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9주년 기획특집> 대한민국 교육 현주소 “아이들이 위험하다” ③흔들리는 교권

“얘들아! 선생님이 그렇게 만만하니?”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하는 존 키팅 선생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말 그대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선생님이다. 오늘날 교권의 질은 땅에 떨어졌다. 교사들의 직업윤리도 시험대에 올랐다.                    
 
 
“교사 생활이 20년 전보다 20배는 힘들어진 것 같다.”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A(50)씨가 말했다. A씨 전자메일함에는 교육청에서 보낸 공문들로 꽉 차있다. 국회의원과 시의원들이 자료를 요청해 업무창고도 가봐야 한다. 반에서는 폭행 사고가 발생해 보고서도 작성해야 한다. 

학생 지켜보는
교실서 주먹질
 
200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조사한 ‘교사의 스트레스, 원인과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 90.8%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78.7%가 스트레스로 인해 업무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어 2013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발표한 ‘교직 생활과 학교문화에 대한 교사 의견 조사’에 따르면 교사의 스트레스의 원인은 정부의 잘못된 교육정책(73%), 행정 업무(58.2%), 교직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여론(56.6%) 등으로 꼽았다. 
 
‘학생들 가르치랴, 학부모 상대하랴, 연구 수업 준비하랴, 승진에 신경 쓰랴, 장학지도 대비하랴, 선생님들 관계 유지하랴….’교사들은 갖은 직무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2012년부터 도입된 교원능력개발평가로 교사들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대한민국 초·중·고 등학교 교육은 주입식이다. 그건 수십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B(47)씨는 “공교육이 사교육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교와 학원은 모두 주입식 교육이다”며 “이렇게 똑같은 교육 시스템에서 당연히 학원 선생들이 더 잘 가르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학원 선생들은 교재 연구와 수업에 열중하기만 하면 된다. 또 학생들이 잘되면 인센티브가 나오는 등 동기 부여가 충분히 된다”며 “반면 교사는 대학을 잘 보내 인센티브가 나오는 것도 아니며 수업만 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미 학교에서 배울 내용을 대부분 1년 전에 마친 상태다. 이 때문에 종종 학생들은 선생님의 실력을 확인하려 들거나, 혹은 다른 책을 펴 놓고 공부하는 학생도 있다. B씨는 “교사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며 “학생은 ‘이 선생님은 학원 선생님만큼 잘 가르쳐, 그래서 존경해’라는 의식이 이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초등학생의 64.2%, 중학생의 56.3%, 고등학생의 62.9%가 한 학기 이상 영어와 수학 선행학습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무너진 공교육
“대책이 없다”
 
특히 이런 경향은 소위 말한 명문고에서 만연하게 나타난다고 전해진다. ㄱ고등학교는 명문대를 많이 보내기로 유명한 학교로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서 명문고로 통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들은 학교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하는 분위기다.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함에도 말이다. ㄱ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C(40)씨는 “이 학생들은 원래 우수한 학생들이다. 내가 가르쳐서 공부를 잘한 게 아니다”며 “교사로서 만족감은 별로 없는 곳이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이 제일 싫다.” 하나같이 모든 교사가 입을 모아 말했다. 국회의원이나 시의원들이 자료를 요청하면 교사들 입장에서는 거부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이 때문에 교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국회의원이 필요한 자료를 만들어줘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교사들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다. A씨는 “국회의원들이 2010∼2015년 방과 후 실태에 대한 자료를 요청한다”며 “2010년에 근무했던 교사들이 어디 있나. 다 선생님들이 업무창고에 내려가 자료를 뒤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12시까지 자료 보고 올리라고 하는데, 내 수업이 12시까지다”고 성토했다. 교사들은 국회의원의 ‘묻지마식’ 자료요청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일각에서는 국회의원과 교육부만 없으면 수업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또 교사 개개인이 활동에 대한 지원을 교육청에 직접 발주해야 하며 사건 사고가 일어나면 처리해야 할 보고서와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조사한 결과 교사 스트레스 이유로 행정 업무(58.2%)를 꼽았다. 또 집에서 학교 일을 하는 것이 줄었다는 답변은 15.5%인 반면에 행정 업무가 늘었다는 답변은 80.2%에 달했다. 보통 교사는 하루 네 시간에서 다섯 시간 수업한다. 학생들을 만나는 수업 한 시간을 위해 세 시간 정도는 준비를 하는 데 할애해야 한다. 하지만 의외로 교육 외에 업무로 시간을 보낸 교사들이 많다.
  

“우리 애 누구랑 같은 반 됐어요? 그 애 별로니깐 반 바꿔주세요.” 교사에게 학부모는 두 번째로 상대하기 싫은 존재다. 교사에게 학부모는 갑이다. 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D씨는 “반 배치까지 다 해놨는데, 학부모에게 전화와 애 반을 바꿔달라고 했다”며 “교사 입장에서는 바꿔줘야지 별수 없다”고 말했다.
 
무시하는 제자와 학부모
예전같지 않은 교사생활
 
최근에 학부모가 늘면서 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간섭이 극에 달하고 있다. D씨는 “학부모는 바로 교장실로 들어가서 찍어 내린다”며 “옛날 같으면 선생님과 상담하다 보면 늦을 수 있는데, 요즘은 조금만 늦게 보내도 ‘학원 늦었는데 왜 안 보내느냐’고 항의한다”고 말했다. D씨는 “요즘 학부모는 교사를 너무 쉽게 본다”고 토로했다. 
 
 
교육부가 집계한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는 2009년 총 1570건에서 2012년 7971건으로 3년 사이 5.1배로 불어났다. 이후 2013년 5562건, 작년엔 4009건으로 주춤했다. 2013년 이후 다소 감소한 것은 정부가 2012년 교권 침해에 엄정히 대처하는 내용을 담아 교권보호종합대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는 2009년 11건에서 2012년 128건으로 열 배 이상 급증했다.
 
최근에도 잇단 학부모 교사 폭행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 폭행은 학생들이 지켜보고 있는 교실에서 일어난다. 청소년 아동 전문가들은 이를 ‘빗나간 자식 사랑으로 빗어진 세태’라고 말한다.
 
 
보람이 없다.  OECD의 ‘2013년 교수·학습 국제 조사’를 바탕으로 회원국 중학교 교사 10만5000여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질문에 회원국 평균(9.5%)에 비해 우리나라는 20.1%로 크게 웃돌았다. 
 
심지어 ‘다시 직업을 선택한다면 교사가 되고 싶지 않다’는 비율도 36.6%로 회원국 평균(22.4%)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교직에 입문한 지 채 5년도 지나지 않은 새내기 교사들의 절망감이 갈수록 높아진다는 점이다. 서울시에서 조사한 자료도 마찬가지다. 교사들의 교직 만족도는 처음에는 높았다가 점차 떨어져 15년 가량이 지나면 가장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교직에 오랫동안 근무한 관계자들은 “젊은 선생님들은 옛날처럼 학생에게 올인하지는 않는다”며 “그냥 직업인이다”고 말했다. 과거 교사가 제자를 위해 24시간 고민한 시대는 지났다. 다시 말해 스승과 제자의 끈끈한 유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이어 “딱 학교에 있을 때만 선생이지 교문을 나가면 일반인과 다를 게 없다. 학생들에 대해 많이 고민하지 않는다”며 “그래도 교육자로서 때로는 학생의 인생을 마음 아파해야 하는데, 이런 감정 공유가 요즘에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 교사는 직업윤리 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갖은 잡무까지
사명감도 잃어
 
그래서일까. 최근 교사들의 일탈 행위가 극에 달하고 있다. 그중 성범죄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2014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민현주 새누리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성범죄로 징계를 받은 초·중·고등학교 교사 240명 중 115명이 현직 교사로 학생을 가르치고 있었다. 또 지난 5년간 성범죄로 징계를 받은 초·중·고등학교 교사 중 절반 가까운 47.9%가 버젓이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현직 교사도 33명이나 포함돼 있다.
 

2012년 경남의 한 고교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2학년 여학생을 차에 태운 뒤 강제로 입을 맞추고 끌어안는 등 성추행을 저질렀다. 같은 해 부산에서는 초등학교 교사가 모텔에서 여중생과 성매매하려다 적발됐다. 모두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였지만 이들은 교육청으로부터 정직 2개월과 정직 1개월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후 교단으로 복귀했다. 지난해 7월에는 서울의 한 고교 교사가 지하철에서 18세 여성의 몸을 더듬는 성추행을 했지만 정직 1개월 후 학교로 돌아오기도 했다.
 
지난해 교육부는 성범죄를 단 한 차례만 저질러도 교단에서 퇴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관련 법안이 아직 국회에도 제출되지 않는 상태다.
 
지난 3월6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교원 성비위 징계 현황’에 따르면 2009∼2014년 미성년자 약취, 성추행, 성폭행 등의 성범죄로 징계를 받은 교원은 230명에 달했다. 이 중 교단에 남아 있는 사람은 121명(53%)으로 절반 이상이었다.
 
성범죄를 저지른 교원은 2010년 39명, 2011년 45명, 2012년 60명, 2013년 54명, 2014년 35명 등 연간 30~60명 수준을 유지했다. 현행 교육공무원법은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 범죄로 교사가 파면ㆍ해임되거나, 100만원 벌금형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에만 교원 지위를 박탈하도록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성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도 피해자와의 합의 등으로 100만원 미만의 벌금형이 나올 경우 교단에 계속 설 수 있다.
 
빗나간 자식사랑…교사 폭행사건 빈번
성범죄 느는 등 일탈행위도 극에 달해
 
교육부는 교원들의 지속적인 성범죄 발생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지난해 관련법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교원 결격사유에 ‘성범죄로 형 또는 치료감호를 선고받아 형이 확정된 사람’을 포함해 단 한 차례라도 성범죄를 저지르면 교단에서 영구히 퇴출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성범죄로 수사 중인 사립학교 교직원도 직위를 해제할 수 있도록 하고, 교원 자격을 박탈해 교육 관련 기관에 취업하지 못하도록 하는 엄중한 처벌로 경각심을 높이겠다고 설명했다.
 

올해 2월에는 초등학교 교사가 제자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부적절한 말을 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수원지법 형사9단독 지귀연 판사는 다문화가정 어린이인 제자의 정신 건강을 해치는 말을 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된 교사 A씨에게 벌금 300만원형을 선고했다.
 
수원시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던 A씨는 지난해 5월 캐나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난 제자 릴리(가명)양이 질문을 자주 해 수업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로 반 어린이 전체가 “릴리 바보”라고 세 번 크게 외치게 했다.
 
6월에는 점심 때 릴리양이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다른 아이들이 듣는 가운데 “반이 한국인인데 왜 김치를 못 먹나. 이러면 나중에 시어머니가 좋아하겠나”라고 나무랐다.
  
아울러 A씨는 수업 중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손을 들어보라고 하더니 유독 릴리양을 가리키며 “너는 부모 등골을 150g 빼 먹는 애”라고 말하기도 했다.
 
릴리양 부모는 뒤늦게 딸로부터 이런 사실을 듣고 A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릴리양은 이후 병원에서 적응장애 진단을 받고 수개월 동안 심리 치료를 받았다.
 
성범죄 징계 교사
절반 아직 교단에
 
지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교육자로서 우리 사회가 포용하고 함께 걸어가야 할 다문화가정 어린이에게 큰 상처와 아픔을 준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20년간 교직 생활한 A씨는 “젊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실수를 많이 한다. 그들도 아직 젊은지라 감정조절이 안 되고 욱하는 경향이 있다”며 “젊은 선생님들도 많은 사람을 겪고 배워야 한다. 하지만 임용고시나 사범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선생이 된 거다”고 말했다. “사회에서 선생님으로서 행동을 요구한다. 하지만 젊은 교사들 경우 그런 소양을 갖추기에는 너무 가치관이 빈약하다”고 A씨는 설명했다. 
 
<중앙일보 강남통신>이 빅데이터 전문 업체 파타크로스에 ‘교사 및 스승에 대한 소셜미디어상 담론 분석’이라는 주제로 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교사에 대한 키워드는 부정적인 내용이 전체의 84%를 차지했다. 폭력적인, 비도덕적인, 걱정스러운, 부족한 등이 사회에 비친 교사한 단면이기도 하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초등 제자와 교사 ‘위험한 사랑’
 
지난 2013년 초등학생 여제자와 성관계를 맺은 사실이 알려지자 “사랑하는 사이”라고 주장했던 초등학교 교사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제2형사부는 지난 23일 초등학생 제자(13)와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구속된 전 초등학교 교사 강모(30)씨에게 징역 8년과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그리고 10년간 신상정보공개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음란물을 소지한 혐의에 대해서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어린 학생에게 교육해야 할 의무가 있고 13세 미만의 아동에 대해 성적 가치관 형성을 지도하고 보호해야 할 초등학교 교사가 음란 동영상을 어린 제자에게 보여 주고 수차례 간음하는 등 죄질이 불량하다”고 밝혔다. 
 
강씨는 지난해 5월부터 초등학교 제자와 여러 차례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같은 해 12월 구속됐다. 강씨는 비슷한 시기 여고생이 된 제자를 집으로 불러 성관계를 갖은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창>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