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특집> ‘뿌리박힌’ 일제 잔재들 ④일본에 민감한 기업들 'X파일'
<광복 70주년 특집> ‘뿌리박힌’ 일제 잔재들 ④일본에 민감한 기업들 'X파일'
  • 김성수 기자
  • 승인 2015.08.10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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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친일 완장’ 떼고 싶지만…
[일요시사 경제팀] 김성수 기자 = 해마다 돌아오는 광복절이 그다지 달갑지 않은 기업들이 있다. 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해서다. 시대가 바뀌면서 몰락한 기업이 태반. 그런가하면 아직 떵떵거리는 기업도 많다. 아직 청산되지 못한 친일의 역사가 재계에도 깊게 뿌리박힌 셈이다.

▲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
 
롯데일가 ‘형제의 난’ 불똥이 그룹 전체로 튀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친일 논란. 신격호 총괄회장의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씨의 친익척이 A급 전범이란 소문이 돌면서 ‘친일기업’ 비판이 쏟아졌다. 롯데 측은 “사실 아니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퍼질 대로 퍼진 뒤였다. 게다가 일본색 짙은 가족과 기업문화에 일본자금에서도 자유롭지 않아 ‘롯데=일본기업’ 논란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롯데그룹]
 
대한민국 국민들은 유독 ‘일본’에 민감하다. 35년간 나라를 일본에 빼앗겨 당연할 수 있다. 징용·위안부 문제와 독도 망언 등 정치적, 사회적 쟁점으로 일본이 타깃이 되면 특히 더 하다. 선대의 과오나 오점을 무턱대고 후손들에게 지게 하는 것은 잔혹하지만, 부의 세습이 이뤄지는 재계 특성상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친일기업 논란 하면 현대그룹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거론된다. 현정은 회장의 조부가 일제 때 중추원 참의를 지낸 현준호씨인 탓이다. 중추원 참의는 친일규명법에서도 명기된 민족반역자로 분류된다. 

[현대그룹]
 
호남의 대부호였던 현씨는 1920년 호남은행을 설립해 대표를 지내다 1930년 중추원 참의가 된 직후부터 일제 편에 섰다. 조선총독부 편찬 공로자 명단에 오르는가 하면 일본의 정책을 대중에 선전하는 시국강연회에 연사로 나서기도 했다. 또 총독부 시국대책조사위에 참여했으며 비행기까지 헌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씨는 2002년 국회가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명단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았다. 현씨뿐만 아니라 그의 부친 현기봉씨도 전라남도 참사, 전남도평의회 의원, 중추원 참의 등 일제 요직을 두루 거쳤다.

[삼양그룹]
 
삼양그룹도 친일 논란 단골로 사명이 오르내린다. 현씨와 함께 중추원 참의를 지낸 김연수 창업주 때문이다. 두 사람은 총독부 시국대책조사위에서 같이 활동했다. 역시 호남 대지주였던 김 창업주는 이밖에도 만주국 명예총영사, 국민총력연맹 후생부장, 조선임전보국단 간부 등 많은 ‘일제직함’을 보유했었다.
 
1935년 총독부가 발간한 <조선공로자명감>에까지 등재됐다. 이런 이유로 김 창업주도 각 민족단체가 꼽은 친일파 명단에 올라있다. 1948년 9월 시작된 반민특위에서 “상황상 어쩔 수 없었다”는 정상참작으로 무죄판결을 받은 김 창업주는 1961년 전경련 전신인 전국경제협의회장을 맡는 등 재계에 다시 발을 붙였다.
 
협일행적 보인 창업주 가문 ‘대대로 떵떵’
일제때 족적 남겼거나 나랏밥 먹고 ‘쑥쑥’

[경방그룹]
 
삼양그룹과 사돈기업인 경방그룹도 김 창업주 손에서 컸다. 경방그룹은 김 창업주의 형 김성수 동아일보 창업주가 1919년 설립한 경성방직이 전신이다. 1970년 경방으로 이름을 바꿨다. 줄곧 김 창업주가 경영하다가 1945년 광복 후 매제인 김용완 전 명예회장이 맡았고, 다시 그의 장남 김각중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김용완-김각중 부자는 2대에 걸쳐 전경련 회장을 맡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금은 김 명예회장의 두 아들 김준·김담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김용완 전 명예회장의 부인은 김 창업주의 여동생 김점효씨다. 김각중 명예회장과 김상홍 명예회장의 부인들이 자매로 둘은 동서지간이다.

[두산그룹]
 
두산그룹 창업주도 친일 족적을 남겼다. 박승직 창업주가 주인공. 박 창업주는 1938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 등을 지냈다. 특히 박 창업주는 1933년 김연수 창업주와 같이 소화기린맥주의 주주로 참여해 친일 의혹을 더 짙게 한다.
 
소화기린맥주는 적산기업(일본인이 운영하다 버리고 간 기업)으로, 그는 이를 통해 두산그룹의 모기업인 동양맥주(오비맥주 전신)의 기틀을 마련했다. 1896년 개점한 ‘박승직상점’을 운영하던 박 창업주는 광복 후 불하받은 소화기린맥주를 장남 박두병 초대회장에게 맡겼다. 이는 두산그룹이 ‘맥주재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기폭제 역할을 했다.

[그랜드힐튼호텔] 
 
아예 대놓고 일제에 적극 협력한 인물도 있다. 친일파 명단 상위에 올라있는 이해승씨가 그렇다. 이씨는 일제로부터 당시 조선인으론 가장 높은 작위인 후작과 매국공채 16만2000원을 받고 태평양 전쟁을 미화하는 등 식민지 지배에 앞장섰다. 친일 공로로 일본 정부의 대훈장인 이화대수장 등 각종 서위까지 받았다.
 
눈에 띄는 점은 그가 조선 왕족이란 사실이다. 이씨는 조선조 25번째 왕인 철종의 형 연평군의 손자다. 이씨의 지저분한 행적은 이를 무색케 한다. 이씨는 6·25전쟁 때 행방불명됐지만, 왕족신분 때 나라에서 내린 재산은 고스란히 후세인 이우영 동원INC 회장이 꿰찼다.
 
이씨의 손자 이 회장은 현재 서울 홍은동에 있는 그랜드힐튼 서울호텔을 경영하고 있다. 이 호텔이 있는 부지가 이씨가 남긴 땅이다. 이 회장은 부친 이완주씨가 일찍 세상을 뜨자 할아버지 이씨의 밑에서 자랐고, 그의 재산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홍은동 호텔 부지엔 원래 전계대원군과 회평군, 영평군 등 이 회장의 선조들 묘소가 있었다. 이 회장은 1988년 이 선산을 포천으로 옮기고 호텔을 세웠다. 
 
친일 재벌기업 출발부터 남달라
“조상의 과오 후손에 책임 잔혹”
 
호텔은 이 회장이 경영하는 동원INC(60%), 스위스항공(20%), 네슬레(20%) 등이 투자한 합작형태로 운영되다 2001년 이 회장이 모든 지분을 인수하면서 100% 소유하게 됐다. 친일재산조사위는 2007년 이 회장 소유의 홍은동과 포천 등 토지 약 200만㎡(시가 300억원대)를 국가 귀속하기로 결정했고, 이 회장은 이에 반발해 환수 취소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효성그룹]
 
직접적으로 친일 행보를 보여 민족반역자와 그의 후손들이란 오명을 쓴 기업인들이 있는가 하면 단지 일가 윗대 중 한 명이 일제 식민지 시절 나랏밥을 먹었다는 이유로 ‘욕먹는’기업들도 있다. 효성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 CJ그룹, 보광그룹, 대한전선그룹 일가가 대표적이다.
 
효성가 직계는 일제와 전혀 상관이 없다. 다만 효성의 고문이었던 송인상씨가 민족단체들로부터 부일협력자란 의심을 받고 있다. 1950∼1960년대 한국은행 부총재와 재무부 장관까지 지낸 송씨는 일제시대 식산은행에서 일한 은행원 출신이다. 일본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은 식산은행은 일본이 조선에서 신용기구를 통한 착취와 약탈을 감행하기 위해 만든 은행이다. 송씨는 1935년부터 이 은행에서 근무해 심사부장까지 역임했다.
 
▲ 욱일승천기

[금호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도 사정은 비슷하다. 박인천 창업주는 1924년 보통문관시험에 합격, 영광경찰서 순사로 취업해 경찰생활을 시작했다. 광복 무렵까지 경찰간부로 근무했던 박 창업주의 최종 계급은 경부였다. 일부 민족연구가들은 “이만하면 친일명단에 올라야 하는 수준”이라고 단언하지만, 박 창업주의 친일행적이 뚜렷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그는 경찰직에서 나와 1946년 17만원의 자본금으로 미국산 중고택시 2대를 사들여 광주택시를 설립하면서 기업가로 변신했다. 광주택시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모태. 박 창업주는 금호실업, 광주고속, 삼양타이어, 전남제사, 한국합성고무, 삼화교통㈜ 등 계열사 6개사로 1973년 그룹체제를 출범했다. 사업다각화의 스타트를 끊은 전남제사는 적산기업으로 꼽힌다. 전남제사는 1926년 일본인 등이 세운 방직업체로 광복 후 전남대학교에서 소유했는데 경영부실로 어려움을 겪다 박 창업주가 1954년 인수했다.
  
 
 

[보광그룹]
 
보광그룹 일가도 민족단체들로부터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있다. 홍석규 회장의 부친 홍진기씨가 일제 치하에서 법관을 지낸 탓이다.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목록에 오른 그는 광복 전까지 경성지법 사법관시보와 검사대리, 전주지법 판사 등을 지냈다. 1960년대 이병철 창업주와의 인연으로 삼성그룹 소유의 서울중앙라디오방송과 중앙일보 사장으로 있었다.

[대한전선그룹]
 
대한전선그룹 일가의 선대도 석연치 않은 행보를 걸었다. 설경동 창업주는 일본 유학 후 1921년 일본인을 동업자로 끌어들여 사업에 뛰어들었다. 삼광운송점과 삼광상회를 설립, 운송업과 곡물·해산물 위탁 판매 사업을 벌인 것. 1936년엔 함경북도 청진에 동해수산공업을 설립해 대부호로 자리 잡았다.
 
해방 직후 친일파로 몰려 북측 공산군에게 재산을 몰수당한 뒤 어선 몇 척을 몰고 월남해 대한전선그룹을 일군 것으로 알려졌다. 설 창업주는 1954년 자유당 재정부장과 중앙위원 등을 맡으며 정계에 잠깐 발을 담근 적이 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부정축재자로 몰리기도 했다. 반론도 있다. 그를 조명한 여러 문헌들은 “설 창업주를 친일파로 단정할 근거가 없다. 누군가 억울한 누명을 씌웠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kims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친일논란 기업들 입장은?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삼일절·광복절마다 곤욕스러운 친일논란 기업들은 하나같이 발끈하면서도 “어떨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일단 지목된 기업들은 “이제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다”란 반응이 대부분이다. 늘 따라붙는 꼬리표가 달갑지 않은 탓이다.
 
논란에 대한 기업들의 입장은 다양하다. “답답하다”는 호소는 기본. “황당하다”고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창업주가 직접 연관된 그룹의 경우 적극적으로 해명하는가 하면 창업주가 아닌 직계 가족 등의 인물이 연관된 경우 ‘비약적 논리’라며 극구 부인한다.
 
시대상황상 불가피한 선택으로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시대상황에 따른 장사꾼의 고충도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라며 “솔직히 당시 시대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사회공헌을 부각하는 해명도 눈에 띈다. 모 기업 홍보담당자는 “창업주가 오해를 살 만해도 어마어마한 금액을 국가 발전에 기여한 적이 있다. 훈장을 받을 정도로 다양한 노력을 했었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전 직원이 ‘민족기업’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항변도 들을 수 있었다.
 
묵묵부답형 답변도 있다. 창업주가 일제 강점기 주요기구의 고위관직에 이름을 올려 해방 이후 쭉 친일기업 논란에 휩싸였던 한 그룹 측은 “할 말이 없다”는 간단한 말로 입장을 정리했다. 대놓고 “지겹다”고 한 기업도 있다. 회사 관계자는 “이제 이런 논쟁을 멈췄으면 한다. 해방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그러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예 모르쇠로 일관하기도 한다. 모 그룹은 “오너 집안 문제는 회사가 답할 사항이 아니다”며 대답을 회피했다. 다른 기업도 “오너의 집안사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회피했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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