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메르스, 왜 심각한가 ③대책이 없다

국민은 우왕좌왕, 정부는 허둥지둥 …“탈출구가 안 보인다”

[일요시사 사회2팀] 유시혁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첫 메르스 감염자가 발생한 지 만 3년이 넘었지만 메르스 감염 원인 및 전염 경로가 밝혀지지 않았다. 예방 및 치료제 개발에도 난항을 겪고 있어 메르스 공포가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유럽질병통제센터에 따르면 전 세계 25개국, 1167명(5월29일 기준)의 메르스 감염자가 발생한 가운데,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발병률을 나타내 국민들이 메르스 공포에 떨고 있다. 국내 최초 메르스 감염자가 발생한 지 19일 만인 지난 8일, 감염자는 87명으로 증가했으며, 격리대상자만 2361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날까지 메르스 감염에 의한 사망자만 5명으로 밝혀졌다. 메르스 공포의 확산으로 인해 전국 700여개 학교 및 유치원이 휴업에 돌입하기도 했다. 
 
메르스 공포 확산
세계 2위 발병국

2012년 4월, 최초의 메르스 감염자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했다. 이후 전 세계 25개국 1026명의 감염자와 5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발병 원인 및 전염 경로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로써 메르스 예방 및 치료제 개발에도 난항을 겪고 있어 메르스 공포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의학계 보고에 따르면 메르스 감염자 전원이 중동국가와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행 및 출장 등 중동국가에 중·단기적인 체류자들이 1차 감염자로 나타났으며, 낙타 시장, 낙타 체험프로그램 등 낙타와의 접촉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낙타와 박쥐가 감염 매개체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도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일반적인 감염병 예방 수칙 준수를 당부한다. 예방 수칙 사항으로는 ▲비누 및 알콜 손 세정제를 통한 손 씻기 ▲기침 및 재채기 시 휴지로 입과 코를 가리고, 휴지는 휴지통에 버리기 ▲씻지 않은 손으로 눈, 코, 입 만지지 않기 ▲발열 및 호흡기 증상이 있는 사람과 접촉 피하기 ▲호흡기 증상 및 소화기 증상이 있을 시 의료기관 방문하기 등이다. 또한 중동지역 여행(체류) 중 낙타, 박쥐, 염소 등 동물과의 접촉을 피하고, 면역저하자(65세 이상인 자, 어린이, 임산부, 암투병자 등) 및 기저질환자(당뇨, 고혈압, 심장질환 등)의 중동지역 여행 자제를 권고하고 있다. 특히 낙타 시장, 낙타 농장, 낙타 체험 프로그램 등의 출입을 자제하고, 익히지 않은 낙타고기와 멸균되지 않은 생낙타유 섭취를 자제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발병 원인·전염 경로 밝혀지지 않아
백신개발 난항…7∼10년 소요 전망


현재까지 밝혀진 의학계 보고에 따르면 메르스의 기초감염재생산수는 0.6∼0.8명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메르스 감염자 한 명당 0.6∼0.8명에게 메르스를 전염시킨다는 의미다. 사스, 에볼라바이러스 등의 유행바이러스에 비해 전염률이 현저히 낮은 수치다.

그동안 발표된 연구 결과 자료를 살펴보면 메르스는 하부기도를 통해 전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특히 하부기도 내에 존재하는 바이러스가 체외로 배출될 가능성이 희박해 전염률이 낮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최초 감염자에 의한 2차 감염자가 29명인 것으로 밝혀짐으로써 기존 메르스 기초감염재생산수 보고가 잘못됐음이 드러났다. 이에 의료 전문가는 메르스에 대한 한국인 유전자 구조의 취약, 예방조치의 미흡, 의료시술에 의한 전파 등의 엇갈린 분석을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 2일, 도쿄발 기사에서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메르스 감염자 확산이 기존 메르스에 대한 의학계 통념을 깨고 있다”며 “2012년 메르스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뒤 많은 나라에서 감염자가 발생했지만, 여러 사람에게 광범위하게 전파된 것은 (한국이) 처음이고 감염자 수로도 아라비아 반도 밖에서는 최대치”라고 발표했다.

취약한 유전자
기도삽관 전파설

<사이언스>의 자문가 피터 벤 엠바렉 박사는 2003년 사스의 확산이 의료진의 기도삽관(기도에 튜브를 삽입하는 시술법)에 의한 전파였음을 근거로 내세우며, 국내 최초 메르스 감염자의 의료시술에 의한 확산 가능성을 내다봤다. 또한 “최초의 환자가 이미 다른 계열의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메르스에 감염됐거나, 한국인이 다른 나라 국민보다 메르스에 취약한 유전자 구조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이언스>는 이날 보고에서 홍콩대학교와 네덜란드 에라스무스메디컬센터 등 세계 메르스 관련 연구기관에서 한국 감염자 유전자 샘플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이튿날인 지난 3일, 브리핑을 통해 “아직 외국 연구기관에 샘플을 보내지 못했으며, 외국 분석의뢰기관도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로 바꿀 것”이라고 해명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31일, 분석 의뢰 기관으로 선정했다가 번복한 네덜란드 에라스무스메디컬센터는 지난 2012년 메르스 세계 최초 감염자의 유전자를 분석한 기관이다.

메르스의 잠복기는 2∼14일(평균 5일)로, 잠복기를 거친 후 증상 및 바이러스가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잠복기를 거친 메르스 확진자와 밀접접촉한 자에 한해 2차 감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이 연구결과를 토대로 메르스 의심자에 한해 자가 격리 조치를 취하고 있다.


밀접접촉자만?
공기 중 전파?

하지만 세계 최다 메르스 발생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낙타 헛간 공기 중에서 다량의 메르스 바이러스가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공기 중 메르스 전염에 대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연구 결과다.

실제로 국내 최초 메르스 감염자와 2차 감염자의 연관성을 살펴보면 밀접접촉이 전혀 없는 감염자가 다수 포함된 것으로 조사됐다. 2차 감염자 29명 가운데 최초 감염자와 밀접접촉한 감염자는 감염자의 가족은 1명, 같은 병실 입원 환자 1명, 의료진 3명을 포함한 5명이다.  일각에서는 최초 감염자 발생 19일 만에 격리대상자가 2361명에 달하는 점을 내세우며 공기 중 전염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세우고 있다.

반대로 의료진에 의한 전파 가능성을 주장하는 의료 전문가도 있다. 최초 감염자와의 밀접접촉자 5명을 제외한 24명은 동일 병동 환자 및 보호자로 2차 감염 의료진에 의한 3차 가능성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발병 원인 및 전염 경로가 밝혀지지 않는 가운데 백신 개발·생산업체인 진원생명과학은 관계사인 이노비오와 공동연구계약을 지난달 27일 체결하고 메르스 DNA백신 개발에 나섰다. 두 기관은 이미 2012년 첫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이후 동물 실험 연구에 착수했으며, 2013년 11월 연구 결과를 국제과학학술지에 발표한 바 있다.

이번 연구에는 국내 연구진 5명, 미국 휴스턴 소재 국제규격 우수의약품 위탁대행 생산시설 VGXI 연구진 60명, 미국 이노비오 임상개발자 3명 등 총 68명의 연구진이 투입된 가운데 백신 개발에 나섰으며 올 하반기 중 1상 임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손씻기, 기침주의, 행사방문 자제…
기본적인 감염병 예방 수칙이 전부

두 기관은 메르스의 치사율이 높아 기존 형태의 백신 개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유전자백신 및 바이러스 유사입자(VLP) 백신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특히 유전자백신 및 바이러스 유사입자 백신 등의 DNA백신은 다른 백신에 비해 바이러스 변이에 대한 대비가 가능하고, 강력하고 광범위한 면역반응이 유도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생산기간이 짧고 보관 및 운송의 용이성이 있다.

진원생명과학 측은 메르스가 응급임상 질병으로 분류된다면 미국식품의약국(FDA)의 ‘동물연구결과 갈음 규칙(Animal Rule)이 적용돼 임상개발기간이 단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미 에볼라 바이러스 백신 개발에서도 응급임상 질병으로 분류된 바 있다.

진원생명과학 측은 “정상적인 임상 실험 과정을 거친다면 백신 개발까지 최소 7년에서 최대 10년이 소요된다”며 “정부에서 응급임상으로 적용한다면 장담할 수는 없지만 상당 부분 백신개발이 단축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에볼라 바이러스 백신 개발까지 1년이 소요됐으니 1년쯤 걸리지 않을까 예상해본다”고 내다봤다.

유럽질병통제센터에 따르면 메르스의 치사율은 41%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최다 메르스 감염자 발생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치사율은 43.7%로 나타났다. 메르스 감염자 10명 중 4명이 사망하는 셈이다. 사스(9.6%)와 신종플루(0.07%)의 치사율의 40배가 넘는 수치이기도 하다.

'사스의 40배'
과장된 치사율


하지만 일부 의학계에서는 메르스 치사율이 과장됐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중동국가의 열악한 의료기술로 사망자가 속출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실제로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 3월20일 메르스 치사율이 10% 미만일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독일의 크리스티안 드로스텐 박사팀은 사우디아라비아 2700만명의 인구 중 메르스 감염자를 4만명으로 추정, 이 중 2%만 의학계에 보고됐으며 나머지는 메르스 항체로 인한 자연치유가 됐음을 주장하고 있다.

 

<기사 속 기사> ‘메르스 감염’ 위험한 지역들
“노인들 모이는 종묘공원 비상”

본격적인 피서철(7∼8월)을 앞두고 메르스의 확산에 여름휴가를 포기하는 직장인들이 급증하고 있다. 전국의 불특정 다수가 피서지로 몰리면 메르스 감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의학전문가의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관광업계에서는 가족 단위의 피서객들이 급감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메르스 공포의 확산에 전국 700여개 유치원 및 학교가 휴업에 들어갔으며, 지역문화행사도 잇따라 취소되고 있다.
송샘이(28·직장인)씨는 “전염률뿐만 아니라 치사율까지 높은 메르스 공포가 납량특집보다 무섭다”며 “제주도 여름휴가 계획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역시 물 건너갔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국립보건원 알레르기감염병센터 나르트어 반 도어마렌 박사팀은 지난 2013년 9월 국제학술지 유로서베일런스 발표 논문에서 상온 40℃ 및 상대습도 80%에서 메르스 바이러스가 취약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메르스 확산이 여름휴가철 중 소강 상태를 나타낼 것이라는 전망이다.

메르스 관련 연구자료에 따르면 기저질환자(당뇨, 고혈압, 심장질환 등) 및 40∼70대 연령층이 메르스에 가장 취약한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따라서 메르스의 가장 취약한 장소로 우리나라 노인들의 대표적인 쉼터 종로구 종묘공원이 지목되고 있다. 대한노인회에 따르면 종묘공원에는 일 평균 2000여명의 노인들이 방문하며, 평균 나이는 70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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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