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⑥윤대중 구출작전

주한미군 철수까지? 전방위 압박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많이 기다리셨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하느라 빙빙 돌아오다 보니 이렇게 늦었습니다. 용서 바랍니다.” 

“용서라니요, 당치않습니다. 어서 자리하시지요.”

모두 자리를 정돈하자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잠시 일상사로 대화를 나누었다.

“한 잔 받으시지요.”

자리가 정돈되고 종업원들이 물러서자 김효가 술병을 들었다. 이어 술잔이 채워지자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김운정 총리께 전화상으로 사건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을 들었습니다만.”

이하라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자 김 대사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방금 내려놓은 빈 잔을 만지작거렸다.

“총리께서 의원께 상세한 전말을 전하고 협조를 당부 드리라고 각별히 지시하셨습니다.”

잠시 사이를 둔 김 대사가 다시 모두의 잔을 채웠다.

“지금 각하의 분노도 이만저만 아닙니다. 기껏 공들여 북한과 평화관계를 유지하려는 찰나에 이런 일이 발생해서.”

김효가 의도적으로 뜸을 들이는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심려마시고 시원스레 말씀하세요. 김운정 총리를 보아서라도 적극적으로 협력할 테니.”

“총리께서 말씀하셨겠지만 윤대중 납치사건은 대한민국 중앙정보부가 독단으로 저지른 사건입니다.”

“그는 잘 알지요. 그런데 대한민국 중앙정보부가 그리 대단하오? 귀신도 그리 일처리 하기는 힘들 터인데.”

“내막을 살피니 이병선 부장이 오래전부터 단단히 벼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치밀하게 진행하였습니다.”

“하기야 그 사람 입장에서 볼 때는 윤대중이 그야말로 눈엣가시였겠지요.”

“물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살피면‥‥‥ 그야말로 자신의 생명까지 걸고 북한을 오가며 달성한 일인데‥‥‥ 차마 윤대중으로 인해 평생 숙원이 물거품 되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나 총리께 보고하지 않고 일처리를 그리 하다니.”

“본래 그 사람 스타일이 그렇습니다. 매번 일을 일으키고 남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어 끌어들이는 행태 말입니다.”

김효의 말이 끝나자 이하라가 가볍게 혀를 찼다.

“그 사람, 오래 가지 못하겠구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도리 없습니다. 지금 문책한다면 윤대중 사건에 우리가 개입되었음을 인정하는 꼴이 될 테니까요.”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 사건을 바라보는 일본의 입장입니다. 혹여 일이 잘못 진행되기라도 한다면‥‥‥.”

이하라가 중도에 말을 끊자 김 대사와 조 참사관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상세히 말씀주시겠습니까.”

“지금 일본에서는 가급적이면 북 조선과 사이를 두려 하는데 이 건이 대한민국 정부에서 일으킨 사건임이 판명된다면 정부는 물론 의회 쪽에서도 강성 발언들이 탄력받으리라 생각합니다.”

“강성발언이라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당연히 외교문제가 될 것입니다. 기존 대한민국과의 일방적인 관계가 북한 쪽으로 변경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총리께서 신신당부 하신 거 아니겠습니까. 여하튼 의회 쪽 사정은 어떻습니까?”

“대사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우스노미야 도꾸마 의원이 윤대중의 후견인처럼 무섭게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덴 히데오 의원 역시 북조선을 강하게 옹호하고 나서며 공격하고 있습니다.”

“덴 히데오는 참의원 아닙니까.”

“물론이지요. 하여 두 사람이 앞장서서 의회를 움직이고 언론을 통해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표정이 급격히 어둡게 변해갔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바는 무엇입니까?”

“세 가지로 압축될 수 있습니다.”

“세 가지라면.”

“첫째, 일본이 대한민국과 국교를 중지하고 북조선과 수교하는 방법입니다.”

“네!”

두 사람이 동시에 경악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두 번째는 지금 시행되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한 경제 원조를 중지하고 또 대한민국의 유엔 가입 문제를
방관하겠다 합니다.”

남한과 일본 수교 철회?
원조 중단으로 남한 고립?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가능 여부는 물론 여론이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의원들로서 여론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세 번째는?”

“미국 측에 압력을 가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주한미군까지 말입니까?”

“그런 연유로 이번 사건 처리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김효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러니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그 일에서 의원님의 도움이 절실하고요.”

“그래서 이야기인데.”

이하라가 잠시 말을 멈추고는 잔을 비워냈다. 순간 조 참사관이 술병을 들어 조심스럽게 빈 잔을 채웠다.

“이 자리에 오면서 문득 일어난 생각인데‥‥‥.”

“말씀 주시지요.”

김효의 목으로 마른 침이 넘어가고 있었다.

“일종의 연막작전을 펴는 겁니다.”

“연막이요!”

“지금 모두가 대한민국의 중앙정보부와 주일 대사관 직원이 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 믿고 있지 않습니까?”

“외람되게도 저희 대사관 직원이 중앙정보부의 일을 도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그런데 지금 대사관 직원 중에는 이 사건과 연루된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이미 김운정 총리로부터 사건에 대한 상세한 내막까지 들어 모두 알고 있는 모양으로 말에 힘이 들어 있었다.

“당연합니다. 사건에 참여한 인원은 일본 현지 직원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파견된 정보부 요원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출입국 관리소에서도 밝혀낼 수 없지요. 아울러 대사관 직원 중에는 관련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를 역으로 이용해보자는 이야기요.”

“알기 쉽게 말씀주시겠습니까.”

“현재 대사관에 근무하는 고위급 인사를 윤대중 납치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일을 꾸미자 이 말이오.”

의미를 알지 못하겠다는 듯 두 사람이 서로의 표정을 살폈다.

“그래서 연막이라는 거요.”

“하면.”

“대사관에서 가장 의심 살 만한 사람을 내게 지목해주세요. 그러면 내가 경시청에 비밀 루트를 통해 그 사람을 범인 중 한 사람이라 지적할 테니.”

“그렇게 되면 의원님은 어떻게 됩니까?”      

“물론 은밀하게 처리하겠지만 후일 밝혀질 수 있겠지요. 그런 경우라도 문제없습니다.”

조 참사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원이 좋은 게 뭐겠습니까. 그러니 단지 의혹 제기만 하고 빠지는 게지요.”

“사건 해결에 혼선을 일으키겠다는‥‥‥.”

“바로 그렇소.”

“그러면서 한국 대사관을 포함하여 한국 정부와는 전혀 관계없음을 입증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다.”

이하라가 대답하지 않고 가볍게 미소 지으며 잔을 비워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두 사람 역시 잔을 비워냈다.

<다음호에 계속>

 

[저자는?]

▲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졸업
▲ 정당사무처 공채(13년 근무)
▲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 중퇴
▲ 소설가


▲ 주요작품
단편소설 <해빙> <파괴의 역설>
장편소설 <삼국비사> <여제 정희왕후> <수락잔조> 등 다수
희곡 <정희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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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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