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키맨' 일성신약 정체

제약사? 투자사? 궁금증 증폭

[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둘러싼 엘리엇매니지먼트와 삼성그룹 간 표 대결을 앞두고 삼성물산 지분 2.05%를 보유한 주주인 일성신약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성신약이 엘리엇측과 연대해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표를 행사하지 않겠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만큼 일성신약의 존재감이 두드러지고 있다.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일성신약의 정체는 무엇일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둘러싼 논란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삼성물산 지분 2.05%를 보유한 주주인 일성신약의 거취를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로써는 일성신약이 엘리엇어소시에이츠엘피 측과 연대해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표를 행사하지 않겠냐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뚜렷한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당당히 5대주주
 
일성신약은 의약품 제조 및 판매업을 주로 하는 제약업체다. 하지만 자산구성과 움직임을 보면 투자회사에 더 가깝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주력사업보다 부수사업에 관심을 가지면서 곳간을 채우고 있다. 지난 12일 일성신약의 1분기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일성신약의 총 자산규모는 3773억원이다. 이 가운데 투자자산은 54.4%에 해당하는 1990억원에 이른다. 이 중 의약품 생산에 필요한 유형자산은 283억원이다. 매우 이례적인 자산 구성비율이다. 통상 제약업체의 유형자산 비중은 60% 안팎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성신약의 주 투자자산은 삼성물산이다. 일성신약은 엘리엇어소시에이츠엘피, 삼성SDI, 삼성생명, KCC에 이은 5대주주다. 지난 2004년 단순 투자 목적으로 삼성물산 지분 1.14%를 219억원에 최초로 매입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사들여 2005년 508억원, 2006년 195억원, 2007년 40억원을 투자해 지분율을 3.53%까지 끌어올렸다.
 
이후 일성신약은 2008년 글로벌 기준에 맞는 공장 설립과 자사주 매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삼성물산 주식 58만주를 매각해 256억원을 확보했다. 2011년에도 78만주를 618억원에 매도해 외환은행 주식 등을 매입했다. 삼성물산 지분을 사들인 뒤 총 1.48% 매도해 지금은 2.05%를 갖고 있다.
 
일성신약은 지분투자를 통한 배당 수익 등으로 자본확충 효과를 얻고 있다. 투자자산으로 매년 20억원 안팎의 배당수익을 올린다. 지난해의 경우 영업외 수익(배당수익 포함)은 58억원으로 24억을 기록한 영업이익보다 2배가량 많다. 재무구조도 뛰어나다. 일성신약은 투자를 통해 발생한 현금을 곳간에 쌓아두고 있다. 부채비율도 16%로 매우 안정적으로 올해 1분기 현금성 자산(단기상품 포함)은 1012억원에 달한다.
 
 
반면 본업인 제약 사업의 경쟁력은 매년 떨어지는 추세다. 2012년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올해 1분기 매출은 전년동기보다 7.7%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11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8% 늘었지만 영업이익률은 3%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제약업체지만…자산구성 등 내실은 투자회사
삼성물산 합병안 통과 캐스팅보트 쥐고 있어
 
일성신약의 지난해 연구개발(R&D) 투자비는 12억원으로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1.9%다. 의약품 사업에 대한 투자도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미래사업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성신약은 삼성물산 주식 외에도 제일모직(1414주), 매일방송(4만주), CSTV(62만주) 등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3월 말 기준 일성신약의 전체 매도가능증권은 장부가액 기준 1990억원 수준이다. 여기에 현금성 자산을 합치면 자산가치는 2987억원에 달한다.
 
일성신약은 회사규모에 비해 보유자산이 상당히 많다. 일성신약은 지난해 기준으로 628억원의 매출과 영업이익 24억을 올렸다. 일성신약은 삼성물산에 앞서 SK·KT·삼성중공업·SBS·현대오토넷·한국전력 등에도 투자해 수익을 거둔 바 있다. 일성신약이 갖고 있는 삼성물산 지분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일성신약은 지난 1954년에 설립된 제약업체다. 87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산단로에 1만평 규모의 부지 위에 GMP(우수의약품 제조관리기준) 공장을 신설해 전문 치료의약품을 생산·공급해왔다. 2005년 2월에는 경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 산하 250여개 제약회사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GMP 차등평가관리제 평가에서 최상위 등급인 WHITE(우수) 등급 판정으로 표창을 받기도 했다. 또한 2007년 10월에는 국내 제약사 중 최초로 C-GMP 기준에 부합하는 페니실린생산동을 신축했다.
 
 
일성신약은 항생제, 호흡기질환치료제, 항히스타민제, 당뇨치료제, 골질환치료제, 진통제, 근이완제, 마취제, 피부질환치료제, 혈액대용제, 순환기계용약, 혈액응고억제제, 소화기계용약, 신경정신계용약, 항바이러스제, 안과·혈류개선제, 해열제, 조영제 등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지속적인 신제품개발과 신약개발을 위해 중앙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신약개발 주요분야는 치매·심혈관 치료제, 비만·당뇨제, 슈퍼 항생제, 항암제, 기관지 천식 등이다.
 
일성신약은 전국 주요 도시마다 판매본부와 지사를 두고 영업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미국, 영국, 스웨덴,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이스라엘, 일본 등 세계적인 제약회사들과 협력하며 활동망을 넓히고 있다.

투자의 귀재?
 
윤병강 일성신약 회장은 과거 한 강연에서 “돈을 버는 것만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고 돈을 모으는 방법이 중요하다”면서 “그 방법이란 들어온 돈을 죽기 전까지 놓지 않고 쓰지 않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윤 회장은 이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에 대해서도 이 같은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일성신약의 권리 행사에 재계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삼성? 엘리엇? 일성신약 누구편?
 
윤석근 일성신약 대표는 지난 14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후 꾸려질 통합 삼성물산의 비전에는 공감하지만 지금의 합병비율은 불공정하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통합 삼성물산 출범 이후의 청사진 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단 지금의 합병비율은 정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아직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다”며 “최근에도 KCC가 삼성물산 자사주를 매입하는 등 꾸준히 변수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이달 중순은 돼야 어느 정도 판단이 설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윤 대표는 또 “삼성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기업인 만큼 우리 주주들과 한국 경제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라며 “합병이 단순히 삼성의 경영 승계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역량을 모아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려는 것인지를 잘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엘리엇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 윤 대표는 “우리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며 “엘리엇의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그들과 행동을 함께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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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