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특집> ‘뿌리박힌’ 일제 잔재들 ② ‘일본보다 더한’ 한국의 일본문화

청산 못한 암흑의 역사서 ‘허우적’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1995년 8월15일, 광복 50주년이던 이날에는 과거 ‘중앙청’으로 불리던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가 이루어졌다. 매우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러 광복 70주년을 맞은 이 시점, 과연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우리 사회 곳곳에 일제 잔재가 녹아 있고 친일 청산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는 말을 되새겨야 할 때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순국한 호국 영령들이 안장돼 있는 국립현충원에는 친일 혐의자 80여명이 안정돼 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부끄러운 친일의 잔재는 땅 속에만 묻혀 있지 않고 수십년간 우리 생활 곳곳에 뿌리박혀 일제 잔재라고 인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는 외상과 함께 깊은 내상을 남겼다.

씻기지 않는 상처
무감각해진 정서
 
언어는 문화의 특성을 반영한 상징체계다. 일제가 심어놓은 잔재 중 언어를 논하지 않고서는 문화를 논할 수 없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국민’이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국민이라는 말은 일제강점기에 천황이 다스리는 나라의 신하 된 백성이라는 의미를 지닌 ‘황국신민’의 준말이다. 1996년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이라는 말은 여전히 우리의 입과 신문·방송을 통해 오르내리고 있다.
 
지명과 행정용어도 마찬가지다. 종묘와 창경궁이 맞닿아 있는 서울 종로구 원남동은 1911년 일본이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격하하고 창경원으로 바꿔버리면서 ‘창경원의 남쪽’이라는 뜻에서 ‘원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원남동의 원래 명칭은 순라동이다. 2003년 서울시를 중심으로 순라동이라는 원래 지명을 되찾으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익숙한 지명을 유지하려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컸다. 이외에도 종로 일대에는 인사동, 옥인동, 관수동 등 일제가 ‘창지개명’했던 지명이 상당수 남아 있다. 또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은 모래밭을 뜻하던 ‘사평리’였지만 1914년 ‘새로운 모래’ 신사라는 뜻의 신사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식민통치로 새 시대가 열렸다’는 뜻을 담았다는 말도 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서울시 지명의 3분의1, 서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종로구의 경우 3분의2가 일본식 지명이라고 추산한다. 최근 뜨고 있는 인천 송도도 일제의 잔재다. 광복 이후 송도정을 인천시지명위원회가 옥련동으로 고쳤음에도 불구하고 송도국제도시의 행정동은 여전히 ‘송도동’으로 불리고 있다. 송도는 일본 내 수많은 섬의 흔한 이름이자 일본의 3대 명승지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송도는 마쓰시마라는 일본식 한자표기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져 있다.
 
생활 깊숙이 파고든 습관…알고보니 일제 것
학교·군대·직장 등 전반에 깃든 일본정신
 
일본식 표현은 학제와 행정용어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유치원은 독일어 ‘킨더가르텐’을 일본학자가 번역한 말로 일제강점기에 유입된 용어다. 유치라는 단어에는 나이가 어리다는 의미와 함께 ‘수준이 낮거나 미숙하다’는 뜻도 담겨있다.
 
지난 수년 간 유아교육계와 당국은 유치원을 유아학교로 변경하는 안을 꾸준히 내놓았다. 국회에 관련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상태다. 수학여행도 일제의 잔재다. 일본은 1910년부터 조선과 만주를 오가는 13박14일의 수학여행을 만들었다.
 
전문용어에서도 이런 경향이 드러난다.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제도와 학문 등이 많아서다. 수소, 탄소, 질소 같은 원소명이나 회장, 사장, 과장, 계장 같은 직제 용어와 공소, 항소, 형사 등 법률용어, 대외적으로는 주무관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 7·8급 공무원의 명칭은 일본식 계급 명칭인 ‘주사보’ ‘서기’이다. 일제 잔재지만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군대에서 쓰이는 용어 대부분은 일본식 한자나 일본말이다.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말 대신 ‘작일, 금일, 명일’이라는 표현을 쓴다거나 ‘총기수입’ ‘시건장치’ 등을 마치 우리말인 듯 사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아쎄이(신병)’ ‘나라시(땅 평탄화 작업)’ ‘시마이(마무리)’ ‘단도리(일을 해 나가는 순서나 절차)’ ‘주계병(취사병)’ ‘말갈이(진급 전 미리 상위계급장을 다는 것)’ ‘오함마(큰망치)’ ‘엑스반도(액스밴드)’ ‘모도시(핸들 제자리)’ ‘호루(차 덮개)’ ‘단까(들것)’ ‘빠루(쇠막대기)’ ‘반합(도시락)’ ‘요대(허리띠)’ ‘모포(담요)’ ‘도수체조(맨손체조)’ ‘고참(선임병)’ ‘관물대(개인물품대)’ ‘불침번(잠을 자지 않고 병력 점검)’ ‘기리까시(사병에서 부사관으로 신분 변환)’ ‘오장(군기 담당)’ 등이 있다. 이런 단어들은 국어사전이나 한자사전에 올라와 있지 않은 말이지만 군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언어부터 문화까지
지워지지 않은 흔적
 
우리 생활 전반에는 일본말로 가득 차 있다. 당구용어 중에서 일본말이 아닌 것은 ‘맛세이(불어)’ ‘쿠션(영어)’뿐일 정도다. 당구는 일본 고유의 스포츠는 아니지만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이유로 온통 일본말로 덮혀있다. ‘다이(탁자)’ ‘다마(공)’ ‘오시(밀기)·싯기(당기기)’ ‘시네루(비틀다)’ ‘힛가끼(걸치기)’ ‘가라(빈)’ ‘오마우시(크게 돌리기)’ ‘우라마우시(안으로 돌리기)’ ‘하꼬마우시(구속 돌리기)’ ‘겐세이(견제)’ 등이 있다. 이 중 일부 용어는 당구장 외에서도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기술을 수반한 전문직종도 예외는 아니다. 토목, 수공업 등에서도 대부분 일본말을 쓴다. ‘시다(아래)’ ‘고데(인두)’ ‘노가다(막벌이)’ ‘와꾸(틀)’ ‘소데(소매)’ ‘도깡(토관)’ 등이다. 이들 용어는 당구용어와 마찬가지로 실생활에서 자주 쓰이고 있다.
 
 
한자어로 탈바꿈한 일본말도 적지 않다. 본디 일본말인데 빌린 말은 이렇다. ‘건물(다떼모노)’ ‘견습(미나라이)’ ‘대매출(오오우리다시)’ ‘대합실(마찌아이시쯔)’ ‘매상(우리아게)’ ‘민초(다미구사)’ ‘선불(사끼바라이)’ ‘수당(데아떼)’ ‘수하물(데니모쯔)’ ‘엽서(하가끼)’ ‘입장(다찌바)’ ‘조합(구미아이)’ ‘추월(오이꼬시)’ ‘취급(도리아쯔까이)’ ‘할인(와리비끼)’ ‘합승(아이노리)’ ‘견적(미쯔모리)’ ‘각서(오보에가끼)’ ‘대절(가시끼리)’ ‘매립(우메따떼)’ ‘매점(가이시메)’ ‘상회(하다)(우와마와루)’ ‘하회(하다)(시따마와루)’ ‘선착장(후나쯔끼바)’ ‘수속(데쯔즈끼)’ ‘시합(시아이)’ ‘인상(히끼아게)’ ‘조립(구미따떼)’ ‘주식(가부시끼)’ ‘충치(무시바)’ ‘할증(와리마시)’ ‘후불(아또바라이)’ 등이다.
 
일본식 발음 그대로 우리말로 들어온 서양 외래어들도 많다. ‘밧데리(밧떼리이)’ ‘타이루(타이루)’ ‘샤쓰(샤쯔)’ ‘도란스(도란스)’ ‘카텐(카아텐)’ ‘바께쓰(바께쯔)’ ‘세타(세에타아)’ 등이다. 일본식 준말이 그대로 들어온 것도 있다. ‘에어콘’ ‘데모’ ‘인플레’ ‘레지’ 등이다. 이외에도 ‘뎃기리(꼭)·앗사리(담백하게)’ ‘다대기(다따기)’ ‘소보루(소보로)’ ‘잉꼬(오시도리)’ 등의 일본식 표현이 흔히 쓰인다. 우리가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들 중 상당수가 일본말인 셈이다.
 
보통쓰는 일상어 죄다 일어
지명도 일본식 발음서 유래
 
지난 5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연구팀이 20대 대학생 700명을 대상으로 ‘언어문화 개선을 위한 일본어 잔재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20대가 자주 쓰는 일본말로 ‘기스(흠)’ ‘간지(멋)’ ‘닭도리탕(닭볶음탕)’ ‘다데기(다진 양념)’ ‘뽀록(들통)’ ‘분빠이(분배)’ 등이 꼽혔다. 응답자의 66.7%는 일본어 잔재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접하는 매체로 인터넷을 꼽았다. 무분별한 일본말 사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같은 용어의 쓰임은 알게 모르게 우리 문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 문화는 대중의 감수성이나 취향, 행동양식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부분인데 일제 잔재가 이를 장악하고 있어 기가 찰 노릇이다.
 
기업 조직문화에도 일제 잔재가 스며들어 있다. 한 시중은행은 공채 신입사원 워크숍에서 군대식 고문인 ‘얼차려’ ‘기마자세’ 등을 3시간씩 시킨다고 알려져 논란이 된 바 있다. 모 건설회사는 신입사원 교육 시 목에 호루라기를 맨 선배가 교관으로 나서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게 하면서 앉았다 일어났다, 헤쳐모여 등을 시켜 지탄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신입사원이라는 약자에 대한 전근대적 폭력성은 군대문화에 기인한 일제강점기의 잔재라고 볼 수 있다.
 
패션도 논란거리다. 연예인 혹은 디자이너들이 간혹 ‘욱일승천기’ 무늬의 옷을 입어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모르고 입었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이유는 욱일승천기는 메이지유신 이후 구 일본군의 군기로 사용돼 오다가 현재는 일본 자위대를 상징하는 깃발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정확한 표현은 ‘전범기’가 맞다. 일본군은 태평양전쟁 당시 이 깃발을 사용했다. 최근에는 일본 우익단체들이 각종 집회 때마다 자주 사용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를 경험한 한국인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깃발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국내에서 이 깃발이 방송 무대장치나 의복 디자인으로 더러 사용되고 있다. 의도성이 있다기보다는 디자인 측면에서 활용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본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 형태의 디자인을 사용하는 것은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식민사관 논쟁 
언제쯤 종지부
 
식민사관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이 근대사회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정체돼 있었고 조선 조정이 치열한 당파 싸움에 빠져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이 식민사관의 골자다. 전문가들은 광복 이후 식민사관이 상당 부분 극복됐다고 입을 모으지만 일부에서는 아직도 식민사관에 대한 공방이 지속되고 있다.
 
진보, 보수와 맥이 닿아 있는 ‘내재적 발전론(일제의 식민지로 병탄되기 전에 이미 자주적 근대화가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는 주장)’과 ‘식민지 근대화론(일본의 식민 지배가 결과적으로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주장)’은 학계와 교육계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명확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상태다.
 
이러한 와중에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일제 잔채 청산 작업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경북에서는 생활 속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해 현충시설·관공서·학교·공공장소의 일본향나무(가이즈카) 교체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해 12월 ‘현충시설 등 일본향나무 교체에 관한 청원’이 경북도의회에서 가결됐다. 이어 지난 5월 6000만원을 추경예산에 반영한 뒤 지난 6월부터 일본향나무 교체 사업을 시작했다.
경남 밀양의 ‘천왕산’은 원래 명칭인 ‘재악산’으로 불릴 것으로 보인다. 재악산은 500년 이상 사용하다 일제강점기 민족문화정책에 따라 묻혀버렸다. 밀양시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이를 바로잡고자 지명복원을 위한 계획을 수립해 국토교통부 국가 지명위원회 최종 결정만 남겨두고 있다.
 
대구시교육청도 일본향나무 없애기에 동참했다. 대구 지역 초·중·고교 50여곳에 1000여그루, 경북지역 10여개 시·군 400여곳에 1만여그루의 일본향나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교육청은 전체 초·중·고·특수학교(441곳)에 일본향나무가 교목일 경우 이를 교체하라는 요청 공문을 보냈다. 또 학교 상징물이나 국기게양대 주변의 일본향나무를 우선 제거하고 무궁화를 심도록 했다.
 
대전시는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지적·임야도의 등록 원점 체계인 ‘동경측지계’를 2020년까지 전 세계가 표준으로 사용하는 ‘세계측지계’로 변환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일본의 동경 원점 기준인 동경측지계를 사용하고 있다. 동경측지계는 세계측지계보다 약 365m 북서쪽으로 편차가 발생한다. 
 
충북 청주향교에는 일제강점기 충북지사와 청주군수를 각각 지낸 친일파 김동훈과 이해용을 찬양하는 내용의 존성비를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다. 김동훈은 일제의 관립 일어학교를 나와 충북도지사, 조선총독부 학무국장까지 지낸 친일 관료다. 진천·음성 등의 군수를 역임한 이해용은 1919년 4월부터 5월까지 경기도 강화지역에서 발생한 3·1운동 관련자들을 심문하고 1940년 4월 중일전쟁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청주향교 측은 조만간 이들의 존성비를 철거할 예정이다.
 
청주 국유지에 있던 친일파 민영휘 증손자의 묘지는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됐다. 청주시는 산성동 야산에 조성된 친일파 민영휘의 증손자 묘지와 가묘 4기를 오는 11월31일까지 이장하라는 복구 명령을 내렸다. 최근 경기도 군포시에선 친일 작가 이무영 지우기가 진행됐다. 친일 잔재가 철거된 곳은 군포시 산본2동 능안공원이다. 이곳에서는 지난달 22일 ‘군포장 깍두기’ 등의 작품을 발표한 농민문학가 이무영의 작품비가 친일 작가라는 이유로 철거됐다.
 
울산시는 일제 잔재 청산 차원에서 1906년 해안을 밝히며 선박들의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던 울기를 울기등대로 바꿨다. 예전에 사용한 울기는 1906년 일본이 명칭을 붙인 것이다. 동해 쪽으로 뾰족하게 나온 부분을 ‘울산의 끝’으로 명명한 데서 비롯됐다.
 
강원도에서는 친일파인 이범익 전 강원도지사의 행적을 알리는 단죄문 설치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2013년 8월15일 춘천시 소양로 비석군에 이범익 단죄문이 설치됐다. 1929∼35년 강원도지사를 지낸 이범익은 조선총독부 정책을 앞장서서 옹호해 훈장과 포상을 받았다. 특히 1938년 9월에는 항일 무장세력과 민간인 172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수많은 사람을 체포·고문한 부대인 간도특설대 창설을 제안하는 등 악명을 떨쳤다. 

민족사 세우기
청산작업 시급
 
전북 전주시는 덕진공원 일대의 일제강점기 잔재를 전면 조사하고 있다. 덕진공원 안에는 1917년 친일파 박기순이 자신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덕진연못 주변에 건립한 취향정과 1934년 일본인 전주읍장(후지타니 사쿠지로)이 전북대 학생회관 옆에 세운 덕진공원지비 등이 있다. 전주시는 이 정자와 비석 존치 여부를 검토 중이다.
 
서울시 국세청 남대문별관 철거도 같은 맥락이다. 국세청 남대문별관은 덕수궁 기운을 해치기 위해 일제가 1937년 지은 건물이었다. 서울시는 이 자리에서 다음 달 17일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조성한 시민광장 개장식을 갖는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황당한 ‘일본 찬양’ 실태
태극기 태우고 “천황폐하 만세”
 
역사의식이 결여된 일부 젊은이들이 친일을 넘어 일본을 찬양하는 일이 공개돼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바 있다.
 
지난 2012년 한 중학생은 개천절날 태극기를 찢고 불태웠다. 친일 성향이 강한 포털 카페의 영향이었다. 심지어 애국가를 개사하기도 했다. ‘일본해와 장백산이 마르고 닳도록, 천황께서 보우하사 대동아국 만세. 사쿠라 삼만리, 다∼케시마, 은혜 입은 이등신민 깊이 충성하세.’ 장난이라기에는 도가 지나쳤다.
 
해당 카페에는 전범기가 가득했고 광복절은 대일본제국의 패전이나 다름없어 태극기를 게양해야할지 욱일승천기를 게양해야할지 고민이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불편한 현실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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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경기도에 판 깔린 ‘명심’ 선발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6·3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판을 달구고 있다. 여당 강세 지역인 만큼 민심은 물론 당심까지 한번에 훑어볼 절호의 기회다. 1차 예비경선도 ‘기승전 이재명’으로 막을 내렸다. ‘찐명’ 타이틀을 거머쥘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여당의 이목이 경기도에 쏠리는 이유다.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경기도지사 예비경선을 실시했다. ▲김동연 현 경기도지사 ▲추미애 의원 ▲한준호 의원 등으로 후보가 압축되면서 3강 체제가 굳어졌다. 권칠승·양기대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100% 권리당원 투표로 진행된 만큼 오직 당심으로만 결정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현역인 김동연 후보는 행정력을, 추미애 후보는 검찰개혁 선봉자와 6선의 중량감을, 한준호 후보는 친명(친 이재명)계 조직력을 바탕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평을 받는다. 당심 100% 첫 관문 본경선은 다음 달 5~7일 진행되며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2명이 15~17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본경선 투표는 권리당원 50%와 국민 여론조사 50%가 반영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 검찰개혁에 앞장선 추 후보는 강성 지지층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추 후보 역시 이를 동력 삼아 사법 3법(법 왜곡죄, 재판소원법, 대법관 증원법)과 중수청·공소청 설치 법안 강행 처리를 주도했다. 추 후보는 출마 선언을 통해 선명한 개혁과 강인한 리더십을 강조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난지원금과 청년기본소득을 적극 추진하며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수십 년간 지지부진했던 불법 계곡을 정비해 경기도가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던 것처럼 경기도에도 도민을 행정 중심에 놓는 사고의 전환과 강한 결단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 추미애는 개혁이 필요하면 정면으로 돌파했다. 원칙 앞에서 물러선 적이 없었고 어려운 이웃을 외면한 적이 없었다”며 “책임지는 행정, 실천하는 행정으로 경기도정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한 후보는 “경기도가 성공해야 이재명정부가 성공한다”며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 후보는 “이정부의 실용주의를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가장 분명하게 성과로 완성하겠다. 지금 경기도에 필요한 것은 망설임이 아니라 실행, 말이 아니라 결단, 계획이 아니라 책임지는 도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당시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추 후보는 정부를 이끌 리더십을 강조했다면 한 후보는 보조하는 조력자 역할에 방점을 찍었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명심을 내세웠지만 이를 활용하는 방법은 다른 셈”이라며 “민주 당원도 어떤 역할이 이정부 성공에 도움이 될지 저울질하면서 선거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역인 김 후보는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 대통령에게는 일잘러 도지사가 필요하다”며 행정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김 후보는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를 지내던 당시 추진하던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등의 정책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사례를 성과로 제시했다. 김 후보는 “지금 이 대통령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속도와 체감’이다. 좌충우돌, 시행착오로 낭비할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며 자신이 이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국정 제1동반자’임을 거듭 강조했다. ‘강경’ 추 ‘친명’ 한 ‘비명’ 김 앞다퉈 “내가 국정 파트너 적임자” 정치권은 세 사람의 성향이 모두 다른 점에 주목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강성 추미애’ ‘친명 한준호’ ‘비명(비 이재명)이었던 김동연’이 한자리에 모였다. 경기도지사 선거를 빙자한 ‘친명 선발 토너먼트’인 격”이라며 “최종 후보가 선정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민주당 권력이 어디를 향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국민의힘이 끼어들 틈이 없다 보니 민주당만의 리그가 됐다. 민주당 최종 후보는 경기도지사직뿐만이 아니라 ‘이재명의 복심’이라는 타이틀까지 얻는 효과를 본다. 민심과 당심의 향배를 모두 주목해야 한다”고 봤다. 세 사람 모두 네거티브 경쟁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예비경선 득표율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후보 측이 “(예비경선) 2위를 확신한다”고 주장하며 불을 지핀 것. 득표율은 후보 본인에게만 공개되지만 본선 진출을 위해 각자 유리한 여론 조성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예비경선이 치러진 다음 날인 23일, 민주당 염태영 의원은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한준호 후보 본경선 전략 브리핑’을 갖고 “당이 후보별 전체 순위와 득표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추정치라는 점을 전제로 한다”면서도 “한 후보가 상당히 약진했고,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2위를 했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중요한 것은 현재 수치보다 추세와 흐름”이라며 “경기도민과 권리당원들이 경기도의 미래를 이끌 새로운 지도자의 기준을 바꾸기 시작한 결과가 이번 예비경선에 반영됐다”고 해석했다. 이에 김 후보는 “순위 발표도 안 됐는데 각자 자기주장 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는 권리당원의 당심과 경기도민의 민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의 승리다. 김 후보는 당심이, 나머지 두 후보는 민심에 취약한 만큼 각각 절반이 부족하다는 평이다. 민심과 당심이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 만큼 후보들은 전략 수정에 나섰다. 그동안 추 후보는 각종 개혁에 앞장서는 등 강성 이미지를 굳혀왔다. 하지만 강성 이미지는 양날의 검이 돼 2024년 하반기 국회의장 선거 당시 낙선 원인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강성 당심은 추 후보를 밀었지만, 의원 투표 결과 온건파인 우원식 후보가 당선되면서 급제동이 걸린 것. 추 후보는 6선의 중진이지만 이번 경기도지사까지 패배하게 되면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역풍 불라” 완급 조절 이를 의식한 듯 최근 추 후보는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내려놓고 행정가로서의 면모와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다. 추 후보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입법·사법·행정을 골고루 경험한 유일 후보”라며 “입법을 통해 큰 틀 아이디어를 냈다면 이제는 현장에 뛰어들어 성과를 내보고 싶다”고 말했다. 검찰개혁 완수를 본인의 최대 성과로 내세운 추 후보가 법사위원장을 내려놓고 선거에 뛰어든 것 역시 중도를 설득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권리당원 100%로 치러진 예비경선과 달리 본경선은 일반 여론조사와 당원 조사가 각각 50%씩 반영된다. 결국 줄어든 강성 당원의 영향력 만큼 중도층을 최대한 끌어오는 것이 관건이다. 추 후보는 사퇴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7개월간 법사위원장으로서 총 682건의 개혁법안과 민생법안을 처리했다”며 “법 왜곡죄를 도입하는 ‘형법’,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헌법재판소법’, 대법관 증원안이 담긴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 사법개혁 3법과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법안까지 검찰개혁 과제를 완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언제나 제 중심에는 국민이 있었고, 어떠한 가시밭길도 외면하지 않았다”며 “2021년 검찰개혁을 완수하지 못한 채 법무부 장관 자리를 떠나야 했던 무거운 발걸음이 아니라 이처럼 뜻깊은 결과를 여러분께 보고드릴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힘이 되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대한민국의 중심 경기도를 승리로 이끌고 이정부와 함께 국민주권시대를 만들어 내겠다”고 덧붙였다. 한 후보는 오히려 ‘이재명 픽’을 앞세웠다. 이정부를 흔드는 세력을 향해 각을 세우면서 전투력을 강조하는 등 기존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최근 한 후보는 ‘이재명 공소 취소설’의 근원지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대통령의 생각을 자꾸 언급하는 것 자체가 당을 지휘하고 있는 당 대표로서 맞냐는 생각이 있다”며 김어준씨와 정청래 대표 등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했다. 여권 갈등의 뇌관이 된 유시민 작가의 ‘ABC론’을 놓고 설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유 작가는 민주당 지지층을 A(가치 중시), B(본인 이익 추구), C(A, B의 교집합) 등 세가지 그룹으로 분류했으며 특히 B그룹은 “이익과 생존을 위해 친명을 자처하는 이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 후보는 “갈라쳐서 얻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반응했고 유 작가가 재반박에 나섰다. 이후 한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작가님의 말씀, 무겁게 듣고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며 “저를 향한 비판과 비난은 기꺼이 감당하겠다. 하지만 이 대통령님과 정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금의 모습은 불안한 외줄타기 같다”며 “선은 분명하다. 그 선은 지켜달라”고 요구했다. 끊지 못한 명 꼬리표 한 후보는 “53% 싸움”을 내세우며 본경선 승리를 위한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 오는 6월 선출되는 경기도지사의 임기는 4년으로 이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맞물린다. 따라서 이정부와 합을 잘 맞추는, 명심을 잘 꿰뚫는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되어야 한다는 게 한 후보 측 지지층의 핵심 메시지다. 한 후보 역시 “‘이재명 지사였다면 벌써 해결했을 일들’을 한준호가 가장 스마트하고 빠르게 해결하겠다”며 “딱 세 표가 부족하다. 나의 한 표에 더해, 가장 가까운 두 분만 더 설득해 달라”고 밝혔다. 김 후보는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1위의 김 후보를 추 후보가 뒤쫓고, 한 후보가 마지막 뒤집기 기회를 엿보는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이 <중부일보> 의뢰로 경기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오는 6월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결과 김 후보는 25%, 추 후보는 22%, 한 후보는 11%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전화면접조사 방식(CATI)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5%p, 응답률은 12.7%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김 후보는 당심 100%라는 가장 어려운 관문을 뚫었지만 질긴 비명 꼬리표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의 최대 약점은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본인에게 도움을 줬던 민주당 핵심 지지층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다는 국민 인식이다. 유 작가는 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 “(당시 이재명) 대표한테 붙어 지사가 된 사람이지 않나. 배은망덕”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2024년 임기 후반기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비명 프레임이 굳어졌다. 당시 김 후보는 민주당 전해철 전 의원 등 대표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영입했고, 친명계에서는 “유력 대권후보 주자인 이재명 당 대표에 맞서기 위한 결집 시도” 등 견제가 이어졌다. 김 후보는 표를 분산시키는 친비명 프레임을 깨고 인물론에 승부를 걸었지만 민주당 여론이 심상치 않다. 일부 친민주당 성향 커뮤니티에서 “친명계와 개딸(개혁의 딸)이 벼르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자 김 후보는 자세를 낮추고 당원에게 호소하는 메시지를 냈다. 2% 부족한 후보들…해법은? 이제 와서 고개 숙인 김동연 김 후보는 예비경선이 시작된 지난 21일 자신의 SNS에 “‘나는 동지들의 헌신에 보답했는가’ 되묻는다. 많이 부족했다”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김 후보는 “경기도의 저력도, 제가 여기에 서 있는 것 자체도, 당원 동지들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갚을 길은 하나라고 믿는다. 이재명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저는 선택의 시간 앞에, 당원동지들 앞에 서 있다. 감히 청한다.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뛰어라, 당원의 마음을 명심하고 다시 한번 일하라.’ 저 김동연에게 그 기회를 주십시오. 당원 동지들의 뜻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호소했다. 김 후보는 친비명 논란에 거듭 선을 그었다. 그는 “이 대통령 중심으로 성공한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당의 친명(친 이재명)·비명은 의미가 없다”며 “경기도는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국정 제1파트너로서 충분히 뒷받침하면서, 필요하다면 앞에서 끌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한 후보와 마찬가지로 유 작가의 ABC론을 꼬집었다. 김 후보는 JTBC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가나다’론을 제시하며 “ABC 때문에 논쟁이 벌어진 거 같은데 저는 ‘가나다’로 얘기하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가’는 김대중 대통령을 좋아하는 민주당의 토대다. ‘나’는 그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하고 지지했던 분들, ‘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과 성과로 보여주는 리더십을 좋아하는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BC론이 조선시대 노론이나 소론도 아니고 가나다로 한데 뭉치고 더하는 민주당이 됐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민주당은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가 계파 분열의 초입이 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이에 민주당 원조 친명 핵심으로 꼽히는 김영진 의원은 김 후보를 향한 ‘반명 공세’에 “이 대통령과 어려움을 함께했던 소중한 민주당의 멤버”라며 직접 엄호에 나섰다. 또 김 의원은 2022년 대선 당시 김동연 대선후보(새로운 물결)와의 단일화 과정을 회상하며 “안철수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갔지만 김 후보는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어려운 선거를 함께 뛰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분열은 ‘독’ 친명 지원전 한 민주당 관계자는 김 지사의 화합 메시지와 호소력에 주목했다. 이 관계자는 “골수 친명은 김 후보에 대한 반감이 크다. 김 후보에게 친문 표가 약 30% 정도 있다고 본다”며 “김 지사가 막판에 승리하려면 이 30%를 유지하면서 당원에게 호소하는 전략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친명을 적으로 돌리면 답이 없다. 등 돌린 사람이 있는 곳에 가서 그 사람이 원하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