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메르스, 왜 심각한가 ⑥괴담이 판친다

격리 병원 가보니… 불안한 시민들 태평한 의료진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메르스가 한국을 강타했다. 뒷짐만 지고 있던 정부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정부는 시민에게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핑계로 발병 지역과 환자가 거쳐 간 병원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흘러다니는 괴담들을 <일요시사>가 파헤쳐 봤다.

 
지난 2일 오후 5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선별 진료소가 설치된 서울 중구 을지로6가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으로 향했다. 지난달 31일부터 정부는 메르스 확산을 우려해 호흡기 증상(고열·기침·가래·호흡곤란)이 있어 찾아온 환자를 이곳에 격리 진료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을 가는 길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진료소 갔더니
젊은 레지던트만
 
평소 같으면 관광객으로 바글바글한 역사 안이 한산했다. 그렇다고 관광객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저마다 큼직한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관광객들도 곧잘 보였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캐리어를 끌고 있는 이들 대부분이 마스크를 착용했다는 점이다. 특히 대만에서 온 A씨의 형형색색 마스크가 눈에 띄었다. A씨는 “메르스 때문에 가족들이 여행을 말렸지만, 어제 한국에 도착했다”며 “주변에서는 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나도 걱정돼 한국에서 마스크를 사서 착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으로 보인 사람 중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은 꽤 많이 보였다. 기자도 그중 한 명이었다.
국립중앙의료원 후문에 있는 메르스 선변 진료실. 가는 골목길은 적막했다. 멀리서 큼직한 텐트와 ‘메르스 선변 진료실’이라고 붙여진 빨간 플래카드가 보였다. 그리고 마스크를 착용한 경비원이 혼자서 후문을 지키고 있는 모습 정도만 보였다. ‘철통 경비가 아닐까’생각한 기자의 예상이 여지없이 빗나갔다. 쉽게 후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병원을 쭉 한 바퀴 돌아봤다. 병원 곳곳에는 ‘메르스로 의심되어 진찰을 위해 내원하신 분은 병원으로 들어가지 말고 선별 진료소로 가십시오’라는 간판이 보였다.
 
선별 진료소 문 앞 안내문에는 ‘메르스 관련 상담 및 진료를 원하면 뒤편 호출벨을 누르고 대기하라’라는 알림판이 있다. 병원 문은 굳게 닫힌 채 그 앞에는 탁자가 깔렸다. 탁자 위에는 혈압계와 알콜 손세정제, 진료기구, 마스크, 체온계 등이 놓였다.
 
진료소 앞에서 한 30대 청년이 레지던트로 보이는 젊은 의사와 이야기하고 있다. 이 청년은 며칠 전부터 고열과 가래 증상 때문에 찾아왔다. 진찰을 받고 싶다고 밝혔다. 레지던트는 “중동에 다녀온 적이 있느냐?”며 물었다. 청년이 “다녀온 적이 없다”고 답하자 레지던트는 “중동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메르스에 감염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며 “굳이 진찰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최근 열나는 환자들만 봐도 겁부터 난다고 호소하는 일반 병원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하지만 청년은 그래도 찜찜한지 계속 진찰을 받아보고 싶다고 버텼다.
 
환자 “고열이 나서 검사 받고 싶습니다”
의사 “중동 다녀왔어요? 아니면 됐어요”
 

그렇게 이들은 실랑이를 얼마간 벌였다. 레지던트는 병원 안으로 들어가더니 상급 의사 두 명을 함께 데리고 나왔다.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의료진들은 청년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했다. 이후 의료진들은 다시 병원 안으로 들어가곤 나오지 않았다. 청년은 발걸음을 후문 밖으로 돌렸다.
 
 
기자는 “진찰은 잘 받았느냐”며 “의사가 세 명씩이나 나와서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 물었다. 청년은 “고열과 가래 기운이 있는데도 진찰을 안 해주는 것 같다”며 “내가 계속 진료를 받고 싶다고 말하자 레지던트가 자기 선에서는 해결이 안 될 것 같아 전문의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이어 “의사들이 ‘중동에 안 갔으니깐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날 설득하고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청년은 떨떠름한 표정을 떨치지 못한 채 돌아갔다.
 
곧이어 후문에 있던 경비원이 기자에게 다가와 “무슨 일 때문에 왔느냐”물어 “취재하러 왔다”고 답했다. 그러자 경비원은 “현재 여기는 취재 금지 구역”이라며 “나가달라”고 말했다.
 
감추려는 게 
정말 능사일까
 
이번에는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울대학교병원에는 메르스 의심 환자 격리센터(의심증상 검사 및 임시 수용시설)가 있다. 지난 1일 정부는 국내 감염자가 18명으로 늘어나자 서울대학교병원에 격리센터를 설치했다.
 
서울대학교병원 일대에 들어서자 마스크를 착용한 이들이 꽤 많았다. 하나같이 호흡기 마스크 ‘N95’를 착용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방문객이나 직원들에게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었다.
 
격리센터 역시 실외인 응급실 앞에 설치돼 있다. 천막 텐트에는 ‘의심 증상이 있는 분은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한 후 직원에게 문의하시오’라는 안내문이 외래어로 곳곳에 붙여졌다. 천막의 후문은 구급차로 굳게 막고 있다. 주위는 빨간색 폴리스 라인으로 출입을 통제했다. 방호복을 입은 의사는 보안경까지 착용하며 주변을 지켰다. 천막을 지키고 있는 의사에게 “지금까지 몇 명이나 이곳 천막에 들어갔느냐” 물었지만 묵묵부답이다.
 
상황을 살피기 위해 응급실로 들어갔다. 하나같이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했다. 병원 대기실의 텔레비전에서는 메르스 관련 보도가 줄기차게 나왔다. 이를 지켜보는 이들은 하나같이 혀를 치며 이번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사태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환자 가족인 B씨는 기자가 말을 걸어오자 “마스크를 쓰고 오라”고 지적했다. 메르스는 침으로 전달된다고 알려져 있어 이를 경계했던 모양이다. 기자는 병원에서 나눠주는 마스크를 쓰고 B씨에게 이곳 상황을 물었다. B씨는 “어제 한 명 격리센터에 들어갔다”며 “사람들이 메르스 증상으로 진찰 오는 사람은 있는데 격리센터까지 가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고 말했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메르스와 비슷한 증상 때문에 오는데 그렇게 심하지 않거나 중동에 갔다 온 적이 없으면 귀가 조치시킨다”며 “조금만 열이 나거나 느낌이 안 좋다 생각하면 병원에 오기 때문에 일일이 다 진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감염된 환자들 대부분이 중동에 방문한 적 없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리고 발병 지역인 평택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메르스의 증후가 나타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감염자 수는 확산하고 있다.
 
 
대기실 텔레비전에서는 ‘보건당국이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언론의 지나친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옆에 있던 B씨는 “확산이나 막아라”고 일갈했다.
 

오후 8시 괴담 속에 가장 많이 등장했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성모 병원을 찾았다. 괴담에 등장한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은 지난달 31일 유언비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SNS 상에 ‘당분간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 가지마라’ ‘메르스 확진자 여의도 성모병원에 왔고, 중환자실은 폐쇄됐다’는 괴담이 돌았다.
 
병원 측은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메르스 확정확정을 내린 것은 사실”이라며 “확진 판정 후 환자는 국가지정격리병원으로 이송. 관련 의료진 및 직원은 즉시 자택 격리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어 “중환자실이 폐쇄됐다고 하는 부분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현재 정상 운영 중”이라고 알렸다. 하지만 괴담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퍼진 상황이었다.
 
거짓 혹은 진실
뭐가 뭔지 혼동
 
평소 같으면 북적거릴 응급실은 텅 비어 있다. 대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조차도 없었다. 응급실 병상은 총 36개 중 환자가 누워 있는 곳은 다섯 손가락에 꼽았다. 메르스 확직자가 격리됐던 병실도 지금은 소독된 후 빈 병실 상태였다. 또 폐쇄됐다는 중환자실도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다만 중환자실도 마찬가지로 텅 비어있었다. 괴담이 퍼진 뒤로 병원을 찾는 환자는 급격히 줄었으며 진료와 수술 예약 취소도 잇따랐다고 전했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메르스 관련 유언비어 유포자에 대해 엄벌 방침을 밝혔다. 지난 3일 메르스 괴담을 유포한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이 남성은 지난 2일 메르스 발생 병원과 병원 4곳의 이름이 적힌 메시지를 지인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포 키우는 유언비어 확산
숨기는 정부가 부추기는 꼴
 
각종 모바일 메신저와 온라인 커뮤니티, SNS상에는 메르스에 대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괴담이 급속도록 퍼지는 중이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괴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혔다. 
 
SNS상에는 ‘메르스는 공기 중으로 전염된다’ ‘치사율 90%’라는 괴담이 떠돌았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공기 감염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메르스는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이다. 하지만 공기를 통해 감염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침이나 가래 등 바깥으로 튀는 분비물에 의한 비말감염으로 전파된다. 만일 공기로 전파됐다면 환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보건당국은 숨만 쉬어도 감염된다는 괴담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메르스 확진자가 늘면서 SNS 등에서 이들이 전전한 병원에 방문할 경우 옮을 수 있다며 가지 말라는 글이 떠돌았다. 하지만 보건당국은 이 역시도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메르스의 전파는 환자와 같은 공간에 동시에 머물면서 밀접한 접촉이 있었던 경우에 제한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르스에 감염되면 죽는다’라는 글이 돌아다니며 시민에 공포감을 심어주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메르스의 치사율은 40% 정도다. 2012년 4월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에서 최초 환자가 보고된 이후 2015년 5월 현재까지 23개국에서 1142명이 발생해 이 중 465명이 사망했다. 수치상 높지만, 중동지역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의료 시설이 낙후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한국은 신속한 검진과 안정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에서 치사율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상에는 바세린을 콧속에 바르면 메르스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해당 글은 “대부분의 바이러스 등은 수용성이고 호흡기를 통해 전염되는데 바세린은 지용성이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체내에 침투하는 것을 막아준다”며 이유도 설명했다.  하지만 근거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재갑 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 감염관리실장은 “바이러스는 수용성, 지용성이 없다”며 “바세린이 메르스 감염을 예방한다는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손을 잘 씻고 마스크를 쓰는 것이 올바른 예방법이라고 일을 모았다. 
 
괴담뿐만 아니라 “경기 평택과 수원 등에 메르스 감염자가 집중됐다”는 내용과 “평택 미군기지에 배송된 탄저균으로 발생한 병을 메르스라고 당국이 속인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지난 3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민관합동긴급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시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의 투명한 공개”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현재까지 정부는 메르스 발생 지역과 병원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이미 메르스 발생 지역과 병원이 SNS상에 떠돌고 있음에도 말이다. 

괴담 퍼진 뒤
의심자 줄이어
 
이런 정부의 태도 때문에 일각에서는 무언가를 감추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여론은 줄기차게 메르스 환자 정보와 발생 지역과 병원을 밝히라고 촉구한다. 시민들은 일부 괴담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차라리 SNS 괴담을  믿는다”고 말한다. 폐쇄적인 정부 정책이 괴담을 더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공포 부추기는 '메르스 마케팅' 백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때문에 시민들이 불안감이 커진 가운데 이를 틈타 쇼핑몰들의 얄팍한 상술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지난 2일 메르스 사망자가 발생하고 3차 감염이 확인됐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불안감에 빠졌다. 시민들은 불안감을 덜기 위해 마스크, 손 세정제 등 개인위생용품 구매에 나섰다. 하지만 옥션, 11번가 등 각종 온라인 마켓에선 정체불명의 메르스 예방 상품이 판을 쳤다. 
 
중소제약회사는 아연, 비타민E 등이 포함된 일반 영양제를 두고 ‘메르스에 대한 면역력을 길러준다’며 소비자를 현혹했다. 다른 회사가 판매하는 한방차는 도라지를 원료로 만든 평소 누구나 마시는 일방적인 차 종류였지만 ‘메르스 예방에 좋다’는 문구로 포장 됐다. 
 
1만2500원에 판매되고 있는 목걸이형 ‘휴대용 바이러스 차단기’는 바이러스나 알레르기 물질을 제거해준다고 적혀 있었지만 이를 검증할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소개하지 않고 있다. 
 
또 일부 김치 회사에서는 마늘이나 김치가 메르스 예방에 좋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의학계에 따르면 모두 의학적 근거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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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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