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9주년 기획특집> 대한민국 교육 현주소 “아이들이 위험하다” ③흔들리는 교권

“얘들아! 선생님이 그렇게 만만하니?”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하는 존 키팅 선생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말 그대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선생님이다. 오늘날 교권의 질은 땅에 떨어졌다. 교사들의 직업윤리도 시험대에 올랐다.                    
 
 
“교사 생활이 20년 전보다 20배는 힘들어진 것 같다.”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A(50)씨가 말했다. A씨 전자메일함에는 교육청에서 보낸 공문들로 꽉 차있다. 국회의원과 시의원들이 자료를 요청해 업무창고도 가봐야 한다. 반에서는 폭행 사고가 발생해 보고서도 작성해야 한다. 

학생 지켜보는
교실서 주먹질
 
200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조사한 ‘교사의 스트레스, 원인과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 90.8%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78.7%가 스트레스로 인해 업무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어 2013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발표한 ‘교직 생활과 학교문화에 대한 교사 의견 조사’에 따르면 교사의 스트레스의 원인은 정부의 잘못된 교육정책(73%), 행정 업무(58.2%), 교직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여론(56.6%) 등으로 꼽았다. 
 
‘학생들 가르치랴, 학부모 상대하랴, 연구 수업 준비하랴, 승진에 신경 쓰랴, 장학지도 대비하랴, 선생님들 관계 유지하랴….’교사들은 갖은 직무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2012년부터 도입된 교원능력개발평가로 교사들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대한민국 초·중·고 등학교 교육은 주입식이다. 그건 수십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B(47)씨는 “공교육이 사교육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교와 학원은 모두 주입식 교육이다”며 “이렇게 똑같은 교육 시스템에서 당연히 학원 선생들이 더 잘 가르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학원 선생들은 교재 연구와 수업에 열중하기만 하면 된다. 또 학생들이 잘되면 인센티브가 나오는 등 동기 부여가 충분히 된다”며 “반면 교사는 대학을 잘 보내 인센티브가 나오는 것도 아니며 수업만 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미 학교에서 배울 내용을 대부분 1년 전에 마친 상태다. 이 때문에 종종 학생들은 선생님의 실력을 확인하려 들거나, 혹은 다른 책을 펴 놓고 공부하는 학생도 있다. B씨는 “교사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며 “학생은 ‘이 선생님은 학원 선생님만큼 잘 가르쳐, 그래서 존경해’라는 의식이 이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초등학생의 64.2%, 중학생의 56.3%, 고등학생의 62.9%가 한 학기 이상 영어와 수학 선행학습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무너진 공교육
“대책이 없다”
 
특히 이런 경향은 소위 말한 명문고에서 만연하게 나타난다고 전해진다. ㄱ고등학교는 명문대를 많이 보내기로 유명한 학교로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서 명문고로 통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들은 학교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하는 분위기다. 학생들이 공부를 잘 함에도 말이다. ㄱ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C(40)씨는 “이 학생들은 원래 우수한 학생들이다. 내가 가르쳐서 공부를 잘한 게 아니다”며 “교사로서 만족감은 별로 없는 곳이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이 제일 싫다.” 하나같이 모든 교사가 입을 모아 말했다. 국회의원이나 시의원들이 자료를 요청하면 교사들 입장에서는 거부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이 때문에 교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국회의원이 필요한 자료를 만들어줘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교사들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다. A씨는 “국회의원들이 2010∼2015년 방과 후 실태에 대한 자료를 요청한다”며 “2010년에 근무했던 교사들이 어디 있나. 다 선생님들이 업무창고에 내려가 자료를 뒤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12시까지 자료 보고 올리라고 하는데, 내 수업이 12시까지다”고 성토했다. 교사들은 국회의원의 ‘묻지마식’ 자료요청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일각에서는 국회의원과 교육부만 없으면 수업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또 교사 개개인이 활동에 대한 지원을 교육청에 직접 발주해야 하며 사건 사고가 일어나면 처리해야 할 보고서와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조사한 결과 교사 스트레스 이유로 행정 업무(58.2%)를 꼽았다. 또 집에서 학교 일을 하는 것이 줄었다는 답변은 15.5%인 반면에 행정 업무가 늘었다는 답변은 80.2%에 달했다. 보통 교사는 하루 네 시간에서 다섯 시간 수업한다. 학생들을 만나는 수업 한 시간을 위해 세 시간 정도는 준비를 하는 데 할애해야 한다. 하지만 의외로 교육 외에 업무로 시간을 보낸 교사들이 많다.
  

“우리 애 누구랑 같은 반 됐어요? 그 애 별로니깐 반 바꿔주세요.” 교사에게 학부모는 두 번째로 상대하기 싫은 존재다. 교사에게 학부모는 갑이다. 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D씨는 “반 배치까지 다 해놨는데, 학부모에게 전화와 애 반을 바꿔달라고 했다”며 “교사 입장에서는 바꿔줘야지 별수 없다”고 말했다.
 
무시하는 제자와 학부모
예전같지 않은 교사생활
 
최근에 학부모가 늘면서 학교에 대한 학부모들의 간섭이 극에 달하고 있다. D씨는 “학부모는 바로 교장실로 들어가서 찍어 내린다”며 “옛날 같으면 선생님과 상담하다 보면 늦을 수 있는데, 요즘은 조금만 늦게 보내도 ‘학원 늦었는데 왜 안 보내느냐’고 항의한다”고 말했다. D씨는 “요즘 학부모는 교사를 너무 쉽게 본다”고 토로했다. 
 
 
교육부가 집계한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는 2009년 총 1570건에서 2012년 7971건으로 3년 사이 5.1배로 불어났다. 이후 2013년 5562건, 작년엔 4009건으로 주춤했다. 2013년 이후 다소 감소한 것은 정부가 2012년 교권 침해에 엄정히 대처하는 내용을 담아 교권보호종합대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는 2009년 11건에서 2012년 128건으로 열 배 이상 급증했다.
 
최근에도 잇단 학부모 교사 폭행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 폭행은 학생들이 지켜보고 있는 교실에서 일어난다. 청소년 아동 전문가들은 이를 ‘빗나간 자식 사랑으로 빗어진 세태’라고 말한다.
 
 
보람이 없다.  OECD의 ‘2013년 교수·학습 국제 조사’를 바탕으로 회원국 중학교 교사 10만5000여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질문에 회원국 평균(9.5%)에 비해 우리나라는 20.1%로 크게 웃돌았다. 
 
심지어 ‘다시 직업을 선택한다면 교사가 되고 싶지 않다’는 비율도 36.6%로 회원국 평균(22.4%)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교직에 입문한 지 채 5년도 지나지 않은 새내기 교사들의 절망감이 갈수록 높아진다는 점이다. 서울시에서 조사한 자료도 마찬가지다. 교사들의 교직 만족도는 처음에는 높았다가 점차 떨어져 15년 가량이 지나면 가장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교직에 오랫동안 근무한 관계자들은 “젊은 선생님들은 옛날처럼 학생에게 올인하지는 않는다”며 “그냥 직업인이다”고 말했다. 과거 교사가 제자를 위해 24시간 고민한 시대는 지났다. 다시 말해 스승과 제자의 끈끈한 유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이어 “딱 학교에 있을 때만 선생이지 교문을 나가면 일반인과 다를 게 없다. 학생들에 대해 많이 고민하지 않는다”며 “그래도 교육자로서 때로는 학생의 인생을 마음 아파해야 하는데, 이런 감정 공유가 요즘에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 교사는 직업윤리 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갖은 잡무까지
사명감도 잃어
 
그래서일까. 최근 교사들의 일탈 행위가 극에 달하고 있다. 그중 성범죄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2014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민현주 새누리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성범죄로 징계를 받은 초·중·고등학교 교사 240명 중 115명이 현직 교사로 학생을 가르치고 있었다. 또 지난 5년간 성범죄로 징계를 받은 초·중·고등학교 교사 중 절반 가까운 47.9%가 버젓이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현직 교사도 33명이나 포함돼 있다.
 

2012년 경남의 한 고교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2학년 여학생을 차에 태운 뒤 강제로 입을 맞추고 끌어안는 등 성추행을 저질렀다. 같은 해 부산에서는 초등학교 교사가 모텔에서 여중생과 성매매하려다 적발됐다. 모두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였지만 이들은 교육청으로부터 정직 2개월과 정직 1개월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후 교단으로 복귀했다. 지난해 7월에는 서울의 한 고교 교사가 지하철에서 18세 여성의 몸을 더듬는 성추행을 했지만 정직 1개월 후 학교로 돌아오기도 했다.
 
지난해 교육부는 성범죄를 단 한 차례만 저질러도 교단에서 퇴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관련 법안이 아직 국회에도 제출되지 않는 상태다.
 
지난 3월6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교원 성비위 징계 현황’에 따르면 2009∼2014년 미성년자 약취, 성추행, 성폭행 등의 성범죄로 징계를 받은 교원은 230명에 달했다. 이 중 교단에 남아 있는 사람은 121명(53%)으로 절반 이상이었다.
 
성범죄를 저지른 교원은 2010년 39명, 2011년 45명, 2012년 60명, 2013년 54명, 2014년 35명 등 연간 30~60명 수준을 유지했다. 현행 교육공무원법은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 범죄로 교사가 파면ㆍ해임되거나, 100만원 벌금형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에만 교원 지위를 박탈하도록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성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도 피해자와의 합의 등으로 100만원 미만의 벌금형이 나올 경우 교단에 계속 설 수 있다.
 
빗나간 자식사랑…교사 폭행사건 빈번
성범죄 느는 등 일탈행위도 극에 달해
 
교육부는 교원들의 지속적인 성범죄 발생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지난해 관련법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교원 결격사유에 ‘성범죄로 형 또는 치료감호를 선고받아 형이 확정된 사람’을 포함해 단 한 차례라도 성범죄를 저지르면 교단에서 영구히 퇴출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성범죄로 수사 중인 사립학교 교직원도 직위를 해제할 수 있도록 하고, 교원 자격을 박탈해 교육 관련 기관에 취업하지 못하도록 하는 엄중한 처벌로 경각심을 높이겠다고 설명했다.
 

올해 2월에는 초등학교 교사가 제자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부적절한 말을 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수원지법 형사9단독 지귀연 판사는 다문화가정 어린이인 제자의 정신 건강을 해치는 말을 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된 교사 A씨에게 벌금 300만원형을 선고했다.
 
수원시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던 A씨는 지난해 5월 캐나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난 제자 릴리(가명)양이 질문을 자주 해 수업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로 반 어린이 전체가 “릴리 바보”라고 세 번 크게 외치게 했다.
 
6월에는 점심 때 릴리양이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다른 아이들이 듣는 가운데 “반이 한국인인데 왜 김치를 못 먹나. 이러면 나중에 시어머니가 좋아하겠나”라고 나무랐다.
  
아울러 A씨는 수업 중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손을 들어보라고 하더니 유독 릴리양을 가리키며 “너는 부모 등골을 150g 빼 먹는 애”라고 말하기도 했다.
 
릴리양 부모는 뒤늦게 딸로부터 이런 사실을 듣고 A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릴리양은 이후 병원에서 적응장애 진단을 받고 수개월 동안 심리 치료를 받았다.
 
성범죄 징계 교사
절반 아직 교단에
 
지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교육자로서 우리 사회가 포용하고 함께 걸어가야 할 다문화가정 어린이에게 큰 상처와 아픔을 준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20년간 교직 생활한 A씨는 “젊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실수를 많이 한다. 그들도 아직 젊은지라 감정조절이 안 되고 욱하는 경향이 있다”며 “젊은 선생님들도 많은 사람을 겪고 배워야 한다. 하지만 임용고시나 사범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선생이 된 거다”고 말했다. “사회에서 선생님으로서 행동을 요구한다. 하지만 젊은 교사들 경우 그런 소양을 갖추기에는 너무 가치관이 빈약하다”고 A씨는 설명했다. 
 
<중앙일보 강남통신>이 빅데이터 전문 업체 파타크로스에 ‘교사 및 스승에 대한 소셜미디어상 담론 분석’이라는 주제로 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교사에 대한 키워드는 부정적인 내용이 전체의 84%를 차지했다. 폭력적인, 비도덕적인, 걱정스러운, 부족한 등이 사회에 비친 교사한 단면이기도 하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초등 제자와 교사 ‘위험한 사랑’
 
지난 2013년 초등학생 여제자와 성관계를 맺은 사실이 알려지자 “사랑하는 사이”라고 주장했던 초등학교 교사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제2형사부는 지난 23일 초등학생 제자(13)와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구속된 전 초등학교 교사 강모(30)씨에게 징역 8년과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그리고 10년간 신상정보공개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음란물을 소지한 혐의에 대해서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어린 학생에게 교육해야 할 의무가 있고 13세 미만의 아동에 대해 성적 가치관 형성을 지도하고 보호해야 할 초등학교 교사가 음란 동영상을 어린 제자에게 보여 주고 수차례 간음하는 등 죄질이 불량하다”고 밝혔다. 
 
강씨는 지난해 5월부터 초등학교 제자와 여러 차례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같은 해 12월 구속됐다. 강씨는 비슷한 시기 여고생이 된 제자를 집으로 불러 성관계를 갖은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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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