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호원재개발조합 비리 의혹 1탄> 사문서위조 사건 전말

너그러운 경찰…증거·증인 있어도 무혐의?

[일요시사 경제2팀] 이창근 기자 =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 아닙니까!” 안양시 호원지구재개발조합에서 벌어진 사문서 위조 사건에 대한 동안경찰서의 수사결과를 지켜본 지역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조합장선거에 사용될 투표용지 조작 사전모의와 준비과정이 담긴 녹취파일이 존재하고, 행사된 투표용지가 위조되었음을 확인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서는 물론 위조행위에 가담한 일원의 양심선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양시 동안경찰서는 ‘피고소인의 범죄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면서 불기소(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호계1동 주변 5만6000평의 호원지구는 2006년부터 최근까지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지역이다. 조합원만 1800명이 넘고, 재개발 후 입주세대가 4000세대에 육박할 정도로 대규모의 재개발 사업지다. 전체 사업비가 최소 7000억 규모다. 조합설립 인가는 2012년에 났고 현재는 사업시행 인가를 앞둔 상태다. 
 
선관위 간사 
양심선언에 들통
 
문제가 된 사건의 발단은 2012년 4월28일로 예정된 조합원 총회 즈음에 발생했다. 총회의 핵심이슈는 조합장, 감사, 이사를 뽑기 위한 임원 선출에 관한 건. 조합장 후보로는 장금덕씨를 포함한 3명이 나섰다. 세 후보는 나름 치열한 득표전을 돌입했다. 총회 당일 직접 투표하겠다는 조합원과 총회에는 참석할 수 없지만 선관위에서 발행한 투표용지에 기표하는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하겠다는 조합원을 상대로 유세를 펼친 것이다.
 
세 후보 중 그래도 당선이 유력해 보였던 후보는 1번 김 모 후보와 2번 장금덕 후보. 임대업을 하고 있던 김 후보는 지역 토박이라는 장점이 있고, 장 후보는 재개발 동의서 작업 당시부터 조합원들과 접촉이 많았던 점, 지역에서 오랜 시간 봉사활동을 해온 것을 바탕으로 한 두터운 지지층이 강점이었다.
 

호계동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했던 또 다른 김모 후보는 정비업체 M사가 밀고 있다는 것이 강점인 반면 여성 후보라는 부분이 약점으로 꼽혔다. 1800명에 이르는 각양각색의 조합원들과 소주 잔을 기울이며 이해관계를 조율하려면 아무래도 남자 조합장이 나을 것이라는 기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1835명의 조합원 중 1023명의 의사가 표현된 투표결과 가장 약세로 평가됐던 여성인 3번 후보가 최다득표자로 나온 것이다. 2위는 장금덕 후보, 3위는 남성 김 후보 순이다.
 
1, 2위 간 득표 차는 불과 16표. 일부 조합원들 입에서 “뭔가 잘못되지 않고서는 절대 이런 (투표)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명백한 증거가 없는 한 투표결과를 뒤집을 수 없었다. 결국 새 조합장으로 여성인 김씨가 취임을 했고, 투표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없었던 장씨는 본업인 환경관련 사업으로 복귀를 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지 3개월이 지난 2012년 6월 경 선관위 간사를 맡았던 김모씨가 장씨를 찾아왔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 놓았다. 총회 전날인 4월27일부터 총회 당일 새벽까지 특정 후보를 조합장으로 만들기 위한 사문서 위조 즉, 투표용지에 대한 조작이 있었고 그 자신도 이에 가담했다는 내용이었다. 단순한 양심고백만이 아니었다. 사건 당일 문서위조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녹취파일을 장금덕 후보에게 주고 간 것이다. 
 
조합장선거 사용될 투표용지 조작
모의 담긴 녹취파일 있어도 불기소
 
“그 때 당선되었어야 할 조합장은 당신이었네. 미안해. 이 문제로 나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감수할게.”

선관위 간사가 남기고 간 파일을 들어 본 장씨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충격을 받았다. “2012년 4월27일 녹취 시작합니다”로 시작된 파일에는 “투표용지 꺼내서 100개를 만들고….” “컬러 출력하면 티가 난다” “별로 안 난다” 등등 투표 위조과정이 실감나게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김00 것을(으로) 속여야 할 것이 40개, 23개, 17개….”라는 대목에선  기가 막혔다. 
 
목소리만으로도 누군지 알 수 있는 인물들이 등장했다. 정비업체인 M사의 윤모 상무와 협력업체의 안모 이사, M사의 직원, 총회대행업체 D사의 임모 대표, 우모 이사가 등장했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녹취한 선관위 간사 김씨가 포함되어 있었다. 
 
 
4월26일 새벽 1시부터 4월27일 오후 6시까지 위조를 모의하고 준비한 6명의 동선이 고스란히 드러난 녹취파일을 통해 16표 차 패배의 원인을 알게 된 장씨는 곧바로 지인들과 상의를 했다. 그리고 증거를 모았다. 녹취파일에 나온 조작과정을 염두에 두고 총회 당시 사용된 투표용지를 검수한 것이다. 그리고 검수과정에서 위조된 것으로 보이는 투표용지 130장을 추려냈다. 
 
투표조작으로 
당선된 것 무효 
 
위조에 참여한 간사의 증언, 위조과정이 담긴 녹취파일, 위조된 증거물(투표용지) 등을 챙겨서 조합원 김삼수 외 4명이 1차 고발하고, 이어 장금덕씨가 2차로 고소했다. 그러나 고소장을 접수한 안양 동안경찰서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2013년 10월에 접수한 고소사건을 별다른 이유 없이 해를 넘기더니 2014년 2월에는 담당형사마저 교체했다.
 
다행히 후임 수사관은 나름 열의가 있었다. 고소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주택조합이 보관한 투표용지를 일일이 조사한 다음 위조가 의심되는 투표용지 130장 중 82장을 추려냈다. 그리고 그것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감정을 의뢰했다. 
 
4개월 정도 지난 뒤, 국과수의 감정결과가 나왔다. 82건 중 43건이 위조됐다는 것. 1, 2위의 표차가 16표 차이였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위조된 43건의 득표를 힘입은 현 조합장의 당선은 무효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했다. 국과수의 결과는 조합장을 다시 뽑아야 한다는 지역여론 형성의 배경이 됐다. 
 
일부 위조는 
범죄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발생했다. 경기안양 동안경찰서가 대표 고소인에게 보낸 사건처리결과 통지문에서 ‘불기소(혐의 없음)’ 의견을 밝혀온 것이다. 그 통지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문서 82건의 위조여부에 대하여, 일부 43건은 위조(넘버링 숫자 형태, 인쇄물 색재류, 선관위 간사의 인장과 다름)된 것으로 감정결과를 회신 받았고, 나머지 39건은 위조사실이 없는 것으로 회신 받았음.’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그 후 경찰 측 의견 부분이 문제가 됐다.
 
‘피의자들(고소된 6명)이 전체 82건을 위조했다는 범죄혐의를 인정하기 부족하므로 피의자들에 대하여 각 불기소(혐의 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기록을 인계하였음.’말인즉, 고소인들은 82건이 위조됐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43건만 위조됐고, 위조되지 않은 것도 39건이나 있으므로 ‘82건이 위조됐다’는 범죄혐의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폭력배에게 82대 얻어맞았다고 주장하지만 멍 자국이 43개 밖에 없으니 고소인은 폭행당한 것이 아니다는 궤변과 똑같았다. 통지서를 읽어 본 장씨 일행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초 고소의 이유가 ‘82건이 위조됐다’는 것이 포인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전에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문서위조가 모의됐고, 실제로 행해졌으며, 조작과정이 담긴 녹취파일과 조작행위에 가담했던 사람의 양심선언이 있는 만큼 사문서를 위조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한 사람들을 처벌해 달라고 고소한 것이다. 82건 중 몇 퍼센트가 조작됐는지를 따져달라는 게 아닌 것이다. 
 
원래 사문서 위조는 한 건만 확인되어도 큰 문제가 되는 사안이다. 법정형은 5년 이하 징역에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는 중범죄다. 게다가 위조된 문서를 실제로 활용했다면 가중 처벌을 받는다. 따라서 위조가 43건이나 행해졌다면 더 무거운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동안경찰서 수사과가 ‘82건이 전부 다 위조로 판명된 것이 아니다’는 핑계로 ‘혐의 없다’고 판단한 것은 문서를 위조한 일당의 손에 면죄부를 쥐어 준 것과 다름없었다.
 
당연히 경찰조직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동기와 정황만이 아니라 증인과 증거까지 다 갖다 준 사건까지도 불기소를 내리는 경찰이라면 다른 사건은 말할 것도 없다는 비난이 잇따른 것이다. 사건의 향방을 주목해 온 조합원들 입에서 “엄정한 수사? 지나가던 소가 웃겠다”는 비아냥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조합원들은 “일개 담당형사가 혼자 그런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면서 결재선상에 있는 수사과장과 경찰서장의 압력행사를 의심하고 있다. 고소를 당한 M사와 D사 경영진들이 막후에서 경찰 고위급들에게 로비를 벌인 것이 확실하다는 시각이다. 
 

국과수 감정서 무용지물
경찰 중립성 훼손 자충수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을 찾아가 만났지만 그는 “수사과장에게 이야기하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대신 사건과 관련된 수사과 한 간부가 “사문서가 위조됐다는 (국과수)결과가 나왔으면 누가 위조했는지를 수사해야지, 그것을 (모두 위조된 것이 아니므로)혐의 없다고 해서는 안 됐다”면서 수사의 미진함을 인정했다. 
 
문제의 소지가 있음을 인정한 경찰과는 달리 문서위조를 진두지휘한 정비업체 M사의 입장은 달랐다. M사의 윤모 대표는 “이미 경찰 조사에서 무혐의 받은 사건”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취재를 회피한 것이다. 서류조작이 드러날 경우 호원지구 정비용역계약의 자동 파기는 물론이고 정비업체 면허 자체가 박탈될 수 있기 때문에 파장의 확산을 경계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무능한 거야?
부패한 거야?
 
그러나 정비업체 대표의 바람과는 달리 이 사건의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외려 더 커지는 모양새다. ‘경찰 조직은 믿을 게 못 된다’고 판단한 조합원들이 검찰 측에 전면 재수사를 탄원했고, 이를 검찰이 수용했기 때문이다. 
 
승리를 빼앗긴 무관의 조합장과 조합원, 재수사를 회피하고 싶은 정비업체, 민중의 지팡이에서 견찰(犬察)로 추락한 경찰조직. 똑같은 밤을 보내도 맞이할 여명은 다를 것이 분명해 보인다.  
 
<manchoice@ilyosisa.co.kr>
 

<미니인터뷰> 경찰수사 지적한 장금덕씨
“조합장은 조합원 위해 일해야”
 
“새 조합장이 취임하자마자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정비업체 간에 생긴 법적분쟁비용 30억원을 조합에서 보존해 준 일입니다. 그게 어떻게 조합 일입니까. 그런 일에 조합 돈을 사용한 것 자체가 배임이요, 횡령행위 아닌가요?”
 
안양호원지구 주택조합에서 벌어진 사문서 위조 사건에 대한 경찰의 황당 수사를 지적한 장금덕(54)씨의 일갈은 조합 집행부가 조합원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누가 조합장이 되든 모든 판단과 집행이 조합원의 이해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정비업체 M사와 D사의 분쟁비용 30억원을 시공사로부터 차입한 조합의 돈으로 지출해서는 안 됐다는 지적이다. 
 
“후원사 위해 조합 이익 훼손하면 현 조합장도 공범”
 
“시공사로부터 받은 돈은 차입금입니다. 나중에 조합원들이 다 분담해야 할 돈이죠. 그래서 책임감 있게 집행해야 합니다. 조합장은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 일하라고 뽑는 것이지 자기 좋은 사람 밀어주라고 만든 자리가 아니잖습니까?”
 
더구나 집행절차에도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조합원의 경제적 부담을 주는 사안은 총회를 거쳐서 결정하도록 법(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이를 위반해서 자금을 집행했다는 것. 그러면서 조합이 시공사로부터 차입한 120억의 사용처에 대한 조합원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불과 1년 만에 120억 차입금 중 110억이 사용되고 지금은 불과 10억 남짓 남았다고 합니다. 조합 돈을 그렇게 운용하면 안 되죠. 사업 후 정산할 수 있는 항목까지 집행해서야 되겠습니까. 자기 돈 같으면 그렇게 쓸까요?”
 
현 집행부의 반성과 태도 개선을 요구하지 않으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조합원이라는 것이다. 사문서를 위조해서라도 원하는 조합장을 뽑으려 했던 업체들 장단에 놀아난다면 현 조합장도 공범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제대로 된 집행부를 구축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재개발 사업을 재대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1800여 조합원 모두가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저도 제 역할을 할 것이고요.”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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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