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메르스 정국’ 탈출 플랜

“국민은 나 몰라라~자기 살길만?”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메르스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예상치 못한 메르스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어느새 임기 중반에 접어든 박 대통령으로서는 하루빨리 메르스 정국에서 벗어나야 임기 후반기 국정운영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의 메르스 정국 탈출 플랜을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예상치 못한 메르스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어떤 악재에 휘말려도 최소한 40%대의 지지율을 유지해 그동안 콘크리트 지지율로 불려왔었다. 하지만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메르스 사태가 터진 이후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10.1%포인트나 폭락해 34.9%까지 밀렸다. 메르스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정부의 부실 대응을 두고 여론이 크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부실 대응
조기 레임덕

메르스 대응과 관련해 박근혜정부는 실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당초 정부는 첫 확진환자가 나온 이후에도 메르스는 전염력이 매우 낮은 질병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어느새 확진자 수는 200명에 육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메르스 사태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세월호 사고 이후 달라지겠다고 했지만 메르스 사태 초동 대응 실패는 세월호 때와 판박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하루빨리 메르스 사태로 이반된 민심을 수습해야만 한다. 시기를 놓친다면 임기 후반기에는 조기 레임덕에 빠져 ‘식물대통령’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메르스 정국에서 탈출하기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정치권에서는 박근혜정부가 메르스 탈출 전략으로 대규모 개각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고 있다. 무엇보다 메르스 사태가 수습되고 나면 초기 대응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과 박인용 국민안전처장관에 대한 문책성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악화된 여론을 감안할 때 두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긴 어렵다. 문 장관도 야권의 자진사퇴 요구에 대해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두 사람과 함께 20대 총선 출마 가능성이 높은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황우여 사회부총리, 김희정 여성가족부장관 등도 이번 기회에 교체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올해 3월 입각한 유기준 해양수산부장관과 유일호 국토교통부장관은 재직기간이 짧아 연말까지는 교체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아울러 박근혜정부 출범과 함께 내각에 입성했던 일부 장관들의 경우도 집권 3년 차를 맞아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현 정부 출범 당시 임명된 장관은 윤병세 외교, 이동필 농림축산식품, 윤상직 산업통상자원, 윤성규 환경부장관 등이 있다.

방미 추진
개각 임박

박 대통령의 연내 방미 재추진도 메르스 탈출 전략의 하나로 보인다. 정부는 메르스 사태로 연기 된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일정을 다시 정하기 위한 협의에 착수했다. 정부는 박 대통령의 방미를 반드시 연내에 관철 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방미의 최대 의제는 ‘북핵 문제’다. 최근 북한이 핵과 관련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방미를 서두르고 있는 이유는 외교적인 이유보다는 국내 상황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은 해외 순방에 나설 때마다 언론의 주목을 받고 ‘세일즈 외교’ 실적이 상세히 소개돼 귀국 뒤 지지율이 오르는 ‘순방 효과’를 톡톡히 봐왔다.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미국을 다녀오고 나면 지지율이 다시 40% 중반까지 회복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박 대통령이 북한을 메르스 탈출 카드로 이용할 가능성도 있다. 전격적인 대북 화해 메시지 등을 통해 남북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면 여론의 시선이 남북관계에 쏠리면서 메르스 정국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 편성 역시 회심의 메르스 정국 탈출 카드로 꼽힌다. 정부는 추경을 포함한 15조원대 이상의 재정을 투입해 메르스로 침체된 경기부양에 나설 계획이다.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이번 정부 들어서 두 번째 추경이다. 올해 추경을 통해 마련되는 재정은 메르스 사태와 가뭄으로 인한 피해를 추스르고, 이로 인해 급속하게 위축된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최우선으로 쓰일 예정이다. 특히 내수 진작을 위한 일자리 창출 사업 등에 상당액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추경 규모는 세출 리스트에 근거해 내달 초쯤 추후 당정 협의를 거쳐 결정될 예정이다. 정부는 추경 외에 지방재정 집행률을 작년보다 1%포인트 올려 올해 지방재정 지출을 약 3조원 늘리도록 하는 등 다양한 경기보강 대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전방위 사정정국으로 국면전환?
대규모 개각, 문형표도 자를까?

당초 정부와 새누리당은 이번 추경 규모에 대해 이견이 있었다. 정부는 경기 진작을 위해 최소 10조원 이상의 추경을 짜야한다고 주장했지만, 새누리당에서는 너무 추경 규모가 커 재정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과거에는 추경 편성 과정에서 여당이 과감한 추경을 요구하면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반대하는 게 통상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번 메르스 추경은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평소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던 박 대통령이 이런 무리한 추경을 강행한 것을 보면 메르스 사태로 인한 국정동력 상실 위기감이 생각보다 컸던 것 같다. 박 대통령의 초조함이 엿보이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를 통해 메르스 정국 탈출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메르스 사태 초기 대응 실패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지난 24일 “초기 실패부터 다시 되짚어보면서 대통령의 사과를 포함해 우리 사회 모든 부분이 각자 철저히 반성문을 써내려가야 한다”면서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은 제대로 고쳐야한다”고 강조했고, 하태경 의원도 “(박 대통령이)사과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사과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당초 삼성은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초기 대응에 실패해 국내에 메르스가 급격히 확산됐다는 비판으로 궁지에 몰려있었다. 이에 이 부회장은 지난 23일 직접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책임지는 리더십’으로 호평을 받았다.

사과할까?
회피할까?

이날 이 부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통해 “환자분들은 저희가 끝까지 책임지고 치료해 드리겠다”며 “관계 당국과도 긴밀히 협조해 메르스 사태가 이른 시일 안에 완전히 해결되도록 모든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메르스 책임론에도 불구하고 이날 삼성그룹주는 일제히 강세를 보였다. 박 대통령 역시 메르스 사태를 수습하고 나면 적절한 시점에 사과 또는 유감을 표명하면서 감염병 방역체계 전반에 대한 개선책을 내놓는다면 지지율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잇따른 인사실패와 세월호 참사, 청와대 비선실세 논란 등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과다운 사과를 한 적이 없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이번에도 박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기보다는 보건복지부장관이나 총리 등이 대신 사과하거나 박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하는 선에서 마무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추경 편성 등 선물 보따리 내놓을 듯
이재용 대국민사과 타산지석 삼아야


박 대통령의 파격적인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역시 메르스 정국 탈출 카드의 하나로 보는 시각이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5일 거부권 행사를 선언하면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를 했다며 차기 총선에서 심판해 달라는 발언까지 했다.

메르스 사태 이후 박 대통령이 여론의 질타를 받자 이틈을 타 당내에서는 비박계가 본격적으로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메르스 사태로 당청관계가 역전될 위기에 처하자 박 대통령이 비박계를 정면 조준함으로써 임기 후반기 국정운영에서도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박 대통령의 이번 발언의 강도는 새누리당과 아예 결별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강했다.

박 대통령은 유 원내대표를 포함한 비박계 의원을 겨냥해 지난 총선을 상기시키며 “정치적으로 (나를) 선거수단으로 삼아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거부권 행사는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박 대통령의 비박계 군기잡기가 더욱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박계 군기잡기
메르스 덮을까?


마지막으로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대대적인 야권사정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려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례로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성완종 전 회장이 돈을 건넸다고 직접 지목한 김기춘·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서면조사만 했지만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에 대해서는 직접 소환조사를 했다.

소환 조사 기준이 오락가락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검찰이 새정치민주연합의 전 대표인 김한길 의원을 소환조사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히자 야권은 정치 검찰의 행태라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검찰은 또 지난 22일에는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의원의 처남 취업청탁 의혹과 관련해 서울 여의도 한진해운 본사와 소공동 한진 본사, 공항동 대한항공 사무실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문 의원은 지난해 12월 보수단체로부터 고발당했는데 왜 하필 7개월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압수수색이 이뤄졌는지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과연 박 대통령의 메르스 탈출 플랜은 성공할 수 있을까?

 

<mi737@ilypsisa.co.kr>

 


<기사 속 기사> 박근혜정부 들어 공무원 범죄 급증

박근혜정부 들어 공무원 범죄가 급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정부 들어 발생한 공무원 범죄는 이미 노무현·이명박정부를 제치고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유형별로는 직무유기가 가장 많았으며 국가기관 고위공무원이 많았다.

고위직 범죄 두드러져

지난 24일 형사정책연구원의 한국의 범죄현상과 형사정책(2014) 보고서에 따르면 박근혜정부 첫해인 2013년 발생한 공무원 범죄는 2466건이다. 2002년 이후 최다를 기록한 2012년(2865건)보다는 약 14%가량 감소했다. 하지만 앞 두 정권의 연평균 발생건수와 비교하면 노무현정부 1626.6건, 이명박정부 2099.6건보다 각각 50%, 17% 이상 많았다. 이는 공무원범죄가 각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고려할 때 이례적이라는 설명이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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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