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투입된 기업들 현주소

눈치 안보고 방만기업 살리고자 혈세로 돈잔치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밑 빠진 독에 열심히 물을 채운다 한들 그 끝은 요원할 뿐이다. 물을 가득 채울 요량이라면 구멍 난 곳을 찾아 고치거나 아예 새로운 독을 찾는 게 순리다. 누구나 알법한 상식이지만 정작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이 같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방만한 운영으로 위기에 봉착한 기업을 살리기 위해 무작정 국민의 혈세를 쏟아 붓는 모습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공적자금’은 정부가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정부재정자금을 의미한다. 통상 금융기관이 기업여신을 회수하지 못해 어려움에 처할 경우 투입된다. 이 경우 공적자금은 정부예산에서 직접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금보험공사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채권을 발행해 조달한다.

다만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발행한 채권의 이자와 원금손실은 예산으로 부담하기 때문에 때에 따라 국민의 부담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공적자금 투입 여부를 두고 혈세 논란이 계속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못받는 돈
떼인 돈도

지난달 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168조6553억원에 이른다. 은행, 증권, 투자신탁, 보험, 종합금융, 저축은행, 신협에 지원된 공적자금을 합한 규모다.

문제는 정부가 투입한 공적자금 가운데 지금껏 회수하지 못한 금액이 60조원에 육박한다는 사실이다. 현재까지 회수 금액은 110조8525억원, 회수율은 65.7%에 불과하다. 특히 은행에 지원된 공적자금 86조8768억원 가운데 회수금액 66조3243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20조5525억원은 완전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보험에 들어간 공적자금 21조2012억원 가운데 미회수금액은 14조2148억원이다. 또한 22조7503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종금사의 경우 12조121억원의 미회수금액이 남아 있다.

증권·투신에는 21조8926억원의 공적자금이 지원돼 14조881억원이 회수됐다. 미회수 공적자금은 7조8045억원이다. 2011년 부실 사태를 겪은 저축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8조5114억원이고 미회수금액은 2조5063억원이다. 5조2억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간 신협의 경우 1조5810억원이 미회수금액으로 남았다.

기업별로 살펴보면 금융업 분야에 공적자금 투입이 집중됐고 우리은행, 한화생명, 수협, 서울보증보험 등은 아직까지 미회수금액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중 미회수금액은 약 4조7000억원이다. 현재 정부는 우리은행 보유 지분 중 15%를 중동지역 국부펀드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보유한 우리은행 지분은 51.04%(3억4514만2000주)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부실화 된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에는 3조55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약 1조6000억원을 회수했다. 현재 정부가 가지고 있는 한화생명 지분은 22.75%(1억9759만1000주)다. 정부는 시장상황을 고려해 지분 매각을 추진할 방침이다. 지난 3월에도 지분 2%를 매각한 바 있다.

하지만 한화생명에 투입된 공적자금의 추가 회수는 난항이 예상된다. 한화생명 주가가 8300원대에 머물러 있는 만큼 주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반등해야 원금회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융권 170조…회수율 70%도 못미쳐
국민 세금 눈먼돈?…무작정 쏟아부어

외환위기 당시 파산위기에 몰렸던 서울보증보증에 들어간 공적자금 10조2000억원의 회수도 불투명하다. 정부의 서울보증보험 지분율은 93.85%(3276만4000주)다. 정부 관계자는 “외환위기 당시 기업들의 부실 때문에 보증회사들이 시스템 안정을 위해 공적자금으로 매꿔 준 부분이라 서울보증보험에 투입된 자금은 회수가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면 우선출자증권(주식회사의 상환우선주 성격)을 가지고 있는 수협의 경우 1조1580억원의 공적자금 회수가 가능할 전망이다. 예금보험공사 관계자는 “현재는 수협중앙회의 신용사업 특별회계를 통해 회수하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 수협은행의 당기순이익을 중앙회가 배당받아 특별회계를 통해 공적자금을 상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앞의 사례는 양호한 편이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에 따른 구조조정 과정에서 투입된 공적자금 27조원 가운데 지금까지 회수된 금액은 6조원에도 못 미친다. 지난달 21일 민 의원이 예금보험공사로부터 제출 받은 ‘2011년 이후 부실저축은행 지원 및 회수현황’에 따르면 예금보험공사는 2011년 이후 31개 부실 저축은행에 27조1701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5조9031억원을 회수하는데 그쳤다. 회수율은 21.7%.

솔로몬저축은행에 3조5243억원으로 가장 많은 공적자금이 편성됐고 부산저축은행 3조1580억원, 토마토저축은행 3조150억원, 제일저축은행에 2조3941억원이 투입됐다.

이들 중에서 공적자금 회수율이 저조한 곳은 에이스저축은행(3.12%)과 보해저축은행(3.72%), 부산2저축은행(7.40%), 부산저축은행(8.05%) 등이다. 심지어 해솔저축은행과 골든브릿지저축은행의 회수실적은 전무했다.

밑 빠진 독
대우조선해양

반면 대영저축은행의 경우 투입된 1426억원 전액을 회수했다. 6677억원이 투입된 신라저축은행은 50.5%, 3672억원이 들어간 더블유저축은행은 45.5%로 회수율이 높은 축에 속했다.

이처럼 저조한 공적자금 회수율이 공론화되는 가운데 최근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자금 지원방안이 논의되자 공적자금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지난달 29일 산업은행은 이사회를 열고 대우조선해양 실사 결과 및 자금 지원 등 정상화 방안을 공식 발표했다. 지원 방안에는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지원규모는 내년도 상반기 대우조선해양의 부족자금 4조2000억원을 고려한 조치다.

우선 자본확충은 유동성 지원과 연계한 유상증자, 출자전환 등의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지원으로 산은은 2016년 말까지 대우조선의 부채비율을 500% 이하로 끌어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는 대우조선해양의 정상적인 사업 수주를 지원하기 위해 선수금환급보증(RG)의 90%를 각각 1/3씩 나눠 공급할 예정이다. 당초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에 유상증자와 신규대출로 2조원을 지원하고 수출입은행 등이 나머지 2조원을 분담하는 방안이 거론된 바 있다.

산업은행의 자금지원과 함께 대우조선해양은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할 계획이다. 또한 인력과 조직을 최적 생산 규모, 선박 포트폴리오에 부합할 수 있도록 축소할 예정이다.

그러나 채권은행들의 지원 방안에 대한 비난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세금을 투입하더라도 대우조선해양의 미래를 낙관하기 힘든데다 책임자 문책은 덮어둔 채 지원방안 마련에 나섰다는 지적이 빗발치고 있다. 즉, 금융당국의 안일한 관리감독이 이미 공적자금 투입으로 연결된 만큼 지원 방안에 앞서 잘못을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산업은행 노동조합은 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부실 사태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인 뒤 실사에 따른 책임소재 파악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산업은행 노동조합 관계자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방식은 은행이 취해야 할 시장안전판의 구조조정 방식이 아닐뿐더러 큰 부실사태를 일으킬 것”이라며 “위기일수록 원칙에 따른 과감한 정책 결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수혈만 해놓고 관리 허점투성
줏대 없는 당국 정책 조정 논란

대우조선해양 자금 지원이 결정되자 화살은 곧바로 국책은행에 쏠리고 있다. 국책은행들이 기업자금조달이나 수출금융지원 등 본연의 임무는 외면한 채 기업구조조정 등 전문성이 없는 분야에 손을 대면서 '부실기업 처리반'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책은행의 손실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만큼 부실 관리에 대한 책임과 함께 국책은행의 본분에 대한 비판마저 커지고 있다.

특히 산업은행은 최근 5년간은 대우조선해양 최고재무책임자(CFO)에 자사 출신 인사를 임명하는 등 회사 전반을 관리·감독했다는 점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게다가 산업은행은 STX의 허위장부를 근거로 9000억원을 지원해 적자를 기록한 전력이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외에는 기업 구조조정을 담당할 수 있는 곳이 전무한 상황”이라며 “은행들마다 이해관계가 달라 기업 구조조정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수출입은행 역시 마찬가지다. 2011년 이후 수출입은행이 유동성을 지원한 기업 중 법정관리에 돌입한 회사는 102곳이며 이들에 대한 여신 규모는 1조3000억원에 달한다. 특히 성동조선해양 구조조정 난항으로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성동조선해양의 구조조정이 더디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SPP조선 역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수출입은행의 속을 썩이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정부 지분이 70.08%(한국은행 15.04%·산업은행 14.88%)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 국책은행은 정부 소유인 만큼 여신공급이나 구조조정에 있어 정치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달리 해석하자면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고 위기의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모든 상황에 윗선의 개입과 압력에 노출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수출입은행은 성동조선해양에 채권단의 반대를 무릅쓰고 3000억원을 단독으로 지원했지만 이 과정에서 특정 국회의원의 눈치를 본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대규모 손실 불가피

문제는 국책은행이 부실기업에 투입하는 공적자금은 궁극적으로 국민 세금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대우조선해양을 ‘혈세 먹는 하마’로 바라보는 시선과 지원에 앞서 분식회계 등 불거진 의혹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IB업계 관계자는 "국책은행의 관리 소홀로 결국 부실기업의 손실을 세금으로 메워주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며 "국책은행이 부실기업을 관리하고 구조조정을 이뤄낼만한 역량이 없다면 아예 기업구조조정 업무에서 손을 떼든지, 역할 재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되자 국책은행의 정책금융체계를 대폭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정책금융 역할 강화방안 세미나’에서 “국책은행은 대기업이나 각종 지원이 많은 중소기업보다 중견기업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재벌’ 산업은행 파워

정부가 100% 지분을 지닌 산업은행은 지난 6월 기준으로 지분 15% 이상을 보유한 자회사를 무려 288곳 소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정부기관을 제외한 비금융 자회사가 116곳에 이른다.

지금껏 산업은행은 자금난에 직면한 기업을 출자전환 형태로 지원하면서 자회사로 편입해 왔다. 물론 국책은행인 만큼 경영정상화를 거쳐 시장에 지분을 매각한 후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식구를 늘릴 때만 기민할 뿐 정작 품안의 구성원을 출가시키는 데 미적거리고 있다. 결국 자회사 매각에 소극적이었던 행보는 엉뚱하게도 산업은행을 수많은 대기업을 거느린 '재벌'로 둔갑시켰다.

그 사이 STX조선해양마저 산업은행 휘하에 편입될 수 있다는 소문마저 나돌고 있다. STX조선은 글로벌 불황 여파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2013년 5월 자율협약에 들어갔다. 자율협약 체결 이후 회계법인 실사를 거쳐 STX조선에는 2조7000억원의 자금이 투입됐다. 그러나 잇단 선박수주 취소와 원가 경쟁력 하락으로 손실이 계속 발생해 추가 지원이 불가피해졌고 이듬해 채권단은 1조8000억원을 추가 지원했다.

이렇게 4조5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이 투입됐지만 여전히 STX조선은 자본잠식 상태로 채권단 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STX조선해양을 산업은행이 떠안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산업은행마저 정상화에 실패하면 곧바로 국민의 혈세가 투입돼야 한다. 문제는 산업은행 휘하로 편입된 상당수 기업들이 가치 하락을 겪고 있으며 그만큼 매각작업이 더뎌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지분 15% 이상 보유 회사 288곳
때마다 헐값·특혜 의혹 시달려

실제로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2008년 매각 추진 당시 6조원 수준으로 평가됐지만 현재 시가총액은 약 1조원에 불과하다. 산업은행 휘하에 들어가면 회생하지 못한 채 산업은행 계열사로 주저앉아 경쟁력을 잃는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호산업의 경우 매각까지 5개월을 끌다 7228억원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에게 넘겼다. 경영정상화까지 1조원 이상의 금액이 투입됐다는 점에서 사실상 손실을 본 셈이다. 특히 금호산업을 위기에 몰아넣었던 박 회장에게 다시 넘기는 과정에서 ‘특혜성 구조조정’이라는 사례마저 남겼다.

물론 산업은행은 한진그룹이나 현대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이 그동안 축적해 온 기업 구조조정 경험에 비춰 보면 전문성이 기대이하라는 지적이 많다.

IB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정책금융기관으로서 대형 수출산업 지원을 주로 하다가 부실기업 인수 등을 겪으면서 허점을 노출하기 시작했다”며 “최후의 보루 역할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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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부는 ‘김부겸 바람’ 해부

대구에 부는 ‘김부겸 바람’ 해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등장하자 보수의 심장인 대구가 좌우로 흔들리고 있다. 광폭 행보에 나선 김 전 총리를 바라보는 대구 시민들도 양가감정이 교차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은 1995년 민선 시장 선출 이래 대구에서 단 한 번도 시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구 민심이 심상치 않은 만큼 최초의 진보 대구시장이 탄생할지 이목이 쏠린다. 대구는 보수 정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광역자치단체이다. 지난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대통령 후보는 대구에서 23.22%(37만9130표)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반면 국민의힘 대선주자였던 김문수 후보는 67.62%(110만3913표)를 기록했다. 이처럼 대구는 윤석열정부 퇴진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조차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약세를 보이는 지역이었다. 적절한 타이밍 그런 대구에서 최근 국민의힘이 힘을 못 쓰고 있다. 지도부를 중심으로 당이 지리멸렬하는 사이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대구시장에 출사표를 던졌고, 민주당이 빠르게 치고 나가면서 우위를 선점했다. 지난달 30일 김부겸 후보는 “지역주의 극복과 지역 균형발전, 그것이 저의 마지막 소명”이라며 공식 출마를 선언했다. 김 후보는 대구에 당선된 경험이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2012년과 2014년 각각 제19대 총선·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대구광역시장)에서 낙선했으나 2016년 제20대 총선을 통해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에서 당선됐다. 이후 제21대 총선에서 또다시 낙선하면서 고배를 마셨다. 당시 김 후보는 캠프 해단식에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면목이 없다”면서도 “포기하지 않겠다. 새로운 날들을 향해 걸어가겠다”고 다짐했던 바 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김 후보가 다시 대구 전면에 등장했다. 김 후보는 대구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통해 “대구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며 “굳이 이런저런 수치를 열거하지 않겠다. 대구의 정치, 한 당이 독식하는 구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김 후보는 “정치인이 일을 안 한다. 일 안 해도 서울에서 공천만 받으면 또 된다. 대구 시민을 표 찍어주는 기계로 취급한다”며 “요즈음 시장 공천 과정을 보면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냐는 생각이 든다. 지금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모습은 제대로 된 보수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구 시민과 함께 대구의 미래 희망을 찾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지금 대구에 필요한 사람, 김부겸이다. 나를 잘 써달라. 김부겸과 함께 대구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날 김 후보는 자신의 개인 전화번호도 공개했다. 김 후보는 “대구시장에 출마하는 김부겸으로서 시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겠다”며 “경기도 군포 초선 시절부터 해왔던 대로 제 전화번호를 공개하겠다. 대구를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 달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민의힘을 버려야 진짜 건강한 보수가 살아난다”며 “이번 선거는 대구가 다시 숨 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지역주의 극복과 지역 균형 발전이 제 마지막 소명이다. 대구 시민과 함께 대구의 미래 희망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보수 심장’ ‘민주당’ 없는 민주당 동진 전략 지난 3일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중앙당의 만장일치로 김 후보를 대구광역시장 후보자에 선정했다. 이를 시작으로 김 후보는 광폭 행보를 보였는데, 특히 김 후보는 ‘민주당’이라는 여당 프리미엄을 전면에 세우는 대신 “김부겸을 도구로 써달라”는 실용주의를 내세웠다. 김 후보는 대구·경북(TK)의 상징인 박근혜·박정희 마케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 있고 대구 시민들이 자부심을 느꼈다면 과오 논쟁을 넘어 대구의 미래를 향한 논쟁으로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포용의 정치를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예방 가능성을 열어둔 데 이어 ‘박정희컨벤션센터’ 공약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는 KBS에서 김 후보의 박 전 대통령 예방에 대해 “대구 현실에 대한 판단으로 존중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측근인 국민의힘 유영하 의원이 회동의 전제 조건으로 ‘박 전 대통령의 실질적인 명예회복 방안’을 언급한 데 대해서는 “당 차원의 명예회복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조명했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출마 선언문을 보면 김 후보는 민주당을 강조하는 대신 대구의 발전 방향만 이야기했다”며 “김 후보가 민주당 출신인 것을 모르는 대구 시민은 없다. 그럼에도 ‘내란’ ‘계엄’ 등 예민한 단어를 빼버림으로써 시민들은 김부겸이란 인물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신 김 후보는 국민의힘을 비판한다. ‘지금까지 국민의힘이 대구시장을 해 왔는데 대구가 뭐가 바뀌었냐, 그건 국민의힘이 무능해서’라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준다. 절대 왼쪽으로 치우쳐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현재 보수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분위기가 안 좋다. 그때는 TK를 제외하고 몽땅 내줬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처절하게 패배할 것”이라며 “국민의힘이 명확하게 ‘절윤’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워낙 김 후보가 전략을 잘 세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빼고 ‘경제’ 넣고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참전했다. 홍 전 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대구에 도움이 된다면 당을 떠나 정치꾼이 아닌 역량 있는 행정가를 뽑아야 한다”며 김 후보를 추켜세웠다. 그는 “부산은 스윙 보터 지역이라 민주당이 가덕신공항도 해주고 해수부도 이전해 주지만, 대구는 막무가내식 투표를 하니까 민주당 정권이 도와주지도 않고 버린 자식 취급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후임 대구시장이 능력 있고, 중앙정부와 타협이 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김부겸 전 총리를 언급한 것”이라며 “민주당을 지지한 게 아니라 김부겸을 지지했다고 봐주시면 한다”고 설명했다. 김 후보의 지지율이 연일 상승하면서 안정궤도에 돌입했다는 평이 나온다. TBC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달 28~29일 대구 시민 8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김 후보는 차기 대구시장 적합도 49.5%를 기록해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15.9%)을 큰 격차로 앞섰다. 김 후보와 국민의힘 후보 간의 1대1 가상 대결에서도 추 의원과 맞붙을 경우 52.3% 대 36.6%로 오차범위 밖 우세를 보였다. 해당 여론조사는 무선전화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5%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김 후보는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하 방통위원장)과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이 컷오프되자 반발 차원에서 대구 시민이 역결집한 것으로 봤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오름세를 보이면서 이 같은 현상은 단순 역결집이 아니라 실제 보수 민심에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민주당도 김 후보 지원사격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8일 대구에서 최고위원 회의를 열고 김 후보를 ‘제2의 노무현’ ‘제2의 이재명’이라고 평가했다. 정 대표는 “노무현이 종로 꽃길을 마다하고 부산 가시밭길에 도전했듯이 김부겸도 군포 꽃길을 마다하고 대구 가시밭길에 내려왔다”며 “김부겸도 이재명도 대구·경북 사람이고 민주당에서 비주류였다”고 말했다. 이날 정 대표는 당정 차원에서 지역 숙원사업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이 지난 대구 타운홀미팅에서 TK 신공항 건설, 취수원 문제 등 대구 숙원 사업 추진 의사를 밝혔다”며 “그 의지는 앞으로 예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팍팍 깎이는 현지 민심 TK 통합에 대해선 “국민의힘이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는 바람에 통합이 멈춰 섰다”며 “김 전 총리와 힘을 합쳐 통합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화답하듯 김 후보는 “이 대통령이 대구에 중요한 약속을 했고, 정 대표도 ‘무엇이든지 다해드림센터장’이 되겠다고 했다. 이 보증수표를 믿고 대구를 메딕시티, AI·로봇 수도, 미래 모빌리티 산업 선도 도시로 만들어 그 약속을 시민의 삶과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의 전략은 ‘민주당’을 빼고 대신 ‘대구 발전’ ‘민생’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9일 김 후보는 후보 등록을 마친 뒤 취재진들과 만나 1호 공약을 소개하는 등 민생·경제 살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1호 공약으로 대구의 지역 경제 발전을 꼽으며 “지역의 주요 기관과 단체, 어른들께 조속히 인사를 올리는 것이 급선무다. 대구 곳곳을 마주하며 지역의 어려움과 스스로의 부족함을 동시에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최대 현안인 인구 유출 문제를 언급하며 “젊은이들이 떠나는 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굳어져서는 안 되는데 이를 막지 못하는 현실에 시민들이 아픔을 느끼고 있다”며 “그만큼 책임감이 무겁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년 일자리 해결과 경제 도약에 집중할 것”이라며 “대구의 절실한 요구를 예산과 법률로 뒷받침하겠다는 것이 핵심 공약”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안방마저 내줄 상황에 몰렸다. 김 후보가 우후죽순 치고 나가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당내 교통 정리에서조차 애를 먹으면서 표가 갈릴 위험에 처한 것이다. 하루가 멀다고 싸움이 일어나는 만큼 여의도에서는 ‘김 후보의 러닝메이트가 장동혁 대표’라는 웃지 못할 농담도 나온다. 국민의힘을 향한 대구의 실망감은 숫자로도 나타났다. 지난 9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이번 지방선거에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은 54%,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은 30%로 집계됐다. 특히 TK에서 여당 44%·야당 34%로 집계되면서 국민의힘에서도 위기감을 감지한 모양새다. 잘나가는 김 멍 때리는 장 대구 달서병을 지역구로 둔 국민의힘 권영진 의원은 “대구 여론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라며 “모두 기득권을 버리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사상 처음으로 민주당이 대구시장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권 의원은 MBC 라디오를 통해 최근 대구 민심에 대해 “그동안 국민의힘에 대한 불만으로 ‘이번에는 갈아보자’고 했지만 대안이 없어 ‘미워도 다시 한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저도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민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구에 반이재명 정서가 강했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많이 달라졌다. ‘윤석열보다는 이재명이 잘한다’, 심지어 ‘얄밉게 잘한다’는 사람도 있다”며 여기에 “김부겸이란 대안도 있어 대구 민심이 그 대안으로 옮겨가기 직전”이라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국민의힘 지도부의 안일한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상황인데도 당은 ‘무난히 여섯 명(예비 후보) 중 한 명을 뽑으면 된다고 하고 있다”며 “자칫 잘못하면 국민의힘에 대한 실망으로 ‘김부겸을 통해 이익이라도 챙기자’라고 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주호영, 이진숙을 다독거려서 될 문제가 아니다. 6명 중에서 뽑힌 후보가 김부겸을 이기기 힘들 만큼 대구 민심은 훨씬 더 나쁘다”며 “상황이 이렇기에 보수 기득권에 안주하는, 보수 결집으로 이기겠다라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재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은 무소속 출마 쪽으로 마음을 굳혔으며, 가처분이 기각된 주호영 의원은 “항고심을 지켜본 뒤 거취를 판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주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장애물은 장동혁 대표 체제 그 자체”라며 국민의힘 지도부를 정면으로 비판하기까지 했다. 앞서 주 의원은 지난달 26일 법원에 컷오프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고 법원은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이후 주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장 대표를 향해 “민심을 붙잡을 대책도, 보수를 다시 세울 노선도, 국민 앞에 사과하고 변화를 약속하는 모습도 없다”며 “대신 곳곳에서 공천 작당만 벌였다는 비판만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대구 현장에서도 장 대표가 싫어 국민의힘을 못 찍겠다는 말이 적지 않다. 장 대표가 먼저 결단해야 한다”며 “비상대책위원회든 선거대책위원회든 새로운 책임 체제를 즉각 구성하라”라고 장 대표의 후퇴를 촉구했다. 이번 대구시장 선거의 변수는 시민들의 막판 결집력이다. “당장 내일 선거가 치러지면 김부겸을 찍겠다”는 이들조차 투표소에 들어가면 “그래도 보수를 찍어야지”라는 마음으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삼진 아웃? 다만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런 ’습관성 투표‘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봤다. 이 관계자는 “‘보수가 큰일 났다’ ‘대구가 위험하다’라는 위기의식이 있어야 이들이 똘똘 뭉쳐 결집하고 표가 된다”며 “지금은 장 대표가 위기 그 자체다. 그래서 ‘이번에는 김부겸 한번 믿어보자’는 기대감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14년 (박 전 대통령 탄핵 상황)과 지금은 다르다. 보수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 가면서 보수 지역 민심도 그에 맞춰가는 것”이라며 “김 후보가 크게 실수하지 않는 이상 ‘이대로라면 대구가 민주당에 뺏긴다’라는 위기감보다 ‘그래도 보수를 먼저 살려야지’라는 여론이 형성될 것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