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9주년 기획특집> 대한민국 교육 현주소 “아이들이 위험하다” ②위험한 선택 ‘가출’

하루 200명 가출…왜 나가는지 아시나요?

[일요시사 사회2팀] 유시혁 기자 = 지난 3월26일, 가출청소년 여중생 A양이 모텔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다. 용돈벌이로 성매매에 뛰어들었다가 성매수자로부터 살해된 것이다. ‘봉천동 모텔 여중생 살인사건’뿐만 아니라 가출청소년 관련 범죄가 끊이지 않고 보도되고 있어 사회적인 문제로 야기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벗어나 길거리로 나선 가출청소년들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지난해 경찰서에 접수된 13~18세까지의 가출 신고 건수는 1만1279건(남자 4719명, 여자 6560명)이다. 학계에서는 연구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가출청소년의 규모를 최소 10만명에서 최대 45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추산하는 수치는 대략 39만명이다. 교육부에서는 매일 200여명의 청소년이 가출을 하고 있다고 추산한다.

100명 중 6명
“길거리 나선다”

통계청의 총 조사 인구총괄 자료에 따르면 10∼19세의 인구는 전체 661만1640명(2010년 기준)이다. 가출청소년이 39만명이라고 가정하면 가출청소년의 비율은 대략 5.9%, 청소년 100명 중 6명이 가출청소년인 셈이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청소년 유해환경접촉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 가출 경험은 11%로 나타나 10명 중 1명은 가출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번 이상 가출을 경험한 중ㆍ고등학생은 남성 청소년이 12.9%, 여성 청소년이 8.8%로 조사돼 남성 청소년의 가출 경험이 높았다. 학년별로는 중학생이 9%, 고등학생이 12.5%로 조사됐다.

가출을 한 이유에 대한 질문에 가출 경험 청소년은 ‘부모 등 가족 간의 갈등’(67.8%),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9.5%), ‘가출에 대한 호기심’(6.1%) 등을 꼽았다. 여기서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한 가출은 불과 3.3%로 나타나 학교보다는 가정에 대한 불만으로 가출을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가출청소년들이 머물 수 있는 보호시설은 청소년쉼터가 유일하지만 턱없이 모자란 실정이다. 현재까지 국내 청소년쉼터는 전국 119개소로 최대 수용인원은 1200여명에 불과하다.  일시쉼터(일주일 이내) 26개소, 단기쉼터(3개월 내외) 52개소, 중장기(2년 내외) 41개소로 구분된다. 이는 일반적인 가출청소년 추산 대비 0.3%로, 가출청소년 1000명 가운데 3명만이 청소년쉼터에 머무는 셈이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청소년쉼터에 입소한 청소년들은 대부분 우발적인 가출이 많다”며 “청소년쉼터의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안정을 찾은 후 집으로 돌아가곤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 속의 가출청소년들에게 청소년쉼터는 턱없이 모자란 실정이라 안타깝다”며 “정부 예산 확대 방침에 따른 청소년쉼터 증설을 계획하고 있으며 다양한 가출청소년의 지원 사업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12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학교 밖 청소년 지원 대책’을 국무회의에 보고하고 이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여성가족부는 학업중단 사전예방 강화, 학교 밖 청소년 발굴 강화, 유형별 맞춤형 진로지도, 촘촘한 의료·보호·복지 지원, 지역사회 협업체계 구축 등의 5대 중점 추진과제 18개 세부 추진 과제를 발표했다.

이 내용은 이달 29일부터 시행되는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2014년 5월28일 제정) 시행을 앞두고 가출청소년에 대한 정부 지원을 체계화하는 데 초점을 둔 것이다. 이로써 가출청소년이 자주 발생하는 전국 458개 고등학교에 교육복지사가 배치될 예정이며, 대안교실(1284개교) 및 대한교육위탁교육시설(238개 시설) 등을 통한 대안교육을 강화할 방침이다.

건강가정지원센터를 통한 가족상담 및 부모 교육 등 가족관계 개선 프로그램도 지원할 예정이다. 또한 현재 54개소인 가출청소년지원센터를 시군구 단위 200개소로 지정·운영하고, 위기청소년 특별지원 대상자에게 생계비·치료비·검정고시 비용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거리서 방황 청소년 45만명 “머물 곳 없다”
1000명 중 3명만 쉼터…관련범죄 끊이지 않아

이 자리에서 김희정 여성가족부장관은 “학생들이 학업을 중도에 그만두지 않도록 교육부와 적극 협력하되, 부득이한 사정으로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은 미래의 인적자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며 “이번 법률 시행과 종합대책은 그간 사각지대에 있던 학교 밖 청소년을 지원하는 체계를 마련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딱히 방법이…
지원대책 강화

가출청소년들이 쉼터를 찾는 경로는 헬프콜 청소년전화(1388)와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이사장 고승덕), 이동쉼터 등을 통해서다. 하지만 주로 인터넷에 익숙한 청소년들에게 전국 119개소 청소년쉼터 안내가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인터넷포털사이트에 청소년쉼터를 검색하면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가 제공하는 전국 91개소(최대 수용인원 719명)만 검색된다.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는 회원 쉼터의 자료만 공개하기 때문이다.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에 공개된 청소년쉼터는 서울 6곳(수용인원 77명), 부산 3곳(수용인원 40명), 인천 8곳(수용인원 165명), 대전 6곳(수용인원 42명), 대구 4곳(수용인원 42명), 광주 3곳(수용인원 27명), 울산 4곳(수용인원 40명), 경기 21곳(수용인원 249명), 강원 5곳(수용인원 55명), 충북 4곳(수용인원 41명), 충남 6곳(수용인원 62명), 전북 5곳(수용인원 49명), 전남 4곳(수용인원 40명), 경북 5곳(수용인원 45명), 경남 4곳(수용인원 34명), 제주 3곳(수용인원 27명)에 불과하다.

이에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1388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어 인터넷 검색상 모자란 부분을 해소하고 있다”며 “청소년 밀집 지역을 대상으로 이동쉼터 및 상담센터가 수시로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고 밝혔다.

가출청소년 밀집 지역은 동대문, 천호 로데오거리, 노원 문화의거리, 신림역 사거리, 영등포역, 신촌 창천어린이공원, 부산 해운대, 부평역, 동인천역, 광주 구시청, 대전 은행동, 울산 삼산동, 안양 남부시장 일대 등 전국 312곳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청소년쉼터에 머물지 못한 가출청소년들은 대부분 인터넷 카페 및 밀집지역에서 가출팸(가출청소년과 패밀리의 합성어로 가출청소년 소모임을 말한다)을 모집해 숙식 해결을 모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지인의 집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으며 관련 인터넷카페에서 장소제공자를 구한 후 숙박을 해결하곤 한다. 숙박을 해결하지 못하는 날에는 찜질방, PC방, 만화방 등을 찾는다.
 

가출청소년들의 커뮤니티 카페 ‘가출한사람들의놀이터’(회원수 3032명, 5월12일 기준)에는 하루 평균 30건의 가출팸 모집글이 게시된다. 대부분 사는 지역, 게시자의 나이 및 성별 등만을 공개한 후 비밀댓글을 통해 연락처를 주고받는다. 해당 카페의 ‘도움드려요’ 카테고리에는 가출청소년에게 금전 및 숙식을 제공하는 도움 제공자의 글이 하루 평균 10여건 게시된다.

하지만 도움제공자가 여성 가출청소년들을 구해 성관계를 가지려는 성인 남성이 주를 이루고 있어 문제다. 도움제공자로부터 피해사례를 공개하는 ‘쓰레기목록’ 카테고리에는 지난 2달간 130여건의 도움제공자로부터 성추행 및 사기를 당한 가출청소년들의 피해가 공개돼 있다.

‘울산 혼자 사는 남자가 같이 지낼 여자만 구함’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살펴보면 주변 지역의 경우 직접 픽업까지 가겠다는 내용과 함께 모바일 메신저 아이디가 적혀있다. ‘매달 일정수입 도우미’라는 제목의 게시글에는 미성년자 노래방 도우미를 모집한다는 내용까지 담겨 있다. ‘수원 조심하세요’라는 제목의 게시글에는 도움제공녀를 따라간 게시자가 남성 3명으로부터 성매매 업소 취업을 강요받고, 거절하자 구타를 당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수원남문파 등 조직폭력배 일당의 성매매 업소 취업 권유 피해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출청소년 범죄 
지난해 1만8000건

경찰 조사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청소년범죄자는 모두 42만4611건, 이중 가출청소년의 범죄는 17만1127건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 한 해 동안에만 1만8000여건의 가출청소년 범죄가 발생했다. 주요 범죄유형으로는 절도(36.3%), 폭력(27.4%), 사기 및 횡령을 포함한 지능범죄(10.9%) 등으로 나타났다. 가출청소년의 절도 범죄가 높은 이유로는 가출에 따른 경제적 자립의 어려움으로 보인다.


2년 가출경험자 김의태(21)군은 “미성년자인데다 부모의 동의를 받을 수 없으며 머물 곳이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하루하루 생활이 매우 어려웠다”라며 “여성 가출자의 경우에는 유흥업소에 불법 취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남자는 오토바이배달 등의 위험한 직군에 겨우 취업에 돈 버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덧붙여 “가출청소년을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청소년일자리 제공에 대한 고용 기준이 까다로운 것은 알겠다”며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는 등 도저히 집에서 살 수 없어 가출하게 된 청소년에 대한 대책도 마련돼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집 나간 경험 11%
이유는 가족갈등

근로기준법 제66조(연소자 증명서)에는 ‘사용자는 18세 미만인 자에 대하여는 그 연령을 증명하는 가족관계기록사항에 관한 증명서와 친권자 또는 후견인의 동의서를 사업장에 갖추어 두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주민등록증이 발급되지 않은 미성년자의 경우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는 데 제약이 따르기도 하다. 이는 여성 가출청소년이 경제적 자립을 하기 위해서는 불법 성매매 업소에 취업하거나 모바일 채팅앱을 통한 성매매를 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말이다.

지난 7일에는 창원지방법원 제4형사부는 여성 가출청소년을 모바일 채팅앱을 통한 성매매 알선 혐의로 20대 일당 4명에 대해 징역 2∼7년형을 선고했다. 지난 3월에도 춘천에서 10대 가출청소년 남성 2명이 여성 가출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알선했다가 징역 4년을 선고받았으며, 지난 2월 경기도 안산의 40대 남성도 여성 가출청소년 성매매 알선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제주시에서는 40대 남성이 여성 가출청소년 2명과 자동차에서 성매매를 했다가 기소됐다. 이 남성은 여성들에게 차비 명목으로 1만원의 성매매 대가를 지불한 것으로 조사됐다.

만 원이면 OK!
성매매 기승


39만명에 이르는 가출청소년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벌이가 마땅치 않아 절도 등 가출청소년범죄가 끊이지 않고, 여성 가출청소년은 성매매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턱없이 모자란 청소년쉼터, 경제적 자립을 위한 지원책 마련 부족 등 정부의 보다 현실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할 때다.
 

<기사 속 기사> 청소년 사망 1위는?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지난달 28일 공개한 ‘2015 청소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의 사망 원인 1위가 ‘고의적 자해(자살)’로 나타나 충격을 안겼다. 13~19세의 청소년 자살 충동률은 7.9%, 100명 가운데 8명이 1년 중 자살 충동을 한 번 이상 한 것이다. 자살 충동 이유로는 ‘성적 및 진학 문제’(39.3%), ‘경제적 어려움’(19.5%), ‘가정 불화’(10.5%), ‘고독’(9.8%), ‘이성문제’(5.1%) 등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의 자살시도율을 살펴보면 중고등학생의 자살 시도율은 2.9%(분석대상자수 7만2060명)로 조사됐다. 지난해 중학생 3만6156명 가운데 1230명(3.4%), 고등학생 3만5904명 가운데 861명(2.4%)이 자살을 시도했다. 남학생보다는 여학생이 높은 수치를 보였다.

남학생 3만6470명 중 838명(2.3%), 여학생 3만5590명 중 1280명(3.6%)이 자살 시도를 했다. 학급별로는 중1(3.7%), 중3(3.4%), 중2(3.2%), 고1(2.5%), 고2·3(2.4%)순으로 나타났으며, 고등학교의 경우 특성화고(2.9%)가 일반계고(2.3%) 보다 자살시도율이 높았다. 성별 및 학급별 순위에서는 중1 여학생(5.2%)이 자살 시도를 가장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혁>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