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장기집권 플랜

응답하라 1987 상기하라 1972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정가에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현 VIP의 장기집권 시나리오다. 소식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무맹랑’하다고 했다. 당시엔 그랬다. 그러나 ‘진박’의 입을 통해 개헌론이 불거지자, 가벼운 호사가들의 입방정이라 치부하기엔 내용이 무거워져 버렸다.

지난 9월 말경부터 여의도 정가에는 괴소문이 돌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위해 개헌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찌라시(사설정보지)’급 내용이라 당시 이를 믿는 사람은 적었다. 일부 언론에서 가능성을 언급하는 정도였다. 소식을 접한 기자가 여당의 한 의원실 보좌관에게 해당 내용을 슬쩍 물어보자 그가 웃으며 한 말이 기억난다. “기자님, 그런 일이 일어나면 국민들이 가만있겠어요? 시대가 어느 시댄데….”

장기집권
시나리오

약 두 달여가 지난 지금, 정가의 반응은 180도 달라졌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묘한 여운마저 전해진다. 일전처럼 야권의 한 의원실 보좌관에게 가능성을 타진하자 일전과는 확실히 다른 반응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모습을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어요? 워낙 무서우시니…새누리 내에서도 아무 말 못한다잖아요.”

가능성이 한 단계 올라간 원인은 두 사람의 발언 덕분이다. 친박계 핵심 중 핵심인(요즘 말로 진박이라 불리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과 홍문종 의원은 최근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진원지가 남다르다보니 정가는 물론 언론도 해당 발언을 쉬이 넘길 수 없다는 분위기다.

<미디어오늘>의 보도에 따르면, 최 부총리는 지난 4일 신라호텔에서 SBS가 생방송으로 진행한 ‘제13차 미래한국리포트: 광복70년-좋은 정부의 조건’ 행사에 참석해 “지금까지 5년 단임 정부에서는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며 4년 중임제 개헌을 시사했다.


홍문종 의원의 발언은 좀 더 직접적이었다. 지난 12일 KBS 라디오에 출연한 홍 의원은 “내년 총선 이후 개헌해야 한다. 외치를 하는 대통령과 내치를 하는 총리를 두는 것이 5년 단임 대통령제보다 정책일관성이 있다”며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언급했다. ‘반기문 대통령, 친박계 총리 구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사회자의 질문에는 “가능성 있는 얘기”라고 답했다.

잇따른 진박들의 개헌론, 왜 지금?
5년 단임→4년 중임, 차차기 노림수?

정가에서는 홍 의원의 발언에 대해 대체로 성급했다는 평가다.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비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난 16일 서청원 최고위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치상식으로 이해 못 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선거구 획정, 경제활성화법 등 주요 현안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개헌론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표했다.
 

대통령 정무특보를 지낸 바 있는 김재원 의원도 한 MBC 라디오에 출연해 “현 상황은 개헌을 주장할 단계도 아니고, 또 가능하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 14일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서울공항에서 박 대통령을 배웅한 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홍 의원의 발언은 청와대와 무관하고 개인 의견일 뿐”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와 친박계 모두 선을 긋는 모습이다.

친박계 내에서 이러한 개헌론이 터져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일찍이 지난 2014년 10월16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개헌 논의 봇물이 터지면 막을 수가 없을 것”이라며 “나도 (예전에는) 내각제에 대한 부침 때문에 정·부통령제를 선호했지만, 이제는 이원집정부제를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가 청와대와 친박계의 공격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대로 친박계에서 먼저 얘기가 나왔다. 비박계 내부에서 ‘누구는 개헌을 말해도 되고 누군 안 되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반기문 대통령
친박계 총리?

정가 일각에서는 김 대표에 대항할 수 있는 친박계 후보의 부재를 이유로 든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6일 발표한 11월2주차 정례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대표가 전주 대비 1.0%포인트 상승한 21.8%를 기록, 20주 연속 여야 대선주자 선호도 1위에 올랐다.


김 대표를 향한 쏠림 현상은 같은 여권 내 후보들과의 비교를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여권 2위를 기록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7.9%에 그쳤고, 3위 정몽준 전 대표는 3.9%에 머물렀다(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5일간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617명을 대상으로 조사).

때문에 지난 9월16일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김무성 불가론’은 결과적으로 ‘친박계에 마땅한 대선주자가 없다는 방증 아니냐’는 분석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윤 의원은 당시 “내년 총선으로 4선 이상이 될 친박 의원 중 차기 대선에 도전할 사람들이 있다. 영남에도 있고 충청에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친박계가 주목하는 대선주자로 코어4(반기문·최경환·오세훈·황교안)가 거론되는 이유도 김 대표를 막을 대항마가 뚜렷하게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결국 개헌론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자구책 찾기라는 해석이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안이 앞서 말한 것처럼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다. 각각에는 친박계가 생각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있어 눈길을 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개헌한다고 해도 박 대통령의 연임은 불가하다. 헌법 제128조 2항을 보면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적시돼 있다.
 

즉 박 대통령이 임기 내 4년 중임제로 개헌하더라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는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이쯤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최 부총리, 그리고 ‘문고리 3인방’의 이름이 등장한다.

각본은 이렇다. 4년 중임제로의 개헌을 성사시킨 후 친박계는 차기 대선에 소위 ‘바지 대통령’을 당선시킨다. 이후 박 대통령이 2021년에 있을 차차기 대선에 출마한다는 설이다. 연임은 불가하지만 중임은 가능하다는데서 나온, 일종의 ‘꼼수’를 예상한 시나리오다.

4년 중임제
대선 노림수?

해당 설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로 박 대통령의 젊은 나이를 든다. 박 대통령은 올해 64세다.

당선된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박 대통령은 지난 2012년에 있었던 18대 대선 당시 61세로 역대 대통령 중 5번째 적은 나이였다(5대 박정희(47세), 11대 전두환(50세), 13대 노태우(57세), 16대 노무현(58세) 대통령이 박 대통령보다 적은 나이로 당선. 10대 최규하 대통령은 박 대통령과 같은 나이에 당선). 또한 문고리 3인방(정호성·이재만·안봉근)의 나이는 각각 47·50·50이다. 측근의 나이도 젊어 충분히 차차기까지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개헌의 동력은 충분한 상황이다. 이미 정가에서는 4년 중임제로의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원들의 목소리가 높다. 대표적인 개헌론자인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을 비롯해 정의화 국회의장 등 지지자가 많은 상황이다. 야당에서도 개헌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줄곧 피력해왔다. 만약 개헌 작업이 시작된다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가능성도 높다. 국회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에는 150명 이상의 현역 국회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원집정부제, 즉 분권형 대통령제 얘기도 있다(분권형 대통령제는 이원집정부제의 한국형버전이다). 앞서 홍 의원이 언급한 것처럼 대통령이 외치를, 총리가 내치를 맡는 구조다. 프랑스·오스트리아 등 해당 권력구조를 가진 국가들에서 대통령은 국민들이 직접선거를 통해 뽑지만, 총리는 의회 의원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다.

때문에 이원집정부제가 권력을 유지하는 데 용이한 구조라는 분석이 있다. 내치를 담당하는 총리를 의원들이 세우다보니 다수의 의석을 확보한 정당 쪽으로 권력이 치우칠 수 있다. 만약 다수당이 전횡을 부린다면 막을 방법이 없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이원집정부제가 도입될 시 현 정치구도를 기준으로 친박계가 가장 유리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집권여당 내 주류 세력이기 때문에 확장성을 바탕으로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친박계의 장기집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시나리오다. 만약 앞서 말한 4년 중임제와 함께 이원집정부제가 실시된다면, 그 폭발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 친박계 자생력↑
1972년 유신 개헌, 1987년 직선제 개헌

지난 18일 <데일리안>이 여론조사전문기관 ‘알앤써치’에 의뢰해 실시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헌에 찬성하는 사람은 전체 37.3%로 나타났다. 반대하는 의견이 39.4%로 2.1%포인트 높게 나왔지만, 오차범위 내에 있다(23.3%는 응답을 유보했다).

흥미로운 점은 개헌 찬성자 중 약 40%의 사람이 4년 중임제를 원한다는 것이다. 39.9%가 개헌을 한다면 4년 중임제로 가야한다고 응답했다. 현행 5년 단임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24.8%로 나타났다. 논란이 됐던 ‘이원집정부제’는 3.9%를 기록, 4.7% 의원내각제보다 적은 선택을 받았다(지난 15일~16일 이틀간 전국 성인남녀 1002명 대상, 95% 신뢰수준, 표본 오차 ±3.1%).
 

최근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가 제20대 총선의 목표로 제시한 180석이 개헌을 위한 포석 아니냐는 얘기가 복수의 언론을 통해 나오고 있다. 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11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 목표는 180석 이상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최근 개헌론과 연결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새누리당이 다가오는 2016년 180석을 확보할 경우, 그간 개헌을 주장해온 야당 및 무소속 의원들과 함께 이원집정부제로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개헌 의결 정족수는 200석(재적 의원의 3분의 2)이기 때문에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시나리오라는 지적이다. 원 원내대표가 ‘신박’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고 정가는 보고 있다.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지난 1987년 처음 도입된 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간 개헌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4년 국회 헌법개정자문위원회는 개헌을 다각적으로 논의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 사회 곳곳에 ‘독재’의 잔상이 남아있다 보니, 국민적 합의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원집정부제
친박계 자구책?

‘중임’과 ‘독재’는 동의어가 아니다. 만약 박 대통령이 중임제로의 개헌을 선언한다 해도 독재를 위한 포석이라고 보기에는 연결고리가 약하다. 오히려 친박계의 권력연장 의지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이 꾸준히 제시되는 이유는 대한민국 정부의 역사가 1948년부터 시작됐음에도, 복수의 독재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1972년 12월27일은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 개헌’을 단행, 대통령 ‘간선제’를 실시하고 중임 제한을 폐지한 날이다. 1987년 10월29일, 10월 유신 이후 사라졌던 대통령 ‘직선제’가 헌법에 명시되고 지금의 단임제가 시작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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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