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결산> ‘실적-연봉 반비례’ 논란의 대기업 CEO 공개

성과 없는 사장님 월급은 꼬박꼬박 ‘억’

[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상반기에 높은 연봉을 챙겨간 CEO들이 있어 관심을 끈다. 급여, 상여금, 퇴직금 그리고 설, 추석 귀향비 등 ‘억’ 소리 나는 연봉을 받은 CEO들을 공개한다.

 
기업 임원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선망의 직위다. 임원이 되면 회사가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무엇보다도 ‘억’ 소리 나는 연봉이 단연 최대 혜택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8일 재계 정보 전문 사이트 <재벌닷컴>에 따르면 2015년 상반기 보고서를 제출한 2304개 사(비상장사 594개 사 포함)를 대상으로 보수총액을 분석한 결과, 5억원 이상 보수(퇴직금)를 받은 임원은 총 227명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192명)과 비교하면 35명이 늘어난 수치다.

‘억’ 소리 나는
두둑한 연봉킹
 
올해 상반기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은 사람은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이다. 유 회장은 총 154억2200만원을 받아 전체 1위에 올랐다.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데 따른 퇴직금 86억9400만원을 포함한 금액이다. 유 회장이 받은 금액의 대부분은 퇴직금이다. 수백억의 퇴직금을 챙기면서 경영권을 놓지 않는 행태는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2위에 오른 곽동신 한미반도체 부회장은 퇴직금 83억6400만원을 포함해 총 104억9500만원을 받았다. 3위 박장석 전 SKC 부회장은 퇴직금을 포함해 48억6500만원을 받았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로부터 각각 24억과 18억을 받아 42억원을 받아 4위에 올랐다. 장세주 전 동국제강그룹 회장은 퇴직금을 포함해 40억7700만원을 받았다. 급여 12억3600만원, 올 초 동국제강에 합병된 유니온스틸의 퇴직금 21억1000만원, 기타근로소득 3억3100만원 등이 더해진 금액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대한항공에서 16억5126만원, 한진칼 15억2665만원, (주)한진 7억1055만원 등을 받아 총 38억8846만원의 보수를 받아 6위에 올랐다.
 

‘조선 빅3’ 대우조선·현대중·삼성중 적자
높은 연봉에 성과급까지 챙긴 철면피 임원
 
서경석 전 GS그룹 부회장은 퇴직금을 포함해 37억6200만원을 받아 7위에 올랐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상여금 15억5000만원을 포함해 총 34억3000만원을 받아 8위에 올랐다. 손석원 전 한화토탈 사장은 퇴직금을 포함해 30억2600만원을 받았다.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급여 10억4200만원, 상여금 18억8600만원, 기타 근로소득 2200만원 등 총 29억5000만원을 받아 10위에 올랐다. 국내 전문경영인 중에서는 가장 많은 금액을 급여로 받았다. 구자영 SK이노베이션 전 부회장은 급여 2억500만원, 기타근로소득 4억6800만원, 퇴직금 21억2600만원 등 총 27억9900만원을 받아 11위에 올랐다.
 
 
경영권 분쟁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2억5000만원을,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18억원을,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은 퇴직금 13억6300만원을 포함해 14억8800만원을 받았다. 김창근 SK이노베이션 의장은 16억8500만원을 받았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현대상선 6억4000만원, 현대엘리베이터 10억3100만원 등을 각각 지급받아 총16억7100만원의 금액을 수령했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15억원을 받았다. 박진수 LG화학 대표이사는 11억1100만원을 받았다. 권영수 전 사내이사는 9억300만원을 받았다. 이유일 쌍용자동차 부회장은 7억9400만원을 받았다. 조석래 효성 회장은 올 상반기 13억92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금호석유화학은 박찬구 회장에게 올 상반기 13억9100만원 급여를 지급했다. 황창규 KT회장은 9억39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수조 적자 내도

“챙길 건 챙긴다”
 
은행권에서는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가 급여 3억6000만원과 지난해 연간 성과평가에 따른 단기성과급 3억5000만원, 2012~2014년까지의 평가에 따른 장기성과급 1억6200만원 등 총 8억7200만원의 급여를 받아 연봉킹에 올랐다. 증권사에서는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대표가 급여 4억원, 성과급 8억원을 받아 연봉킹에 올랐다. 유통업계에서는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이 14억1200만원을 받았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11억2300만원을 받았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7억5000만원을, 최양하 한샘 회장은 12억291만원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상반기에 13억6000만원의 연봉을 받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김 대표 연봉은 지난해 상반기(11억4000만원)에 비해 약 2억2000만원 증가했다. 정진 셀트리온 대표는 5억8000만원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5억원 미만이라 공시의무에서 제외됐지만 올해 5억원을 뛰어넘어 공시됐다. 김상현 네이버 대표이사는 16억3800만원을 받았다. 이해진 의장은 5억7600만원, 황인준 최고재무책임자(CFO)는 10억3000만원을 수령했다.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은 16억원을 받았다.
 
올해 대기업 주요총수를 비롯한 경영진들의 연봉공개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은 등기이사로 등재되지 않아 공개 대상에서 빠졌다.
 
특히 실적악화에도 불구하고 높은 연봉을 챙겨간 CEO들이 있어 관심을 끈다. 조선업계가 대표적이다. 대우조선해양은 2분기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재호 전 사장에게 퇴직금을 포함해 21억원 이상을 지급했다. 고 전 사장 임기 당시 회사가 막대한 손실을 입은 것을 고려하면 과도한 보수 책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7일 대우조선해양이 발표한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임기를 마치고 지난 3월 사장직에서 물러난 고재호 전 사장은 3개월 치 급여와 퇴직금 등으로 21억5400만원을 받았다. 급여 2억1100만원, 상여금 1억3300만원, 기타 3억500만원, 퇴직금 15억500만원이 더해진 금액이다.
 
대우조선해양은 보고서에서 고 전 사장의 상여금 지급과 관련해 “어려운 경영여건에도 안정적인 경영관리와 장기발전기반을 마련하였고 경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위험관리 및 경영관리협력이 원활하였다는 점을 고려해 성과급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당위성이다. 조선업계의 전반적인 실적 악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대우조선해양이 2분기에만 3조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업계에 충격을 줬다. 고 전 사장은 전임 남상태 사장이 ‘연임 로비’ 등 구설수 속에 물러난 상황에서 내부 출신 사장으로 주목을 받으며 지난 2012년 취임한 이래 올 상반기까지 3년의 임기를 채웠다.
 
고 전 사장 임기 중 대우조선해양의 실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2012년 14조578억원, 2013년 15조3052억, 지난해 16조7862억원까지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 같은 대우조선해양의 실적은 동종업계 경쟁자인 현대중공업과 비교됐다.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과 달리 수조원대 적자로 신음했기 때문이다.
 
회사 어려운데 경영진은 ‘돈잔치’
부진하자 스스로 연봉 깎은 임원도
 
하지만 고 전 사장이 회사를 떠나고 사정이 달라졌다. 정성립 신입 사장은 취임 후 경영 전반에 대한 실사를 통해 그동안 누락된 손실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 손실은 고스란히 2분기 경영 지표에 반영돼 무려 3조원에 이르는 적자가 기록됐다. 고 전 사장 임기 때 무리한 선박 및 해양플랜드 수주에 따른 결과였다.
 
이후 고 전 사장이 대규모 손실을 알고도 모른 척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우조선해양은 고 전 사장에게 21억5400만원을 지급했다. 고 전 사장이 이처럼 두둑한 급료를 챙길 수 있었던 것은 임기 동안 발생한 손실이 반영되지 않은 경영지표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 등기 이사와 감사 등 8명은 지난해 평균 2억14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현대중공업도 실적과 무관하게 연봉잔치를 벌였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인 3조원의 적자를 내며 실적 부진에 빠진 바 있다. 이재성 전 회장과 김외현 전 사장이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재성 전 회장은 급여 4억4100만원, 상여금 2억5800만원, 퇴직금 24억3500만원 등 총31억3400만원을 받았다. 여기에 설, 추석 귀향비로도 월급의 50%를 지급받았다.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은 지난해 급여 7억600만원, 상여금 3억3400만원 등 총 10억4700만원을 받았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등 조선업계 빅3의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은 7375만원이었다.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평균 7527만원으로 연봉이 가장 높았고 대우조선이 7400만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삼성중공업이 7200만원을 받았다. 이들 연봉은 국내 주요 대기업 중 10위권에 드는 액수로 높은 수준의 급료다. 3사의 평균 연봉에는 계약직 등의 급여도 포함돼 계산된 것이어서 실제로 정규직 직원들이 받는 돈은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현대중공업은 올해 2분기 선박 2000억 달성을 기념해 직원 1인당 100만원의 격려금과 퇴직위로금 등 총 967억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3조원대의 부실을 털어낸 후 인력 구조조정 및 조직개편을 거쳤다. 임원수의 31%를 감축한 데 이어 올 초에는 과장급 이상 사무직원 1500여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해 130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그 결과 2분기 기준 손실이 1710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상여·퇴직금에
특별보너스까지
 
대우조선해양 정성립 사장도 담화문을 통해 “고용불안을 최대한 억제하면서도 업무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력 재배치, 순환보직 등 구조조정도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삼성중공업 또한 임원감축과 비효율 자산 매각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할 방침이다. 다만 두 회사 모두 임원을 제외한 직원 감원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사장들은 십수억원 급료 돈잔치를 벌이고 일반 사원들은 구조조정 한파에 벌벌 떨게 생겼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10개 업종별 단체와 공동으로 ‘2015년 산업기상도’(맑음-구름조금-흐림-비 순)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조선·업종은 불황을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흐림’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조선업은 해운 업황 불황에 따른 발주물량 축소에 이어 저유가로 인한 해양플랜트 사업 실적 부진 등으로 최악의 실적을 거뒀다.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과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중국의 도전에 조선산업 세계 1위를 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실적과 반비례하는 일부 CEO들의 상반기 연봉을 두고 비난 여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지난해 주요그룹의 등기임원 가운데 가장 높은 보수를 챙겨 화제가 됐던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신 사장은 올 상반기 16억4000만원을 보수로 수령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13억4500만원의 7분의1수준이다.
 
17일 삼성전자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신 사장은 급여 8억6400만원, 상여 7억6800만원을 받았다. 삼성전자의 가전부문을 맡은 윤부근 CE(소비자가전)부문 사장은 상반기 급여 8억6400만원, 상여 7억6800만원, 기타 근로소득 1800만원 등 총 16억50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윤 사장도 작년 같은 기간(22억5600만원)보다 연봉이 26.9% 줄었다. SK이노베이션의 김창근 수펙스추구위원회 의장은 올해 상반기 16억8500만원을 받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억원이 줄었다.

허리띠 졸라매는
직원들은 한숨만
 
최희문 메리츠종금증권 대표의 연봉도 전년대비 삭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메리츠종금증권은 반기보고서를 통해 최 대표에게 올해 상반기 급여 2억5000만원, 상여금 6억4244만원, 기타1491만원 등 총 9억735만원의 보수를 지급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최 대표가 받은 상반기 연봉 11억224만원보다 17.6% 감소한 수치다. 메리츠종금증권은 올해 2분기 1407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해 지난해 2분기 450억원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다소 이례적인 삭감이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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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