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사고’ 벤틀리·페라리 부부 정체

팽팽 노는 백수가 수억 슈퍼카를?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인적드문 새벽 4시 강남 한복판에서 흰색 벤틀리가 붉은색 페라리를 들이박았다. 사고로 페라리 차량은 뒷범퍼가 완전히 부서졌고 벤틀리도 앞범퍼가 떨어져 나갔다. 두 차량의 운전자는 부부였다. 일종의 부부싸움이었던 것. 그런데 두 차량의 명의자는 따로 있었다. 자신의 차량도 아닌데 어떻게 이 같은 간 큰 행동을 벌일 수 있었던 걸까. 미심쩍은 부분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경찰에 이어 세무당국까지 팔을 걷어붙였다.
 
 
서울 강남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외제차 벤틀리와 페라리로 추돌사고를 낸 부부가 세무당국의 조사를 받을 전망이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세무당국이 박모(37)씨와 이모(28·여)씨 부부의 탈세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관련 조사 자료를 건네달라고 협조요청을 해왔다고 지난 18일 밝혔다.

지인 명의로 등록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6월13일 오전 4시께 서울 강남구 지하철 2호선 역삼역 사거리에서 술을 마시고 수억원이 넘는 벤틀리를 몰고 나가 신호 대기 중이던 남편 박씨의 페라리를 뒤에서 들이박은 혐의로 입건됐다. 경찰 조사결과 이씨는 남편 박씨의 외도를 의심해 박씨가 자주 다니던 유흥주점을 찾다가 근처에서 남편의 페라리를 발견하고 우발적으로 사고를 낸 것으로 드러났다.
 
남편 박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이 중고차 매매업자라고 진술했지만 이후 “특별한 직업이 없다”고 말을 뒤집은 것으로 알려졌다. 벤틀리와 페라리의 실소유주인 박씨는 강남구 청담동의 고급빌라에서 월세 700만원을 내며 살고 있지만, 벤틀리와 페라리의 명의자는 지인인 중고차 매매업자 장씨로 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세무당국은 직업이 없다는 두 사람이 고가의 외제차를 타고 다녔고, 차량 소유관계에 대한 진술을 번복한 점 등으로 미뤄 타인 명의를 이용해 탈세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사실이라면 재산세를 적게 내거나, 사업에 실패했을 경우 압류 등을 피하려고 자동차를 타인명의로 등록했을 수 있다.

한 세무당국 관계자는 “남자는 인터넷도박사이트를 운영하고 여자는 룸쌀롱과 관계가 있다는 말이 돈다”고 귀띔했다. 경찰은 세무당국의 조사 결과에 따라 부부의 탈세 관련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당초 중고차 업자서 최종 무직으로 확인
월세 700만원 거주 파악…탈세여부 조사
 
이들 부부가 타고 있던 외제차의 가격은 ‘억’ 소리가 난다. 우선 박씨가 타고 있던 페라리 ‘F12 베틀리네타’는 최하 가격이 5억원대다. 웬만한 서울 아파트 가격과 맞먹는다. 아내 이씨가 타고 있던 벤틀리 ‘컨티넨탈 GT’는 6000cc의 트윈터보차지 엔진을 장착하고, 정시상태에서 시속 100km에 이르기까지 단 4.5초에 주파할 정도로 막강한 가속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가격은 4억원에 달한다. 차량의 옵션까지 더해지면 차 값은 더 높아진다. 수리비도 일반 차량과 다르다. 당시 사고로 페라리는 뒷범퍼가 완전히 부서졌고 차량 뒤쪽에 위치한 엔진도 온전치 못했다.

슈퍼카 전문 수리 사설업체에 따르면 페라리 범퍼 하나를 교체할 경우 차대번호를 조회한 뒤 연식과 옵션을 꼼꼼히 따져 주문에 들어간다. 이 과정을 거쳐 현지 딜러를 통해 직접 수입해오는 페라리 범퍼로 교체된다. 여기에 범퍼레일과 충격완화장치, 브라켓도 함께 갈게 되면 공임비와 부가 비용이 들어 범퍼 교체비용이 증가한다. 엔진까지 손상됐을 경우에는 가격이 더 올라간다. 실제로 사고당일 보험사에 사고접수된 벤틀리의 수리비 견적은 1억2000만원이었다. 일주일 뒤 접수된 페라리 수리비도 3억원에 달했다.
 
 
지난 6월13일 인적이 드문 새벽 4시 서울 강남구 역삼역 사거리에서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페라리를 뒤에서 벤틀리가 작정하고 달려든 듯 속도를 내며 들이박았다. 페라리 뒤편은 엉망이 됐고 그 앞에 있던 택시까지 파손을 일으켰다. 들이박은 벤틀리 앞범퍼는 너덜너덜해졌다.
 
사고를 낸 이씨는 뒷목을 잡고 앞차에서 내린 남편 박씨를 향해 화를 내며 경찰에 신고하라고 언성을 높였다. 이씨는 혈중알코올농도 0.115%인 상태로 면허 취소수치의 만취상태였다. 이 와중에 같이 피해를 입은 택시기사는 벤틀리 운전자 이씨에게 “일부러 교통사고를 내면 살인미수에 해당한다”고 협박해 사고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사고 당일 2200만원을 뜯어냈다. 차량수리비 명목으로 500만원을 더 받아 챙기기도 했다. 음주 후 고의로 사고를 내면 형사처벌이 뒤따르고 보험혜택도 받기 어렵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택시는 뒷범퍼가 약간 손상됐고 기사는 입원을 하지 않았다.
 

경찰은 부상 부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부부가 택시기사에게 2000만원 이상을 건넨 사실에 주목했다. “일행이 따라오다가 운전미숙으로 추돌했다”는 보험사의 사고조사 내용이 있긴 했지만 부부가 나란히 차량 교통사고의 양 당사자(가해자·피해자)가 된 것이 미심쩍었다. 페라리 차량의 뒷범퍼가 원형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다는 점에서 고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범죄와 연루?
 
이후 벤틀리·페라리 부부가 사건 당일 바로 합의를 진행한 점, 사고 전까지 부부 간 통화 내역이 없었던 점 등으로 부부와 기사의 자작극이 드러났다. 택시기사는 공갈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고 가해차량 운전자 이씨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입건됐다. 사고차량들의 수리비는 이씨가 책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보험사 측은 3억원의 페라리 수리비용은 박씨의 책임이 없어 보험사가 내주지만, 들이박은 이씨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처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기막힌 보험사기단
 
타인 명의로 보험계약을 체결한 뒤 보험사기로 수억원을 가로챈 60대 여성 보험설계사 및 명의 제공자 등 15명이 경찰에 검거됐다. 경기 안양 만안경찰서는 지난 19일 사기 등 혐의로 보험설계사 송모(67·여)씨등 3명을 구속하고 아들 손모(41)씨와 일용직 근로자 이모(48)씨 등 1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송씨 등은 2009년부터 올해 4월까지 180여 차례에 걸쳐 허위 안전사고, 대리입원, 허위 분실신고 등 명목으로 보험사로부터 4억8900여만원의 보험금을 타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일용직 근로자 이씨 등 12명을 각종 상해보험에 가입시킨 뒤 보험료를 일부 대납해주며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송씨는 지난해 3월 남편이 운영하는 인력사무소의 일용직 근로자 이씨가 손가락 골절상을 당하자 이씨를 아들 손씨 등 3명 이름으로 병원 3곳에 대리입원시켜 보험금 2500만원을 타냈다. 병원에서 환자의 신분을 정확히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일용직 근로자들은 송씨의 범행을 돕는 대가로 보험사기 건당 20만∼50만원을 받아 챙겼다.
 
송씨 등은 또 2009년 8월에는 아들 손씨 부부가 금반지 등 귀금속을 분실했다며 경찰에 허위 신고하도록 한 뒤 귀중품 분실 관련 보험으로 530만원을 받는 등 2건의 허위 분실신고로 1000여만원을 챙겼다. 특히 현직 보험설계사인 송씨와 아들 부부 등 3명은 일용직 근로자 3명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도용해 1인당 3∼6개의 보험상품에 가입시켜 보험사로부터 고객모집 수당을 챙기기도 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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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