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로비 창구’ 고위층 사교클럽 대해부

돈 많아도 아무나 가입 못한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숨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사망 직전 인터뷰에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한 호텔 휘트니스에서 10만달러를 건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성 전 회장은 생전에 이 휘트니스를 약속 장소로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 단순한 운동 공간이 아닌 돈 로비 창구였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처럼 사회고위층들이 몰리는 사교클럽에 대해 알아봤다.


우리사회에서는 인적 네트워크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부자들은 어떻게든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상위 1%, 상위 0.1%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집단의 규모는 작아지고 결속력은 더욱 강해진다.

정재계 명문가
한데 모여 단합
 
세계 1위 갑부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역시 중고등학교와 하버드대학교 인맥 덕을 봤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성장을 이끈 1등 공신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의 동창이다. 빌 게이츠 아버지의 교육방침 중 하나가 ‘부모가 자녀의 인맥을 넓혀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빌 게이츠 아버지는 아들에게 큰 자산을 주지는 못했지만 인맥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물려줬다.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가족에게 인맥을 물려주고자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진입장벽이 높은 엘리트들의 ‘사교클럽’은 일반인들에게 다소 낯설지만 이미 예전부터 존재했다. 그중 ‘서울클럽’은 사교클럽의 원조 격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 장충동에 있는 서울클럽은 상류층의 사교문화를 국내에 들여온 곳으로 1904년 고종황제가 외국인과 내국인의 문화교류 촉진을 위해 만든 사교클럽이다. 회원은 약 1000여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회원 가입비는 7500만원 선이다. 90년대 말 회원가입비가 3000만원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5년 새 2.5배가 오른 셈이다.
 

서울클럽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서울클럽 회원 2명의 추천을 받은 후 까다로운 절차와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이 기간이 대략 3∼4년 정도다. 회원 수가 정해진 사교클럽이기 때문에 기존 회원이 이탈해야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가입 후에는 매달 35만원의 회원비를 따로 내야한다. 
 
정치인, 고위관료, 군 장성, 기업인…
1% 상류층 만남 장소 ‘사랑방’역할
 
이처럼 가입 문턱이 높다보니 세간의 시선을 피하고자 하는 정계와 재계의 유력 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클럽은 1400여평 부지에 휘트니스센터와 레스토랑, 수영장, 테니스장, 어린이 놀이터 등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100여년의 오래된 전통을 갖고 있어 내부에는 역사의 흔적이 묻어있다.
 
서울클럽에 가입돼 있는 재계 회원은 현대중공업 그룹 일가,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일가,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 등이 있다. 정치권 인사로는 김영삼 전 대통령 등이 있다. 그간 몇몇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등이 서울클럽의 문을 두드렸지만 회원 공석이 없어 거절당했다가 오랜 시간의 대기와 심사를 거쳐 회원으로 가입했다고 전해진다.
 
서울클럽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어린 자녀를 둔 젊은 상류층이 서울클럽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 아나운서의 자녀들이 이곳에 다닌다는 사실이 알려져 위화감이 조성되기도 했다. 젊은 상류층이 서울클럽에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는 회원의 절반을 차지하는 외국인과의 글로벌 인적 교류에 대한 기대감이 주요한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화를 중시하는 상류층에게는 외국인 회원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서울클럽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 서울클럽 내에서는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 영어로 대화한다고 알려져 있다.

비싼 회원권

없어서 못사
 
서울클럽 회원전용잡지 ‘테들러’(TATTLER)에는 서울클럽 회원들의 모임사진이 실리고 있다. 테들러 자료를 보면 서울클럽 내부에서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교류라는 설립 목적에 맞게 미국의 추수감사절이나 독일의 옥토퍼페스트 등 각국의 기념일에 여는 소규모 파티를 열어 교류의 장을 만든다. 할로윈, 크리스마스 파티는 기본이다. 방학에는 내국인과 외국인 회원 자녀가 함께하는 캠프도 운영된다. 상류층의 문화가 기성세대 일부만 누리는 것이 아닌, 가족단위로 누리고 있는 셈이다.
 
‘명우회’도 국내의 대표적인 사교클럽이다. 1956년 결성된 명우회는 당초 경기고등학교, 서울사대부고, 경기여고 등 명문 고등학교 출신 대학생들이 함께 독서토론을 하는 교양 서클이었다. 자연스레 서울대, 이화여대에 재학 중인 명문가 자제들의 사교모임으로 발전했다. 이후 80년대로 접어들면서 ‘똑똑하고 집안도 좋은’ 재벌가 자제들의 연결고리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이후 경제호황으로 인해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명우회의 위상이 올라갔다. 그러면서 한 해 30명 안팎의 엄선된 신입회원만 받아들이고 재계에서 정관계 자제들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와 동방유량(사조해표의 전신) 신명수 회장의 딸 정화씨가 인연을 맺은 곳도 명우회다.
 
정보 교류·친목 도모
은밀히 뇌물 오가기도 
 
‘땅콩회항’으로 논란을 빚었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녀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딸들도 명우회 출신으로 알려진다. 서울대 재직 교수 가운데 명문가 출신인 이들도 학생시절 명우회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90년대 이후에는 진입장벽이 어느 정도 허물어져 정계와 재계 외에도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자제들도 가입이 가능해졌다. 회원가입 추천 기준이 과거보다 유연해져 회원 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남 구락부’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한남클럽’도 대한민국 1%를 위한 대표적인 사교클럽으로 꼽힌다. 한남클럽은 서울의 상징인 남산 인근에 있다. 주 회원은 기업 오너, 변호사, 공인회계사, 의사, 교수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회원들의 평균 연령은 60대고 여성 회원은 극히 일부다. 회원권을 얻는 방식은 앞서 서울클럽과 비슷하다. 철저한 ‘물 관리’가 이뤄진다.
 
한남클럽의 존재감은 역대 회장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한남클럽 초대 및 2대 회장은 김용우씨(전 국방부 장관·작고)였다. 3대 회장 김정렬(전 국무총리), 4대 회장 설국관(전 대한여행사 사장·작고), 8대 회장 정희택(전 감사원장), 9대 회장 김종규(전 서울신문 사장), 10대 회장 선우종원(전 한국조폐공사 사장), 11대 회장 이태호(전 수출입은행장·작고), 12대 회장 유종해(연세대 명예교수), 13대 회장 조해형(나라홀딩스 회장), 15대 회장 강신호(동아제약 회장), 18대 회장 서태식(삼일회계법인 명예회장) 등이다.

추천 없으면 
가입 불가능
 
서울 연희동의 ‘우정스포츠센터’도 한때 사교클럽으로 유명했다. 우정스포츠센터는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정관계, 재계 등 상류층 인사들이 모이는 고급 사교장이었다. 당시 회원 수는 가족을 포함해 1000여명에 이르렀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전 애용해오다 이임 후 다시 정회원으로 등록해 한때 운동을 계속했다고 알려진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92년 대선 전 이곳에서 수영하는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우정스포츠센터에는 ‘우정회’라는 친목단체가 따로 운영되기도 했다. 명문가 자녀들의 자연스런 사교의 장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지난 2004년 연희동 우정스포츠센터 자리에 14층 규모의 주거용 오피스텔이 들어서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최근에는 특급호텔 휘트니스가 새로운 사교의 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함께 운동을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각종 정보를 교류하며 친밀도를 높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부수적인 이익이 나오기 때문에 회원권을 얻으려고 난리다. 회원권 가격이 수천만원에 달하지만 특급호텔 휘트니스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매물부족 현상을 빚을 정도다. 지난달 20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특급호텔 휘트니스 회원권의 시세는 평년 동기 대비 15∼20% 가량 상승했다. 고급 휘트니스의 주요 고객층은 고위 공직자, 대기업 경영자, 연예인 등이다.
 
특급호텔 휘트니스 중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은 ‘서울 반얀트리 클럽’이다. 신라호텔, 하얏트호텔, W워커힐 호텔, 조선호텔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둘째 며느리인 탤런트 박상아와 그의 자녀들은 지난 2011년과 2013년 서울시내 반얀트리 수영장에서 목격돼 구설에 오른 바 있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은 상위 0.1% 사교클럽으로 지칭되며 개인 회원권은 계약 기간만 20년이며 가격은 1억3000만원에 달한다. 특히 반얀트리 내 ‘카바나’ 수영장은 회원이 아니면 이용자체가 불가능하다. 
 
큰돈을 들여 회원권을 구입해도 200만∼500만원 가량의 연회비는 별도로 지불해야한다. 거래 가격은 거래소의 중매로 매수자, 매도자가 협상을 통해 결정한다. 매물을 찾기 힘들 만큼 인기가 많다.
 
 
이 같은 호텔은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휘트니스 회원권을 보유하면 실내외 휘트니스는 물론 수영장, 스파, 사우나, 골프연습장, 테니스를 비롯한 스포츠 코트, 키즈클럽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부 호텔에서는 멤버십 고객에게 바우처를 정기적으로 제공해 숙박시설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외에도 사교모임이 이뤄지는 호텔은 여럿 있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JW메리어트 호텔’ 인근에는 법원이 있어 법조계 인사가 자주 찾는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특이한 판결을 놓고 논쟁을 벌이거나, 변호사들이 각종 사건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고 전해진다. ‘리츠칼튼 호텔’에는 강남구 역삼동 주변 아파트에 거주하는 중년 사모님들이 주 고객이다. 삼성동 테헤란로 인근에 있는 ‘인터컨티넨탈 호텔’ 피트니스클럽인 ‘메트로폴리탄’(그랜드)과 ‘코스모폴리탄’(코엑스)의 주요 고객은 강남부유층과 IT기업 임원들이다.


경기 불황은
머나먼 남 얘기
 
호텔 휘트니스 회원들은 각자 스케줄에 맞춰 클럽 휴게실에 모여 소소하게는 재테크, 양육, 유학, 결혼정보 등 정보를 교류한다. 뿐만 아니라 자금을 모아 공동투자에 나서기도 한다. 휘트니스 간판이 걸려 있지만 사실상 그들만의 소속감과 동질성을 바탕으로 사교클럽으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근래에는 이러한 특권의 향유가 젊은 층과 가족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라고 알려진다.
 
대기업에도 사교모임의 장이 마련돼 있다. 삼성전자 사옥 5층에는 VIP를 모시기 위한 ‘코퍼리트 클럽’이 있다. 이 클럽은 접대용 레스토랑으로 삼성 계열사 부사장급 이상 임원만 이용할 수 있다. SK그룹은 사옥 35층에도 ‘다이아몬드룸’과 ‘루비룸’ 등 VIP레스토랑이 있다. 임원들은 주로 이곳에서 비즈니스 미팅을 한다. 때문에 도청방지장치도 설치돼 있다고 알려져 있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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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