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5만6014건’ 구원파 신도들 표적 사찰 의혹

“초등생 개인정보까지 털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검찰과 경찰이 유병언 검거 작전 당시 단기간에 수만건의 개인정보를 무차별 수집한 사실이 확인됐다. 구원파 교인 수천명의 개인정보를 집중적으로 조회한 것이다. 사건과 아무 연관 없는 일반 교인의 일가족은 물론이고 아이들의 개인정보까지 수집한 사실이 확인됐다.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해 6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 검찰은 유병언을 잡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검찰은 유병언 수사가 ‘단군 이래 최대 검거 작전’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당시 유병언 목에 걸린 현상금은 5억원으로 역대 최대였으며, 검거 작전에 투입된 수사 인력은 100만명이 넘었다.
 
유병언 작전 당시
대대적으로 열람 
 
이외 수사 과정에서 개인정보 수집 역시 역대 최대였다는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특히 검찰과 경찰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 구원파 교인들을 중심으로 개인정보인 ‘통신자료’ 수만건을 들여다봤다. 통신자료란 전기통신사업법상 전화번호의 이용자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가입일 또는 해지일 등을 포함한 ‘개인정보’를 뜻한다. 
 
<일요시사>는 검·경이 구원파 교인 2362명의 통신자료 5만6014건을 조회한 사실을 최초 확인했다. 이는 지난해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2014년 상반기 통신자료 제공내역’ 49만2502건 중 11.4%에 해당한다. 2013년 동기(46만5304건)와 비교하면 2만7198건이나 증가한 수치다. 유병언 검거 작전 당시 수사기관에서 조회한 통신자료 건수가 지난해 증가 요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유병언 수사 종결 수개월 뒤 다수의 구원파 교인은 검찰과 경찰로부터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요청 집행사실 통지서’를 받았다. 이중 한 교인의 통지서에는 ‘유병언, 양00, 유00, 유00, 박00 사건과 관련하여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요청을 집행하였으므로 이를 통지합니다’라고 적혀 있다(통신자료와 통신사실확인 내역은 엄연히 다르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검경 2362명 5만6014건 개인정보 조회
단지 신도란 이유로…통신자료 넘어가 
 
통지서를 받은 신도들은 한 번도 수사를 받아본 적 없거나 혹은 참고인 조사만 받은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유병언 사건과 무관한 사람이 대다수다. 구원파 관계자는 “평범한 교인들에게 이런 통지서가 와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며 “교단 차원에서 수사기관에 통신자료 제공 내역을 각자 통신사에 확인해보라고 공지했다”고 말했다.
 
당시 교인들 반응은 '설마 내 것까지 봤을까 싶었다'였다. 2492명의 교인은 교단에 위임하거나 자발적으로 통신자료 제공 내역을 확인했다. 결과는 충격이었다. 130명을 제외한 2362명의 교인이 2014년 5월 중순∼7월 말까지 최소 10건에서 많게는 300여건까지 전국 각 수사기관에서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이다. 
 
일부 교인들은 “수사기관에서 통신자료를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은 신앙심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였다. 국내 구원파 교인은 약 2만명으로 추산되며, 통신자료 제공 내역이 확인된 교인만 2362명인 것이다. 그래서 실제 수사기관에서 더 많은 교인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열람된 개인정보가 수십만 건에 달할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교인 A씨의 통신자료 제공내역을 보면 5월16일부터 7월31일까지 총 29개 수사기관에서 292건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수사기관은 A씨의 통신자료를 하루에도 수십 건씩 들여다봤다. 지난해 7월7일 검·경은 하루 만에 A씨의 통신자료를 17건이나 조회했다.
 

조회한 수사기관도 다양하다. 인천지방검찰청, 인천지방경찰청, 전남무안경찰서, 경북지방경찰청, 서울지방경찰청, 전남목포경찰서, 서울강동경찰서, 서울서초경찰서, 강원지방경찰청, 경기지방경찰청, 충북지방경찰청 등에서 A씨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이날만 해도 전국 각지에서 약 1시간 간격으로 A씨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이다. 당시 검·경은 유병언의 도피가 장기화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었다. 
 
이보다 앞선 6월19일 대검찰청도 A씨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는데 당시 각 언론은 “유병언에게 수사 정보가 유출되고 있다”는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같은 날 7개 수사기관은 일제히 A씨의 통신자료를 14건이나 조회했다. 관련 자료를 본 경찰 관계자는 “핵심 관계자가 아니면 이렇게 많은 수사기관에서 통신자료가 조회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A씨는 참고인 조사만 한 차례 받았을 뿐 구원파 내에서 핵심 간부는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시간에 1번꼴
실시간으로 조회 
 
구원파 교인 B씨는 자녀들의 통신자료가 수사기관에 넘어간 사실을 확인됐다. 검·경이 열람한 B씨의 통신자료는 68건, 그의 두 자녀도 5∼10여건의 통신자료가 수사기관에 넘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B씨는 “아무 관련 없는 아이들의 개인정보까지 굳이 들여다보는 게 맞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외 다수 교인 일가족의 통신자료 역시 비슷한 시기에 수십 건이 수사기관에 넘어갔다. 
 
그러나 똑같은 기관에서 수십 차례 한 사람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인천지방검찰청에서는 유병언 수사 기간 동안 60차례에 걸쳐 특정 교인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인천지방검찰청은 5월30일 하루 동안 이 교인의 통신자료를 6건이나 조회했다. 같은 기관에서 특정 개인의 통신자료를 이렇게 수십 건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제기된다. 
 
 
검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시 유병언 수사는 전 국민의 관심사였다. 검거를 위해 기지국 수사(기지국에 발신된 전화번호를 추적하는 수사기법)를 했으며, 유병언 검거에 필요한 최소한 정보만 수집했다”며 “특정 개인을 표적 수사한 것은 아니며, 범인과 관련 있을 법한 번호만 확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반면 경찰은 이에 대해 전기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통신자료가 중요한 수사 증거로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기관 사이에 정보공유가 잘 안 된다. 심지어 같은 기관 사람끼리도 잘 안 한다. 당시 수사 인력은 많고, 정보 교류는 안 되서 한 기관에 속한 여러 사람이 조회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수 교인의 ‘통신사실 확인자료 내역’도 수백 건 조회된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교인들이 수사기관으로부터 통지 받은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 집행 사실 통지서는 총 273건이다. 통신사실 확인자료는 통신주체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얼마나 통신을 주고받았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다. 통신사실 확인자료는 통신자료보다 더 민감한 개인정보다. 이 때문에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발급받기 위해선 법원의 영장이 필요하다. 이를 집행한 경우 처분한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집행 사실을 통지해야 한다.
 
아무 연관없는 일가족 대상
자녀들 자료도 무차별 수집
 
구원파 교인 수천명의 통신자료와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수사기관에 넘긴 주체는 통신사업자들(SK텔레콤, LG유플러스, KT)이다. 이들은 전기통신사업자법에 따라 수사기관에서 통신자료를 요구하는 경우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정보주체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할 것이 우려되는 경우 제공을 거부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통신사는 고객 개인정보가 부당하게 혹은 불필요하게 사용되는지 판단해야 한다. 유병언 수사 당시 각 통신사들은 이런 판단 없이 무조건 통신자료를 수사기관에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우리도 상황이 난처하다. 수사기관에서 주라면 줘야한다”고 말했다. 
 
반면 통신사들은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 내역을 수사기관에 제공하면서도 이를 고객에게 공개하지 않아 논란이다. 구원파 교인들은 각 통신사에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통신사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SK텔레콤, LG유플러스, KT 등은 “당사자일 지라도 통신사실 확인자료 내역 제공은 공개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통신비밀보호법상 ‘비밀유지의무’가 있으므로 알려줄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고객은 정작 자신의 개인정보가 어떻게 쓰였는지 알 수도 없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수사기관과 통신사들의 이런 행태에 대해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신비밀보호법·전기통신사업법·개인정보보호법·형사소송법 개정안 4건이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냥 넘긴 통신사 
기본권 침해 우려
 
개정안을 발의한 정청래 의원실은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개인정보의 자기 주체성이 높아지고 있다.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통신자료 조회는 자기 결정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개정안에는 통신자료를 폐지하는 법안이 포함돼 있다”며 “수사기관은 불필요한 개인정보는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미니인터뷰 박지환 변호사
“통신자료 제공 문제될 수 있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정부의 무분별한 사찰을 감시하고,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다. 오픈넷은 현재 이동통신를 상대로 수사기관에 부당하게 넘긴 통신자료에 대한 손해배상을 진행하고 있다. 다음은 구원파 교인 사찰과 관련 박진환 오픈넷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수사기관에서 구원파 교인들을 조회했다. 
유병언 검거작전 당시 수사기관은 구원파 교인을 대규모 사찰했다. 이 과정에서 통신사들은 수사기관들에게 한 사람당 많게는 수백 번에 걸쳐 반복적으로 통신자료를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기관은 무분별하게 통신자료를 들여다봤고, 통신사들은 기계적으로 고객 정보를 제공하면서 발생한 일이다. 
 
▲이동통신사도 수사기관이 요청하면 줘야하나
네이버, 다음카카오와 같은 인터넷 사업자들은 통신사와는 달리 통신자료를 수사기관에 제공하지 않고 있다. 2012년 10월 법원은 이른바 ‘회피연아’ 사건에서 통신자료를 제공한 인터넷 사업자에게 손해배상 책임(1건에 50만원)을 인정해서다. 이동통신사의 무차별적인 통신자료 제공 행위가 그 자체로 정당화되기는 어렵다. 경우에 따라 통신사를 상대로 통신자료를 제공한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수사기관이 통신자료를 많이 요구한다는데
통신자료 제공에 의한 정보취득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할지라도 이는 ‘영장주의’(법원 또는 수사기관의 형사절차에서 강제처분을 함에는 법원 또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의하여야 한다는 주의)에 어긋난다. 2014년 2월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무영장 통신자료 제공에 대해 폐지 권고를 한 바 있다. 
 
▲통신자료 제공에 대한 문제점은
통신비밀보호법 제9조의2, 제9조의3과 제13조의3에 따라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을 집행한 경우 집행사실 등을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 그러나 통신제한조치, 통신사실 확인자료 및 압수수색 영장집행에 대해 당사자에 통지한 비율은 평균 38.5%에 불과하다. 
올해 2월 대법원은 ‘수사 종료가 되지 않았다면 당사자의 공개요구에도 전기통신사업자는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제공 내역을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따라서 수사기관은 혐의가 없는 당사자의 통신사실 확인자료 등을 조회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의적 판단으로 통지시점을 늦추거나 아예 통지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헌법상에서 보장하는 통신비밀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아닐 수 없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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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없는 민주당 막전막후

브레이크 없는 민주당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정부를 겨냥한 더불어민주당의 공격이 거침없다. “정치 보복은 없다”고 단언한 이재명 대통령이기에 국민의힘에서는 크게 반발했다. 민주당은 ‘정치 보복’이 아닌 ‘내란 종식’이라고 받아쳤다. 사분오열로 흩어진 국민의힘이지만, 대통령 취임 후 한 달도 되지 않은 이재명정부를 공격하는 때에는 손발이 척척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주도로 ‘채상병 특검법·내란 특검법·김건희 특검법’인 이른바 ‘3대 특검’이 가결됐다. 이후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이를 의결함으로써 수사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지난 3년 동안 이어진 가결-거부권 무한 굴레가 이 대통령 취임 후 속전속결로 해결됐다. 허니문 없이 본게임 돌입 3대 특검은 모두 윤석열정부를 겨냥하고 있다. 해당 법안들은 본회의서 재석 198명 중 찬성 194표, 반대 3표, 기권 1표로 가결됐다. 내란 특검법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내란 외환 행위, 군사 반란, 내란 목적 선동을 수사한다. 김건희 특검법은 윤 전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비롯한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 ▲명품 가방 및 금품수수 의혹 ▲공천 개입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등 국정 농단 의혹 등의 수사를 골자로 한다. 마지막으로 채상병 특검법은 2023년 7월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사망한 해병대원 채모 상병 사건 수사를 방해 및 은폐했다는 의혹을 규명하는 내용이다. 당시 수사 외압 과정에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임 전 사단장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태 공범 이모씨와 골프 모임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사건의 마지막 퍼즐이 김건희씨로 지목됐다. 특히 채상병 특검은 전 정권에서 민주당 등 야당이 여러 차례 본회의에 올려 통과시켰지만 윤 전 대통령의 거부권에 막혀 번번이 무너졌다. 1년9개월 동안 제자리걸음이었던 특검법이 이재명정부에서 단번에 통과되자 본회의를 지켜보던 해병대 예비역 회원들이 일제히 자리서 일어나 거수경례하기도 했다. 지난 10일 3대 특검은 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날 오전 이 대통령은 이를 심의·의결한 뒤 자신의 SNS를 통해 “세 건의 특검법은 모두 윤정부가 거부권을 반복 행사하며 지연됐던 것”이라며 “멈춰있던 나라를 정상화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우원식 국회의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3개 특검법안에 대한 특별검사 임명 요청 서류에 결재했다”며 이 대통령에게 요청서를 보냈다고 밝혔다. 요청서를 받은 이 대통령이 특검 후보 추천을 공식 의뢰하면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서 특검 후보자를 각 1명씩 추천하게 된다. 속전속결 속 민주당 3특검법 모두 통과 반성 없는 국힘 ‘이 대통령 때리기’ 올인 내란 특검에 60명, 김건희 특검에 40명, 채상병 특검에 20명의 파견 검사가 투입되는 등 대규모 특검이 예고된 가운데, 민주당과 혁신당은 법조계 인사들 중 후보자를 물색해 빠른 시일 내 추천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정쟁에 함몰되는 대통령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기본원칙적 교훈과 경고를 드린다”며 곧바로 날을 세웠다. 앞서 민주당 단독으로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의결되고, ‘대통령 재판 중지법’까지 잇따라 추진되자 국민의힘은 “대선 다음 날 민생도, 외교·안보도 아닌 첫 입법 행위가 ‘사법부 장악법’이라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 경악스럽다”며 “괴물 독재 국가의 출발점”이라고 비판했다. 신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여야가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협치는 사라지고 또다시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허니문 기간도 없이 곧바로 싸움이 번진 것은 여당이 의석 다수를 차지한 여대야소 정국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한국 역사를 돌이켜 보면 대선과 총선이 ‘심판론’처럼 작용하면서 여소야대와 여대야소 현상이 번갈아 나타났다. 대표적인 여대야소 예로 민주화 이후 치러진 13대 총선이 있다. 1990년 노태우정부 시기 당시 민주정의당과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이 뭉치는 이른바 ‘3당 합당’으로 200석이 넘는 초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하지만 지역주의 고착화와 계파 갈등의 이유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혔다. 초반부터 어깃장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지난 17대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 과반이 넘는 152석을 얻었다.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121석에 그치면서 여대야소 정국이 펼쳐졌지만, 당시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었던 만큼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0년 만에 정권을 교체했다. 대선이 치러진 직후에 열린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기세를 몰아 153석을 얻어 여대야소 정국을 이어갔다. 이후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꾼 뒤 2012년 4월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친박(친 박근혜)계가 당권을 장악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같은 해 12월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여대야소의 틀을 갖췄지만 여권 내 계파 갈등, 쟁점 법안 등으로 실질적으로는 여소야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박정부가 레임덕에 접어들면서 새누리당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고 결국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123석, 새누리당이 122석을 얻었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뒤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얻어 여대야소 정국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와 부동산, 집값 상승 등으로 5년 만에 정권을 고스란히 넘겨줬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심판론 성격으로 치러진 21대 총선에선 민주당이 180석을 얻으면서 그야말로 압승을 거뒀고 결국 3년 만에 여대야소 정국으로 돌아왔다. 이처럼 대한민국 정치 역사상 여당이 더 많은 의석수를 차지하는 건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유독 이번 정권에서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진영이 이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부터 ‘의회 독주’를 넘어 ‘의회 독재’ 프레임을 씌우며 견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5월 유세 현장에서 국민의힘은 “이번 대선은 자유민주주의 선진 대국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전체주의 1인 독재국가로 추락하느냐의 기로에 있다”며 ‘이재명 포비아’ 여론을 띄웠다. 이낙연 전 총리가 상임고문으로 있는 새미래민주당은 “이재명 독재 정권 탄생 저지가 필요하다”며 국민의힘과 국민통합공동정부 운영 및 제7공화국 개헌추진 협약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대선 하루 전날이던 지난 2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회 독재를 이재명과 민주당이 시작하면서 베네수엘라 지옥문을 반쯤 열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베네수엘라의 비극이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한때 남미의 모범 국가였던 베네수엘라가 반미 포퓰리즘과 경제 파탄, 사법 장악과 독재의 길을 걸으며 국민의 삶이 무너지고 자유가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잊지 말자” 윤 심판론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 역시 “예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도 독재한다고 말을 들었지만, 유신정우회를 만들어서 입법부를 장악하려고 했던 정도였다”며 “사법부를 장악하려 드는 것은 이재명 후보가 아마 가장 심할 것”이라고 말을 보탰다. 이 대통령 당선 이후 국민의힘은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과 대장동 재판이 사실상 중지된 것을 두고는 “정치 권력에 사법부가 무릎 꿇고 정치적 면죄부를 주면서 법 앞에 권력이 있다는 걸 선언한 것”이라며 “사법부는 이재명 괴물 독재 국가의 공범이 된다는 걸 기억하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자신의 SNS에 “유권무죄가 상식이 되어버린 세상, 권력이 있으면 면죄부를 받는 세상. 가히 ‘이재명 독재’ 세상이 도래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독재 프레임을 주장해 온 국민의힘에 국민 40%가 힘을 실어준 데에는 지난 3년간 민주당이 보여준 ‘협치 없는 정치’ 때문이라는 반박이 나온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금까지 봐온 이재명이란 사람은 당 대표 때의 정치 스타일도 그렇고 업무 방식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강하게 밀어붙이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며 “지금 민주당에서 누가 감히 이 대표를 견제하겠나. 국회의장도 민주당 출신이다. 제어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당연히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선 이후에도 국민의힘은 반성은커녕 당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집안싸움이 한창인 와중에도 민주당의 법안 처리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로 의회 독재라고 비판하니, 국민의 피로감도 덩달아 높아지는 형국이다. ‘민주당의 의회 독재가 우려되나’라는 질문에 여당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국민의 선택을 독재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윤 전 대통령은 민주당의 행태를 알리기 위해서라며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탄핵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민주당에 힘을 ‘몰빵’해준 것은 다름 아닌 국민이며, 야당이 된 국민의힘은 원색적인 비난을 멈추고 여당 견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회 독재? 윤 심판은 국민의 뜻” 여대야소 처음 아닌데…야 맹공 민주당 양부남 의원 역시 대선 전 토론 프로그램 <국민맞수>를 통해 “의회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서 의회 민주주의로 당을 지도했을 뿐이고 앞으로 하려는 것도 민주주의”라고 설명했다. 양 의원은 “이낙연 전 총리나 바른미래당 손학규 전 대표 등 몇몇 사람이 의회 독재라는 주장을 하고 김문수 후보도 ‘방탄 괴물 독재 국가’를 운운한다”며 “이재명 (당시) 후보를 괴물 독재로 지칭하는 자체가 국민 의식 수준을 우습게 보는 것이고 정치 엘리트 기득권의 기만이자 오만이며 교만”이라고 직격했다. 이날 토론에 함께 출연한 국민의힘 홍석준 전 의원이 민주당의 예산 폭주, 행정부 장악 등을 예로 들자 “독재와 개혁을 혼동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양 의원은 “민주당이 하려는 사법제도 개혁이라든지 기재부 개혁 등은 나름 합리성 이유가 있는 것”이라며 “이런 개혁을 독재로 호도하는 것은 정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국민 생각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도 이 주장에 힘을 실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우리나라 국민 성숙도를 봤을 때 의회를 장악했다고 독재 정치를 하다가는 그 정권도 혼이 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KBS <전격시사>에 출연해 ‘내란 극복’을 축소할 것을 주장하며 “내란 극복이라는 것을 너무 광범위하게 적용해서 하다가는 결국 보복이라는 말도 나올 수 있다. 국민과 대화, 특히 자기와 반대되는 측 사람과 대화를 활발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과거 여대야소 정국에서는 여당이 고삐를 꽉 쥐고 있었음에도 하루하루 순탄치 않았다. 지금처럼 의회 독재든, 계파 갈등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야당이 호시탐탐 무너뜨릴 기회를 노렸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대통령을 배출한 거대 여당이지만 계속해서 발목 잡힌다면 문재인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효능감 문제에 부딪힐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번엔 다르다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과거의 여대야소와 지금의 여대야소는 다르다”고 말했다. 최 평론가는 노태우정부 당시 3당 합당을 예로 들며 “과거에는 여대야소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국민투표를 통해 민주당 계열에 표가 몰렸다. 그리고 민주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며 “윤석열이란 선장이 자격이 없으니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견제론이 나왔고, 그 결과 총선과 대선 모두 윤석열 심판론으로 치러졌다. 방향타를 국민이 만들어준 것”이라고 진단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 대통령 재판, 올스톱 일단 푼 사법 족쇄? 법원이 오는 18일로 예정됐던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파기환송심 사건에 대해 기일을 추후에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이같이 밝히며 “헌법 제84조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헌법 제84조에 따라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진행 중인 재판에 적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리스크였던 대장동 배임 사건 역시 재판부가 재판을 연기했다. 이로써 이 대통령의 다른 재판 역시 추후 지정될 가능성이 커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임기 중 재판이 정지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법원은 대장동 배임 사건 재판부는 이 대통령과 함께 기소됐던 더불어민주당 정진상 전 정무조정실장에 대해서는 계속 재판을 진행할 방침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