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공약 점검> ④진전 없는 정치개혁

큰소리만 떵떵…이번 정권도 답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하반기 국정 운영을 시작했다. <일요시사>는 지난 2월16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발표한 박 대통령의 ‘집권 3년 차 대선공약이행평가’를 토대로 그로부터 현재까지 얼마나 공약이 이행됐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준비했다. 총 4주에 걸쳐 복지·안보·경제·정치 분야로 나눠서 다룰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정치 분야를 점검해봤다.

여의도에서는 정치개혁 바람이 불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에서는 선거구 획정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새누리당은 오픈프라이머리 등 총선 룰 결정에 당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정의당 등 야권에서는 비례대표를 늘이는 방안에 대해 모색 중이다.

정치 개혁
20대 총선

이렇듯 최근 정가에서는 개혁의 일환으로 논의되고 있는 사항들이 많다. 그러나 모두 내년 4월경에 있을 20대 총선을 겨냥한 개혁안뿐이다. 때문에 개혁에 대한 필요성이 국민들에게까지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도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이유도 결국 취업·육아·주거 등 국민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해결책을 정치권이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전문가들은 그 이유에 대해 선거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의 구조적 문제라고 보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한곳으로 집중되는 대한민국의 권력 구조상 대통령만이 정치권 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집 ‘세상을 바꾸는 약속’에 제시된 정치 및 제도 개혁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공약은 크게 3가지, ‘정치쇄신’ ‘검찰개혁’ ‘정부개혁’ 분야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정부개혁이 27건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며, 그 다음이 검찰개혁 분야로 19건, 정치쇄신이 17건으로 가장 적은 수를 차지한다. 이들을 합치면 총 63건의 공약이 정치·정부와 관련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이 지난 2월16일 박 대통령 집권 3년 차를 맞아 이들 공약의 이행도를 진단한 결과, 전체 63개 세부공약 중 완전이행이 10개(정치쇄신 1개, 검찰개혁 3개, 정부개혁 6개)로 전체의 15.9%를 기록했다.

후퇴이행은 22개(정치쇄신 4개, 검찰개혁 6개, 정부개혁 12개)로 34.9%를 차지했다. 완전이행된 공약보다 후퇴이행된 공약이 2배 이상 많은 것이다. 미이행은 31개(정치쇄신 12개, 검찰개혁 10개, 정부개혁 9개)로 49.2%를 기록했다. 근 절반에 가까운 정치·제도 개혁 공약이 이행되지 않고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쇄신 분야
미이행 12→9

6개월의 시간이 흐른 상황에서 공약을 다시 진단해보면 이행률에서 약간의 변화가 나타났다. 분야별로 살펴보면 우선 정치쇄신의 경우 기존 미이행 상태였던 12개 공약 중 1개 공약은 완전이행됐으며, 2개 공약이 후퇴이행됐다.

완전이행된 1개 공약은 선거구 획정위원회(이하 획정위)의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선거구 획정의 자의성을 방지하기 위해 획정위를 운영할 시 100% 외부인사로만 구성한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 결과 독립기구로서의 획정위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출범하는 등 공약이 이행됐다.

그러나 획정위가 계속해서 독립성을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이다. 국회 정개특위와의 충돌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획정위는 지난 8월경 정개특위에게 선거구 획정 기준을 마련하라고 통보했지만, 정개특위는 시한을 지키지 못했다.
 


총선 룰을 둘러싼 여·야의 정쟁으로 선거구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지 못한 탓이다. 이에 획정위는 획정안의 국회 제출 법정기한(10월13일)을 지키기 위해 정개특위와는 별도로 획정기준 등을 설정하고 작업에 착수하겠다는 뜻을 내놓은 상태다. 정치권과의 마찰이 예상되는 가운데 획정위가 얼마나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국회의원의 면책 특권을 제한하고 불 체포 특권을 폐지한다는 공약은 후퇴이행으로 전진했다. 지난달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무소속 박기춘 의원(새정치민주연합 탈당)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면서 미이행에서 후퇴이행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해당 특권이 명시된 헌법 제44조·제45조에 대한 개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지난 2014년 9월3일 ‘철도비리’에 연루된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은 부결됐었다는 점 등을 비추어 완전이행이 아닌 후퇴이행으로 분류된다.

공약 이행률 점검해보니…
정가 여전히 ‘변화없음’

공무원의 직무수행과 관련된 사익추구를 금지한다는 공약도 미이행에서 후퇴이행으로 변한 부분이다. 지난 3월3일 정무위원장의 제안으로 발의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이 국회에서 원안가결됨으로써 기본 법제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의원들의 특권 제한 공약처럼 완전히 이행됐다고 보기 힘든 부분이 있다. 김영란법을 기반으로 한 시행령 제정을 앞두고 정치권과 사회각계에서는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으로 추석 명절을 앞두고 농어촌민들은 김영란법 시행령에 의한 매출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만약 국민권익위원회와 한국법제연구원이 제시한 선물 가액 5만~7만원 선으로 처벌 기준이 설정된다면 매출이 급감할 것이라고 관련 단체들은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농·축·수산물을 김영란법 적용 범위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법률안(새누리당 김종태 의원 대표발의)이 지난달 17일 발의된 상태다.

검찰개혁 분야에서는 그동안 이행된 공약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존 10개의 미이행 공약 중 4개가 포함돼 있는 검·경의 수사권 조정 영역은 변화된 바 없이 현 상태를 유지했다. 검·경이 서로 감시한다는 안, 검찰의 직접 수사기능을 축소한다는 안, 경찰수사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방식의 수사권 배분 안 등은 제도적으로 마련되지 못했다.

비리검사 퇴출 영역에 있는 2가지 공약 사항도 당분간 미이행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법무부의 검찰청법이 아직 개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검사의 적격검사기간을 7년에서 4년으로 단축시킨다는 공약은 5년으로 변경돼 입법예고 중이다. 해당 법안은 지난 2013년 3월23일 이후로 개정되지 않고 있다.

검찰개혁 분야
6개월 간 0건


합리적인 검찰 인사제도를 확립한다는 영역 또한 경실련이 조사한 지난 2월16일 이후 변화된 것이 없다. ‘검찰인사위원회’에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한다는 공약은 관련 규정이 지난 2011년 12월28일 이후 변화된 것이 없어 이행됐다고 보기 힘들다.

검사의 법무부 및 외부기관 파견을 제한한다는 안도 진전이 없었다. 따라서 ‘청와대 파견’ 등 검찰을 편법으로 파견하는 행위를 제도적으로 막는 일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에 검찰을 편법 파견하는 문제는 오늘내일 일이 아니다. 정의당 서기호 의원은 김현웅 당시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때 “이미 6명의 검사가 청와대 파견 금지에도 사표를 써서 파견됐고, 5명이 그대로 검찰에 복귀했다”고 지적했다.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개선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국회 대정부질문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가 검찰의 청와대 파견에 대해 ‘직업선택의 자유’라고 발언해 공약 이행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야권에서 나온 바 있다. 김현웅 법무부장관은 후보자 당시 청문회 과정에서 “검사직을 사직하고 청와대 비서실 근무를 제한하는 것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검찰 관련 0%…개혁의지 없나
정부개혁 2건…전시행정 빈축


정부개혁 영역에서는 총 9개의 미이행 공약 중 단 2개의 공약만이 완전이행됐다. 국민대타협기구를 통해 조세 수준을 결정한다는 안은 지난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할 당시 이행됐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 2일, 9월 정기국회 개회를 맞아 가진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국민대타협기구는 정부, 공무원노조, 여당, 야당, 전문가, 시민단체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참여해 결론을 도출해내는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당시 원내대표는 공무원연금 개혁이 타결된 지난 5월4일 “국민대타협기구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우리 사회의 갈등해결 모범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완전이행이 언제 후퇴이행으로 변할지 모르는 상황이 최근 발생하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노동개혁을 진행하는 가운데 곳곳에 뇌관이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교섭단체연설에서 김 대표가 특정 노조를 두고 ‘귀족노조’라고 말한데 대해 민주노총 측은 크게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새정치연합에서는 이와 관련해 사회적 대타협기구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지난 3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청년·비정규직 일자리 해결을 위해 정규직 노동자는 ‘시간’을 양보하고, 대기업은 ‘이익’을 양보해달라”며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국회 내 사회적 기구 설치를 제안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새누리당이 이 원내대표의 안을 받아들여 대타협 기구를 설치한다면 갈등을 봉합하고 지난 공무원 연금개혁과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해당 분야의 나머지 공약들은 미이행 상태를 유지했다. 공공부문 투명 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국고보조금 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안은 기획재정부 소속 재정정보과에서 진행 중이다. 총 사업비 300억원이 투자되는 이번 시스템 구축이 마무리 된다면 국고보조금의 중복·부정 수급을 방지해 재원이 왜곡 배분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무회의 강화 영역에 있는 총 4개 공약 중 3개 공약이 미이행 상태다. 국무회의의 집단 책임성을 강화한다는 안과 ‘책임장관제’에 대한 안, 정부조직 개편 시 전문가와 공무원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안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으로 이행되기 힘들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정부개혁 분야
완전이행 2건

지난 2월16일부터 최근까지 이행된 공약은 총 5건, 정치쇄신 분야에서 3건이 완전·후퇴이행됐고 정부개혁 분야에서 2건이 완전이행됐다. 이를 종합해보면 정치·제도 개혁과 관련된 총 63개 공약 중 완전이행된 것이 13개(정치쇄신 2개, 검찰개혁 3개, 정부개혁 8개), 후퇴이행이 24개(정치쇄신 6개, 검찰개혁 6개, 정부개혁 12개), 미이행이 26개(정치쇄신 9개, 검찰개혁 10개, 정부개혁 7개)로 바뀌었다. 항목별 변화 비율은 다음과 같다. (완전이행 15.9%→20.6%, 후퇴이행 34.9%→38.1%, 미이행 49.2%→41.3%)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중 열병식’ 국제사회 반응은?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전승절 열병식 행사를 두고 국제사회의 반응이 비판적이다. 미국을 포함한 친미·반중 성향의 국가들은 중국의 열병식 퍼레이드를 보고 ‘시대착오적’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이 지난 3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전쟁 승전 70주년’(전승절)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열병식을 개최한 데 대해 서방국가들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피터 쿡 미 국무부 대변인은 행사에 대해 “미군은 세계 최강의 군대이며 사람들은 이를 의심하지 않는다”며 “사람들은 미국의 힘, 우리 군대의 힘을 알고 있으며 우리가 퍼레이드를 통해 우리의 능력이 어떻다는 것을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고 논평했다. 프랑스의 일간지 <르몽드>는 “중국 전승절 열병식이 제2차 세계대전(독일·이탈리아·일본) 주축국에 대항해 싸운 국가에서도 만장일치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스가 히데요시 일 관방장관은 “화해의 요소는 없다”고 못 박았다.

박 대통령의 참석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반응이 있어 관심을 모은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관에 대해 “북한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중국을 찾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그러나 중국과 지나치게 가까워져 오바마 정권이 이를 우려하기도 한다. 10월 방미 때 충분히 해명해야 할 것이다”고 내다봤다. 미국의 <포브스>는 “‘반일’이라는 공감대로 참관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대가를 치렀다. 오히려 북한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평가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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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