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9주년 기획특집> 대한민국 교육 현주소 “아이들이 위험하다” ⑥못 말리는 사교육 광풍

개천의 용은 씨가 말랐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국민들은 대한민국 교육을 두고 악순환의 연속이라 말한다. 사교육 시장의 성장에 따른 폐단은 예전부터 연결고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부의 대물림’ ‘출산 기피’ 현상 등도 사교육의 비대화, 그에 따른 양육비 증가와 궤를 같이 한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대구에 사는 A양은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이 됐다. 그는 학원을 마친 후 집으로 귀가하는 시간이 가장 좋다고 한다. 저녁 8시가 넘어 집으로 귀가하는 A양을 부모가 맞이해주기 때문이다. 학원 한두 개는 기본으로 다니는 요즘 아이들이 퇴근하고 온 부모보다 늦게 집으로 귀가하는 광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월 100만원 지출

이제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B양은 최근 대치동으로 영어학원을 옮겼다. B양의 부모는 최근 나가고 있는 모임에서 ㅇ학원이 좋다는 얘기를 듣고 딸을 그곳으로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한 달 학원비가 전에 다니던 학원보다 40만원이나 더 비싸 솔직히 부담스럽다고 전했다. 그러나 ‘아이의 미래를 위해’라는 생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최근 대한민국은 외국어 교육 열풍이다. 영어는 물론 중국어, 심지어 러시아어를 배우는 아이들도 있다. 문제는 이들이 한글도 제대로 깨우치기 전에 학원가로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의 자발에 의한 학업이 아니기 때문에 학업성취율 또한 떨어진다. 부모는 모든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자녀를 보낼 수밖에 없다. 비단 부모의 욕심이라 치부하기엔 사회 구조적 모순이 커 보인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사교육비조사보고서’를 보면 2014년도 초·중·고등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68.6%로 나타나 근 70%에 육박하는 비율을 보이고 있다. 학교급별로 분류하면 초등학생은 81.1%, 중학생은 69.1%, 일반계 고등학생은 56.2%로 나타났다. 연령이 내려갈수록 사교육을 받는 학생의 비율이 높아지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영유아 교육시장 활황…엘리트화 조짐
젖먹이에게 영어·일본어·중국어 주입

왜 ‘역전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중·고등학생의 경우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프로그램 또는 1:1과외 등 다른 형태의 교육을 받는데 시간을 투자하는 반면 초등학생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사교육으로 몰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80%가 넘는 초등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을 설명할 순 없다. 결국 이는 비정상적인 조기교육 열풍으로 밖에 해석이 불가능하다.


‘열풍’은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4만2000원으로 나타났다. 세부적으로 가장 지출이 많은 순으로 나열하면 중학생이 27만원으로 가장 높게, 그다음 일반계 고등학생 26만9000원, 초등학생 23만2000원으로 조사됐다. 초등학생 사교육비도 결코 낮다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보다 더 낮은 연령에도 사교육 바람이 불고 있다는 측면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간다. 특히 2015년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미취학아동인 영유아의 사교육비 증가폭이 초·중·고등학생보다 10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4월22일 국무총리실 산하 육아정책연구소가 내놓은 ‘영유아교육·보육비용추정연구’ 자료를 보면 2014년 영유아 1명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10만8400원으로 2013년 발표된 7만8900원보다 3만원 가량 늘었다. 이는 같은 기간 초·중·고등학생 사교육비 증가분인 3000원의 10배 수준이다.

규모적 성장도 폭발적이다. 2014년 ‘영유아총사교육비’ 규모를 보면 2013년에 기록한 2조6415억원보다 5874억원 증가한 3조2289억원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영유아 사교육 시장이 양적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고액 사교육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일찍 말문을 틔고 싶어 하는 부모들은 고액의 비용을 감수하며 자녀를 학원에 보내고 있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A학원의 경우 학원비가 75만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중·고교생의 고액과외 금액과 맞먹을 정도로 높다. 개중에는 월 100만원이 넘는 금액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전문직 가정이 밀집돼 있는 강남의 학부모는 “영어유치원만 보내도 비용이 월 100만원”이라고 말해 영유아 사교육 시장의 고액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부작용은 ‘가계 부담’만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아동 발달에 맞지 않는 교육으로 인한 ‘발달장애’를 우려한다. 조기 외국어 교육이 영유아 언어 및 인지 발달장애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되는 과목을 보면 외국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교육과정은 아동의 전인교육을 방해하는 요소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어린이집 활동의 84.3%가, 유치원 방과 후 활동의 62.8%가 영어 과목에 집중돼 있다. 또한 반일제 학원에 다니는 유아 중 54.3%가 영어학원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어뿐만이 아니다. 최근 다언어 열풍이 불면서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영어는 물론, 중국어, 일본어 등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다언어 교육이 자칫 자녀의 언어능력 발달을 오히려 저해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한 언어치료 전문가는 “아이들이 커서 사춘기가 올 경우, 심각한 말더듬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현상이 2000년대 들어 특히 늘어났다”고 밝힌 바 있다.

비쌀수록 인기


그럼에도 부모들의 수요는 줄지 않고 있다. 그들은 그룹을 결성하거나 또는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자녀의 외국어학습정보를 공유한다. 해당 사이트에 가보면 3, 4세로 추정되는 아동에게 영어는 물론 중국어, 일본어, 심지어 스페인어까지 동시 교육을 시키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슈퍼맘’으로 불리는 이들은 ‘아들에게 14개월 때부터 영어, 중국어, 일본어 노출. 21개월부터 영어 단어로 말문 대폭발’ 등의 교육 후기를 남기고 있다. ‘교육 부문이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는 세간의 평가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유치원 대란 왜?

‘유치원 로또’. 복권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것에 당첨되면 학부모들은 환호성을 치며 기뻐한다. 자신의 자녀를 국공립 보육 및 유치원에 입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에서 되풀이되는 기현상이다.

소위 ‘유치원 대란’이라 불리는 현상은 유치원 입학 시즌이면 심심치 않게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 학부모들은 조금이라도 집에서 가까운 국공립유치원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기꺼이 ‘탁구공 추첨’에 참가한다.

비싼 사립유치원은 대란을 부추기는 주요 요소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학부모들에게 사립유치원은 ‘부잣집’의 전유물이다. 이는 수치를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이 2015년 2월27일 교육부로부터 제공받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립유치원의 학부모부담금은 월 평균 19만5079원, 국공립유치원의 월 평균 8314원보다 무려 23배나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유치원 부족 현상이다. 국가 정책은 출산 장려를 따르고 있지만, 정작 자녀를 맡아줄 보육시설은 부족한 아이러니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서울의 경우 학부모들의 선호를 받는 국공립유치원이 특정 지역에 몰려있어 경쟁이 더욱 치열한 상황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유치원 대란’의 해결책으로 2014년 11월 가나다군별 추첨제를 도입, 원아모집 방법을 개선하면서 군별 중복지원자에 대해 합격 취소 방침을 세우고 중복지원자를 파악하고자 했지만 2015년 1월경 철회한 바 있다. 과연 2016학년도 원아모집에서 교육 당국은 ‘수요자중심’의 개선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학부모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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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