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특집> ‘뿌리박힌’ 일제 잔재들 ④일본에 민감한 기업들 'X파일'

부끄러운 ‘친일 완장’ 떼고 싶지만…

[일요시사 경제팀] 김성수 기자 = 해마다 돌아오는 광복절이 그다지 달갑지 않은 기업들이 있다. 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해서다. 시대가 바뀌면서 몰락한 기업이 태반. 그런가하면 아직 떵떵거리는 기업도 많다. 아직 청산되지 못한 친일의 역사가 재계에도 깊게 뿌리박힌 셈이다.

 
롯데일가 ‘형제의 난’ 불똥이 그룹 전체로 튀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친일 논란. 신격호 총괄회장의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씨의 친익척이 A급 전범이란 소문이 돌면서 ‘친일기업’ 비판이 쏟아졌다. 롯데 측은 “사실 아니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퍼질 대로 퍼진 뒤였다. 게다가 일본색 짙은 가족과 기업문화에 일본자금에서도 자유롭지 않아 ‘롯데=일본기업’ 논란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롯데그룹]
 
대한민국 국민들은 유독 ‘일본’에 민감하다. 35년간 나라를 일본에 빼앗겨 당연할 수 있다. 징용·위안부 문제와 독도 망언 등 정치적, 사회적 쟁점으로 일본이 타깃이 되면 특히 더 하다. 선대의 과오나 오점을 무턱대고 후손들에게 지게 하는 것은 잔혹하지만, 부의 세습이 이뤄지는 재계 특성상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친일기업 논란 하면 현대그룹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거론된다. 현정은 회장의 조부가 일제 때 중추원 참의를 지낸 현준호씨인 탓이다. 중추원 참의는 친일규명법에서도 명기된 민족반역자로 분류된다. 

[현대그룹]
 

호남의 대부호였던 현씨는 1920년 호남은행을 설립해 대표를 지내다 1930년 중추원 참의가 된 직후부터 일제 편에 섰다. 조선총독부 편찬 공로자 명단에 오르는가 하면 일본의 정책을 대중에 선전하는 시국강연회에 연사로 나서기도 했다. 또 총독부 시국대책조사위에 참여했으며 비행기까지 헌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씨는 2002년 국회가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명단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았다. 현씨뿐만 아니라 그의 부친 현기봉씨도 전라남도 참사, 전남도평의회 의원, 중추원 참의 등 일제 요직을 두루 거쳤다.

[삼양그룹]
 
삼양그룹도 친일 논란 단골로 사명이 오르내린다. 현씨와 함께 중추원 참의를 지낸 김연수 창업주 때문이다. 두 사람은 총독부 시국대책조사위에서 같이 활동했다. 역시 호남 대지주였던 김 창업주는 이밖에도 만주국 명예총영사, 국민총력연맹 후생부장, 조선임전보국단 간부 등 많은 ‘일제직함’을 보유했었다.
 
1935년 총독부가 발간한 <조선공로자명감>에까지 등재됐다. 이런 이유로 김 창업주도 각 민족단체가 꼽은 친일파 명단에 올라있다. 1948년 9월 시작된 반민특위에서 “상황상 어쩔 수 없었다”는 정상참작으로 무죄판결을 받은 김 창업주는 1961년 전경련 전신인 전국경제협의회장을 맡는 등 재계에 다시 발을 붙였다.
 
협일행적 보인 창업주 가문 ‘대대로 떵떵’
일제때 족적 남겼거나 나랏밥 먹고 ‘쑥쑥’


[경방그룹]
 
삼양그룹과 사돈기업인 경방그룹도 김 창업주 손에서 컸다. 경방그룹은 김 창업주의 형 김성수 동아일보 창업주가 1919년 설립한 경성방직이 전신이다. 1970년 경방으로 이름을 바꿨다. 줄곧 김 창업주가 경영하다가 1945년 광복 후 매제인 김용완 전 명예회장이 맡았고, 다시 그의 장남 김각중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김용완-김각중 부자는 2대에 걸쳐 전경련 회장을 맡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금은 김 명예회장의 두 아들 김준·김담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김용완 전 명예회장의 부인은 김 창업주의 여동생 김점효씨다. 김각중 명예회장과 김상홍 명예회장의 부인들이 자매로 둘은 동서지간이다.

[두산그룹]
 
두산그룹 창업주도 친일 족적을 남겼다. 박승직 창업주가 주인공. 박 창업주는 1938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 등을 지냈다. 특히 박 창업주는 1933년 김연수 창업주와 같이 소화기린맥주의 주주로 참여해 친일 의혹을 더 짙게 한다.
 
소화기린맥주는 적산기업(일본인이 운영하다 버리고 간 기업)으로, 그는 이를 통해 두산그룹의 모기업인 동양맥주(오비맥주 전신)의 기틀을 마련했다. 1896년 개점한 ‘박승직상점’을 운영하던 박 창업주는 광복 후 불하받은 소화기린맥주를 장남 박두병 초대회장에게 맡겼다. 이는 두산그룹이 ‘맥주재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기폭제 역할을 했다.

[그랜드힐튼호텔] 
 
아예 대놓고 일제에 적극 협력한 인물도 있다. 친일파 명단 상위에 올라있는 이해승씨가 그렇다. 이씨는 일제로부터 당시 조선인으론 가장 높은 작위인 후작과 매국공채 16만2000원을 받고 태평양 전쟁을 미화하는 등 식민지 지배에 앞장섰다. 친일 공로로 일본 정부의 대훈장인 이화대수장 등 각종 서위까지 받았다.
 
눈에 띄는 점은 그가 조선 왕족이란 사실이다. 이씨는 조선조 25번째 왕인 철종의 형 연평군의 손자다. 이씨의 지저분한 행적은 이를 무색케 한다. 이씨는 6·25전쟁 때 행방불명됐지만, 왕족신분 때 나라에서 내린 재산은 고스란히 후세인 이우영 동원INC 회장이 꿰찼다.
 
이씨의 손자 이 회장은 현재 서울 홍은동에 있는 그랜드힐튼 서울호텔을 경영하고 있다. 이 호텔이 있는 부지가 이씨가 남긴 땅이다. 이 회장은 부친 이완주씨가 일찍 세상을 뜨자 할아버지 이씨의 밑에서 자랐고, 그의 재산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홍은동 호텔 부지엔 원래 전계대원군과 회평군, 영평군 등 이 회장의 선조들 묘소가 있었다. 이 회장은 1988년 이 선산을 포천으로 옮기고 호텔을 세웠다. 
 
친일 재벌기업 출발부터 남달라
“조상의 과오 후손에 책임 잔혹”
 
호텔은 이 회장이 경영하는 동원INC(60%), 스위스항공(20%), 네슬레(20%) 등이 투자한 합작형태로 운영되다 2001년 이 회장이 모든 지분을 인수하면서 100% 소유하게 됐다. 친일재산조사위는 2007년 이 회장 소유의 홍은동과 포천 등 토지 약 200만㎡(시가 300억원대)를 국가 귀속하기로 결정했고, 이 회장은 이에 반발해 환수 취소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효성그룹]
 
직접적으로 친일 행보를 보여 민족반역자와 그의 후손들이란 오명을 쓴 기업인들이 있는가 하면 단지 일가 윗대 중 한 명이 일제 식민지 시절 나랏밥을 먹었다는 이유로 ‘욕먹는’기업들도 있다. 효성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 CJ그룹, 보광그룹, 대한전선그룹 일가가 대표적이다.
 
효성가 직계는 일제와 전혀 상관이 없다. 다만 효성의 고문이었던 송인상씨가 민족단체들로부터 부일협력자란 의심을 받고 있다. 1950∼1960년대 한국은행 부총재와 재무부 장관까지 지낸 송씨는 일제시대 식산은행에서 일한 은행원 출신이다. 일본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은 식산은행은 일본이 조선에서 신용기구를 통한 착취와 약탈을 감행하기 위해 만든 은행이다. 송씨는 1935년부터 이 은행에서 근무해 심사부장까지 역임했다.
 

[금호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도 사정은 비슷하다. 박인천 창업주는 1924년 보통문관시험에 합격, 영광경찰서 순사로 취업해 경찰생활을 시작했다. 광복 무렵까지 경찰간부로 근무했던 박 창업주의 최종 계급은 경부였다. 일부 민족연구가들은 “이만하면 친일명단에 올라야 하는 수준”이라고 단언하지만, 박 창업주의 친일행적이 뚜렷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그는 경찰직에서 나와 1946년 17만원의 자본금으로 미국산 중고택시 2대를 사들여 광주택시를 설립하면서 기업가로 변신했다. 광주택시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모태. 박 창업주는 금호실업, 광주고속, 삼양타이어, 전남제사, 한국합성고무, 삼화교통㈜ 등 계열사 6개사로 1973년 그룹체제를 출범했다. 사업다각화의 스타트를 끊은 전남제사는 적산기업으로 꼽힌다. 전남제사는 1926년 일본인 등이 세운 방직업체로 광복 후 전남대학교에서 소유했는데 경영부실로 어려움을 겪다 박 창업주가 1954년 인수했다.
  
 


[보광그룹]
 
보광그룹 일가도 민족단체들로부터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다. 홍석규 회장의 부친 홍진기씨가 일제 치하에서 법관을 지낸 탓이다.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목록에 오른 그는 광복 전까지 경성지법 사법관시보와 검사대리, 전주지법 판사 등을 지냈다. 1960년대 이병철 창업주와의 인연으로 삼성그룹 소유의 서울중앙라디오방송과 중앙일보 사장으로 있었다.

[대한전선그룹]
 
대한전선그룹 일가의 선대도 석연치 않은 행보를 걸었다. 설경동 창업주는 일본 유학 후 1921년 일본인을 동업자로 끌어들여 사업에 뛰어들었다. 삼광운송점과 삼광상회를 설립, 운송업과 곡물·해산물 위탁 판매 사업을 벌인 것. 1936년엔 함경북도 청진에 동해수산공업을 설립해 대부호로 자리 잡았다.
 
해방 직후 친일파로 몰려 북측 공산군에게 재산을 몰수당한 뒤 어선 몇 척을 몰고 월남해 대한전선그룹을 일군 것으로 알려졌다. 설 창업주는 1954년 자유당 재정부장과 중앙위원 등을 맡으며 정계에 잠깐 발을 담근 적이 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부정축재자로 몰리기도 했다. 반론도 있다. 그를 조명한 여러 문헌들은 “설 창업주를 친일파로 단정할 근거가 없다. 누군가 억울한 누명을 씌웠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kims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친일논란 기업들 입장은?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삼일절·광복절마다 곤욕스러운 친일논란 기업들은 하나같이 발끈하면서도 “어떨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일단 지목된 기업들은 “이제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다”란 반응이 대부분이다. 늘 따라붙는 꼬리표가 달갑지 않은 탓이다.
 
논란에 대한 기업들의 입장은 다양하다. “답답하다”는 호소는 기본. “황당하다”고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창업주가 직접 연관된 그룹의 경우 적극적으로 해명하는가 하면 창업주가 아닌 직계 가족 등의 인물이 연관된 경우 ‘비약적 논리’라며 극구 부인한다.
 
시대상황상 불가피한 선택으로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시대상황에 따른 장사꾼의 고충도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라며 “솔직히 당시 시대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사회공헌을 부각하는 해명도 눈에 띈다. 모 기업 홍보담당자는 “창업주가 오해를 살 만해도 어마어마한 금액을 국가 발전에 기여한 적이 있다. 훈장을 받을 정도로 다양한 노력을 했었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전 직원이 ‘민족기업’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항변도 들을 수 있었다.
 
묵묵부답형 답변도 있다. 창업주가 일제 강점기 주요기구의 고위관직에 이름을 올려 해방 이후 쭉 친일기업 논란에 휩싸였던 한 그룹 측은 “할 말이 없다”는 간단한 말로 입장을 정리했다. 대놓고 “지겹다”고 한 기업도 있다. 회사 관계자는 “이제 이런 논쟁을 멈췄으면 한다. 해방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그러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예 모르쇠로 일관하기도 한다. 모 그룹은 “오너 집안 문제는 회사가 답할 사항이 아니다”며 대답을 회피했다. 다른 기업도 “오너의 집안사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회피했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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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단독] 정보사, ‘북한 무인기’ 30대 남 수차례 접촉 확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당사자’라고 주장한 30대 오모씨의 행위와 이력을 두고 파장이 일고 있다. 그는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이자 ‘평양 무인기 작전’을 목적으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 이사였다. 2년 전부터의 행적도 수상하다. 정보사령부 휴민트 요원들과 수차례 접촉해 사실상 대북 공작을 준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난 17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오씨와 정보사의 직접적 연결고리가 형성된 건 2024년 5월 이후다. 정보사와 오씨와의 접촉은 A 대령의 승인하에 이뤄졌다. 그는 정보사 블랙요원 명단 유출 사건 이후 속초 HID 부대장을 마치고 돌아온 인물로 조직개편 TF(태스크포스) 팀장 및 기반조성단장을 맡았다. 수상한 접촉 앞서 윤석열정부 대통령실 출신인 오씨는 윤정부 시절 ‘북한 무인기 대통령실 상공 침투’에 대응할 목적에서 설립된 무인기 설계·제작 업체의 이사로 근무했다. 그는 지난 16일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공개한 무인기 외관과 위장 무늬, 색 등이 자신이 북한으로 보낸 무인기와 일치한다”며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목적에 대해 “북한 우라늄 공장의 방사선과 중금속 오염도 측정”이라고 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무인기를 북한으로 보냈다는 취지로 읽힌다. A 대령은 ‘정보사 기능·역량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수도권 안가 설립을 기획했다. A 대령의 계획대로 B 소령은 오씨와 C 상사는 김모씨를 접촉했다. B 소령은 휴민트(HUMINT·820·인간정보) 요원이다. 이들은 오씨와 김씨를 통해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려 확보한 영상 증거를 확인했다. 이 시기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언급했던 정보사의 국방과학연구소(ADD) 접촉 및 무인기 개발 의혹이 시작되던 때와 겹친다. 당시 정보사는 ADD에 “드론에 전단통을 달 수 있느냐”고 문의한 바 있다. ADD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고 내란 특별검사팀에 진술했다. 정보사 간부는 “누구의 지시로 국방과학연구소에 드론과 관련해 연락했냐”는 특검팀의 질문에 “문상호의 지시였고 문 전 사령관이 원천희 전 국방정보본부장에게도 관련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오씨의 영상 증거가 북한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A 대령은 이후에도 B 소령과 오씨의 접촉을 허가했다. ‘지속적 협력 관계’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A 대령은 오씨에게 이른바 ‘협조비’를 제공한 의혹을 받는다. 사비가 아닌 ‘정보사 공작금’ 수십만원을 정기적으로 전달했다는 게 골자다. 이 같은 행위는 정보기관과 협조·정보원 간 이뤄지는 통상적 거래로 알려져 있다. 실제 정보기관은 국제범죄 및 마약 관련 첩보를 제공한 ‘야당’에게 많게는 수백만원의 금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정보사가 오씨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24년 여름 ‘대북 공작’ 의심 정보사와 지속적 접촉 정보사·ADD 연락 시기 겹쳐 ‘김태효 안보실’ 연루설도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A 대령과 오씨가 일반적 협력 관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대북 공작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정보기관이라면 늘 하는 업무다. A 대령이 오씨에게 ‘무인기를 북으로 보내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고 그저 오씨가 회사를 설립하는 데 지원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A 대령의 부하인 B 소령은 오씨가 북한 전문 매체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줬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언론사는 오씨가 발행인으로 있는 곳으로 2025년 3월 중순부터 첫 기사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지난 11일을 끝으로 기사가 작성되지 않은 걸 보면 오씨가 언론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회사 운영에도 차질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정보사 출신 한 소식통은 “오씨가 채널A 인터뷰에서 무인기를 세 번 날렸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닌 걸로 보인다. 적어도 수십번은 날렸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으로 무인기를 날린 건 정보사 조직 차원의 지시가 아니라 오씨의 독단적 행동이다. 오씨와 접촉했던 담당자들도 그의 무리수 때문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군 안팎에서는 단순히 넘길 일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거세다. 오씨가 대통령실 출신임과 동시에 정보사와 접촉한 배경을 명확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정부 안보실 2차장 산하 정보현안대응팀에 파견됐던 HID 출신 오모 중령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오 중령은 2022년 8월 국정원장 비서실에 근무하다가 다음 해 3월 대통령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자신이 확보한 첩보를 인성한 전 2차장이 아닌 ‘안보실 실세’ 김태효 전 1차장에게 수차례 보고했다. 오 중령의 행위를 두고 대통령실 내부에서는 “비정상적 보고”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김 전 1차장은 국방이 아닌 외교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대북 문제에 어떤 군사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전략을 세우는 데는 신원식 전 안보실장보다 한 수 아래였다는 평가다. 사실상 ‘국방 문외한’인 김 전 1차장은 2023년 강원도 속초에 위치한 HID 부대를 방문했다. 그는 “2023년 6월 초 정보당국 관계자들과 HID 부대를 격려 방문한 바 있지만 1년7개월 전에 있었던 군 부대 격려 방문을 이번 계엄 선포와 연결 짓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약”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평양 작전' 준비하려 일종의 테스트 아니었나 의심” "오씨 독단적 행동 무인기 날리라 지시한 적 없어”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윤석열 전 대통령도 오려고 했다는 건 사실이다. 김태효가 그때 왜 왔는지 모르겠다. 와선 안 되는 건 아닌데 올 일이 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 가지 않는 해명”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윤 전 대통령이 오고 싶어 했고 안보실이 그의 HID 방문이 검토된 바 없다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 당시에 대통령 방문 가능성 때문에 대비 회의까지 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오 중령이 2023년 12월 안보실 2차장 산하 국가위기관리센터 정보현안대응팀에 들어가게 된 건 김 전 1차장이 HID를 방문한 직후다. 오 중령은 인 전 2차장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인 전 2차장도 “공개된 자리서 말하기 어렵지만 제가 통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 중령을 포함한 팀원들의 보고서는 인 전 2차장이 아닌 김 전 1차장이 검토했다. 안보실은 이 비밀 TF가 “규정화된 테두리 밖에서 대북 특수정보를 분석하는 팀”이라며 계엄과 관련해 정보사와 소통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또 “비밀 조직이 아니라 위기관리센터에 배치된 ‘정보융합팀’이다. 정보융합팀은 문재인정부의 정보융합비서관실을 대북 정보 분석에 특화시켜 슬림화한 조직으로, 2022년 5월1일 대통령직 인수위 브리핑서도 해당 조직의 신설 취지와 배경을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정보사 차원에서 북한으로 무인기를 보내는 건 부담이 크다. 그래서 민간과 협업해 일종의 테스트를 진행한 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안보실이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적극적으로 기획 및 실행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대북 공작 준비? 그러나 이는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오 중령의 경우 내란 특검팀 소환 조사에서 김 전 1차장에게 정보 보고를 했던 사실은 인정했으나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을 기획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정부는 현재 군·경합동조사TF를 꾸려 무인기를 북한에 보낸 정확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수사 중이다. 무인기를 보냈다고 주장한 사람의 과거 이력과 정보사와의 접촉이 확인된 만큼 숨겨진 목적에 대해 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