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조용히 떠난 고 천경자 화백

영혼과 꽃의 화가 '영원히 잠들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영원한 나르시시스트였던 천경자(91) 화백이 미국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절필을 선언한 천 화백은 외부와 인연을 끊으며, 칩거에 들어갔다. 그 누구와도 연락이 닿지 않은 탓에 생사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아 많은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국 근현대 미술의 전설인 여류 작가 천 화백은 굴곡진 삶을 살다 갔다.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여성화가 천경자 화백이 미국 뉴욕의 맨해튼에 있는 자택에서 두 달 전 별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천 화백의 딸 이혜선씨는 “어머니가 2003년 7월2일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줄곧 병석에 계셨는데 지난해 11월 추수감사절 이후 급격히 몸이 안 좋아 지셨다”며 “지난 8월6일 새벽 5시쯤 현저히 맥박이 떨어지더니 의사가 보는 가운데 잠자는 것처럼 평안하게 돌아가셨다”고 지난 22일 한 언론을 통해 밝혔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
 
수년간 뉴욕에서 거주해온 천 화백은 국내 미술계와 소식이 끊기면서 1년 전부터는 생사 논란이 있었다. 이씨는 “뉴욕의 한 성당에서 조용하게 장례를 치렀고 한구과 미국 양쪽에 사망 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8월 중순 서울시 측에 협조를 구해 어머니 유골함을 들고 그림이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상설전시실과 수장고를 한 바퀴 돌고 보내드렸다”고 했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이씨가 몇 달 전 유골함을 들고 미술관의 수장고에 다녀갔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씨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김 관장은 “당시 이씨가 관련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줄 것을 강력 요청했다고 들었다. 개인적인 일이라 본인이 적절한 시점에 밝힐 것으로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립미술관에는 천 화백이 17년 전 기증한 작품 93점이 있다.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60여년에 걸쳐 제작한 작품들이다.  
 
천 화백은 1924년 전라남도 고흥군에서 군서기였던 아버지와 무남독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1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외동딸을 남장을 시켜 서당에까지 보낼 정도로 깨어 있던 외할아버지는 그 딸이 낳은 큰 손녀를 금지옥엽으로 예뻐하며 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천 화백은 밤마다 외할아버지의 무릎에 누워 ‘심청전’ ‘흥부전’ ‘수호지’ ‘춘향전’을 듣다 잠이 들었고 천자문과 창까지 배우며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천 화백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다. 보통학교 1학년 때 일본인 담임선생이 그림에 재능이 있음을 알아봤으며, 대청마루 흰 횟가루 벽에 그린 여인상이 외할머니 눈에 띄어 매를 맞기도 했다.
 
뇌출혈 투병생활…두달전 별세 뒤늦게 확인
외부와 연락 끊고 칩거 “소문·의혹 무성”
 
1940년 17세 때 여수항을 출발해 도쿄 유학길에 올랐다.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현 여자미술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녀의 동경 유학행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특히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아버지는 결혼을 하거나 의대에 진학하라고 해서다, 천 화백은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미친 척’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느날 아버지에게 유학 문제로 꾸지람을 듣던 천 화백은 갑자기 “하하 하하하”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미친 척을 한 것이다. 아버지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이번엔 “꺼이꺼이”하며 대성통곡을 했다. 이 작전이 성공해 천 화백은 바라던 대로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이 무렵 천 화백은 본명이던 옥자를 버리고 경자라는 이름을 스스로 지어 붙인다. 
 
천 화백은 학교에서 일본화(당시 동양화를 일본화라고 불렀다)를 전공했다. 그 시설 유행하던 그림은 입체파와 야수파였지만 천 화백은 서양화보다 일본화에 더 끌렸다. 일본화는 서양화보다는 곱고 섬세했다. 천 화백은 색체에 관심이 많았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따라 포목점에서 명주 비단 등 옷감 보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기 겪어
‘생태’ 탄생 배경
 
일본 유학 중이던 1942년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아버지를 그린 ‘조부’가 입선하고 1943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머니를 그린 졸업 작품 ‘노부’가 입선하면서 재능을 인정받는다. 조부는 고혈압으로 반신불수가 된 몸이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의 모델이 되어준 외할아버지의 초상화를 그린 작품이다.
 
일본이 세계 2차 대전으로 패망하기 직전 천 화백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다. 이때 당시 귀국하던 표를 구하지 못해 도쿄역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당시 우연히 만나 표를 건넨 이철식과 1944년 결혼을 한다.
 
이후 첫 딸 둘째 아들을 낳았으며, 1946년 전남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천 화백의 결혼생활은 길지 않았다. 그러다 사회부 신문 기자였던 두 번째 남편 김남중을 만난다. 두 번째 남편 사이에서 딸과 아들을 낳는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남편 없이 네 명의 자식을 보살핀다. 
 
그러다 천 화백은 유부남과 불륜 관계를 맺기도 한다. 천 화백은 자서전에 이 유부남에 대해 “청춘에 메말라 버린 나는 목 타는 사막에서 감로수를 마신 듯한 기분이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천 화백은 떳떳하지 못한 관계에 대한 자괴감과 그의 변덕스러운 태도 때문에 고통의 나날을 이어갔다.
 
여동생마저 6·25전쟁이 끝나자마자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또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 형편이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병명조차 알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결혼은 실패로 끝났다. 
 
당시 천 화백은 절망적인 상태였다. 화단에 파란을 일으켰던 ‘생태’가 이때 당시 탄생했다. 
 
 
아픔을 견디지 못한 천 화백은 자신의 고통을 마비시킬 만큼 무섭도록 끔찍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소재를 찾아 헤맸다. 그리하여 발길이 멈춘 곳은 광주역에 있는 한 뱀집이었다. 천 화백은 당시 매일 아침이 되면 스케치북을 들고 출근하듯 뱀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뱀집 주인은 천 화백을 이해하며, 그림을 그리기 좋도록 유리 상자에 많은 뱀을 담아주기도 했다. 그림을 완성한 후 얽히고설킨 뱀의 숫자가 총 33마리였다. 그녀는 당시 사랑하던 유부남의 나이가 35세에 뱀띠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두 마리를 더 그려 넣었다.
 

천 화백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생태에 대해 “잔뜩 독을 품고서 세상을 향해 혀를 내밀던 독사들 (중략) 세상사람들이 징그럽고 흉측하다고 고개를 돌리는 그 뱀들이 나에게는 생명수 마냥 느껴졌다.(중략)”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1952년 피란지인 부산에서 연 개인전에 내놓은 생태는 화단이 주목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1972년 베트남전 당시 문공부에서 베트남전 전쟁 기록화를 그리기 위해 화가 열 사람을 파견한다는 기별을 받고 김기창, 박영선, 김원, 임직순 등 남자 화가들 틈에서 홍일점 종군화가가 된다. 맹호부대에 종군해 1주일간 종군하면서 M-16소총을 들고 꽃나무 그늘에 잠복하는 병사들, 연분홍 아오자이를 입고 자전거로 거리를 누비는 아가씨들을 많은 스케치와 담채 작품으로 남겼다.

최대 스캔들
‘미인도’ 논란
 
뱀으로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 천 화백의 그림 소재는 주로 꽃과 여인이다. 미의 대명사로 통하는 꽃과 여인은 일반적인 그림소재다. 화가가 기피할 것 같은 뻔한 소재지만 천 화백은 개의치 않았다. 아마 소재 자체의 특수성보다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나타낼 수 있는 것을 그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천 화백이 그린 여인의 모습에선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자화상이 아닌 경우에도 여인들의 얼굴이 대부분 화가 자신과 닮아서다. 외국인을 모델로 그렸다 해도 예외는 아니다. 천 화백이 영원한 나르시시스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성들에게 보수적인 시대였음에도 천 화백은 하이힐과 양장을 입었을 정도로 상당히 개방적인 여성이었다. 이미 오래전 세계일주를 했을 뿐만 아니라 상당한 애연가였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에도 담배가 소재로 자주 등장할 정도다. 사실 과거에는 회충을 잡아야 한다는 이유로 여성들에게 담배를 허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천경자 집안에는 대대로 애연가가 많았다. 외할머니와 어머니도 애연가였으며, 천경자의 딸 또한 애연가였고, 모녀간에 맞담배를 즐겼다 한다.
 
천 화백은 노년까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미인도 위작 논란’으로 그는 절필까지 하게 된다. 
 
 
천 화백은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에 걸려 있는 자신의 그림 ‘미인도’가 자신의 작품이 아닌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은 10·26사태로 김재규의 재산을 환수한 후 인도받은 진품이라며 한국화랑협회에 감정을 의뢰했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말했으니 위작으로 결론 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이 이 작품은 진품이라고 맞서는 바람에 미술계 최대 위작시비가 벌어지게 됐다.

위작 시비로 스트레스
말년 붓 꺾고 은둔생활 
 
천 화백은 자신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혼이 없다며 반박하는 가운데 한국화랑협회는 현미경 분석, 적외선과 X선 촬영 등 정밀 감식을 했다. 그 결과 감정위원 전원 일치로 진품 판정을 내렸다. 당시 천 화백은 “내가 낳지도 않은 자녀를 남들이 당신 자녀라고 윽박지르면 어떡하느냐”고 항변했다. 하지만 당시 여론은 ‘정신이 이상해 자식도 몰라보는 어미’라는 시선이 더 많았다. 
 
한국화랑협회는 2차에 걸쳐 진품이란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는 생존 작가이고 정신 상태가 정상이라면 작가의 의견에 감정의 우선 순위를 둔다는 화랑협회 내부의 규정에도 어긋난 결론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재판까지 가게 됐지만, 법원에서는 판단 불가를 판정했다.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천 화백은 “붓을 들기 두렵다. 창작의 증언을 무시한 채 가짜로 진짜로 우기는 풍토에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긴 채 대한민국예술원에 회원직 사퇴서를 제출하였으며 딸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1998년 천 화백은 일시 귀국해 자신의 작품들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일단락된 듯하던 사건은 8년 뒤 한 위조범의 자백으로 재차 논란이 불거졌다. 그러나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며, 수사하지 않았다. 이런 탓에 위작을 증명할 공신력 있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이 사건은 여전히 진위여부가 밝혀지지 않았다.
 
현대 미술 전설
굴곡진 삶 살아
 
천 화백에 대한 또 다른 논란도 있다. 천 화백이 절필을 선언한 이후 누구도 그의 생사 여부를 알지 못했다. 2003년 미국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이후 거동이 불가능해 10년 넘게 큰딸의 간호를 받으며 투병 중인 것으로 전해졌지만, 한편에서는 그녀가 이미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자 지난해 대한민국예술원이 천 화백의 근황을 확인하기 위해 의료 기록 등을 요청했다. 큰딸은 명예훼손이라며 자료 제출을 거부했고, 예술원은 생사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월 180만원의 수당 지급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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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