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안철수 비토 당하는 이유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사사건건 삿대질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진짜 해당행위자는 안철수 의원이 아닌가?”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안철수 의원이 당 혁신위가 해당행위를 했다고 지적하자 당의 한 관계자가 사석에서 한 말이다. 지난해 7·30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공동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안 의원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다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안 의원을 향한 당내 인사들의 불만도 커져가고 있다. 안 의원이 당내에서 비토 당하고 있는 이유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우리 당이 싸울 때 안철수 의원은 한 번도 시원하게 동참한 적이 없다. 그저 멀리서 지켜보면서 당쟁이라고 규정짓고는 신선놀음만 했다. 그러다 당이 뭔가 해보려고 하면 딴지를 걸면서 존재감을 키우는 매우 간사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안 의원이 당 혁신위가 해당행위를 했다고 하는데, 진짜 해당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은 안 의원이 아닌가?”

내부 총질
못 참겠다

최근 새정치연합 내에서 안 의원을 향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7·30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공동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던 안 의원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다시 목소리를 키우고 있지만 그 화살이 당 밖이 아닌 당 내부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안 의원은 지난 13일 문재인 대표가 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위를 벌이던 날 당 혁신위 비판 토론회에 참석해 전선을 분산시켰다. 이에 당 혁신위원인 조국 교수는 불편한 심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조 교수는 이날 자신의 SNS를 통해 “문재인이 국정교과서 반대 광화문 1인 시위하는 날, 안철수가 문재인과 혁신위를 비판하는 토론회를 연 것은 ‘거시기’하다”며 “타이밍을 조정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라고 지적했다.


당 주요 발표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딴지
화력 집중해야 할 때 여론 분산시켜 눈총

지난 11일에는 문 대표가 야심차게 준비한 청년경제 구상 발표 몇 시간 뒤 안 의원이 낡은 진보 청산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바람에 문 대표의 발표가 김이 새 버리기도 했다. 이날 문 대표는 청년 일자리 70만개 창출을 골자로 하는 청년희망종합대책과 함께 법인세 인상 가능성도 내비치는 등 굵직굵직한 이슈 등을 제시했지만 안 의원의 기자회견 때문에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둘 중 누가 먼저 발표일정을 잡아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안 의원이 먼저 기자회견 일정을 잡아놓았다고 하더라도 당 대표가 그런 중요한 정책 구상을 발표하기로 예정되어 있으면 며칠 양보해주는 것이 미덕 아닌가?”라며 “시급한 발표도 아닌데 마치 문 대표의 정책 발표를 고의적으로 덮어버리겠다는 듯이 몇 시간 뒤에 기자회견을 강행한 것은 매우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새누리 편?
새정치 편?

안 의원이 문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한명숙 전 총리의 부패를 감싸고 있다며 비판한 것도 상당한 당내 반발에 부딪혔다. 당내 중진인 설훈 의원은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의 경우 1심에서 무죄가 나왔다. 그런 부분들은 간과하고 부패라고 몰아가면 굉장히 반발의 소지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전 총리 재판과 관련해서는 분명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많은데 이를 지적한 당내 의원들을 마치 부패한 동료 의원을 감싼 파렴치범으로 매도해버렸다는 것이다.

안 의원이 새정치연합을 낡은 진보라고 지적한 데 대해서도 당내 김기식 의원이 안 의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김 의원은 “안 의원의 ‘낡은 진보 청산’ 주장은 결과적으로 ‘진보는 낡은 것’이라는 보수의 프레임을 강화시켜주는 효과가 날 것”이라며 “무능, 불안함, 비전 없음이 진보 탓인가? 지긋지긋한 계파 싸움과 낡은 기득권 정치 때문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안 의원이 야권 인사가 맞는지 헷갈릴 정도로 모호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안 의원의 온건보수노선은 다른 진보진영에서도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진보진영의 신당 창당을 추진했던 ‘국민모임’의 김세균 공동대표는 안 의원에 대해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중간에 서고자 하는 중도보수노선이 문제”라며 “그런 노선 같으면 꼭 새정치연합에 들어와야 할 이유는 없었다”고 안 의원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안 의원이) 새누리당에 들어갔으면 보수정당을 혁신시키는 데 오히려 더 크게 기여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 의원이 당 혁신위의 ‘혁신안이 실패했다’고 평가한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상당하다.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안 의원의 그 같은 발언이 있은 직후 “(안 의원은) 당 대표를 지낸 분으로 우리 당 위기에 일말의 책임이 있는데 그렇게 성급하고 무례하게 얘기하는 건 무책임하다”며 반발했다. 문재인 대표도 “혁신의 방향을 제시해줘야지 그저 흔들기만 한다면 혁신의 효과에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특히 안 의원은 문 대표의 혁신위원장직 제의를 거절했던 터라 당내 불만이 더 크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남이 한 일을 평가하고 깎아내리기는 쉽다. 자기가 혁신위원장직을 거절해놓고 이제 와서 혁신안을 비판하는 것은 정말 도의적으로 어긋나는 일 아닌가?”라며 “김상곤 위원장은 아무도 안 맡겠다는 자리 맡아서 어찌 보면 당을 위해 희생한 사람이다. 그렇게 자신이 있었으면 직접 혁신위원장직을 맡아서 혁신안을 내놨으면 되지 않나? 안 의원이 뒤늦게 혁신안이라고 내놓은 것들을 보면 매우 지엽적인 것들인데 그런 것들은 진정한 혁신안이라고 볼 수도 없다”고 안 의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진보 평론가인 진중권 교수도 안 의원이 △낡은 진보 청산 △당내 부패 척결 △새로운 인재 영입 등 3대 혁신안을 제안한 것에 대해 “고작 부패척결이 새정치냐”며 “그런 건 혁신안 속의 한 항목으로 제안해도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진 교수는 “(안철수의 혁신은) 플랜도 없고, 실체도 없고, 가망도 없다”며 “그냥 마케팅을 위한 노이즈만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안 의원은 혁신위원장직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서도 “혁신은 대표가 하는 것이다. 대표가 의지와 구체적 아이디어를 가지고 혁신을 실행할 때 성공하는데 실망스럽다”며 사실상 모든 책임을 문 대표에게 떠넘겼다. 일각에선 안 의원이 혁신위원장직을 거절한 진짜 이유가 혁신안 결과를 트집 잡아 문 대표를 흔들려는 목적이 아니었겠냐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안 의원이 혁신위의 험지 출마 요구를 거절한데 대해서도 “다른 중진들이 지금 지역구도 험지라며 차출을 거부한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안 의원의 현재 지역구는 야성이 강한 야권 텃밭 아닌가?”라며 안 의원을 성토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안 의원이 새누리당이 아닌 당 내부의 계파싸움에 치중하면서 안 의원을 성토하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안 의원은 새누리당과 극한 대립하고 있는 새정치연합에 대해 ‘야당이 운동권 시각에 지배돼선 안 된다’라고 지적했는데 김기식 의원은 “당이 제대로 싸웠던 적이 있었나? 오히려 싸워야 할 때 제대로 못 싸워서 지지자들까지 실망시킨 것 아니냐”며 안 의원을 비판했다. 안 의원은 집권여당과 대립하는 쟁점마다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거나 오히려 야당을 비판하면서 전선을 흐렸다는 지적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안 의원이 정말 싸워야 할 때는 뒤에 숨어 있다가 문재인 흔들기에만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무엇이 우선인지 모르는 것 같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안 의원이 문 대표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고 나서면서 야권 지지자들의 분열도 심화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 대표의 양자대결시 김 대표는 다자대결 때보다 높은 지지도를 기록한 반면, 문 대표는 야권 지지도의 합보다 오히려 낮아 여권은 뭉치고 야권은 분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누가 차기 대선에 나서도 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안 의원이 야권 분열에 불을 지피면서 누가 대선후보가 되든 이기기 힘든 구조를 만들어 버렸다. 지금은 안 의원이 내부에 총질을 할 때가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야권 분열
같이 죽자?

한 때 안 의원의 최측근 인사들도 이제는 안 의원의 새로운 비토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치입문 후 안 의원의 측근들은 줄줄이 안 의원과 결별을 선언했다. 안 의원의 정치입문 당시 대변인 역할을 했던 유민영 전 청와대 행정관은 아예 정치를 떠나 다른 일을 하고 있고, 새정치연합 공동위원장을 맡았던 김성식 전 의원은 합당 결정 발표 후 곧바로 안 의원을 떠났다.

진심캠프 상황실 부실장이었던 윤태곤 비서관도 안 의원의 곁을 떠났다. 초창기 외교·안보정책 조언자였던 윤영관 전 외교부장관도 안 의원과 완전히 결별한 상태다.

안 의원의 정치적 멘토로 불렸던 김종인 전 부총리와 윤여준 장관, 최장집 교수 등은 지금은 외곽에서 안 의원을 비판하기에 바쁘다. 안 의원의 최측근이던 금태섭 변호사마저 최근 자서전을 통해 안 의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당 내부 총질하며 정치적 존재감 키워
고비 때마다 양비론 “우리 편 맞아?”

김성식 전 의원은 안 의원이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표 등 주류를 맹비난하자 자신의 SNS을 통해 “안철수 의원이 오늘 기자회견에서 낡은 진보 청산을 강조했는데 민주당과 합당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낡은 보수와 낡은 진보의 양당구조를 강화했던 것은 안 의원”이라고 힐난했다.
 

금태섭 변호사도 출판기념 북콘서트에서 ‘안철수 의원에게 희망이 있냐’는 질문에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현재는 구체적인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 안 의원은 당내 지지세력도 없고 개인의 이미지와 지지율만 남은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안 의원과 결별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안 의원이 중요한 순간에 결단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는 냉혹한 평가를 남겼다.

신뢰 제로
불만 고조

안 의원을 따르려던 사람들도 안 의원의 독단적인 대선 사퇴와 신당 창당 포기 등을 지켜보면서 신뢰가 크게 상실되었다는 지적이다. 비주류인 안 의원과 함께하려면 그야말로 정치생명을 걸어야 하는 데 정치생명을 걸 만큼 안 의원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당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안 의원은 별다른 대안도 제시 못 하면서 비판만 하고 있다. 정말 당을 위한 행동인가? 자기 존재감을 키우려는 목적이 아닌지 의심이 된다”며 “국정교과서 문제로 모든 야권이 뭉치고 있는 판국에 안 의원만 딴 소리를 하고 있다. 안 의원을 향한 내부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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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