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9주년 기획특집> 대한민국 교육 현주소 “아이들이 위험하다” ④천태만상 유학시대 '앞과 뒤'

비행기 탄 아이들이 되돌아 온다 "왜?"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영어 교육열풍이 거세게 불어 닥쳤다. 당시 돈 좀 있는 집안은 어린자녀를 앞다퉈 해외로 보냈다. 조기유학이 큰 폭으로 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유학열풍 15년이 넘은 이 시점, 유학에 성공한 사례보다 실패한 사례가 두드러지면서 유학열풍이 한풀 꺾인 모양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유학의 명암을 들여다봤다.

 
2000년 이후 조기유학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당시 수많은 학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해외로 떠났다. 개중에는 유수의 명문대에 진학해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는 학생이 있는 반면 학업에 흥미를 잃어 탈선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유학지에서 방황하는 학생 대부분은 ‘치맛바람’에 억지로 떠밀려 타지에 홀로 남겨진 상태였고 이들 중 다수는 조기유학에 실패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조기유학의 문제점이 서서히 부각되기 시작했다.

홀로 남겨진 채
각종 위험 노출
 
A씨는 부모의 권유로 초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어린 나이에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 하는 게 여간 어려웠다. 언어의 장벽과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은 A씨에게 고통 그 자체였다. 결국 A씨는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귀국했다. 언어도 학위도 무엇 하나 얻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왔다. 마냥 빈손은 아니었다.
 
A씨는 유학생활 중 외로움을 달래고자 접했던 마약을 끊지 못해 미국인 친구를 통해 국제택배로 마약을 제공 받아 서울 강남, 홍대 클럽가에서 흡연하고 주변에 유통시킨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지만 마약에 관대한 문화에 익숙한 탓에 죄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A씨의 부모는 대학교수로 알려져 충격이 더했다. 유학생활 중 마약을 배우고 국내에 마약을 밀반입하는 일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마 종자를 밀반입해 직접 재배하고 거래까지 한 웃지 못 할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데에는 유학지의 환경도 한 몫 한다. 필리핀에 조기유학을 간 10대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때리고 억지로 술을 먹이는가 하면 성추행까지 저지른 기숙사 운영자에게 징역 6개월이 선고되는 일이 지난해 3월 벌어졌다. 당시 법원 등에 따르면 2007년부터 필리핀 마닐라에서 한국 유학생 기숙사를 운영해온 최모(38)씨는 2011∼2012년 A(18)군을 수차례 손찌검하고 각목, 플라스틱 파이프 등으로 허벅지 등을 때렸다. A군이 농구 경기 중 실수를 했다거나 다른 학생을 빨리 불러오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최씨는 2012년 10월에는 기숙사 인근 식당에서 A군을 비롯한 학생들에게 강제로 술을 먹이기도 했다. 학생들이 거부하자 최씨는 “어른이 주는데 안 먹어?”라고 위협했고, 기숙사로 들어가면서 맥주 40여병을 구입해 구토를 할 때까지 계속 마시게 했다. 또한 최씨는 2012년 1월 B(16)군의 기숙사 방에 들어가 B군의 성기를 만지는 등 추행하기도 했다. 최씨는 학생들에게 “한국에 가서 부모님에게 말하면 죽여버린다”고 위협한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해 영국 <데일리메일>은 외국 이민자 및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각종 흉기를 이용한 무자비한 폭력행위를 저지른 십대 청소년 갱단이 처벌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당시 청소년 갱단은 UCLAN(University of Central Lancashire)에 다니는 유학생들이 거주하는 아파트형 학교 기숙사 건물에 수시로 침입해 테러행위를 했다.
 
기숙사 주변에 수시로 출몰하며 유학생들에게 돌을 던지고 욕설을 퍼붓는 등 여학생이 혼자 머무는 방을 밖에서 파괴하려 시도하는 등 공공기물 파손 및 주거 침입과 같은 악질적 범죄 행위도 서슴없이 자행했다. 청소년 갱단의 각종 방해 행위 때문에 유학생들은 기숙사 밖을 나가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다.  학교도 출석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을 겪었다.

고스펙 인재 넘쳐
유학 실패 증가
 
일련의 사건들은 조기유학의 부작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2006년 교육부는 ‘조기유학 제대로 알기’라는 책자를 만들어 배포한 바 있으나 이후 해외 조기유학이나 해당 기숙사들에 관한 가이드라인은 따로 마련되지 않았다. 조기유학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조기유학을 비판하는 이들은 조기유학의 문제점을 한국과 다른 환경에서 찾는다. 한국 학교와 달리 외국 학교는 자유시간이 많다. 외국 학교의 경우 오후 3시는 전후로 수업이 끝난다. 이후 시간은 학생 각자에게 맡겨져 있다. 한국처럼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시키지 않기 때문에 어떤 아이는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하지만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아이도 적지 않다. 특히 부모와 떨어져 혼자 유학하는 경우에는 통제가 힘들어 효율적인 시간관리가 어렵다.
 
그럼 남는 시간에 무얼 할까. 담배와 마약 등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유학생 출신 청소년 갱단원이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일탈은 정체성혼란에서 나온다. 낯선 곳에서 타인종과 어울려 생활한다는 자체가 곤욕인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성인도 힘들어 하는 영어 공부를 매일 해야 되는 상황에 놓여 있으니 그 스트레스가 상상을 초월한다. 종합해보면 조기유학생들은 유학지에서 문화차이, 언어문제, 보호자 부재, 외로움 등으로 힘들어 한다.
 
돈 좀 있는 집안 어린자녀들 앞다퉈 해외행
각종 부작용 드러나면서 유턴…그럼 어디로?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2010년 발표한 SERI 경제포커스 제310호 ‘국제 유학시장의 최근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7명 중 1명이 유학을 떠났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지난 2012년 발표한 KB daily 지식 비타민 <한국의 유학시장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해외 유학 연수비용은 2000∼2011년 중 367% 증가해 동기간 도시가계지출 증가율을 큰 폭으로 상회했다.
 
한국의 해외유학 연수비용은 2011년 기준 44.7억 달러 수준으로 전년 대비 0.4% 감소했다. 해외유학 연수비용은 지속적인 증가를 보이다가 2008년 미국 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감소세로 전환됐으나 2010년 다시 상승세를 보였다.
 
 
2011년 기준 한국인 해외 유학생 수는 28만9000명이며, 이 중 57%는 학위를 위해, 37%는 어학연수를 위해 유학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캐나다, 일본은 학위를 위한 유학생 비중이 높은 반면, 중국, 영국, 호주 등은 어학연수를 위한 유학생 비중이 높았다.
 
초·중·고 유학생 수는 2006년을 정점으로 이후 3년간 지속적으로 감소세였으나 2010년에는 18만7000명으로 전년 대비 3.4% 증가했다. 2010년 기준 초·중·고 유학생 중 초등학생이 8794명으로 가장 많았다. 중학생 5870명, 고등학생 4077명 순이었다. 이는 전년 대비 각각 5.1%, 2.6%, 1.3% 증가했다. 2010년 기준 학생 1만명당 유학생 수는 중학생이 29.7명, 초등학생이 26.7명, 고등학생이 20.8명으로 특히 중학생이 유학을 많이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유학을 떠난 국가별로 살펴보면 초·중·고 유학생은 미국과 동남아 중심으로, 대학 유학생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유학했다. 전체적으로 유럽보다는 북미와 아시아권에 유학생이 집중돼 있었다. 고등학생은 49.5%가 미국에 집중돼 있었다. 이는 2008년 대비 5.9% 증가한 수치다. 대학 유학생은 초·중·고 유학생에 비해 미국 및 동남아 비중이 낮은 반면, 중국, 일본, 호주, 영국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다 다양한 나라에 유학 중이다.

유학 성공해도
취업난 사슬에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2014서울교육통계 분석자료집>을 보면 서울시 강남구와 서초구의 유학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초등학생을 제외한 중학생, 고등학생 유학 비율은 감소세다. 2003년과 2013년 유학생 수를 비교한 결과 초등학생은 13.8% 증가한 반면 중학생은 -21.4%, 고등학생은 -20.5% 감소했다. 유학 실패사례 등 각종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나타난 결과로 풀이된다.
 

이기홍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으로의 조기유학 청소년의 적응과 열망’이라는 주제의 논문을 통해 조기유학은 성공의 가능성보다 훨씬 큰 실패의 위험을 안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드러난 비용에 더해 숨은 비용을 고려하면 그 대가가 막대하게 크다는 것이다.
 
 
또 조기유학생들의 경우 발달과정에 있으며 자아가 완성되지 않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학업 성취의 문제뿐 아니라 언어소통조차 불편한 낯선 외국에서의 생활이 용이한 일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조기유학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자제력이 약한 청소년들에게 대처하기 어려운 과제라는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조기유학생들은 같은 또래의 이민자 자녀들에 비해 우울증의 평균 수치는 23%가 높았으며 자살 관념의 평균 수치는 90%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을 그대로 방치하면 학교중퇴, 청소년범죄, 폭력조직 구성, 마약, 음주 등 탈선은 물론 자살에 이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공식적인 통계 수치로 확인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조기유학생의 절반 정도는 학업을 포기하고 중도에 귀국한다는 추정도 있다. 이 교수는 청소년을 조기유학으로 내모는 한국의 교육현실과 사회구조를 바로잡는 일이 매우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유학에 성공했다고 해서 취업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현상은 인재시장에서 나타난다. 헤드헌팅업체 탑앤스카우트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갖고 있어서 해외대 출신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부 외국계 기업에서는 해외대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유리한 위치에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동등한 학위를 갖고 있다면 취업 시장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도피성은 대부분 실패…중도 포기 많아
국내대 출신이나 해외대 출신이나 비슷
 

헤드헌팅업체 써치앤컴퍼니 관계자는 “해외대 출신을 선호하지만 100위권 대학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얘기”라면서 “요즘에는 고스펙 인재가 많아서 50위권, 30위권 대학을 나와야 인재로 뽑힐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고급인재를 요구하는 경우에는 예외지만 해외대 출신이라고 해서 특별한 대우를 받는 일은 드물다는 것이다. 유명 해외대 석사학위나 박사학위가 있어야 고급인재로 인정받는다고 전해진다. 업계의 말을 종합해보면 아이비리그 출신이 아닌 이상 사실상 국내대 출신과 해외대 출신 간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
 
이처럼 해외 유학이 예전과 같지 않자 적은 비용으로 해외대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국내 유학에 눈길을 돌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송도가 국내 유학지로 부상하고 있다. 인천 송도의 인천글로벌캠퍼스에는 대학생 5000명이 공부할 수 있는 강의동과 도서관, 기숙사, 게스트하우스, 교수아파트, 복합문화시설 등이 갖춰져 있다. 2단계로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추가해 10개 대학의 1만명을 수용할 예정이다.
 
현재 인천글로벌캠퍼스에는 한국뉴욕주립대, 조지메이슨대, 미국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벨기에 겐트대 등 4대 대학이 자리를 잡았다. 4개 대학 정원은 3876명이다. 현재 학부·대학원 등 재학생은 606명, 외국인 학생은 66명이다. 앞으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컨서바토리(피아노·관현악·성악·합창지휘과)와 미국 네바다주립대(호텔경영학), 러시아 불쇼이국립발레아카데미(지도자·무용수·안무가 과정) 등도 입주할 예정이다.
 
인천글로벌캠퍼스 내 대학은 한국 대학처럼 수능으로 학생들을 뽑지 않는다. 고등학교 공식 성적 증명서와 영어 능력 증명서가 평가 기준이 된다. 영어는 토플 IBT 80점 이상, LELTS(영국·호주 영어테스트 시험) 6.5이상, SAT Critical Reading 450점 이상, ACT-English(미국 대학입학학력고사) 20점 이상의 기준 가운데 한 가지를 충족하면 입학에 도전할 수 있다. 

조폭, 마약 등 
만만찮은 부작용
 
현실적으로 일반 고등학교에서 글로벌캠퍼스에 입학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특목고와 국제고나 홈스쿨링, 대안학교 등 제도권 밖 교육이 인기다. 문제는 진입장벽이다. 경제적인 여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글로벌캠퍼스는 고사하고 그 길목이 되는 학교에도 진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자리잡은 대안교육 '허와 실'
 
대안학교는 서구 교육계의 ‘얼터너티브 스쿨(alternative school)’에서 나온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억압적인 입시교육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하고 자유로우며 자연친화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학교를 말한다.
 
대안학교는 특성을 살려 건학 이념에 따라 생태농업, 건축, 대중매체이해 등 다양한 특성화 과목을 가르친다. 이외에도 종교·환경·시민단체에서 주말이나 방학에 자연답사, 체험활동, 방과 후 학습활동 등의 대안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비상설 대안학교 등이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대안학교 특별전형으로 대안학교 출신을 선발하기도 한다.
 
대안교육의 교육적 가치는 훌륭하나 사회성 발달이 뒤쳐진다는 단점이 제기되고 있다. 일반 학교와 달리 자유로운 학풍 때문에 대안학교 안에서는 적응을 잘 하지만 밖에서는 사회성이 심각하게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자연주의나 자급자족과 같이 스스로 생활하는 방식을 중시하는 대안학교의 특성이 원인으로 꼽힌다. 대안학교 학생들이 자칫 사회와 동떨어진 주변인으로 남게 될 우려가 적지 않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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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