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조용히 떠난 고 천경자 화백

영혼과 꽃의 화가 '영원히 잠들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영원한 나르시시스트였던 천경자(91) 화백이 미국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절필을 선언한 천 화백은 외부와 인연을 끊으며, 칩거에 들어갔다. 그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은 탓에 생사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아 많은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국 근현대 미술의 전설인 여류 작가 천 화백은 굴곡진 삶을 살다 갔다.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여성화가 천경자 화백이 미국 뉴욕의 맨해튼에 있는 자택에서 두 달 전 별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천 화백의 딸 이혜선씨는 “어머니가 2003년 7월2일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줄곧 병석에 계셨는데 지난해 11월 추수감사절 이후 급격히 몸이 안 좋아 지셨다”며 “지난 8월6일 새벽 5시쯤 현저히 맥박이 떨어지더니 의사가 보는 가운데 잠자는 것처럼 평안하게 돌아가셨다”고 지난 22일 한 언론을 통해 밝혔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
 
수년간 뉴욕에서 거주해온 천 화백은 국내 미술계와 소식이 끊기면서 1년 전부터는 생사 논란이 있었다. 이씨는 “뉴욕의 한 성당에서 조용하게 장례를 치렀고 한구과 미국 양쪽에 사망 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8월 중순 서울시 측에 협조를 구해 어머니 유골함을 들고 그림이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상설전시실과 수장고를 한 바퀴 돌고 보내드렸다”고 했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이씨가 몇 달 전 유골함을 들고 미술관의 수장고에 다녀갔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씨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김 관장은 “당시 이씨가 관련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줄 것을 강력 요청했다고 들었다. 개인적인 일이라 본인이 적절한 시점에 밝힐 것으로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립미술관에는 천 화백이 17년 전 기증한 작품 93점이 있다.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60여년에 걸쳐 제작한 작품들이다.  
 
천 화백은 1924년 전라남도 고흥군에서 군서기였던 아버지와 무남독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1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외동딸을 남장을 시켜 서당에까지 보낼 정도로 깨어 있던 외할아버지는 그 딸이 낳은 큰 손녀를 금지옥엽으로 예뻐하며 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천 화백은 밤마다 외할아버지의 무릎에 누워 ‘심청전’ ‘흥부전’ ‘수호지’ ‘춘향전’을 듣다 잠이 들었고 천자문과 창까지 배우며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천 화백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다. 보통학교 1학년 때 일본인 담임선생이 그림에 재능이 있음을 알아봤으며, 대청마루 흰 횟가루 벽에 그린 여인상이 외할머니 눈에 띄어 매를 맞기도 했다.
 
뇌출혈 투병생활…두달전 별세 뒤늦게 확인
외부와 연락 끊고 칩거 “소문·의혹 무성”
 
1940년 17세 때 여수항을 출발해 도쿄 유학길에 올랐다.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현 여자미술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녀의 동경 유학행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특히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아버지는 결혼을 하거나 의대에 진학하라고 해서다, 천 화백은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미친 척’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느날 아버지에게 유학 문제로 꾸지람을 듣던 천 화백은 갑자기 “하하 하하하”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미친 척을 한 것이다. 아버지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이번엔 “꺼이꺼이”하며 대성통곡을 했다. 이 작전이 성공해 천 화백은 바라던 대로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이 무렵 천 화백은 본명이던 옥자를 버리고 경자라는 이름을 스스로 지어 붙인다. 
 
천 화백은 학교에서 일본화(당시 동양화를 일본화라고 불렀다)를 전공했다. 그 시설 유행하던 그림은 입체파와 야수파였지만 천 화백은 서양화보다 일본화에 더 끌렸다. 일본화는 서양화보다는 곱고 섬세했다. 천 화백은 색체에 관심이 많았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따라 포목점에서 명주 비단 등 옷감 보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기 겪어
‘생태’ 탄생 배경
 
일본 유학 중이던 1942년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아버지를 그린 ‘조부’가 입선하고 1943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머니를 그린 졸업 작품 ‘노부’가 입선하면서 재능을 인정받는다. 조부는 고혈압으로 반신불수가 된 몸이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의 모델이 되어준 외할아버지의 초상화를 그린 작품이다.
 
일본이 세계 2차 대전으로 패망하기 직전 천 화백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다. 이때 당시 귀국하던 표를 구하지 못해 도쿄역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당시 우연히 만나 표를 건넨 이철식과 1944년 결혼을 한다.
 
이후 첫 딸 둘째 아들을 낳았으며, 1946년 전남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천 화백의 결혼생활은 길지 않았다. 그러다 사회부 신문 기자였던 두 번째 남편 김남중을 만난다. 두 번째 남편 사이에서 딸과 아들을 낳는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남편 없이 네 명의 자식을 보살핀다. 
 
그러다 천 화백은 유부남과 불륜 관계를 맺기도 한다. 천 화백은 자서전에 이 유부남에 대해 “청춘에 메말라 버린 나는 목 타는 사막에서 감로수를 마신 듯한 기분이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천 화백은 떳떳하지 못한 관계에 대한 자괴감과 그의 변덕스러운 태도 때문에 고통의 나날을 이어갔다.
 
여동생마저 6·25전쟁이 끝나자마자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또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 형편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병명조차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결혼은 실패로 끝났다. 
 
당시 천 화백은 절망적인 상태였다. 화단에 파란을 일으켰던 ‘생태’가 이때 당시 탄생했다. 
 
 
아픔을 견디지 못한 천 화백은 자신의 고통을 마비시킬 만큼 무섭도록 끔찍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소재를 찾아 헤맸다. 그리하여 발길이 멈춘 곳은 광주역에 있는 한 뱀집이었다. 천 화백은 당시 매일 아침이 되면 스케치북을 들고 출근하듯 뱀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뱀집 주인은 천 화백을 이해하며, 그림을 그리기 좋도록 유리 상자에 많은 뱀을 담아주기도 했다. 그림을 완성한 후 얽히고설킨 뱀의 숫자가 총 33마리였다. 그녀는 당시 사랑하던 유부남의 나이가 35세에 뱀띠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두 마리를 더 그려 넣었다.
 
천 화백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생태에 대해 “잔뜩 독을 품고서 세상을 향해 혀를 내밀던 독사들 (중략) 세상사람들이 징그럽고 흉측하다고 고개를 돌리는 그 뱀들이 나에게는 생명수 마냥 느껴졌다.(중략)”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1952년 피란지인 부산에서 연 개인전에 내놓은 생태는 화단이 주목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1972년 베트남전 당시 문공부에서 베트남전 전쟁 기록화를 그리기 위해 화가 열 사람을 파견한다는 기별을 받고 김기창, 박영선, 김원, 임직순 등 남자 화가들 틈에서 홍일점 종군화가가 된다. 맹호부대에 종군해 1주일간 종군하면서 M-16소총을 들고 꽃나무 그늘에 잠복하는 병사들, 연분홍 아오자이를 입고 자전거로 거리를 누비는 아가씨들을 많은 스케치와 담채 작품으로 남겼다.

최대 스캔들
‘미인도’ 논란
 
뱀으로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 천 화백의 그림 소재는 주로 꽃과 여인이다. 미의 대명사로 통하는 꽃과 여인은 일반적인 그림소재다. 화가가 기피할 것 같은 뻔한 소재지만 천 화백은 개의치 않았다. 아마 소재 자체의 특수성보다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나타낼 수 있는 것을 그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천 화백이 그린 여인의 모습에선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자화상이 아닌 경우에도 여인들의 얼굴이 대부분 화가 자신과 닮아서다. 외국인을 모델로 그렸다 해도 예외는 아니다. 천 화백이 영원한 나르시시스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성들에게 보수적인 시대였음에도 천 화백은 하이힐과 양장을 입었을 정도로 상당히 개방적인 여성이었다. 이미 오래전 세계일주를 했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애연가였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에도 담배가 소재로 자주 등장할 정도다. 사실 과거에는 회충을 잡아야 한다는 이유로 여성들에게 담배를 허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천경자 집안에는 대대로 애연가가 많았다. 외할머니와 어머니도 애연가였으며, 천경자의 딸 또한 애연가였고, 모녀간에 맞담배를 즐겼다 한다.
 
천 화백은 노년까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미인도 위작 논란’으로 그는 절필까지 하게 된다. 
 
 
천 화백은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에 걸려 있는 자신의 그림 ‘미인도’가 자신의 작품이 아닌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은 10·26사태로 김재규의 재산을 환수한 후 인도받은 진품이라며 한국화랑협회에 감정을 의뢰했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말했으니 위작으로 결론 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이 이 작품은 진품이라고 맞서는 바람에 미술계 최대 위작시비가 벌어지게 됐다.

위작 시비로 스트레스
말년 붓 꺾고 은둔생활 
 
천 화백은 자신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혼이 없다며 반박하는 가운데 한국화랑협회는 현미경 분석, 적외선과 X선 촬영 등 정밀 감식을 했다. 그 결과 감정위원 전원 일치로 진품 판정을 내렸다. 당시 천 화백은 “내가 낳지도 않은 자녀를 남들이 당신 자녀라고 윽박지르면 어떡하느냐”고 항변했다. 하지만 당시 여론은 ‘정신이 이상해 자식도 몰라보는 어미’라는 시선이 더 많았다. 
 
한국화랑협회는 2차에 걸쳐 진품이란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는 생존 작가이고 정신 상태가 정상이라면 작가의 의견에 감정의 우선 순위를 둔다는 화랑협회 내부의 규정에도 어긋난 결론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재판까지 가게 됐지만, 법원에서는 판단 불가를 판정했다.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천 화백은 “붓을 들기 두렵다. 창작의 증언을 무시한 채 가짜로 진짜로 우기는 풍토에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긴 채 대한민국예술원에 회원직 사퇴서를 제출하였으며 딸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1998년 천 화백은 일시 귀국해 자신의 작품들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일단락된 듯하던 사건은 8년 뒤 한 위조범의 자백으로 재차 논란이 불거졌다. 그러나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며, 수사하지 않았다. 이런 탓에 위작을 증명할 공신력 있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이 사건은 여전히 진위여부가 밝혀지지 않았다.
 
현대 미술 전설
굴곡진 삶 살아
 
천 화백에 대한 또 다른 논란도 있다. 천 화백이 절필을 선언한 이후 누구도 그의 생사 여부를 알지 못했다. 2003년 미국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이후 거동이 불가능해 10년 넘게 큰딸의 간호를 받으며 투병 중인 것으로 전해졌지만, 한편에서는 그녀가 이미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자 지난해 대한민국예술원이 천 화백의 근황을 확인하기 위해 의료 기록 등을 요청했다. 큰딸은 명예훼손이라며 자료 제출을 거부했고, 예술원은 생사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월 180만원의 수당 지급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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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