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일하는 우체국 속사정

‘빨간 날’ 집배원들은 쉬고 싶다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주5일 근무가 뿌리 내린 지 10년이 훌쩍 지났다. 자영업자를 제외하면 주말에 일하는 모습을 찾기가 힘들만큼 토요일 휴무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놀랍게도 우정사업본부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애꿎은 집배원들의 주말만 날아간 형국이다.

지난 9월12일 미래창조과학부 우정사업본부는 국민 불편 해소와 우편사업의 건실한 성장을 이유로 우체국택배 토요배달을 재개했다. 현장 집배원들의 주5일 근무 보장, 업무부담 경감 등을 위해 지난해 7월부터 시행했던 우체국택배 토요배달 휴무를 불과 14개월만에 원점으로 되돌린 것이다.

열악한 근무환경

토요배달 휴무 시행 이후 우정사업본부는 대외적으로 상당한 손실을 감수해야만 했다. 우선 토요배달 중단에 따른 서비스 경쟁력 약화로 우체국 이용고객 감소가 컸다. 농어민, 인터넷 쇼핑몰 등 주말 배달을 원하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것도 부담이었다.

게다가 우편물량은 근 10년 동안 꾸준히 감소했다. 2002년 55억통에서 2014년 40억통으로 27%가 줄었고 올해는 39억5000통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미 각종 고지서가 우편 발송 대신 이메일로 대체된 데다 매월 100만통씩 올해만 12%의 우편물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우편사업의 적자는 불 보듯 뻔하다. 이미 1분기 기준으로 우편사업은 530억원의 적자가 발생했고 이 추세가 지속될 경우 올해 말까지 적자폭은 15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토요배달은 재개는 우정사업본부 입장에서 물러설 수 없는 선택이나 마찬가지다. 우정사업본부가 노조 측에 지속적으로 토요택배 재개를 요구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노조 측도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지했기에 일선 집배원들의 불만을 감당하면서까지 토요배달 재개를 합의했다. 좋게 보자면 우정사업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도록 노사가 함께 돌파구를 찾는 데 뜻을 함께한 셈이다.

그러나 토요배달 재개가 이뤄진 지 약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안건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택배 업무를 수행하는 집배원 대다수가 여전히 토요일 휴무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우정노동조합은 지난 6월 전국의 집배원들을 대상으로 토요배달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조사결과를 취합·분석해 향후 노동조합의 정책과 교섭방향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활용할 심산이었다. 1만513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토요배달에 대한 반대(68.8%) 입장이 찬성(26.6%)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토요배달 재개에 반대하는 이유로는 ‘집배원만 고통 전담’이라고 답한 이들이 38.1%로 가장 많았다. ‘인력부족과 업무량 증가’로 응답한 이들은 24.8%, ‘삶의 질 저하’라고 답한 이들은 19.5%, ‘우정사업본부 정책불신’이라고 답한 이들은 14.2%였다. 그리고 토요배달을 재개하더라도 집배 인력 충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90.3%에 달했다.

남들 다 쉬는데 근무 ‘토요배달’
주말 휴무 14개월 만에 ‘없던 일로’

사실 집배원들은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2013년 노동자운동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집배원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일반 정규직 노동자(42.7시간)보다 20시간 이상 많은 64.6시간이었다. 특히 명절·선거 등 우편물 집중기간에는 하루 15.3시간, 주당 85.9시간의 살인적인 노동을 버텨야 한다.

살인적인 노동강도는 집배원들의 안전과 건강마저 위협하고 있다. 특히 근로시간 동안 오토바이를 직접 운전해 배달하는 집배원에게는 치명적이다. 2012년 기준 집배원의 산업재해율은 2.54%로 전체 노동자 산업재해율(0.59%)의 4배나 된다. 또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1546명의 집배원이 업무상 재해를 당했고 이 가운데 26명이 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요배달은 원점으로 회귀됐고 일선 집배원들의 불만이 표출된 건 당연했다. 강도 높은 노동 여건을 개선하기 보단 당장의 수익을 우선한 처사라는 일선 집배원들의 불만이 거세지면서 토요배달을 묵인한 노조에 대한 불신도 한층 커졌다.

이렇게되자 집배원들은 단체행동이라는 초강수를 꺼내들었다. ‘토요근무반대·우정노조지도부 퇴진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달 3일 종로 일대에서 전국 집배원 노동자 총력 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인력 충원 없는 토요근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상황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인력 충원 없이 토요근무를 재개하라는 것은 죽으라는 얘기나 다름없다”며 “우정사업본부는 대다수 집배원들이 장시간 노동에 다치고 죽어가는 현실은 외면해왔다”고 울분을 토했다.

결국 해결의 실마리는 우정사업본부가 약속한 집배원 인력 충원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이뤄지느냐에 달렸다. 우정사업본부는 토요배달을 다시 시행하면서 388명의 신규 인원을 채용하고 배달일 지정 서비스와 요금 선납 제도 등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인력 충원이 원안대로 해결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오히려 우정사업본부는 인력 감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력보충 미지수

우정사업본부가 문병호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 3616명이었던 비정규직 정원은 올해 4월 기준으로 569명 줄어든 3047명이었다. 지난해에는 기간제 44명과 무기계약직 18명 등 62명의 비정규직을 퇴직시켰고 올해도 5월까지 10명을 내보냈다. 한발 더 나아가 지방에 소재한 우편집중국 가운데 일부는 희망퇴직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퇴직을 압박했다는 의혹마저 제기됐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없어지는 우체통

빨간 우체통의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 통계에 따르면 2005년 3만개에 달하던 우체통은 2013년 1만8000개 수준으로 줄었다. 한 때는 공중전화와 함께 아날로그 시대의 대표 통신수단이었던 만큼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상태다.

통상 우체통은 도시 규모, 이용 가능 인구, 담당 면적 등을 기준으로 설치되는데 상권 이동, 인구 감소 등으로 3개월 동안 이용 물량이 없는 지역의 우체통은 철거 대상이다. 신도시 개발 등 우편 서비스 수요가 있는 지역으로 우체통을 이전하거나 새롭게 설치하기도 한다. 그나마 남아있는 우체통은 우편물보단 갖가지 쓰레기가 자리를 차지하는 등 쓰레기통 취급을 받고 있다.

우체통의 감소는 우편물 접수물량 감소 탓이다. 일반보통우편물은 2010년 1억4912만건에서 2014년 1억1803만건으로 4년 새 3000만건 이상 줄었다.  우체국 관계자는 “손편지 자체가 사라지다 보니 우편물 대다수가 세금고지서, 통신요금고지서, 카드명세서 등에 국한된다”며 “이런 것들도 모바일, 이메일 고지서로 전환되다 보니 갈수록 줄고 있다”고 말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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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