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메르스 정국’ 탈출 플랜

“국민은 나 몰라라~자기 살길만?”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메르스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예상치 못한 메르스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어느새 임기 중반에 접어든 박 대통령으로서는 하루빨리 메르스 정국에서 벗어나야 임기 후반기 국정운영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의 메르스 정국 탈출 플랜을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예상치 못한 메르스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어떤 악재에 휘말려도 최소한 40%대의 지지율을 유지해 그동안 콘크리트 지지율로 불려왔었다. 하지만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메르스 사태가 터진 이후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10.1%포인트나 폭락해 34.9%까지 밀렸다. 메르스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정부의 부실 대응을 두고 여론이 크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부실 대응
조기 레임덕

메르스 대응과 관련해 박근혜정부는 실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당초 정부는 첫 확진환자가 나온 이후에도 메르스는 전염력이 매우 낮은 질병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어느새 확진자 수는 2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메르스 사태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세월호 사고 이후 달라지겠다고 했지만 메르스 사태 초동 대응 실패는 세월호 때와 판박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하루빨리 메르스 사태로 이반된 민심을 수습해야만 한다. 시기를 놓친다면 임기 후반기에는 조기 레임덕에 빠져 ‘식물대통령’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메르스 정국에서 탈출하기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정치권에서는 박근혜정부가 메르스 탈출 전략으로 대규모 개각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고 있다. 무엇보다 메르스 사태가 수습되고 나면 초기 대응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과 박인용 국민안전처장관에 대한 문책성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악화된 여론을 감안할 때 두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긴 어렵다. 문 장관도 야권의 자진사퇴 요구에 대해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두 사람과 함께 20대 총선 출마 가능성이 높은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황우여 사회부총리, 김희정 여성가족부장관 등도 이번 기회에 교체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올해 3월 입각한 유기준 해양수산부장관과 유일호 국토교통부장관은 재직기간이 짧아 연말까지는 교체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아울러 박근혜정부 출범과 함께 내각에 입성했던 일부 장관들의 경우도 집권 3년 차를 맞아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현 정부 출범 당시 임명된 장관은 윤병세 외교, 이동필 농림축산식품, 윤상직 산업통상자원, 윤성규 환경부장관 등이 있다.

방미 추진
개각 임박

박 대통령의 연내 방미 재추진도 메르스 탈출 전략의 하나로 보인다. 정부는 메르스 사태로 연기 된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일정을 다시 정하기 위한 협의에 착수했다. 정부는 박 대통령의 방미를 반드시 연내에 관철 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방미의 최대 의제는 ‘북핵 문제’다. 최근 북한이 핵과 관련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방미를 서두르고 있는 이유는 외교적인 이유보다는 국내 상황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해외 순방에 나설 때마다 언론의 주목을 받고 ‘세일즈 외교’ 실적이 상세히 소개돼 귀국 뒤 지지율이 오르는 ‘순방 효과’를 톡톡히 봐왔다.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미국을 다녀오고 나면 지지율이 다시 40% 중반까지 회복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박 대통령이 북한을 메르스 탈출 카드로 이용할 가능성도 있다. 전격적인 대북 화해 메시지 등을 통해 남북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면 여론의 시선이 남북관계에 쏠리면서 메르스 정국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 편성 역시 회심의 메르스 정국 탈출 카드로 꼽힌다. 정부는 추경을 포함한 15조원대 이상의 재정을 투입해 메르스로 침체된 경기부양에 나설 계획이다.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이번 정부 들어서 두 번째 추경이다. 올해 추경을 통해 마련되는 재정은 메르스 사태와 가뭄으로 인한 피해를 추스르고, 이로 인해 급속하게 위축된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최우선으로 쓰일 예정이다. 특히 내수 진작을 위한 일자리 창출 사업 등에 상당액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추경 규모는 세출 리스트에 근거해 내달 초쯤 추후 당정 협의를 거쳐 결정될 예정이다. 정부는 추경 외에 지방재정 집행률을 작년보다 1%포인트 올려 올해 지방재정 지출을 약 3조원 늘리도록 하는 등 다양한 경기보강 대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전방위 사정정국으로 국면전환?
대규모 개각, 문형표도 자를까?

당초 정부와 새누리당은 이번 추경 규모에 대해 이견이 있었다. 정부는 경기 진작을 위해 최소 10조원 이상의 추경을 짜야한다고 주장했지만, 새누리당에서는 너무 추경 규모가 커 재정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과거에는 추경 편성 과정에서 여당이 과감한 추경을 요구하면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반대하는 게 통상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번 메르스 추경은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평소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던 박 대통령이 이런 무리한 추경을 강행한 것을 보면 메르스 사태로 인한 국정동력 상실 위기감이 생각보다 컸던 것 같다. 박 대통령의 초조함이 엿보이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를 통해 메르스 정국 탈출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메르스 사태 초기 대응 실패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지난 24일 “초기 실패부터 다시 되짚어보면서 대통령의 사과를 포함해 우리 사회 모든 부분이 각자 철저히 반성문을 써내려가야 한다”면서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은 제대로 고쳐야한다”고 강조했고, 하태경 의원도 “(박 대통령이)사과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사과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당초 삼성은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초기 대응에 실패해 국내에 메르스가 급격히 확산됐다는 비판으로 궁지에 몰려있었다. 이에 이 부회장은 지난 23일 직접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책임지는 리더십’으로 호평을 받았다.

사과할까?
회피할까?

이날 이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통해 “환자분들은 저희가 끝까지 책임지고 치료해 드리겠다”며 “관계 당국과도 긴밀히 협조해 메르스 사태가 이른 시일 안에 완전히 해결되도록 모든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메르스 책임론에도 불구하고 이날 삼성그룹주는 일제히 강세를 보였다. 박 대통령 역시 메르스 사태를 수습하고 나면 적절한 시점에 사과 또는 유감을 표명하면서 감염병 방역체계 전반에 대한 개선책을 내놓는다면 지지율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잇따른 인사실패와 세월호 참사, 청와대 비선실세 논란 등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과다운 사과를 한 적이 없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이번에도 박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기보다는 보건복지부장관이나 총리 등이 대신 사과하거나 박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하는 선에서 마무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추경 편성 등 선물 보따리 내놓을 듯
이재용 대국민사과 타산지석 삼아야


박 대통령의 파격적인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역시 메르스 정국 탈출 카드의 하나로 보는 시각이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5일 거부권 행사를 선언하면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를 했다며 차기 총선에서 심판해 달라는 발언까지 했다.

메르스 사태 이후 박 대통령이 여론의 질타를 받자 이틈을 타 당내에서는 비박계가 본격적으로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메르스 사태로 당청관계가 역전될 위기에 처하자 박 대통령이 비박계를 정면 조준함으로써 임기 후반기 국정운영에서도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박 대통령의 이번 발언의 강도는 새누리당과 아예 결별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강했다.

박 대통령은 유 원내대표를 포함한 비박계 의원을 겨냥해 지난 총선을 상기시키며 “정치적으로 (나를) 선거수단으로 삼아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거부권 행사는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박 대통령의 비박계 군기잡기가 더욱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박계 군기잡기
메르스 덮을까?


마지막으로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대대적인 야권사정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려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례로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성완종 전 회장이 돈을 건넸다고 직접 지목한 김기춘·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서면조사만 했지만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에 대해서는 직접 소환조사를 했다.

소환 조사 기준이 오락가락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검찰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전 대표인 김한길 의원을 소환조사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히자 야권은 정치 검찰의 행태라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검찰은 또 지난 22일에는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의원의 처남 취업청탁 의혹과 관련해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본사와 소공동 한진 본사, 공항동 대한항공 사무실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문 의원은 지난해 12월 보수단체로부터 고발당했는데 왜 하필 7개월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압수수색이 이뤄졌는지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과연 박 대통령의 메르스 탈출 플랜은 성공할 수 있을까?

 

<mi737@ilypsisa.co.kr>

 


<기사 속 기사> 박근혜정부 들어 공무원 범죄 급증

박근혜정부 들어 공무원 범죄가 급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정부 들어 발생한 공무원 범죄는 이미 노무현·이명박정부를 제치고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유형별로는 직무유기가 가장 많았으며 국가기관 고위공무원이 많았다.

고위직 범죄 두드러져

지난 24일 형사정책연구원의 한국의 범죄현상과 형사정책(2014) 보고서에 따르면 박근혜정부 첫해인 2013년 발생한 공무원 범죄는 2466건이다. 2002년 이후 최다를 기록한 2012년(2865건)보다는 약 14%가량 감소했다. 하지만 앞 두 정권의 연평균 발생건수와 비교하면 노무현정부 1626.6건, 이명박정부 2099.6건보다 각각 50%, 17% 이상 많았다. 이는 공무원범죄가 각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고려할 때 이례적이라는 설명이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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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