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사고’ 벤틀리·페라리 부부 정체

팽팽 노는 백수가 수억 슈퍼카를?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인적드문 새벽 4시 강남 한복판에서 흰색 벤틀리가 붉은색 페라리를 들이박았다. 사고로 페라리 차량은 뒷범퍼가 완전히 부서졌고 벤틀리도 앞범퍼가 떨어져 나갔다. 두 차량의 운전자는 부부였다. 일종의 부부싸움이었던 것. 그런데 두 차량의 명의자는 따로 있었다. 자신의 차량도 아닌데 어떻게 이 같은 간 큰 행동을 벌일 수 있었던 걸까. 미심쩍은 부분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경찰에 이어 세무당국까지 팔을 걷어붙였다.
 
 
서울 강남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외제차 벤틀리와 페라리로 추돌사고를 낸 부부가 세무당국의 조사를 받을 전망이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세무당국이 박모(37)씨와 이모(28·여)씨 부부의 탈세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관련 조사 자료를 건네달라고 협조요청을 해왔다고 지난 18일 밝혔다.

지인 명의로 등록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6월13일 오전 4시께 서울 강남구 지하철 2호선 역삼역 사거리에서 술을 마시고 수억원이 넘는 벤틀리를 몰고 나가 신호 대기 중이던 남편 박씨의 페라리를 뒤에서 들이박은 혐의로 입건됐다. 경찰 조사결과 이씨는 남편 박씨의 외도를 의심해 박씨가 자주 다니던 유흥주점을 찾다가 근처에서 남편의 페라리를 발견하고 우발적으로 사고를 낸 것으로 드러났다.
 
남편 박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이 중고차 매매업자라고 진술했지만 이후 “특별한 직업이 없다”고 말을 뒤집은 것으로 알려졌다. 벤틀리와 페라리의 실소유주인 박씨는 강남구 청담동의 고급빌라에서 월세 700만원을 내며 살고 있지만, 벤틀리와 페라리의 명의자는 지인인 중고차 매매업자 장씨로 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세무당국은 직업이 없다는 두 사람이 고가의 외제차를 타고 다녔고, 차량 소유관계에 대한 진술을 번복한 점 등으로 미뤄 타인 명의를 이용해 탈세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사실이라면 재산세를 적게 내거나, 사업에 실패했을 경우 압류 등을 피하려고 자동차를 타인명의로 등록했을 수 있다.

한 세무당국 관계자는 “남자는 인터넷도박사이트를 운영하고 여자는 룸쌀롱과 관계가 있다는 말이 돈다”고 귀띔했다. 경찰은 세무당국의 조사 결과에 따라 부부의 탈세 관련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당초 중고차 업자서 최종 무직으로 확인
월세 700만원 거주 파악…탈세여부 조사
 
이들 부부가 타고 있던 외제차의 가격은 ‘억’ 소리가 난다. 우선 박씨가 타고 있던 페라리 ‘F12 베틀리네타’는 최하 가격이 5억원대다. 웬만한 서울 아파트 가격과 맞먹는다. 아내 이씨가 타고 있던 벤틀리 ‘컨티넨탈 GT’는 6000cc의 트윈터보차지 엔진을 장착하고, 정시상태에서 시속 100km에 이르기까지 단 4.5초에 주파할 정도로 막강한 가속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가격은 4억원에 달한다. 차량의 옵션까지 더해지면 차 값은 더 높아진다. 수리비도 일반 차량과 다르다. 당시 사고로 페라리는 뒷범퍼가 완전히 부서졌고 차량 뒤쪽에 위치한 엔진도 온전치 못했다.

슈퍼카 전문 수리 사설업체에 따르면 페라리 범퍼 하나를 교체할 경우 차대번호를 조회한 뒤 연식과 옵션을 꼼꼼히 따져 주문에 들어간다. 이 과정을 거쳐 현지 딜러를 통해 직접 수입해오는 페라리 범퍼로 교체된다. 여기에 범퍼레일과 충격완화장치, 브라켓도 함께 갈게 되면 공임비와 부가 비용이 들어 범퍼 교체비용이 증가한다. 엔진까지 손상됐을 경우에는 가격이 더 올라간다. 실제로 사고당일 보험사에 사고접수된 벤틀리의 수리비 견적은 1억2000만원이었다. 일주일 뒤 접수된 페라리 수리비도 3억원에 달했다.
 
 
지난 6월13일 인적이 드문 새벽 4시 서울 강남구 역삼역 사거리에서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페라리를 뒤에서 벤틀리가 작정하고 달려든 듯 속도를 내며 들이박았다. 페라리 뒤편은 엉망이 됐고 그 앞에 있던 택시까지 파손을 일으켰다. 들이박은 벤틀리 앞범퍼는 너덜너덜해졌다.
 
사고를 낸 이씨는 뒷목을 잡고 앞차에서 내린 남편 박씨를 향해 화를 내며 경찰에 신고하라고 언성을 높였다. 이씨는 혈중알코올농도 0.115%인 상태로 면허 취소수치의 만취상태였다. 이 와중에 같이 피해를 입은 택시기사는 벤틀리 운전자 이씨에게 “일부러 교통사고를 내면 살인미수에 해당한다”고 협박해 사고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사고 당일 2200만원을 뜯어냈다. 차량수리비 명목으로 500만원을 더 받아 챙기기도 했다. 음주 후 고의로 사고를 내면 형사처벌이 뒤따르고 보험혜택도 받기 어렵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택시는 뒷범퍼가 약간 손상됐고 기사는 입원을 하지 않았다.
 

경찰은 부상 부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부부가 택시기사에게 2000만원 이상을 건넨 사실에 주목했다. “일행이 따라오다가 운전미숙으로 추돌했다”는 보험사의 사고조사 내용이 있긴 했지만 부부가 나란히 차량 교통사고의 양 당사자(가해자·피해자)가 된 것이 미심쩍었다. 페라리 차량의 뒷범퍼가 원형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다는 점에서 고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범죄와 연루?
 
이후 벤틀리·페라리 부부가 사건 당일 바로 합의를 진행한 점, 사고 전까지 부부 간 통화 내역이 없었던 점 등으로 부부와 기사의 자작극이 드러났다. 택시기사는 공갈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고 가해차량 운전자 이씨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입건됐다. 사고차량들의 수리비는 이씨가 책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보험사 측은 3억원의 페라리 수리비용은 박씨의 책임이 없어 보험사가 내주지만, 들이박은 이씨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처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기막힌 보험사기단
 
타인 명의로 보험계약을 체결한 뒤 보험사기로 수억원을 가로챈 60대 여성 보험설계사 및 명의 제공자 등 15명이 경찰에 검거됐다. 경기 안양 만안경찰서는 지난 19일 사기 등 혐의로 보험설계사 송모(67·여)씨등 3명을 구속하고 아들 손모(41)씨와 일용직 근로자 이모(48)씨 등 1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송씨 등은 2009년부터 올해 4월까지 180여 차례에 걸쳐 허위 안전사고, 대리입원, 허위 분실신고 등 명목으로 보험사로부터 4억8900여만원의 보험금을 타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일용직 근로자 이씨 등 12명을 각종 상해보험에 가입시킨 뒤 보험료를 일부 대납해주며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송씨는 지난해 3월 남편이 운영하는 인력사무소의 일용직 근로자 이씨가 손가락 골절상을 당하자 이씨를 아들 손씨 등 3명 이름으로 병원 3곳에 대리입원시켜 보험금 2500만원을 타냈다. 병원에서 환자의 신분을 정확히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일용직 근로자들은 송씨의 범행을 돕는 대가로 보험사기 건당 20만∼50만원을 받아 챙겼다.
 
송씨 등은 또 2009년 8월에는 아들 손씨 부부가 금반지 등 귀금속을 분실했다며 경찰에 허위 신고하도록 한 뒤 귀중품 분실 관련 보험으로 530만원을 받는 등 2건의 허위 분실신고로 1000여만원을 챙겼다. 특히 현직 보험설계사인 송씨와 아들 부부 등 3명은 일용직 근로자 3명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도용해 1인당 3∼6개의 보험상품에 가입시켜 보험사로부터 고객모집 수당을 챙기기도 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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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