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vs 친박 장관 ‘정면충돌’ 내막

어차피 2년 후면 끝인데 4년 쉬라고?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박근혜 대통령과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박 대통령이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장관들에게 “개인적인 행로는 있을 수 없다”며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경고가 무색하게도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내년 총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러다 제2의 유승민 사태가 터지는 것 아니냐는 경고음도 들려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모든 개인 일정은 내려놓고 국가 경제와 개혁을 위해 매진해 달라”며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박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에게 개인적 행보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한 것은 벌써 이번이 두 번째다. 박 대통령은 불과 2주 전인 지난 7일에도 “경제를 살리는 과정에서 개인적인 행로는 있을 수 없다”며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경고 메시지
미지근한 반응

청와대 측은 “몇몇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이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면서 정작 부처 업무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있어 이같이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이 같은 사안에 대해 2주 간격으로 두 번씩이나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하지만 장관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심지어 김희정 여성가족부장관은 박 대통령의 첫 번째 경고가 있은 후 1주일 만에 보란 듯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내년 총선 출마는 당연하다”고 아예 못을 박았다.

정치권에서는 이러다 제2의 유승민 사태가 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은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며 “자기정치 하지 말라”고 했던 당시 발언과 너무나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해당 발언 이후 유 전 원내대표는 결국 원내대표 자리에서 쫓겨났다.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이 박 대통령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총선 출마를 강행할 경우 대대적인 찍어내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권의 한 관계자도 “박 대통령은 자기 정치하는 사람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러니 장관들이 총선 출마와 관련해 대통령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간 자기 정치만 하는 사람으로 찍힐 것이 뻔하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박 대통령이 이번에 내년 총선은 꿈도 꾸지 말라며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장관들도 대통령의 의중을 이번에 처음 안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장관들이 당연히 자신과 국가를 위해 희생해줄 것으로 믿었는데 장관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이들이 내각에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현재 정치인 출신 장관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김희정 여성가족부장관, 유일호 국토부장관, 유기준 해양수산부장관 등 5명이나 된다. 내각의 3분의1 가까이가 국회의원 출신 장관이다. 이들이 20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내년 1월14일(선거일 90일)까지 장관직을 사퇴해야 한다. 내각의 30%가 한꺼번에 빠져나가고 나면 국정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희생 해라!
희생 못해!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사건, 세월호 사고, 정윤회 비선실세 의혹, 성완종 파문, 메르스 사태, 국정원 불법해킹 의혹까지 줄줄이 터져 나온 대형악재들로 집권 3년 차까지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장관에 임명되면 업무파악에 걸리는 시간 등을 감안해 최소 2년 이상 재직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들이 한꺼번에 떠나고 나면 박근혜정부의 남은 임기 역시 허무하게 끝나버릴 수 있다.

이미 공무원사회에서는 곧 떠날 장관들에 대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공무원은 “대통령은 개혁을 부르짖고 있지만 시한부장관 밑에서 개혁은 언감생심이다. 장관들도 내년 총선을 의식해야 하는데 표만 깎이는 개혁작업에 힘을 실어주겠나?”라며 “공무원들도 지금 괜히 나섰다가 잘못되면 책임져줄 사람도 없는데 차라리 새로운 장관이 오길 기다리자며 복지부동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내년 총선 포기하면 정계 은퇴 수순
이번만큼은 대통령 시키는 대로 못해


올해만 버티면 바뀔 장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관료들도 느슨해진다. 장관들의 지시가 제대로 먹힐 리가 없다. 또 이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박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지긋지긋한 인사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특히 장관들의 사퇴 러쉬가 내년 1월14일을 앞두고 집중된다면 가뜩이나 예산안 통과 등으로 바쁜 연말에 장관을 교체하느라 한바탕 소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때문에 박 대통령은 처음부터 내년 총선 불출마를 염두에 두고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을 임명했는데, 대통령과 장관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부족해서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의 입장도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박근혜정부의 임기는 겨우 2년 정도 남았는데 내년 총선에 불출마하고 나면 4년 가까이를 정치낭인으로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4년이나 중앙정치에서 떠나 있은 후 다시 정계에 복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장관들에게는 내년 총선에 불출마한다는 것은 정계은퇴까지 각오해야 할 중대한 일이다.

게다가 여당은 내년 총선 지역구 후보자를 오픈 프라이머리(※후보를 선발할 때 일반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로 뽑기로 했기 때문에 지역구관리가 매우 중요해졌다. 박 대통령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이 지역구관리에 한눈을 팔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음은 콩밭에
멈춰버린 개혁

지역구관리에 가장 열심인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다. 황 부총리는 현재 세종시에서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으면서도 지역구인 인천 연수구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거의 매주 세종시에서 인천까지 올라와 지역구에 있는 교회 예배에 참여할 정도라고 한다.

또 박 대통령은 개혁을 부르짖고 있지만 황 부총리는 총선을 의식해 민감한 현안들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정부는 정원 감축을 통해 대학 구조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황 부총리는 지방대 살리기, 유학생 유치 확대 방안, 재외동포 전용 학과 정원 외 개설 등 대학 구조 개혁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의도 어느새 뒷전으로 밀렸다. 사실상 표가 되지 않는 일에는 나서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황 부총리가 자기정치만 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물론 황 부총리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 황 부총리의 지역구에 거물급 인사들이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지역 정가에서는 송영길 전 인천시장이 연수구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삼둥이 아빠로 유명한 탤런트 송일국의 출마설도 들린다. 송일국은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인기가 대단해 인천에선 ‘박 대통령이 직접 출마해도 송일국은 이길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황 부총리로서는 벌써부터 지역구관리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황 부총리는 지난 15대 총선부터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만 내리 5선을 했다.

제2의 유승민 사태 터질까?
대통령-친박 장관 갈등 조마조마

최경환 경제부총리 역시 지역구 행보로 인해 비판을 받고 있다. 최 부총리는 지난 5월 초 이미 “나는 본래 정치인이며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의 경고 이후에는 “일단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겠다”며 뉘앙스가 바뀌었지만 총선 불출마 선언만큼은 하지 않고 있다. 최 부총리는 경제 살리기라는 중책을 맡고 있지만 어떤 정책을 내놔도 이제 곧 그만둘 사람인데 약발이 먹힐 리가 없다.

경제정책은 연속성이 가장 중요하다. 장관이 바뀐 후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버리면 떠난 장관이 책임져 주지 않는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구조개혁이 지지부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노사정위원회도, 최저임금위원회도 잇달아 파행을 겪는 이면에는 ‘시한부장관’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최 부총리는 경제부총리를 맡고 있는 동안에 지역구인 경북 경산·청도에 예산 밀어주기를 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지난해 예산안 심사에서 경산 ‘글로벌 코즈메틱 비즈니스센터’ 건립비용은 보건복지부가 낸 예산안엔 없었으나 기재부가 신규로 10억원 예산을 편성해 국회를 통과했다. 청도 세계코미디 예술제도 예산 심의 때 4억원이 증액됐다. 야권은 ‘초이 예산’이라며 최 부총리를 비판했다.


찍어낼까?
반기들까?

다른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특히 유일호, 유기준 장관은 올해 3월에 임명됐는데 내년 1월까지 재직해도 재직 기간이 10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장관 취임 후 부처업무 파악하는 데만 몇 달이 걸렸을 텐데 남은 기간 동안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유 해수부장관의 경우는 내년 1월 전에 사퇴한다면 세월호특위 활동의 마무리도 못하고 떠나게 된다.

일각에선 장관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조기 교체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 대통령의 입장에서도 친박 의원들이 총선에서 최대한 많이 살아 돌아와야 후반기 국정 운영이 원활해진다. 빠르면 추석을 전후에 핵심 친박 장관들이 당에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어찌됐든 청와대와 장관들의 입장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으면 양측이 정면충돌하게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아있다.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현기환 정무수석, 총선 불출마

“대통령 위해 결단 내렸다”

친박 장관들이 총선 출마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는데 현기환 신임 청와대 정무수석은 총선 불출마를 결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무수석은 지난 19대 총선에서도 친박 용퇴론에 밀려 출마를 포기한 바 있다.

이후 현 정무수석은 ‘총선 공천헌금 의혹’에 연루돼 당에서 제명되는 등 시련을 겪기도 했다. 무혐의 처분을 받고 지난 2013년 복당한 현 정무수석은 그동안 자신의 옛 지역구인 부산 사하갑에서 총선 출마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박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또 한 번 총선 출마를 포기하고 청와대에 입성하게 됐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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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수사 외압’ 의혹 산으로 가는 속사정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산으로 가는 속사정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마약 수사 외압 의혹이 제기된 지 2년이 지났다. 대통령실과 검찰이 어떻게 개입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유통·공급책들의 진술도 뒤집혔다. 백해룡 경정이 제기한 의혹이 과도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건에 연루된 세관 직원들도 수년간 겪은 억울함을 주장하고 나섰다.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는 분위기다. “거짓말할 사람은 아닌데….” <일요시사>와 만난 한 경찰의 말이다. 그는 2년 전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2과장이던 백해룡 경정과 마약 사건을 수사했다. 필로폰 74kg이라는 역대급 성과를 내 기뻐하던 수사팀의 분위기는 침울하다. 실제 누가 외압을 행사했고 개입했는지 의구심을 가지는 경찰도 많았으나 이제는 아니다. 과도한 의혹? 백 경정은 지금까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이 벌어진 원인으로 윤석열정부 대통령실과 검찰을 지목했다. 직접 노만석 전 검찰총장 권한대행과 통화했던 녹취를 언급하면서 검찰이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백 경정 수사팀에 지휘권이 없는 인사들이 수차례 연락을 취한 점은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와 비교해보면 ‘압력을 넣었다’는 맥락은 일치하지만 누가 압력을 행사했고 어떻게 대통령실과의 접촉 등이 이뤄졌는지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두 사건 모두 용산이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백 경정 팀의 수사에 허점이 있던 걸까? 백 경정이 지휘한 영등포서 마약수사팀이 말레이시아 조직의 마약 유통 과정을 들여다봤던 건 2년 전이다. 당시 수사팀은 “세관의 협조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하고 믿을 수 없었다. 당시 수사팀에 합류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허위 진술이 아니냐고 의견을 개진한 사람도 있었으나 진술이 상당히 구체적이었고, 진술한 당사자가 허위로 진술할 이유도 없었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조직원을 데리고 진술 검증을 위해 직접 공항을 찾아가 현장 조사에 나섰다. 조직원들은 공항에서 자신들이 들어온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했고 지원해준 세관 직원들의 얼굴까지 기억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 총책이 미리 준비해둔 옷을 입게 한 뒤 사진을 찍으며 “한국에 있는 보스에게 보내면 사진이 세관에 전달돼 세관 직원들이 옷을 보고 너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한국 세관 직원 2명의 사진을 위챗 채팅방에 올렸다. 조직원들은 총책의 말을 믿고 온몸에 마약을 감은 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향했다. 출국 심사는 순조로웠다. 아무런 제지 없이 2023년 1월27일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직원들은 공항에서 세관 직원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고, 이들의 안내를 받아 입국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이들이 탄 대한항공 항공편은 ‘일제 검역’ 대상으로 지정돼있었다. 반드시 검역구역을 통과해야 했는데 세관 측의 도움으로 검역을 거치지 않고 세관 구역으로 빠져나오는 게 가능했다. 영등포서 마약수사팀 의견 통일 안 돼 운반책들 “세관 도움 없었다” 주장 번복 조직원들과 현장 조사까지 마친 수사팀은 세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지만 관세청은 반대했다. 마약 조직의 허위 진술이라고 판단한 관세청은 영등포서의 브리핑에서 세관이 언급되는 걸 막으려 했던 건 사실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공항에서 말레이시아 유통책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고 이들을 인솔한 혐의를 받는 세관 직원의 경우 입국 당일 연차를 사용 중이었다. 관세청은 그의 GPS와 사진 기록 등을 토대로 실제 다른 지역에 있었음을 객관적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수사팀은 조직원들과 세관 직원들의 금전거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남부지검에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으나 “대가를 주고받았다는 구체적 진술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수사팀은 “마약 유통책들은 하부 조직원들에 불과해 조직 총책과 세관 직원들 사이 대가 관계를 구체적으로 진술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수사팀은 다른 가족 명의로 돈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계좌를 폭넓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봤다. 백 경정은 과거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수사팀이 압수한 마약 총량은 74kg이다. 시가로 2000억원이 넘고 필로폰 단일 적발 압수량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며 “서울경찰청 차원에서 ‘세관’이 언급되면 안 된다거나 관련 내용을 삭제하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백 경정은 당시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이었던 조병노 경무관과 통화하기도 했다. 조 경무관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창구로 의심받는 해병대 단톡방 멤버를 통해 인사 청탁한 의혹을 받고 있다. 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범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언급한 인물이기도 했다. 백 경정은 당시 전화 통화에서 “저도 수사만 하는 사람인데 뭘 알겠나? 수사만 하는 것인데 일하다가 (숨이) 턱턱 막히고 그런다”며 “들리는 얘기들이 ‘대통령실에서 알게 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이런 얘기를 듣고 제가 심적 부담을 얼마나 느끼겠느냐”라고 말하자, 조 경무관은 “대통령실에서 또 연락이 왔나요?”라고 되물었다. 뒤집힌 분위기 백 경정은 같은 달 김찬수 전 영등포경찰서장이 전화를 걸어와 “이 사건 용산에서 알고 있다” “심각하게 보고 있다. 브리핑을 연기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서장은 이후 대통령실 행정관으로 영전하게 된다. 이 같은 여러 압박을 받은 백 경정은 결국 언론 브리핑을 앞두고 보도자료를 수정했다고 토로했다. 마약 수사는 주로 마약 유통·전달책의 첩보로 시작된다. 사정기관에 첩보를 제공하는 이들을 ‘야당’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형량 거래인 ‘플리바게닝’을 통해 허위 사실을 진술할 때가 있다. 베테랑 수사관들도 이들의 주장을 검증하다가 헛수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마약 수사에서 가장 어려운 게 물적 증거가 부족할 때다. 실제 검찰이든 경찰이 국정원의 첩보 또는 야당의 정보에 의존하다가 뒤통수를 맞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백 경정팀에 “세관의 협조가 있었다”고 진술했던 운반책 3명은 최근 급작스레 진술을 뒤집었다. 이들은 검경 합동수사단 조사에서 “세관 직원이 밀수를 도운 적 없다” “오래된 사건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백 경정이 주장해온 의혹의 뿌리가 흔들린 셈이다. 서울동부지검에 구성된 합동수사단도 백 경정이 제기한 의혹을 재검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백 경정 수사팀에 합류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마약 운반책들의 진술에 대해 조금 더 의심했어야 했다. 신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면서도 “그렇다고 백 경정의 판단이 100% 틀렸다고 볼 수도 없다. 수사 과정에서 수상한 부분이 많았던 건 사실 아니냐. 의혹이 말끔하게 해소됐으면 한다”고 했다. 마약 운반책들을 도왔다는 의혹을 받는 인천공항본부 세관 직원은 여러 명이다. 직원 대부분은 백 경정팀 수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우리가 마약 공범? 익명을 요구한 세관 직원 A씨는 <일요시사>에 “공황장애에 걸린 직원도 있고 확실하지도 않은 운반책들의 진술에 대해 ‘사실이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 경찰도 있었다. 그 자체가 우리가 범죄자라고 전제한 수사”라며 “2년이 지나도 나오는 게 없지 않나. 운반책들도 진술을 뒤집었다고 하는데 이젠 진상규명이 됐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마약 운반책들은 백 경정팀 조사에서 세관 직원들이 공항 밖 택시 승강장까지 동행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러나 진술에서 언급된 날 지목된 세관 직원들은 공항 건물 밖으로 나갔다 오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출입 기록에도 나오지 않는다. 세관 직원 안내로 바닥에 그려진 ‘그린 라인(초록색 줄)’을 따라 검사를 받지 않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는 진술에도 의심이 필요하다. 다른 세관 직원 B씨는 “운반책들이 2023년 1월에 그린 라인을 따라서 공항 밖으로 나갔다고 하는데 그린 라인은 그해 5월에야 생겼다.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고 수사했다면 운반책들의 진술 중 거짓말이 있다는 걸 알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세청 측은 “마약 조직들이 운반책을 안심시키기 위해 세관 직원을 포섭해 놨다고 거짓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혀 왔다. 유엔 국제마약통제위원회(INCB)도 “부정부패에 대한 허위 증언이 마약 단속 공무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범죄 단속을 위한 노력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다만 수사가 진행되자 일부 세관 직원이 휴대전화를 여러 번 초기화한 이유는 오리무중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그때 수사했을 때 직원 폰을 압수해 분석했는데 초기화된 걸 확인했었고 과거 자료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해당 직원은 직접 초기화한 후 사설 포렌식 업체에 찾아가 복구가 가능한지 확인하기도 했다”며 “사생활과 관련된 영상이 있다면서 휴대전화를 초기화했다고 주장하다가 세관과 관련된 인사에 대한 의전 영상이 있다면서 말을 바꿨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세관이 마약 운반책들을 뒤에서 은밀하게 도왔다는 의구심이 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 상황에 누가 의심을 안 하겠나”고 강조했다. 세관 직원들 “2년간 범죄자 취급···억울” 휴대전화 초기화는? 수상한 점 여전히 존재 백 경정의 합수단 파견은 본래 지난 14일까지였다. 그러다 전날인 13일, 경찰청은 서울동부지검 합동수사단에 파견된 백 경정의 파견 기간을 돌연 2개월 연장했다. 내년 1월14일까지로 늘린 것이다. 앞서 동부지검은 지난 10일과 12일 두 차례에 걸쳐 대검찰청에 백 경정 파견의 연장과 관련해 협의를 요청한 바 있다. 대검찰청은 동부지검의 요청을 검토한 뒤 경찰청에 연장을 요청했다. 동부지검은 백 경정을 팀장으로 한 별도의 수사팀을 구성했고 본인과 관련 없는 사건을 수사하도록 전결권을 부여했다. 그는 합수단에 합류한 지 약 한 달 만인 이날부터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 사용 권한을 받아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백 경정의 바람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수사관 4명 중 2명이 원대 복귀했고 인원은 충원되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백 경정은 “두 사람이 파견 기한 만료 전 복귀 의사를 밝혔는데, 파견 만료로 원대 복귀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백 경정에게 “개인 사정이 있어 파견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 경정은 “계속 수사에 차질을 겪어 왔다. 검찰은 압수수색에 스무명이 넘게 나가는 상황에서 남은 3명이 수사를 이어가겠나”라며 “팀을 꾸렸으면 적어도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구성은 갖춰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동부지검 관계자는 “어렵게 파견 인력을 확보했었다”면서 “백 경정의 충원 의사를 대검에 전달했지만 인력은 보내는 쪽인 경찰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백 경정과 동부지검 간 갈등은 끝나지 않는 모양새다. 백 경정은 최근 14일 A4 용지 12장 분량의 자체 보도자료를 만들어 개인 명의로 배포했다. 그는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사용 권한을 받았고 파견도 2개월 연장됐다”면서 “조만간 사건번호를 생성해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주도할 수사 범위에 ▲세관 마약 연루 의혹 ▲검찰의 마약 밀수 사건 은폐 ▲대통령실과 경찰 지휘부의 수사 외압 의혹 등을 포함한다고 했다. 이 중 수사 외압 의혹은 합수단 지휘 책임이 있는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이 지난달 파견 온 백 경정에게 별도 수사팀을 내줄 당시 수사 대상에서 제외한 분야다. 공중분해 위기 지속 영등포경찰서에서 세관 연루 의혹을 캐던 백 경정이 스스로 외압 피해자라 주장하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경찰 지휘부 등을 고발한 사건이라 직접 수사하면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우려가 커서다. 동부지검은 백 경정의 보도자료에 대해 “우리와 협의한 내용이 아니며 기존 수사 범위에서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동부지검 관계자는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상 경찰도 자신과 이해관계가 얽힌 사건은 회피하도록 규정돼있다”며 “자신이 당사자인 사건은 수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