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수 자처한 박근혜 ‘이상한 행보’ 대해부

말로는 국민생각 행동은 홀로생각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박근혜정부의 행보에 국민들은 연신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4월16일 세월호 참사 1주년에 중남미 4개국에 대한 순방을 떠난 것은 물론, 청와대는 국가기밀에 해당되는 대통령의 건강상태를 ‘대서특필’하고 있다. 순방 직후 발표된 대국민 메시지 속에는 ‘성완종 사태’ 수사 방향을 지시하는 듯한 발언이 섞여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체이탈’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일련의 행보를 지켜보면 국민의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지지율 변화 추이를 보면 레임덕이 가까워졌단 진단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4·29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압승을 거둬 여전한 집권여당의 힘을 보여준데 반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3주째 하락하고 있다.

이상한 나라
박근혜정부

수치상으로 보면 당과 대통령의 지지율 역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정당 지지율에서 새누리당은 33.6%를 기록, 전주대비 1.7%포인트 하락하면서 리얼미터 주간조사 기준으로 19대 국회 출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번 재보선 압승으로 새누리당은 다시 질주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다.

반면 박근혜정부는 부침의 연속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분석에 따르면 ‘성완종 사태’로 인해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3주째 하락하고 있다. 결국 4월 첫째 주만 해도 41.8%를 기록하던 지지율이 한 달 새 36.8%로 하락했다. 이러한 추세라면 5월이 끝나기 전 당과의 ‘지지율 역전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정치평론가들은 ‘레임덕’ 경종을 울렸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번 기회로 부산지역을 벗어나 전국구 잠룡으로 떠오름에 따라 이러한 현상은 가속화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성완종 스캔들로 인한 ‘데드덕’ 얘기가 나올 정도로 박근혜정부는 위기에 놓였다는 분석이다.

지지율 하락 시점을 보면 국민의 마음이 왜 돌아서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4월 들어서 꾸준히 하락하는 것은 결국 친박계 핵심이 연루된 성완종 사태, 그로 인한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자진사퇴 여파가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박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반감이라기보다 측근에 대한 질타의 의미가 크다.

국민이 최근 박 대통령에 대해 실망하는 부분은 따로 있다. ‘4·16세월호 1주기’ 때 떠난 중남미 4개국 순방, 대통령의 건강상태 누설, 수사 방향을 직접 지시하는 듯한 사면 발언 등 이해하기 힘든 행보가 오히려 직접적으로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지난 4월16일은 박 대통령의 이상한 행보가 잘 드러난 날이다. 전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했던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이 되는 날, 박 대통령은 중남미 4개국 순방길에 올랐다. 앞서 박 대통령의 해외순방 일정이 공개되자 반발여론이 거세게 일어난 바 있다. 그러자 박근혜정부는 세월호 추모 일정을 국내에서 진행한 후 떠날 것이라 발표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반쪽짜리 추모였다. 당시 안산에 위치한 합동분향소에는 대대적인 추모식이 계획돼 있었다. 언론을 통해서는 유가족과 박 대통령 간 극적인 만남이 성사될 수 있다고 연일 보도됐다. 가족대책위원회 측에서도 “4월16일 만큼은 합동분향소로 오셨으면 좋겠다”라고 청와대에 계속적으로 참석을 요청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진도 팽목항으로 향했고 유가족과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안산의 추모식장 앞에는 혹시 모를 참석에 대비해 박 대통령의 이름이 적힌 의자가 배치돼 있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분향소를 폐쇄하고 철수한 탓’에 박 대통령이 팽목항에서 유가족을 만날 수 없었다”라고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보도가 나갔지만 실상은 유가족들 대부분이 안산의 합동분향소에 있었다. 엇박자가 난 것이다.

개운치 않은
4개국 순방

개운치 않은 상황에서 4개국 순방길을 강행했지만 성과 또한 좋지 못해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순방을 끝내고 귀국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중남미로 떠난 지난 10여일 동안 일본은 미국과 교류하며 우호관계를 적립했다. 외교전문가들는 ‘현안이 아시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남미로 떠난 박 대통령의 행보를 이해할 수 없다’며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박 대통령이 떠나 있는 동안 미·일 관계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연설에서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인 일본과 함께해 영광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28일에는 오마바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백악관 환영만찬에서 힘차게 건배를 나눴다. 앞서 아베 총리는 방미 전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에 참석해 중국과 관계개선을 시도했다. 과거사문제는 고사하고 아시아 외교의 중심에서 대한민국은 벗어나 있었다.

국내에서도 외교력 부재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아시아 외교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외교행보가 너무 한가로운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대미·대일 외교를 포함해서 우리 외교전략의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전병헌 최고위원은 “미·일·중·러의 균형 체제가 지각변동 수준으로 요동치고 있는데 우리 외교는 도무지 어디 갔는가”라며 안타까워했다.

박근혜정부 갈지자 행보 ‘지지율은 뚝뚝’
세월호 잊고 떠났는데…외교력 부재 논란

귀국 후에는 국가기밀 누설 의혹에 시달렸다. 청와대 발표 내용 중 국가기밀에 해당되는 부분이 포함돼 있어 논란이 된 것이다. 박 대통령이 귀국한 지난달 27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중남미 4개국에서 펼쳐진 순방 기간 박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심한 복통과 미열이 감지되는 등 몸이 편찮은 상태가 지속됐었다”며 박 대통령의 건강에 대해 언급했다.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서는 “서울 모처에서 몸 컨디션과 관련한 검진을 받았다”며 대통령의 행보가 ‘대서특필’됐다.

통상적으로 국가원수의 건강을 소문내지 않는 것이 관례다. 국가기밀에 해당되는 부분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외교나 안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절대 안정’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대중에게 공개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이틀 후인 29일 청와대는 대통령의 건강상태와 관련해 “생각보다 피로누적이 심해 회복이 예상보다 더디다”고 또 한 번 밝힌 것이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건강상태를 실시간으로 보고하는 청와대의 저의가 궁금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역대 대통령의 사례를 들어봤을 때에도 이러한 청와대의 발표는 이례적이라는 표현을 넘어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역대 대통령 중 건강에 대해 브리핑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설령 브리핑을 하더라도 회복된 후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이 공개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공식발표를 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
건강 적신호?

박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 수사 방향을 지시하는 듯한 메시지를 남겨 구설수에 올랐다. 건강상의 이유로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대독한 대국민 메시지 속에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에 대한 언급이 포함돼 있어 ‘수사 방향을 지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메시지 안에는 전 정권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다. 박 대통령은 “금품 의혹 등이 과거부터 어떻게 만연해 오고 있는지 등을 낱낱이 밝혀서 새로운 정치개혁과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그동안 만연됐던 지연·학연·인맥 등의 정치문화 풍토를 새로운 정치문화로 바꾸고 켜켜이 쌓여온 부패구조를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두 차례의 사면이 이뤄졌던 노무현정권 뿐만 아니라 이명박정권 등 과거정권까지 모두 수사해야 된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새정치연합에서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다. 문재인 대표는 “대통령이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고 여당의 편을 듦으로써 선거 중립을 위반했다”면서 “대통령 자신이 몸통이고 수혜자인 최고 측근 실세들의 불법 정치·경선·대선자금 수수에 대해 분명히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국민 메시지에 대한 새누리당의 반응은 우호적이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평가다.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현안브리핑에서 “대통령의 담화문은 성완종 사태와 관련해 국민들에 대해 느끼는 대통령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여러 의혹에 대해 공정하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며, 부패정치를 뿌리 뽑고 새로운 정치문화를 확립하기 위한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다”고 평가했다.

대통령 건강 실시간 생중계, 기밀 아냐?
역대 정권 향하는 검날, 수사 방향 지시?


그러나 비박계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진정성있는 사과를 원해왔다. 김 대표는 당시 재보선 후보를 지지하러 간 자리에서 “어떤 형태로든 (성완종 파문과 관련한) 대통령 사과가 있을 것이다”라고 언론을 통해 밝힌 바 있다.

유 원내대표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대한 국민 분노가 무섭다”며 “국민은 이 문제에 관한 대통령의 정직한 목소리를 듣기를 원한다. 대통령께서 이 문제에 대해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진솔한 말씀을 직접 해주실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의 마음은 한결같았지만 박 대통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감’으로 일관했다는 점에서 당내 불만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이번 대국민 메시지가 검찰 수사에 영향을 끼쳤다는 측면에서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전 정권’과 ‘정치문화’를 언급했다. 이에 정계전문가들은 전 정권에 대한 ‘사정 드라이브’를 지시한 것이나 진배없다고 보고 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수사의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며 한탄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박 대통령의 이러한 입장 발표가 있을 때마다 야권에서는 ‘유체이탈 화법’을 지적한다. 박 대통령이 현안에 대해 마치 자신의 일이 아닌 양 말한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새정치연합 정청래 의원은 “사안이 이런데도 본인은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유체이탈 화법의 진수를 보였다”고 꼬집었다.

역대정권 모두
수사방향 지시?

4·29재보선은 새누리당의 완승으로 끝났다. 새누리당 권은희 대변인은 승리가 확정된 후 결과에 대해 “박근혜정부 3년 차, 경제살리기에 더욱 매진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받아들인다”며 “또한 국민을 괴롭히는 정치공세를 지양하고 국민의 삶을 얼어붙게 하는 투쟁정치를 멈추라는 뼈아픈 질책으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청와대도 재보선 결과에 대한 논평을 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이번 국민의 선택은 정쟁에서 벗어나 경제를 살리고 정치개혁을 이루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정계에서는 박 대통령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는 분석이 쏟아졌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문 대표가 자살골을 넣음으로써 다시 찾은 국정동력이 ‘박근혜호’를 순항하게 만들 것이란 분석이다.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고 있는 와중에 과연 그들의 주장처럼 정권 3년 차가 순탄하게 흘러갈지, 국민의 눈과 귀가 지켜보고 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성완종 불똥 튄 재계

‘성완종 사태’의 불똥이 엄한 곳으로 튀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남미 4개국 순방 직후 가진 대국민 메시지에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특별사면에 대해 “경제인 특별사면은 납득할만한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밝혀 사면을 기대하고 있던 재벌들 입장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이는 경제인 특별사면은 어렵다는 내용으로 해석이 가능해 논란이 되고 있다.

담화문 배경에 대해 정가에서는 일련의 기업 관련 비리가 여론을 악화시켰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한 달 사이 ‘성완종 리스트 파문’ ‘방산비리’ ‘포스코 사건’ 등 대형수사가 잇따라 진행되면서 재벌총수와 대기업에 대한 여론이 결코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사 기대했건만 박근혜 “철저조사”에 아뿔싸

의도치 않은 여파에 재계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최태원 SK회장 입장에서는 직격탄을 맞은 것과 같다.
2013년 1월 횡령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최 회장은 2년3개월 넘게 복역 중이다. 이미 가석방 요건을 채운 그는 재벌 총수로서 역대 최장기 복역기록을 매일 경신하고 있다. SK그룹 내부에서는 광복절 특사를 기대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 회장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는 2014년 말 성탄절·설 특사가 유력한 인물로 꼽혔으나 2014년 12월 소위 ‘땅콩 회항’ 사건이 터짐으로 인해 반재벌 정서가 급속도로 확산돼 무산된 적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건강 악화로 구속집행이 정지된 이재현 CJ회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3년형을 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또한 재판이 진행 중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도 이번 박 대통령의 발언이 아쉬울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지금까지 한 차례 특사를 단행했는데 생계형에 국한됐을 정도로 경제인에 대한 특별사면에 인색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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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