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때 잘 나간 검사들 현주소

그렇게 충성하더니…잘 먹고 잘 산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성완종 게이트'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정치권의 시선은 검찰에 쏠린다. 검찰은 '성역 없는 수사'를 약속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은 많지 않은 모습이다. 검찰에는 '원죄'가 있다. 이명박정부 때부터 검찰은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정권을 보호했다. '정치검찰'로 불린 이들은 출셋길을 보장받았다. 이명박정부 당시 검찰권을 남용한 '검사님들'은 지금 어디 있을까.

친이계 좌장으로 알려진 이재오 최고위원이 성을 냈다. 지난달 18일 이 의원은 자원외교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 소식을 전해 듣고 "그때(이명박정부 때)는 가만뒀다가 정권이 바뀌면 (수사)하니 정치검찰이란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분개했다. 이날 친이계 의원들은 '정치검찰'의 행보에 이구동성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무리한 수사
관대한 집행

친이계가 말한 정치검찰은 새로운 표현이 아니다. 정권의 하명을 받고 검찰이 움직인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역대 정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검찰을 통제하지 못한 권력은 이른 레임덕에 직면했다.

때문에 정권은 검찰을 이용했다. 때로는 아닌 척 정적을 제거했다. 이명박정부는 검찰을 움직여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또 박근혜정부는 집권 3년 차를 맞아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겨냥한 사정작업에 돌입했다.

수사를 받는 쪽은 늘 '정치적인 탄압'이라고 반발했다. 검찰은 이 싸움에서 살아있는 권력을 편들었다. 정권에 협조한 검사는 승승장구했다. 정권이 바뀌면 또 다른 권력에 줄을 댔다. 어찌 보면 정치검찰이란 오명을 자초한 검찰이다.


그런데 이번 수사에서 친이계 의원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정치검찰은 2009년에야 일종의 대명사로 각인됐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과정은 정치검찰의 교본으로 불린다. 당시 일부 검사는 정권을 보호할 목적으로 전에 없던 무리한 수사를 감행했다. 혹은 유례없는 관대한 법 집행으로 출셋길을 보장받았다.

그렇다면 박근혜정부 3년 차인 지금 그때 그 검사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참여연대가 이명박정권 말기인 2012년 12월 발표한 '이명박정부 정치검사' 명단을 토대로 그들의 근황을 정리했다.

당시 참여연대가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이명박정부 검찰권 오남용 13대 사건'을 선정했다. 또 관련 수사에 참여한 47명의 검사를 명단에 적시했다. 이 가운데 검사장급 이상 10명은 따로 추려 '정치검사'로 규정했다. 아래는 사건 순서대로 관련 검사의 현재 직책과 주요 동향을 정리한 결과다. 수사시점 기준 부장급 아래 검사는 제외(일부 대검 간부 제외)했다.

정치검찰
승승장구

2008년 있었던 'PD수첩 명예훼손 혐의 수사'(1)는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언론 프로그램의 일부 오류를 문제 삼아 형사 범죄로 만든 사건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가 담당했으며, 당시 형사부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정병두 검사였다.

정 검사는 지난 2006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연루된 '황제 테니스' 사건의 주임검사를 맡아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인수위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2009년에는 '용산 참사' 수사본부장을 맡아 농성자 5명을 구속기소했다. 2012년에는 차관급인 인천지검장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정 검사는 더 높은 자리를 꿰차지 못하고 2014년 2월 퇴임했다. 대법관 후보자로 추대됐지만 끝내 선임되지 못했다. 퇴임 당시 직책은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었다. 현재 변호사로 활동 중이며, LG전자 세탁기 파손사건의 변호인단으로 합류했다.


참여연대 검찰권 남용 검사 47인 선정
초고속 승진하거나 거대 로펌으로 영입

PD수첩 사건 당시 형사6부장이던 전현준 검사는 요직으로 영전했다. 전 검사는 그의 선배가 역임한 서울중앙지검 1차장에 내정됐다. 현재 1차장은 서울중앙지검 내 핵심 보직으로 분류된다. 주로 공안사건을 지휘하는 역할로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긴밀히 연결된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정연주 전 KBS 사장 배임 혐의 적용 수사'(2)를 맡았던 박은석 검사는 내부 승진에서 밀려났다. 사건 당시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장이었던 그는 법원에서 조정권고를 받은 사건을 다시 끄집어 내 논란을 빚었다. 특수수사에 강점이 있는 그는 2014년 초 금융감독원 감찰실 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감독원이 현직 검사를 영입한 사례는 박 검사가 처음이다.

'미네르바 전기통신기본법위반 혐의 수사'(3)에서 두각을 나타낸 김수남 검사는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대검찰청 차장으로 고속 승진했다. 미네르바 사건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었던 그는 수원지검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RO사건을 총지휘해 이번 정부에서 가장 신임 받는 검사로 거듭났다. 이후 검찰 '넘버2'인 서울중앙지검장에 올라 '정윤회 문건 유출 수사'까지 매듭지었다. 대구 출신인 김 검사는 이변이 없는 한 차기 검찰총장 1순위로 유력시 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 부장검사로 사건을 맡은 김주선 검사는 대전지검 천안지청장으로 승진한 뒤 서울고검 검사를 거쳐 대구고검 검사로 발령 났다. 차기 인사에서 '검찰의 꽃'인 지검장으로 승진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김상곤 경기교육감 직무유기 혐의 수사'(4)를 지휘한 윤갑근 검사는 탄탄대로를 밟았다. 2009년 당시 수원지검 2차장이었던 그는 '중앙선관위 DDos 공격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증거 조작사건' 등 굵직한 수사를 차례로 맡았다. 올해 대검찰청 반부패부 부장으로 영전했으며, 박근혜정부의 명운을 쥔 '성완종 게이트' 특별수사팀을 총괄하는 보고라인으로 지명됐다.

수원지검 공안부장이었던 변창훈 검사 역시 출셋길을 걸었다. 2012년 수원지검 형사3부장이 된 그는 오원춘 사건을 처리하고,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으로 발탁됐다. 또 국정원으로 파견돼 '대선 개입' 사건을 수습하고, 올 1월 대검찰청 공안기획관으로 복귀했다.

대법관 후보
총장 하마평

'한명숙 전 총리 관련 수사'(5)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2부가 2009년(뇌물수수)과 2010년(정치자금법 위반) 번갈아 맡았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관련 수사를 모두 총괄한 김주현 검사는 올 3월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법무부 차관 임명장을 받았다.

법무부 기획조정실장과 법무부 검찰국장을 지낸 그는 '한명숙 수사' 당시 표적수사라는 비난에도 연이어 한 전 총리를 기소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이었던 권오성 검사는 현재 대전지검 차장검사로 승진했다. 권 검사는 최근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에 대한 아동음란물 방치 혐의 수사를 진행해 특유의 '정치적 감각'을 드러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었던 김기동 검사는 대검찰청 검찰기획단장과 성남지청 차장검사를 거쳐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장 시절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합수단) 단장에 임명됐다. 검찰에 몇 남지 않은 '특수통'인 그는 올 2월 대전고검 차장검사로 보직을 옮겼다. 하지만 서울에서 여전히 합수단을 지휘하며, 박근혜정부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2010년 서울중앙지검 1차장으로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6)를 총괄한 신경식 검사는 청와대에 면죄부를 내렸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또 '용산 참사' 수사에서도 공소 유지를 담당했으나 법원에 수사기록을 제출하지 않은 것이 문제됐다.


그는 올 2월까지 수원지검장을 역임했으며 청와대 민정수석실 개편 과정에서 황교안 법무부장관으로부터 용퇴 압박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옷을 벗은 신 검사는 지난달 변호사 등록을 마쳤다.

'불법사찰 수사'의 또 다른 주역인 오정돈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에서 광주지검 차장검사, 의정부지검 부장검사로 자리를 옮겼다가 현재는 인천시로 파견됐다. 인천시는 오 검사를 시 법률자문검사로 임명했다.

'내곡동 대통령 사저부지 불법매입 의혹'(7) 수사를 맡은 송찬엽 검사는 이명박정부 당시 출셋길에 올랐다가 박근혜정부 들어 낙마한 케이스다. 그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참모(당시 대검찰청 공안부장)로 알려졌는데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기소 과정에서 선거법 적용에 찬성했다가 이듬해 고검장 승진에서 탈락했다. 서울동부지검장을 마지막으로 2015년 2월 퇴임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으로 내곡동 사건을 담당한 백방준 검사는 2013년 서울고검 검사로 부임했다. 그러나 서울고검 검사는 순환보직으로 경력관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현재 백 검사는 광주시 소속 사법정책보좌관으로 파견됐다. 승진과는 거리가 있는 상황이다.

'미네르바 수사' 김수남 차기 총장 1순위
'김상곤 수사' 윤갑근 성완종 사건 총괄
'노무현 수사'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행
'한명숙 수사' 김주현 법무부 차관 영전

'용산 농성장 화재 및 경찰의 과잉진압과 불법행위 방조수사'(8)는 앞서 밝혔듯 정병두 검사가 수사본부장을 맡았다. 그 밑에서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으로 사건을 축소한 의혹을 받은 안상돈 검사는 2014년 광주고검 차장검사로 승진했고, 세월호 참사 당시 검경합동수사본부 본부장에 내정됐다. TK 출신인 그는 이번 인사에서 대검찰청 형사부장으로 중앙무대에 복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9)를 밀어붙인 우병우 당시 대검 중수부 1과장은 박근혜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발탁됐다. '포스트 김기춘'이란 별명은 그의 막강한 위세를 드러낸다.

'광우병 촛불집회 참가 시민들에 대한 집시법 위반 등 혐의 적용 수사'(10) 지휘자인 정점식 당시 대검 공안1과장은 박근혜정부 들어 검찰 내 위상이 몰라보게 높아졌다.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이자 정부 측 대리인으로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이끈 그는 대검찰청 공안부장에 임명됐다. 차기 인사에서는 지검장으로의 승진이 유력시되고 있다.

'전교조 시국선언 발표에 대한 수사 및 정당가입 추가 수사'(11)를 지휘한 오세인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박근혜정부 들어 요직을 순환하고 지검장으로 영전했다. 2년 동안 초대 대검찰청 반부패부장, 대검찰청 공안부장을 지냈고 서울남부지검장에까지 임명됐다. 특히 오 검사가 있는 서울남부지검은 금융범죄 수사의 거점으로 검찰 내 중요도가 높아졌다는 평가다.

봉욱 당시 대검찰청 공안기획관도 지검장급으로 승진했다. 봉 검사는 법무부 기획조정실 실장, 울산지검장을 거쳐 법무부 법무실장에 발탁됐다. 공직에 있으면서도 2014년 재산은 5억원 가까이 늘었다.

아울러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이었던 윤웅걸 검사는 2014년 공안기획 총괄인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승진했고, 올 2월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발령 났다. '전교사 수사'에는 정병두 검사와 신경식 검사가 함께 이름을 올렸다.

'조중동 광고불매 운동에 대한 수사'(12)는 2009년 김수남 검사가 서울중앙지검 3차장 자격으로 지휘했다. 당시 김 검사의 지휘를 받았던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본부장 구본진 검사는 최근 변호사로 전업했다. 퇴임 후에는 필적학자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광고불매 운동에 대한 수사'를 별건으로 확대했던 최재경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인천지검장을 끝으로 검사를 그만뒀다. 검찰 역사상 가장 유능한 특수통으로 불렸던 그는 삼성과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온 '러브콜'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얼마 전에는 <경향신문>에 법조인 자격으로 칼럼을 게재했다.

노승권 검사는 사건 당시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 2부장을 맡았으며, 현재 대구고검 차장검사로 영전했다. 이명박정부 때는 대검 중수1과장을 역임해 대검 중수부장을 지낸 최 검사와 또 다른 인연이 있다.

'G20 포스터 쥐그림 수사'(2010)를 맡은 공상훈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거쳐 올해 창원지검장에 취임했다. 당시 '쥐그림 수사' 외에도 북한 간첩단 '왕재산' 사건을 맡았으며, 곽노현 서울교육감의 후보자 매수사건을 기획해 곽 교육감을 구속기소했다.

공 검사의 지휘를 받은 안병익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에 이어 창원지검 진주지청장, 인천지검 1차장으로 안정적인 경력관리를 하고 있다.

이처럼 이명박정부 때 공을 세운 대다수 검사는 박근혜정부 들어서도 승진을 거듭했다. 단 관련 검사들의 수사권을 쥐고 흔들던 두 서울중앙지검장은 최종 관문인 검찰총장에 오르지 못했다. 나란히 고대 출신이었던 이들은 이명박정부와 운명을 같이 했다.

공안통 일색
특수통 사임

그럼에도 여전히 '잘 나가고' 있는 두 '검사님'이다. 노환균 검사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변호사가 됐으며, 최교일 검사는 2014년 한전 사외이사(현재 사퇴)와 고려아연의 이사로 동시에 등재됐다.

앞서 최 검사는 지난 2009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특별사면 과정에서 "이 회장이 IOC 위원 자격을 잃으면 스포츠 외교분야에서 국력이 약해질 수 있다"라고 말해 이 회장의 단독사면을 도왔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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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