가 지급을 미루다가 결국 주게 된 금액이다.

보험사-고객 사이서 흥정 줄다리기
수수료 10∼15%…3000만원부터 거래

이런 탓에 보험소비자들은 암암리에 브로커를 통해 보험금을 타고자 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브로커를 찾는 보험소비자 대부분은 한번씩 보험사로부터 보험금 깎기를 당하거나, 심지어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했던 사람이었다.


지난 4월 공중목욕탕에서 천장이 무너진 사고로 크게 다쳤던 B씨는 보험사가 보험금을 깎는 바람에 치료비에 절반가량밖에 보상받지 못했다. B씨는 “한달 입원했는데, 보험사에서는 ‘불필요한 진료를 받았다’ ‘기왕증으로 사고와 무관한 치료였다’ 등을 이유로 보험금을 깎았다”고 말했다. 이어 “소송 직전까지 갔지만, 시간과 돈이 없어 마지못해 합의 했다”고 말했다. 

보험사는 보험금 축소 지급에 혈안이 돼 있다. 금융당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B씨의 경우처럼 손해보험사들이 고객을 상대로 한 소송건수는 계속 느는 추세다. 이로 인한 손해보험사를 상대로 한 보험관련 분쟁조정신청건수도 지난 2013년 1만3183건에서 1만5698건으로 약 20% 늘어났다. 업계관계자는 “영업환경이 어려워진 보험사들이 보험금을 적게 산정하고 보험금 지급심사를 엄격히 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다 보니 소송 및 분쟁건수가 증가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B씨는 이 분쟁 이후 기존에 가입했던 보험을 모두 해지하고, 브로커가 판매하는 보험상품에 가입했다. B씨는 “당시 몇 년간 매달 보험료를 냈는데, 이렇게밖에 보상받지 못한 게 화나고 억울해 모두 해지했다. 이후 아는 병원 사무장을 통해 손해사정사 브로커에게 보험을 가입했다”며 “브로커에게 수수료를 지급하더라도 보험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다”고 말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손해사정사 브로커의 월소득은 수천만원에 달한다”며 “전직 보험사 직원이 전 직장에서 얻은 보험금 산출 정보를 근거로 협상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보험금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금감원과 정부는 이런 브로커를 척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최근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독립 손해사정사와 사무장 44명을 고발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양요안)에 배당했다고 지난 9월 24일 밝혔다. 서울변회 관계자는 “변호사가 아니면서 금품을 받을 것을 약속하고 보험사와 보험계약자를 중재하는 것은 변호사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보험사기 피해도

몇몇 보험소비자들의 입장은 달랐다. 비록 불법이지만, 이런 브로커들이 제대로 보상금을 받아주기 때문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브로커가 개입하는 것은 보험사기가 맞지만, 보험사들도 보험소비자를 상대로 어떻게 해서든지 보험금을 깎으려고 하는 행태는 갑질이다”며 “어쩌면 브로커들이 이런 보험사의 횡포로부터 보험소비자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보험사의 두 얼굴

보험은 사회 안전망이자 국민들의 생활 필수품이 됐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 민영보험 가입건수는 가구당 5건에 이를 정도다. 하지만 막상 사고를 당해 보험금을 타려고 할 때는 복잡한 보상절차나 정보 부족으로 가입자들만 골탕을 먹는 사례가 적지 않다.

보험사 악행으로, 가입자의 과거 병력을 이유로 보험금을 깎거나 아예 한푼도 안주려는 게 대표적인 횡포로 꼽혔다. 이외에 설계사에 병력 알렸어도 고지의무 위반이라는 이유로 보험금을 깎는 경우. 진단서를 못 믿겠다며 다른 병원을 강요하는 경우, 보험금 거절하고 막무가내 소송 등이 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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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