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공포정치’ 시그널 7

“지금은 신(新)유신시대?” 유승민은 시작에 불과하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친박계 사퇴압박을 끝내 버티지 못했다. 박근혜정부 하에서 꿈꿨던 ‘신보수’는 ‘일장춘몽’에 그치고 말았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우려가 정가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는 결국 ‘유승민 찍어내기’에 성공했다. 지난 8일 새누리당은 비공개 의원총회를 열어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의 거취문제를 논의했고 ‘박수 추인’을 통해 사퇴를 권고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당내 여론이 기운 것을 확인한 김무성 대표는 의총 직후 결과를 알렸고, 유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을 열어 사퇴의 뜻을 밝혔다.

공포정치
거부권정국

유 전 원내대표 사퇴를 전후로 정치권에서는 개헌론이 다시 불붙었다. 박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이 ‘제왕적 대통령제’에 의한 폐단이라는 것이다. 비박계를 중심으로 통치체제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잖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유 전 원내대표의 사퇴를 두고 ‘공포정치’의 서막일 뿐이라고 보고 있다. 정가에서 나돌고 있는 대표적인 시그널을 종합해 보면 크게 7가지로 정리 가능하다.

첫째, 단연 유승민 찍어내기다. 지난 8일 비공개 의총에서 박수 추인으로 유 전 원내대표의 거취를 결정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북한식’이라며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역사학자 전우용씨는 유 전 원내대표의 사퇴 소식이 알려진 직후 자신의 SNS를 통해 “방금 새누리당이 ‘의사결정방식’을 조선노동당식으로 바꿨다”며 “이제 ‘국가운영방식’이 북한식으로 바뀔 차례”라고 비판했다.

원조 친박에서 최근 탈박으로 통하고 있는 새누리당 이혜훈 전 최고위원은 복수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권력자가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국회의원의 투표를 방해하는 식으로 하면 북한식”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당초 유 전 원내대표의 거취를 표결로 정하자는 여론에 김 대표가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을 두고 한 말이다.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시기 정립된 정치용어인 공포정치는 ‘정권을 유지 획득하기 위하여 대중에게 공포감을 주는 정치’라고 정의된다. 즉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은 박근혜정부가 보여주는 모습이 이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집권 3년 차를 맞아 권력에 힘을 싣기 위해 펼치는 일련의 과정이 과거 반대파를 숙청하면서 유지된 정권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는 주장이다. 유 전 원내대표에게 ‘정치적 사형’을 선고했다는 점이 이를 잘 대변한다는 의견이다.

둘째, 과거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한 ‘개인행로’ 발언이 그것이다. 지난 7일 새누리당이 유 전 원내대표 거취문제로 갑론을박을 주고받고 있을 때 청와대에서는 박 대통령이 또 다른 발언을 해 화제가 됐다.

유승민 사퇴
정치적 사형

박 대통령은 회의자리에서 “(국무위원들은) 국민을 대신해서 각 부처를 잘 이끌어 주셔야 한다. 여기에는 개인적 행로가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국무위원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 해석하고 있다. 최근 20대 총선·개각 소식과 맞물려 정치인 출신 국무위원 5명에 대한 거취가 이슈화 된 바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황우여 사회부총리는 물론 유기준 해양수산부, 유일호 국토교통부, 김희정 여성가족부장관 등이 내년 4월 치러질 총선을 준비하기 위해 정치계로 복귀할 것이란 내용이다.


이러한 박 대통령 발언은 과거 유 전 원내대표를 겨냥해 한 ‘배신의 정치’와 맞물려 더욱 주목받았다. 지난달 25일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유 당시 원내대표를 향해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께서 심판을 해주셔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결국 해당 발언으로 인해 유 원내대표가 사퇴했듯, 개인행로 발언은 국무위원들이 여의도로 이탈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해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박 대통령의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유승민 찍어내기…비박계 사살 신호탄
대통령 사인에 너도나도 ‘5분 대기조’

셋째, 황교안 국무총리의 공직기강 강화 움직임이다. 복수의 언론은 당시 법무부장관에서 총리후보자로 내정됐을 때부터 이러한 점에 주목해왔다. 특히 황 총리가 남다른 국가관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향후 ‘군기잡기’로 표출될 수 있다는 분석이 쏟아졌다.

황 총리의 이러한 모습은 지난 4월 중 있었던 ‘신임검사 임명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황교안 당시 법무부장관은 과천정부청사에서 신임검사들이 애국가를 1절부터 4절까지 완창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 “헌법 가치 수호는 나라사랑에서 출발하고, 나라사랑의 출발은 애국가”라며 “기본이 애국가인데 다 잘 부를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황 총리의 애국가 중시 성향은 즉각 관련 부처로 반영됐다.

넷째는 인사혁신처의 애국가 면접 논란이다. 지난 4일 경기도 수원에서 치러진 9급 세무직공무원 면접장에서는 면접관이 애국가 4절을 물어보는가 하면 국기에 대한 맹세, 태극기 내 괘 이름과 모양을 물어봐 논란이 됐다.

당시 면접을 다녀온 사람의 말에 따르면 애국가 4절 가사를 안다고 답하면 ‘한번 불러보라’고 시키는가 하면 ‘국기에 대한 맹세’를 읊어 보라고 주문했다. 개정 이전 맹세문을 외우자 ‘바뀐 것은 모르냐’고 되묻기도 했다. 당시 면접자는 물론 교육계 관계자들 모두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한목소리로 질타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면접 질문이 나온 원인은 인사혁신처에서 공무원시험 면접과 관련해 ‘공직 가치관’ 평가를 강화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혁신처가 ‘스펙’보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면서 평가 수단으로 애국가를 부르게 했다는 것이다. 황 총리의 애국가 강조 성향 때문 아니냐는 비판이 가능하다.

개인행로 불허
공직기강 강화


다섯째, 청와대가 내부감찰을 실시해 행정관 3명이 사퇴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청와대 행정관 3명은 지난달 정보보안 문제와 관련해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의 감찰을 받아왔고 결국 사퇴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문제가 되는 부분은 내부감찰 이유가 언론에 ‘법조인 총리 기용설’을 흘렸기 때문이라고 알려지면서 ‘입조심 주의보’가 발령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6일 민경욱 대변인은 브리핑 중 행정관 3명의 퇴직에 대한 질문에 “인사 문제이고 내부감찰 문제인 만큼 논평을 삼가겠다”고 밝혔다.

여섯째, 청와대가 감사원 사무총장직에 외부인사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가장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후보가 검사 출신인 이완수 변호사라는 측면에서 기강잡기 차원의 인사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공직기강 강화 입단속 시키는 청와대
정부부처 검사 출신 기용 사정 준비?

감사원 사무총장의 역할을 보면 박 대통령이 내부단속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사무총장은 감사원법 제19조 2항에 따라 감사원장의 명을 받아 사무처의 사무를 관장하며 소속 직원을 지휘하고 감독한다. 감사원이 정부부처과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하는 감사기관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공직사회를 단속할 수 있는 최상의 직위 중 하나가 감사원 사무총장직이라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 변호사가 황 총리의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고등학교 2년 후배라는 점을 들어 이번에도 ‘수첩인사’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일곱째, 김현웅 법무부장관의 인사청문회가 통과되면서 이제 본격적인 사정정국이 드리울 것이란 의견이다. 특히 황 총리가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뒤를 이어 비리와의 전쟁을 선포할 것으로 보여 정계는 물론 재계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 사태가 비리와의 ‘정전’이 하닌 ‘휴전’을 불러왔다고 본다면 김 장관 임명을 기점으로 다시 전쟁을 선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부 의원들은 정치인 사정의 수단으로 기업을 먼저 건드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어 눈길이 간다. 분양대행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새정치연합 박기춘 의원이 좋은 예라는 것이다.

그 외에도 해외자원개발 비리와 관련해 김신종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을 소환조사 하는 것, 탈세·횡령 혐의로 박성철 신원그룹 회장을 조사한 것, 지난 3일 포스코그룹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를 전격 압수수색한 것이 이러한 기조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 주장한다.

고강도 사정
·외부 단속

헝가리 출신의 영국 사회학자 프랭크 푸레디가 쓴 <공포정치>라는 책의 부제는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다. 내용을 살펴보면 공포정치는 이념을 가리지 않고 사회의 불안을 먹고 성장한다. 사회라는 것이 정치인·학자 등 사회지도부를 포함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박 대통령이 불러온 ‘거부권 정국’에 상당수의 지식인·정치인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불안이 친박계의 결속을 불렀고 유 전 원내대표의 사퇴를 낳았다.

정가는 ‘유신’을 우려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정의당 등 야권은 한목소리로 ‘유신의 부활’을 걱정하고 있다. 여권 비박계는 일련의 사퇴과정을 두고 ‘유신적 발상’이라며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 공안정국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일맥상통한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가운데 당··청에서 들려오는 시그널이 어떤 식의 결말로 귀결될지 국민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진중권의 날선 일침
유승민 찍어내기 ≒ 북한의 숙청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수가 지난 8일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사퇴를 북한의 숙청에 빗대어 표현해 화제다. 

진 교수는 유 전 원내대표가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직후 개인 SNS를 통해 “방금 의원 동무들의 열화 같은 박수로 공화국 최고 존엄을 모욕한 공화국 반동분자 유승민이 숙청됐답니다”라며 “다음 숙청 대상은 당 권력 서열 1위인 김무성 동지겠죠”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이어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공주님에게서 나오거든요”라고 현 상황을 풍자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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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