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류계 덮친 메르스 공포 '속사정'

텐프로 뚫렸다?…파리 날리는 룸살롱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여파로 인해 국내 경제가 침체되자 정부가 내수부진 극복 및 경기부양을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메르스가 ‘지하경제’에도 깊숙이 침투해 유흥업계가 울상을 짓고 있다. 일파만파 번진 사설정보지(일명 찌라시)에 따르면 강남의 유명업소들은 이미 메르스에 오염돼 사실상 영업이 정지된 상태다. 메르스가 잠잠해지기 전까지는 업소 근처에 얼씬거리지 말라는 충고가 이어진다. 화류계까지 마비시킨 메르스 공포의 끝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자 A씨가 강남 유흥업소를 방문해 해당 업소의 일부 종업원이 자가 격리됐다는 사설정보지(일명 찌라시)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확산되는 가운데 A씨는 보건당국 조사에서 해당 유흥업소를 방문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관리할 수도…
보건당국 난감
 
화류계를 뒤집어 놓은 사설정보지는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졌다. 사설정보지의 주 내용은 A씨가 서울 강남 지역의 5개 유흥업소를 다녀간 것으로 확인돼 유흥업계가 발칵 뒤집혔다는 것이다. A씨로 인해 2개 업소 여종업원에게 자가 격리 조치가 내려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1일 보건당국에 따르면 현재까지 A씨로 인해 격리된 유흥업소 종업원은 한 명도 없다. 사설정보지가 급속도로 확산되자 보건당국은 병원에 입원 중인 A씨를 찾아가 유흥업소 방문 여부까지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정보지에 거론된) 유흥업소를 간 적이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보건당국은 A씨의 자택 엘리베이터 CCTV 등을 확인했다. A씨는 발열과 기침 등 본격적인 메르스 증상이 나타난 지난 9일부터 확진 판정을 받을 때까지 주로 자택에서 지냈다. 그러나 9일 오후 집을 나서 다음 날 새벽에 귀가한 모습이 엘리베이터 CCTV에 포착됐다. 당국은 이를 토대로 A씨의 행선지를 추적하고 있다.
 
확진자 강남 밤업소들 출입 루머 확산
가게 명단 유포…사실상 개점휴업 상태
 
보건당국에 따르면 A씨는 당일 행선지에 대해 “사무실에 들렀다가 홀로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A씨의 관할 보건소 측은 “구체적인 행선지 확인을 위해 A씨의 차량 블랙박스 분석 등이 필요하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설정보지에 언급된 유흥업소 관계자는 유포자에 대한 수사를 경찰에 의뢰한 상태다.
 
 
강남 유흥업소와 보건당국을 긴장케 한 문제의 사설정보지 내용은 이랬다.
 
“강남 룸싸롱, 텐프로 메르스 공포. 이번에 제주도에 방문한 메르스 확진자 A씨가 강남 술집에 자주가는 사람인데 현재 A씨가 간 곳이 ‘2X’ ‘화XX’ ‘인XX’ ‘라XX’ ‘설XX’ 등 텐프로 위주이고 아가씨가 격리 조치된 곳은 현재까지 설XX, 인XX인데 확산될 가능성 높음. 이미 관련 업소 사람들은 쉬쉬하고 일부는 잠수만 탄 분위기. 술집 특성상 폐쇄 공간이고 위생상 신뢰할 수 없으며, 아가씨가 강제격리 되더라도 쉬쉬하므로 전염위험이 특히 높다고. 5월 테헤란로 쪽의 쩜오가 뚫린데 이어 이번에 텐프로까지 뚫리자, 당분간 강남 업소들은 아예 가지 말라는 의료계 종사자의 조언.”

강남 A급 업소

금지령에 울상
 
유흥업계로 번진 메르스 괴담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오피(오피스텔 성매매) 실장이라는 사람의 글이 빠르게 번졌다. “오피 실장인데 직원 메르스 걸림. 역학조사 때문에 72시간 동선 다 설명해야 된다고 직원한테 문자 왔는데 이 직원이 양심적으로 다 불어서 지금 난리 났다. 보건소 직원이 경찰에 알리지 않을테니 만난 사람들 다 말하라니까 다 분 것 같음. 열 받고 긴장되서 오늘 한끼도 못 먹었다. 3명으로 장사하는 구멍가겐데….”
 
괴담은 또 있었다. “에이즈 전문 의사에 의하면 메르스와 에이즈 바이러스가 결합할 경우 변종 슈퍼 바이러스가 돼 국가적 재앙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에이즈와 메르스는 절대 섞일 수 없는 바이러스라고 입을 모은다.
 
사설정보지에 언급된 업소들은 강남에서도 유명한 곳으로 손꼽힌다. 전통 텐프로 업소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20대 초중반으로 하루 100만∼150만원, 한 달 1500만∼250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고 알려진다. 이들은 주로 저녁 8시에 출근해 새벽 4시 전후에 퇴근한다. 저녁 8시쯤이나 새벽4시쯤에 강남 오피스텔 인근을 지나가면 업소에 출퇴근하는 직업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강남의 몇몇 유흥업소가 메르스에 뚫리면서 이 같은 모습이 예전 같지 않다고 전해진다.
  
메르스는 유흥업계에 큰 타격을 주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대표적으로 ‘보건증’을 들 수 있다. 유흥업소 종사자가 업소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보건소에서 보건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일반업소 종사자는 결핵·전염성피부질환·장티프스의 3개 질병에 대해 검사를 받지만 룸살롱 등 유흥업소 종사자는 AIDS·혈청·STD·클라미디어 등의 성적접촉에 의해 전염되는 질환에 대한 검사를 받고 이상이 없는 경우에만 보건증을 발급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메르스 발병 이후 보건증을 발급받기 위해 보건소를 찾는 직업여성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게 유흥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메르스 감염 사실을 숨기고 영업을 이어가는 직업여성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일거리 줄어들자
원정성매매 시도
 
상황이 이렇자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관내 유흥주점을 대상으로 메르스 확산 방지 및 예방을 위한 홍보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업소를 방문해 종업원들에게 자체 위생상태 청결유지를 당부하고 홍보전단지와 함께 마스크를 전달하고 메르스 주요 증상이 나타날 경우 신속히 메르스 대책본부나 보건소 상황실로 연락해 진료를 받도록 안내했다.
 
메르스로 인해 국내 유흥업계가 불황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지난 7일에는 일부 직업여성이 원정 성매매를 갔다가 현지 경찰에 붙잡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국 여성 2명은 원정 성매매를 갔다가 현지에서 적발됐다. 이들은 “메르스 때문에 한국 성매매업이 타격을 입어 대만으로 왔다”고 진술해 대만 언론으로부터 맹비난을 받았다. 성매매 단속에 나선 대만 경찰은 한국인 여성 검거가 잇따르자 조사 과정에서 메르스 검사까지 포함시켰다.
 
안마 등 유사성행위 업소 손님 뚝
‘전염 될라’ 아가씨들도 출근 꺼려
 
이들 중 고모(26)씨는 여대생으로 앞서 6일 타이베이 스린경찰국에 체포됐다. 경찰은 순찰 중 호텔에서 나오는 이 여성을 현장에서 붙잡았다고 전했다. 고씨는 “학비를 벌기 위해 이 일을 병행하고 있다”며 “최근 한국에 메르스가 확산되면서 관계 중 감염이 우려되는 데다 최근 고객이 줄어 지난달 28일 관광비자를 발급받아 대만으로 왔다”고 말했다.
 
대만 현지 언론은 고씨가 “어제 처음으로 나왔는데 경찰에 붙잡혔다”고 밝히자 경찰은 “한국인은 어떻게 매번 첫 번째에 붙잡힌다고 말하냐”며 그를 사회질서 및 이민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고 덧붙였다. 경찰 조사결과 고씨의 휴대전화에는 성매매 일정이 꽉 차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함께 현지언론은 “한국 여성의 1회 성매매 가격은 최소 1만대만달러(약 36만원) 이상으로 대만 현지 여성 가격보다 높지만 여전히 찾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들이 원정 성매매에 나서는 이유는 90일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고 한류 효과로 한국 여성들을 선호하는 현지 분위기 때문이다. 여기에 솜방망이 처벌도 한몫한다. 대만에서는 사회질서유지법에 따라 성관계 도중에 잡히면 50만원, 뚜렷한 물증이 없을 경우 5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데, 고씨 등 성매매 여성은 성매매 직전에 체포돼 고작 벌금 5만원만 내고 강제 추방됐다.
 
화류계가 손님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에는 술자리 감소도 한 몫 한다. 실제로 메르스 우려로 인해 술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진상 취객들로 북적거릴 6월이지만 일선 경찰 지구대는 차분한 모습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6월 첫째 주(6월 1∼7일)에 접수된 112 신고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9%(2만4129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메르스 못잡으면
지하경제도 위험
 
본격 여름에 접어들면서 바깥 활동이 많아지고 술 취한 사람이 늘어나면서 112 신고건수는 5월 첫째 주(5월4∼10일) 36만6530건, 둘째 주(5월11∼17일) 38만3394건 등 매주 증가하다 메르스가 확산 조짐을 보이자 이달 들어 감소세를 나타냈다. 술자리가 줄어드니 자연스레 음주운전도 감소했다. 유대운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메르스 첫 사망자가 발생한 지난 1일부터 15일까지 음주 교통사고는 603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1025건)에 비해 41.2% 줄었다. 전체 교통사고 역시 줄었다.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현대·동부·LIG·롯데 등 주요 손보사 5곳이 메르스 첫 사망자가 발생한 지난 1일부터 보름간 접수한 자동차 사고는 25만6919건이다. 이는 5월 첫 보름간(28만2926건)과 비교해 9.2% 감소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휴가철 메르스 비상
혹시나…불안한 마음에 ‘방콕’
 
본격적인 휴가철이지만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냉랭한 분위기다. 메르스 감염에 대한 우려와 불안으로 인해 여행 및 숙박업소 취소는 잇따르고 있고, 휴가준비 용품 판매로 한창 특수효과를 봐야 할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은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예년에는 휴가철 휴가준비상품 판매로 반짝 특수효과를 누렸지만 올해는 다르다. 백화점과 마트 등이 본격적인 판매조차도 못하고 매출이 금갑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여행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5월31일부터 6월17일까지 9만명 정도 예약을 취소했고, 대한항공도 6월1일부터 15일까지 중국인 관광객 등 8만여명이 예약을 취소했다. 메르스 확산이 여름 휴가철 해외여행 시장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변재일 국회의원(청주 상당·새정치민주연합)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국적 항공사별 국제선 예약 취소 현황’에 따르면 지난 5월31일부터 6월12일까지 13일간 17만4127명으로 집계됐다.
 
여름철 해외여행 수요를 짐작할 수 있는 외화 환전 규모도 축소되는 추세다. 은행권에서는 외화 환전 감소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어 내주부터는 전년 대비 감소세가 확연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 21일 시중은행 3곳을 대상으로 5월29일부터 6월18일까지 외화환전 취급 규모(달러화 환산)를 조사한 결과, 세 곳 모두 전년 대비 취급액이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숙박 등 여행 예약 취소 현실화
특수효과 기다린 휴가지 초비상
 
A은행은 14조8100만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 17조4100만달러보다 14.9% 감소했다. 이는 올해(1월1일∼6월18일) A은행의 외화 환전 감소폭 9.8%(139조5100만→125조8100만달러)보다 가파르다. B은행도 메르스 첫 환자 감염 이후 지난 18일까지 외화환전 규모가 9800만달러에 그쳐 전년 1조1500만달러보다 14.8% 감소했다. C은행도 올해 외화 환전이 전년 4조9400만달러에서 5조3800만달러로 8.9% 성장한 반면, 메르스가 발병된 5월29일 이후 환전 규모가 작년 5400만달러에서 올해 5000만달러로 8.0% 감소했다.
 
다른 시중은행은 환전 규모를 월말 집계한다는 이유로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메르스 확산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은 현재 진행형이다. 휴가철 소비는 소비 이연효과(점차적인 소비 증가)가 크지 않기 때문에 메르스가 3분기 이후에도 지속될 경우 국내소비지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카드결제 시장의 경우 이미 소비침체가 가속화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전달 마지막 주 대비 이달 첫째주 국내 주요 카드사들의 개인 신용판매(일시불·할부) 금액은 평균 13%가량 감소했다. 특히 백화점, 대형마트 같은 쇼핑 업종의 감소세가 전달 대비 평균 20% 이상 감소하고 숙박, 항공 업종도 10%가량 줄어들었다.
 
열차 이용률도 줄었다. 6월 첫째주 KTX 이용률은 79.2%로 지난해 같은 기간 99.2%와 비교하면 20%포인트 급감했다. 6월 둘째주 역시 KTX 이용률은 69.2%로 일주일 만에 10%포인트가 떨어졌다. 일반열차 이용률도 마찬가지다. 6월 첫째주 열차 이용률은 142.2%로 1년 전보다 52.8%포인트 감소했고, 둘째주 열차이용률은 125.5%로 25%포인트 줄었다.
 
특히 6월은 여름 휴가철의 길목으로 메르스 공포가 7∼8월까지 이어질 경우 여름 대목을 한꺼번에 날릴 수 있다는 점에서 관광업계는 노심초사하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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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