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속내 궁금한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어떻게 일궜는데 네놈들이…”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그동안 롯데그룹 경영권을 놓고 두 아들 사이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창업자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두 아들은 기어코 아버지를 가운데 두고 ‘형제의 난’을 벌였다. 장남은 신 총괄회장을 앞세워 경영권을 장악하려 했고, 차남은 그런 아버지를 총괄회장에서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게 했다. 자식들의 재산 싸움과 복잡한 가계도로 신 총괄회장의 노년은 복잡하기만 하다.

신 총괄회장은 1922년에 태어났다. 원래는 1921년생이지만 호적에 1년 늦게 올라간 것으로 전해진다. 경남 울주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울산농업보습학교를 졸업하고 경남도립 종축장에 말을 돌보는 기수보로 일했다. 
 
단돈 38엔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신 총괄회장이 19살이 되던 1941년 돈을 벌 작정으로 단돈 83엔을 들고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갔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조선인’이라면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일본에 있는 고향친구 자취방에 얹혀살며 신문·우유 배달 등 닥치는 대로 잡일을 했다.
 
신 총괄회장은 이때 당시만 해도 작가를 꿈꾸는 문학도였다. 돈만 모이면 헌책방으로 달려갔다. 특히 세계적인 문학가인 괴테를 동경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의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문학으로는 먹고살기가 힘들어서였다. 그는 결국 기술만이 살길이라 느끼며, 와세다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신 총괄회장은 1944년 대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일본 패전의 기색이 짙었다. 조선인 청년의 성실성을 평소 눈여겨보던 한 일본인 노인은 신 총괄회장에게 커팅오일(기계를 갈고 자르는 선반용 기름) 사업을 제안했다. 그 노인은 선뜻 6만엔을 내놓았다. 그러나 첫 사업체는 미군의 공습을 맞아 완전히 불타버렸다. 신 총괄회장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하면서 많은 한국인은 귀국에 올랐다. 신 총괄회장 친구들 역시 “귀국선을 타고 돌아가자”며 종용했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는 살 수 없다며, 일본에 남았다. 그는 1946년 5월 도쿄 스기나미구의 낡은 창고에 가마솥을 내걸었다. 그는 커팅오일을 응용해 비누와 크림을 만들어 팔았다. 신 총괄회장이 만든 비누는 불티나게 팔리면서 1년반만에 노인에게 진 빚을 모두 갚았으며, 감사의 표시로 집을 한 채 사서 선물했다. 이때부터 그의 사업가 기질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신 총괄회장은 남은 밑천으로 ‘히카리 특수화학연구소’를 차린다. 유지류나 특수고무 같은 물질들을 연구했다. 당시 시판된 껌들을 연구했는데, 이들의 장점을 모두 집약해서 껌을 개발했다. 신 총괄회장이 개발한 껌은 인기가 좋았다. 과자점 주인들이 서로 납품하겠다고 신 총괄회장의 연구소 앞에는 새벽부터 줄설 정도였다. 신 총괄회장은 투자자를 모집에 본격적으로 회사를 차려 껌을 팔기로 했다. 
 
껌으로 세운 재계 5위…무너진 성공신화
장·차남 경영권 싸움…아버지 누구 편?
 
1948년 신 총괄회장은 신주쿠 허허벌판에 종업원 10명의 주식회사 롯데를 탄생시켰다. 롯데라는 이름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샬롯데 이름에서 유래됐다. 껌회사에 붙인 이름 치곤 생뚱맞아 보이지만, 못다 한 신 총괄회장의 문학 작가의 꿈을 투영한 것이었다. 신 회장은 훗날 “롯데라는 이름은 내 일생일대의 최대수확이자 최고의 선택”이라며 흡족해했다. 껌으로 시작한 롯데는 오늘날 재계 롯데그룹의 효시였다.
 
신 총괄회장은 껌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롯데 상사, 롯데 부동산, 롯데아도, 롯데 물산, 주식회사 훼밀리 등 상업, 유통업을 망라한 일본의 10대 재벌이 됐다. 이뿐만 아니라 일본 프로야구 퍼시픽 리그의 롯데 오리온스를 인수해 현재까지 3대 구단주로 소유하고 있다. 
 
1965년 한일수교로 일본 기업이 한국에 대한 투자가 가능해지자 1966년 롯데알미늄,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국내에서 라면과 과자로 종합 식품기업의 토대를 다져갔다. 그 뒤 한국에서도 사업을 다른 분야로 확장한다. 1973년 호텔롯데, 롯데 전자, 롯데 기공을 설립. 1974년 롯데 산업, 롯데 상사, 롯데 칠성 음료를 설립한다. 이외 한국 후지 필름, 대홍기획 등 건설사와 화학 공장 등 식품·유통·관광·건설을 아우르는 국내 재계 5위 종합 그룹으로 성장했다.  
 
신 총괄회장은 나이를 먹어가며, 그의 꿈을 대부분 이뤘다. 하지만 마지막 꿈이 남았다. 세계 최고 높이의 테마파크를 짓는 것이었다. 이른바 지금의 ‘제2롯데월드’였다. 
 
끝없는 사업 확장
제2롯데 화룡정점
 
신 총괄회장이 제2롯데월드 사업을 구상한 것은 1987년부터였다. 당시 계획은 잠실 롯데월드 부지 옆에 108층 높이의 마천루를 짓겠다는 거였다. 1994년부터 본격적인 사업 준비를 했다. 하지만 1998년 암초에 부딪혔다. 인근에 있는 성남 서울공항 활주로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공군 기지로 쓰이는 곳이라, 근처 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전투기 조종사 시야 확보가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근처에 고층 빌딩 높이 제한으로 부지 허가를 받기 어려웠다. 게다가 외환 위기도 겹쳐 자금 조달도 어려웠다. 

신 총괄회장은 꿈을 접을 수 없었다. 김대중정부 말기 사업을 다시 추진했다. 계획도 더 키웠다. 계획했던 108층 높이(450m)를 123층 높이(555미터)로 수정했다. 노무현정부 시절 2006년 착공식을 했다. 하지만 서울공항 활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던 탓에 공사는 곧바로 중단됐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서자 건물 높이 제한 규제가 풀렸다. 2009년 최종 허가가 났다. 
 
2013년부터 제2롯데월드는 부분 개장했다. 당초 2015년 12월 완공 예정이었으나, 약 1년 연기되어 2016년 말에 완공될 예정이다. 이 건물은 그동안 한반도 최고층 빌딩이었던 높이 330m, 101층의 평양 류경호텔을 제치고 한반도 최고 높이의 건물이 되며, 완공 시 세계에서 6번째(555m)로 높은 빌딩이 된다. OECD 국가 중에서는 미국의 1WTC를 제치고 가장 높은 건물이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500m)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제2롯데월드를 개장하고 온갖 사고가 잇따랐다. 거푸집 장비가 무너져 노동자가 사망했으며, 배관이음 폭발, 추락사 등 사상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또 메가기둥, 피복 균열, 석촌호수 수위 변화, 석촌지하차도 싱크홀 등 안전성 논란도 끊이질 않았다. 여론이 나빠지자 공사를 중단하기도 했으며, 서울시가 나서기도 했다. 정밀 안전 진단을 실시했고, 재개장 허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롯데월드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신 총괄회장은 1970년대부터 한국과 일본에서 사업이 점차 확장되자 홀수 달엔 한국에서, 짝수 달엔 일본에서 머물며 셔틀경영을 펼쳤다. 이 때문에 ‘대한해협의 경영자’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93세가 된 현재까지 경영일선을 지켜왔다.
 
신 총괄회장은 성공한 사업가인 반면, 가족사는 전체적으로 불운하다. 신 총괄회장은 유난히 형제간 다툼이 심해 '비운의 빅 브라더'로 불리기도 했다. 롯데그룹 초창기 신 총괄회장은 남동생을 모두 경영에 참여시켰다. 그러나 크고 잦은 분쟁이 이어지면서 동생들은 모두 분가(分家)했다. 남동생은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신선호 일본 산사스 사장,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 신준호 푸르밀 회장이다.
 
아래 동생인 신철호 전 롯데사장은 1958년 신 총괄회장이 국내에 없는 틈을 타 서류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롯데를 인수하려다 발각돼 구속됏다. 이후 신격호 회장과 틀어진 그는 작은 제과 회사를 차려 독립했고, 지금은 고인이 됐다. 3남 신춘호 회장과는 현재 전혀 교류하지 않을 정도로 관계가 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불씨는 ‘라면’이었다.
 
신춘호 회장은 일본 롯데 이사로 재직하던 1960년대 신격호 회장의 만류에도 라면 사업을 시작했다. 1965년 아예 롯데공업을 차리며 기존 롯데의 라면 사업과 경쟁을 벌이자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신춘호 회장은 롯데공업을 농심으로 개명하면서 롯데 이름을 포기했다.두 사람 사이의 앙금은 깊어 신춘호 회장은 아직까지 부친 제사에도 일절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막내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은 롯데제과ㆍ롯데칠성ㆍ롯데물산 등 주요 계열사의 대표를 두루 거쳤고 롯데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운영본부의 부회장을 맡는 등 사실상 신 총괄회장을 대신해 한국 롯데 경영을 실무적으로 총괄했다.
 
그러나 지난 1996년 서울 양평동 롯데제과 부지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법정 소송을 치르며 사이가 벌어졌다. 이후 그는 그룹의 요직에서 밀려났고 2007년 롯데그룹에서 분할된 롯데우유 회장으로 취임했다. 롯데우유는 롯데 브랜드 사용 금지 요청에 2009년 사명을 푸르밀로 바꾸면서 롯데그룹으로부터 독립했다.
 
복잡한 갈등구도
복잡한 가족관계
 
신 총괄회장은 24살 터울 막내 여동생 부부와도 갈등의 골이 깊다. 막내 매제인 롯데관광 김기병 회장과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 부부를 상대로 샤롯데 엠블럼 사용을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갈등을 겪었다. 특히 롯데그룹이 2007년 롯데JTB를 설립하면서 관광업에 진출해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이뿐만 아니라 신 총괄회장의 가족사 또한 복잡하다. 신 총괄회장은 18세 때 노순화와 결혼했다. 노씨는 현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인 신영자씨의 모친이다. 신 총괄회장은 노씨와 결혼을 한 상태에서 1941년 돌연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자신이 세 들어 살던 집의 주인 딸인 다케모리 하쓰코와 1950년 중혼을 했다. 
 
두 번째 부인이 된 하쓰코는 1945년 9월2일 일본 항복 문서 조인식에 참석했다가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으로 한 쪽 다리를 잃은 전범 시게미쓰 마모루의 조카다. 그녀의 부친은 일본 육군대좌로 1944년 사이판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알려졌다.
 
 
또 신 총괄회장이 일본에서 성공한 데에는 하쓰코의 친정 도움이 적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신격호는 하쓰코와 결혼하면서 그의 외삼촌의 성씨를 따 시게미쓰 다케오로 창씨개명을 했고, 부인 역시 남편 성을 따른다는 일본의 관습에 따라 시게미쓰로 성씨를 바꿨다. 타국에서 사업가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일본 명문가와 피를 섞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으로 귀화한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낳은 신동주(히로유키), 신동빈(아키오) 형제 역시 한국 국적이다. 신격호가 일본에서 사업 기반을 다지는 사이, 첫 번째 부인인 노씨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그동안 잡음 끊이지 않더니…
결국 갈등 수면 위로 떠올라
 
신격호의 세 번째 부인 서미경씨도 빼놓을 수 없다. ‘롯데의 별당마님’으로 불리는 서미경씨는 제1회 미스롯데(1977) 출신으로 영화배우로 활동하다 돌연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가 37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신격호의 세 번째 부인으로 깜짝 등장해 구설에 올랐다. 그는 백화점과 영화관 매점 사업권 등 알짜 사업을 소유하며 그룹 내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 사이에서 낳은 딸 신유미씨를 신격호의 호적에도 올릴 정도로 각별한 사이라고 한다.
 
 
이번 ‘형제의 난’으로 드러난 불투명한 롯데그룹의 지배 구조가 드러났다. 특히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경영권 분쟁이 첨예한 가운데 롯데그룹 지배구조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혔다. 첫째 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과 셋째 부인 서미경씨의 딸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도 롯데그룹의 소수지분을 갖고 있어 팽팽한 지분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일단 재계 안팎에서는 신동주 전 부회장의 경영권 확보 시도를 무산시킨 차남 신동빈 회장의 절대 우세를 점치고 있다. 하지만 롯데그룹의 복잡한 지분구조 등을 고려할 때 신동주 전 부회장이 자신에게 우호적인 지분을 확보한 뒤 신동빈 회장을 향한 반격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룹의 총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롯데판 왕자의 난'이 사실상 본 궤도에 들어섰다는 분석이다. 
 
롯데그룹 계열사의 대표격인 롯데쇼핑의 경우 신동빈 회장(13.46%)과 신동주 전 부회장(13.45%)의 지분율은 사실상 동일하다. 롯데제과도 신동빈 회장은 5.34%, 신동주 전 부회장은 3.92%를 보유하고 있다.
롯데칠성은 각각 5.71%와 2.83%다. 무엇보다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일본 비상장 법인 광윤사의 경우 현재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은 29%씩, 신 총괄회장은 3%를 보유하고 있다. 신 총괄회장의 지분율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은 오랜 기간 광윤사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롯데그룹을 지배해 왔다. 따라서 신 총괄회장의 의중에 따라 후계구도에 변동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의 행보도 변수로 꼽힌다. 앞서 신동주 전 부회장이 지난달 27일 신 총괄회장의 일본행을 주도할 때 신 이사장 역시 조카인 신동인(69)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직무대행 등과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놓고 재계에서는 신 총괄회장의 형제자매도 신동빈 회장의 반대편에 섰다는 관측이 나왔다.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영자 이사장이 연합할 경우 한국 롯데그룹 일부 계열사에서는 신 회장의 지분율을 앞서게 된다.
 
경영승계 임박
자녀끼리 혈투
 
한편 지난달 30일 신동주 전 부회장이 자신을 다시 롯데홀딩스 사장에 임명한다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서명 지시서를 공개했다. 신 총괄회장이 이 지시서로 이사들을 해임시키려 했으나 이사들이 불복하자 직접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게 신 전 부회장의 주장이다. 
 
 
<min1330@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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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