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5년전 당뇨로 사망…이후 대역 써왔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낙마설’ ‘유고설’ ‘위독설’처럼 때마다 터지는 김 위원장 관련 루머는 왜 반복되는 걸까. 이는 그가 워낙 은둔 생활을 하고 있는데다 절대권력을 쥐고 있어 그의 변고가 곧 체제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달 초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다시 제기되면서, 지난 8월에 일본 와세다대학의 교수가 ‘김정일 사망설’을 주장해 한동안 국내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김정일 대역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시게무라 도시미쓰(重村智計·63) 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부 교수는 지난 8월19일 출판된 자신의 저서 <김정일의 진실>에서 “2003년 김정일이 이미 당뇨병으로 사망했고, 고이즈미 전 총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등에서 만난 김정일은 ‘대역을 하는 가짜’(카게무샤)”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김 위원장이 지난 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정권 수립 60주년 기념 퍼레이드’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건강이상설이 증폭되면서 다시금 화제로 떠올랐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 외신들은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이 뇌졸중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것으로 추측했다. 이와 함께 시게무라 교수의 충격적인 주장을 소개했다.
그의 주장은 시게무라 교수의 책 출간을 앞둔 지난달 15일 일본 주간지 <주간 현대>와의 인터뷰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잡지는 ‘김정일은 벌써 죽었다’는 제목으로 그의 증언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시게무라 교수에 대해 ‘한반도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시게무라 교수는 인터뷰에서 김정일 사망 시기에 대해 정확한 연도를 언급하며 “김 위원장이 지병인 당뇨병이 악화돼 2000년 초부터 휠체어 생활을 하다 2003년 가을에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털어놨다. 2003년까지는 북한의 부흥을 위해 필사의 외교를 전개했지만 이후 대내외활동이 급격히 줄었고 북한의 분위기도 침체됐다는 이유에서다.
그 근거로 일본 방송이 4년 전 그의 목소리와 현재 목소리를 분석해본 결과 다른 사람이라는 결과가 나왔다는 점, 김정일의 신장이 2.5cm나 자란 점을 들었다. 시게무라 교수는 “미국은 북한 상공에 매일 2기의 정찰위성을 보내 김정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왔다”면서 “그러나 2006년 봄에 촬영한 김정일의 사진을 분석한 결과 신장에 차이가 있었다”고 밝혔다.
시게무라 교수는 또 김 위원장은 지난 80년대 일본을 자주 방문했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일본에서는 근거 없다고 폄훼하는 시각도 있는 반면 한반도 전문가로 많은 저서를 갖고 있는 시게무라 교수는 한반도 문제에 대해 균형 잡힌 분석을 해왔다는 점을 들어서 김정일 사망설 주장에 대해 근거 있다고 시게무라 교수의 분석에 동의하는 전문가들도 있다고 일본의 대북 소식통이 전했다.
그가 주장하는 ‘김정일 대역설’은 2006년부터 국내외 언론보도를 통해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제기되는 ‘대역설’과 차이점이 있다면 “그 당시 대역설은 김정일의 사망을 위장한 것이 아니라 암살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닮은 대역을 고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게무라 교수 ‘김정일 2003년 사망설’ 주장 놓고 일본내 논란
고이즈미 전 총리·노무현 전 대통령이 만난 김정일은 ‘가짜’
연합뉴스 영문판은 이 해 9월29일 한국 정보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주요행사에는 직접 참석하지만, 암살을 당할 것으로 우려해 관례적인 행사에서는 대역을 최소한 2명 이상 고용해 왔다”고 보도했다.
미국 통신사 UPI와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 외신은 “김정일의 대역들이 김정일처럼 보이기 위해 성형수술을 받기도 하고, 그의 말투와 스타일을 훈련 받는다”고 전했다. 텔레그래프는 “김정일의 건강이 나쁘다는 점도 대역을 사용하는 데 일조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같은해 10월 2일 북한문화예술계 인사와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북한에는 김일성 주석의 젊은 시절 역을 맡은 영화배우가 3명 있다”고 밝히고 “배역을 뽑아 2년간 훈련 끝에 영화에 출연시켰는데 영화를 보던 김 위원장 본인도 대역을 구별 못 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신변에 관한 루머는 그에 대한 동향보고가 뜸할 때마다 불거져 나온 것인데다 매번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돼, 이번 일도 ‘소문’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제2정책조정위원장을 맡고 있는 황진하 의원은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대해 너무 과민하게 대응하거나 반응할 경우 무리수가 올 수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면서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 이것 한가지로만 집착된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갑자기 악화된 또 다른 이유, 외부적 요인이 없는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오래 전부터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과 대역설에 관한 정보를 입수해 면밀하게 검토 중”이라면서 “정보는 첩보보다 진일보한 수준이지만 지도자의 신상은 정확하게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김정일 루머의 진실은?
때마다 터지는 김정일 관련 설설설 벌써 다섯번째
김 위원장 ‘유고설’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첫 ‘유고설’은 1992년 승마를 하던 김 위원장의 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낙마해 의식불명 상태가 됐다는 소식이었다. 그의 건재함이 드러나면서 이 사건은 설로 그쳤지만 김 위원장의 요리사였던 후지모도 겐지는 “그가 낙마해 심각하게 머리를 다쳤다”고 증언했다. 그의 증언으로 김 위원장의 낙마 사건은 사실임을 증명한 것이다.
두 번째는 김 위원장의 ‘피격설’이다. 일본 산케이(産經) 신문이 1994년 2월18일자로 “김정일 신변 이상설과 관련, 경찰 당국이 사실 확인 과정에서 이런 미확인 정보를 얻었다”고 전하면서 시작된 파문은 당시 민주당의 이기택 대표가 외국 인사에게서 “김 위원장이 정권을 맡을 수 없을 만큼 신체에 치명상을 입었다”고 발언하면서 확산했지만 결국 사실무근으로 끝났다.
세 번째는 2004년 11월25일 서울 여의도 증권가를 중심으로 ‘김정일 사망설’이 확산됐다. 당시 ‘총격설’은 “김정일 위원장이 자신이 숙청한 매제 장성택 노동당 제1부부장의 아들이 쏜 총탄에 맞아 사망했고 군부 고위 인사 4명도 중국에 망명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날 국정원이 김정일 ‘사망설’에 대해 “근거없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사망설’은 하루만에 마무리됐다.
네 번째는 얼마전 괴담으로 끝난 김정일 사망설이다. 지난 5월26일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던 당시, “김 위원장이 26일 오후 7~8시쯤 평양과 황해도 안악군 사이 도로에서 피습돼 사망했다”는 거짓 소문이 나돌았었고, 2004년에도 증권가를 중심으로 김 위원장의 사망설이 불거져 관계 당국이 긴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