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류계 덮친 메르스 공포 '속사정'

텐프로 뚫렸다?…파리 날리는 룸살롱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여파로 인해 국내 경제가 침체되자 정부가 내수부진 극복 및 경기부양을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메르스가 ‘지하경제’에도 깊숙이 침투해 유흥업계가 울상을 짓고 있다. 일파만파 번진 사설정보지(일명 찌라시)에 따르면 강남의 유명업소들은 이미 메르스에 오염돼 사실상 영업이 정지된 상태다. 메르스가 잠잠해지기 전까지는 업소 근처에 얼씬거리지 말라는 충고가 이어진다. 화류계까지 마비시킨 메르스 공포의 끝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자 A씨가 강남 유흥업소를 방문해 해당 업소의 일부 종업원이 자가 격리됐다는 사설정보지(일명 찌라시)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확산되는 가운데 A씨는 보건당국 조사에서 해당 유흥업소를 방문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관리할 수도…
보건당국 난감
 
화류계를 뒤집어 놓은 사설정보지는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졌다. 사설정보지의 주 내용은 A씨가 서울 강남 지역의 5개 유흥업소를 다녀간 것으로 확인돼 유흥업계가 발칵 뒤집혔다는 것이다. A씨로 인해 2개 업소 여종업원에게 자가 격리 조치가 내려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1일 보건당국에 따르면 현재까지 A씨로 인해 격리된 유흥업소 종업원은 한 명도 없다. 사설정보지가 급속도로 확산되자 보건당국은 병원에 입원 중인 A씨를 찾아가 유흥업소 방문 여부까지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정보지에 거론된) 유흥업소를 간 적이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보건당국은 A씨의 자택 엘리베이터 CCTV 등을 확인했다. A씨는 발열과 기침 등 본격적인 메르스 증상이 나타난 지난 9일부터 확진 판정을 받을 때까지 주로 자택에서 지냈다. 그러나 9일 오후 집을 나서 다음 날 새벽에 귀가한 모습이 엘리베이터 CCTV에 포착됐다. 당국은 이를 토대로 A씨의 행선지를 추적하고 있다.
 
확진자 강남 밤업소들 출입 루머 확산
가게 명단 유포…사실상 개점휴업 상태
 
보건당국에 따르면 A씨는 당일 행선지에 대해 “사무실에 들렀다가 홀로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A씨의 관할 보건소 측은 “구체적인 행선지 확인을 위해 A씨의 차량 블랙박스 분석 등이 필요하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설정보지에 언급된 유흥업소 관계자는 유포자에 대한 수사를 경찰에 의뢰한 상태다.
 
 
강남 유흥업소와 보건당국을 긴장케 한 문제의 사설정보지 내용은 이랬다.
 
“강남 룸싸롱, 텐프로 메르스 공포. 이번에 제주도에 방문한 메르스 확진자 A씨가 강남 술집에 자주가는 사람인데 현재 A씨가 간 곳이 ‘2X’ ‘화XX’ ‘인XX’ ‘라XX’ ‘설XX’ 등 텐프로 위주이고 아가씨가 격리 조치된 곳은 현재까지 설XX, 인XX인데 확산될 가능성 높음. 이미 관련 업소 사람들은 쉬쉬하고 일부는 잠수만 탄 분위기. 술집 특성상 폐쇄 공간이고 위생상 신뢰할 수 없으며, 아가씨가 강제격리 되더라도 쉬쉬하므로 전염위험이 특히 높다고. 5월 테헤란로 쪽의 쩜오가 뚫린데 이어 이번에 텐프로까지 뚫리자, 당분간 강남 업소들은 아예 가지 말라는 의료계 종사자의 조언.”

강남 A급 업소

금지령에 울상
 
유흥업계로 번진 메르스 괴담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오피(오피스텔 성매매) 실장이라는 사람의 글이 빠르게 번졌다. “오피 실장인데 직원 메르스 걸림. 역학조사 때문에 72시간 동선 다 설명해야 된다고 직원한테 문자 왔는데 이 직원이 양심적으로 다 불어서 지금 난리 났다. 보건소 직원이 경찰에 알리지 않을테니 만난 사람들 다 말하라니까 다 분 것 같음. 열 받고 긴장되서 오늘 한끼도 못 먹었다. 3명으로 장사하는 구멍가겐데….”
 
괴담은 또 있었다. “에이즈 전문 의사에 의하면 메르스와 에이즈 바이러스가 결합할 경우 변종 슈퍼 바이러스가 돼 국가적 재앙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에이즈와 메르스는 절대 섞일 수 없는 바이러스라고 입을 모은다.
 
사설정보지에 언급된 업소들은 강남에서도 유명한 곳으로 손꼽힌다. 전통 텐프로 업소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20대 초중반으로 하루 100만∼150만원, 한 달 1500만∼250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고 알려진다. 이들은 주로 저녁 8시에 출근해 새벽 4시 전후에 퇴근한다. 저녁 8시쯤이나 새벽4시쯤에 강남 오피스텔 인근을 지나가면 업소에 출퇴근하는 직업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강남의 몇몇 유흥업소가 메르스에 뚫리면서 이 같은 모습이 예전 같지 않다고 전해진다.
  
메르스는 유흥업계에 큰 타격을 주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대표적으로 ‘보건증’을 들 수 있다. 유흥업소 종사자가 업소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보건소에서 보건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일반업소 종사자는 결핵·전염성피부질환·장티프스의 3개 질병에 대해 검사를 받지만 룸살롱 등 유흥업소 종사자는 AIDS·혈청·STD·클라미디어 등의 성적접촉에 의해 전염되는 질환에 대한 검사를 받고 이상이 없는 경우에만 보건증을 발급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메르스 발병 이후 보건증을 발급받기 위해 보건소를 찾는 직업여성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게 유흥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메르스 감염 사실을 숨기고 영업을 이어가는 직업여성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일거리 줄어들자
원정성매매 시도
 
상황이 이렇자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관내 유흥주점을 대상으로 메르스 확산 방지 및 예방을 위한 홍보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업소를 방문해 종업원들에게 자체 위생상태 청결유지를 당부하고 홍보전단지와 함께 마스크를 전달하고 메르스 주요 증상이 나타날 경우 신속히 메르스 대책본부나 보건소 상황실로 연락해 진료를 받도록 안내했다.
 
메르스로 인해 국내 유흥업계가 불황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지난 7일에는 일부 직업여성이 원정 성매매를 갔다가 현지 경찰에 붙잡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국 여성 2명은 원정 성매매를 갔다가 현지에서 적발됐다. 이들은 “메르스 때문에 한국 성매매업이 타격을 입어 대만으로 왔다”고 진술해 대만 언론으로부터 맹비난을 받았다. 성매매 단속에 나선 대만 경찰은 한국인 여성 검거가 잇따르자 조사 과정에서 메르스 검사까지 포함시켰다.
 
안마 등 유사성행위 업소 손님 뚝
‘전염 될라’ 아가씨들도 출근 꺼려
 
이들 중 고모(26)씨는 여대생으로 앞서 6일 타이베이 스린경찰국에 체포됐다. 경찰은 순찰 중 호텔에서 나오는 이 여성을 현장에서 붙잡았다고 전했다. 고씨는 “학비를 벌기 위해 이 일을 병행하고 있다”며 “최근 한국에 메르스가 확산되면서 관계 중 감염이 우려되는 데다 최근 고객이 줄어 지난달 28일 관광비자를 발급받아 대만으로 왔다”고 말했다.
 
대만 현지 언론은 고씨가 “어제 처음으로 나왔는데 경찰에 붙잡혔다”고 밝히자 경찰은 “한국인은 어떻게 매번 첫 번째에 붙잡힌다고 말하냐”며 그를 사회질서 및 이민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고 덧붙였다. 경찰 조사결과 고씨의 휴대전화에는 성매매 일정이 꽉 차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함께 현지언론은 “한국 여성의 1회 성매매 가격은 최소 1만대만달러(약 36만원) 이상으로 대만 현지 여성 가격보다 높지만 여전히 찾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들이 원정 성매매에 나서는 이유는 90일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고 한류 효과로 한국 여성들을 선호하는 현지 분위기 때문이다. 여기에 솜방망이 처벌도 한몫한다. 대만에서는 사회질서유지법에 따라 성관계 도중에 잡히면 50만원, 뚜렷한 물증이 없을 경우 5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데, 고씨 등 성매매 여성은 성매매 직전에 체포돼 고작 벌금 5만원만 내고 강제 추방됐다.
 
화류계가 손님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에는 술자리 감소도 한 몫 한다. 실제로 메르스 우려로 인해 술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진상 취객들로 북적거릴 6월이지만 일선 경찰 지구대는 차분한 모습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6월 첫째 주(6월 1∼7일)에 접수된 112 신고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9%(2만4129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메르스 못잡으면
지하경제도 위험
 
본격 여름에 접어들면서 바깥 활동이 많아지고 술 취한 사람이 늘어나면서 112 신고건수는 5월 첫째 주(5월4∼10일) 36만6530건, 둘째 주(5월11∼17일) 38만3394건 등 매주 증가하다 메르스가 확산 조짐을 보이자 이달 들어 감소세를 나타냈다. 술자리가 줄어드니 자연스레 음주운전도 감소했다. 유대운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메르스 첫 사망자가 발생한 지난 1일부터 15일까지 음주 교통사고는 603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1025건)에 비해 41.2% 줄었다. 전체 교통사고 역시 줄었다.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현대·동부·LIG·롯데 등 주요 손보사 5곳이 메르스 첫 사망자가 발생한 지난 1일부터 보름간 접수한 자동차 사고는 25만6919건이다. 이는 5월 첫 보름간(28만2926건)과 비교해 9.2% 감소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휴가철 메르스 비상
혹시나…불안한 마음에 ‘방콕’
 
본격적인 휴가철이지만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냉랭한 분위기다. 메르스 감염에 대한 우려와 불안으로 인해 여행 및 숙박업소 취소는 잇따르고 있고, 휴가준비 용품 판매로 한창 특수효과를 봐야 할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은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예년에는 휴가철 휴가준비상품 판매로 반짝 특수효과를 누렸지만 올해는 다르다. 백화점과 마트 등이 본격적인 판매조차도 못하고 매출이 금갑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여행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5월31일부터 6월17일까지 9만명 정도 예약을 취소했고, 대한항공도 6월1일부터 15일까지 중국인 관광객 등 8만여명이 예약을 취소했다. 메르스 확산이 여름 휴가철 해외여행 시장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변재일 국회의원(청주 상당·새정치민주연합)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국적 항공사별 국제선 예약 취소 현황’에 따르면 지난 5월31일부터 6월12일까지 13일간 17만4127명으로 집계됐다.
 
여름철 해외여행 수요를 짐작할 수 있는 외화 환전 규모도 축소되는 추세다. 은행권에서는 외화 환전 감소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어 내주부터는 전년 대비 감소세가 확연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 21일 시중은행 3곳을 대상으로 5월29일부터 6월18일까지 외화환전 취급 규모(달러화 환산)를 조사한 결과, 세 곳 모두 전년 대비 취급액이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숙박 등 여행 예약 취소 현실화
특수효과 기다린 휴가지 초비상
 
A은행은 14조8100만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 17조4100만달러보다 14.9% 감소했다. 이는 올해(1월1일∼6월18일) A은행의 외화 환전 감소폭 9.8%(139조5100만→125조8100만달러)보다 가파르다. B은행도 메르스 첫 환자 감염 이후 지난 18일까지 외화환전 규모가 9800만달러에 그쳐 전년 1조1500만달러보다 14.8% 감소했다. C은행도 올해 외화 환전이 전년 4조9400만달러에서 5조3800만달러로 8.9% 성장한 반면, 메르스가 발병된 5월29일 이후 환전 규모가 작년 5400만달러에서 올해 5000만달러로 8.0% 감소했다.
 
다른 시중은행은 환전 규모를 월말 집계한다는 이유로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메르스 확산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은 현재 진행형이다. 휴가철 소비는 소비 이연효과(점차적인 소비 증가)가 크지 않기 때문에 메르스가 3분기 이후에도 지속될 경우 국내소비지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카드결제 시장의 경우 이미 소비침체가 가속화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전달 마지막 주 대비 이달 첫째주 국내 주요 카드사들의 개인 신용판매(일시불·할부) 금액은 평균 13%가량 감소했다. 특히 백화점, 대형마트 같은 쇼핑 업종의 감소세가 전달 대비 평균 20% 이상 감소하고 숙박, 항공 업종도 10%가량 줄어들었다.
 
열차 이용률도 줄었다. 6월 첫째주 KTX 이용률은 79.2%로 지난해 같은 기간 99.2%와 비교하면 20%포인트 급감했다. 6월 둘째주 역시 KTX 이용률은 69.2%로 일주일 만에 10%포인트가 떨어졌다. 일반열차 이용률도 마찬가지다. 6월 첫째주 열차 이용률은 142.2%로 1년 전보다 52.8%포인트 감소했고, 둘째주 열차이용률은 125.5%로 25%포인트 줄었다.
 
특히 6월은 여름 휴가철의 길목으로 메르스 공포가 7∼8월까지 이어질 경우 여름 대목을 한꺼번에 날릴 수 있다는 점에서 관광업계는 노심초사하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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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