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사’ 장진호 차명재산 추적
‘객사’ 장진호 차명재산 추적
  • 이광호 기자
  • 승인 2015.04.1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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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 뜬 4000억 어디로 갔나?
[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소주하면 ‘두꺼비’가 떠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진로그룹은 국내 주류시장을 휘어잡으며 재계 19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진로그룹을 이끌었던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이 최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오랜 도피생활에 따른 스트레스와 상실감 등으로 사망했다는 추론이 나오고 있지만 뭔가 미심쩍다.

 
 
한때 재계순위 19위에 올랐던 진로그룹의 장진호 전 회장이 향년 63세로 중국 베이징에서 사망했다. 지난 6일 주중 한국대사관 등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3일 베이징에 있는 자택에서 심장마비 증세로 숨을 거뒀다. 한국대사관 측은 그가 병원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장 전 회장의 시신은 유족들의 희망에 따라 지난 5일 베이징에서 화장됐다.

외형 넓히다 
IMF 때 몰락
 
장 전 회장은 숨지기 하루 전 지인에게 ‘괴롭다’는 표현을 쓰면서 도피생활의 고충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 전 회장은 과거 수천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와 비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지만 집행유예 기간 중이던 2005년 캄보디아와 중국으로 출국한 뒤 도피생활을 이어왔다.
 
장 전 회장의 사망소식이 대대적으로 알려지면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장학엽 진로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장 전 회장은 현재 주류업계에서 각각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소주 ‘참이슬’과 맥주 ‘카스’를 국내 대표 브랜드로 키워내며 주류시장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키웠다.
 
국내 소주 시장은 1960년대까지 진로와 삼학이 양분하는 구도였다. 하지만 70년대 초 세금포탈 사건으로 삼학이 몰락한 뒤부터는 진로의 독주가 이어졌다. 진로소주의 인기는 대단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 소주 3병을 사는 사람에게만 진로소주 1병을 팔기도 했다. 급기야 77년엔 진로소주 빈 병에 다른 소주와 물을 섞은 가짜 진로소주를 유통시키던 조직이 적발되기도 했다.
 
진로그룹의 모태는 1924년 고 장학엽 회장이 평남 용강에서 설립한 ‘진천양조상회’다. 진천양조상회의 상징은 ‘원숭이’였다. 원숭이 좌우로는 쌀이 있었다. 이후 창업주는 51년 사사명을 ‘부산동화양조’로 변경한 뒤 소주 ‘금련’을 생산했다. 52년에는 부산 ‘구포양조’를 설립했다. 54년에는 서울에서 ‘서광주조’를 설립하고 전국적인 영업망을 구축했다. 이때 원숭이가 ‘두꺼비’로 바뀌었다. 진로라는 이름은 66년에 탄생했다. 서광주조는 66년 진로주조로 상호를 변경, 75년부터 진로라는 브랜드를 사용했다.
 
진로그룹은 거침없이 성장했다. 한때 2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재계 순위 20위권에 오르며 업계를 긴장케 했다. 그러나 무리한 사세 확장이 장 전 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진로그룹의 화려한 행보는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꺾였다. 유동성 위기에 몰리면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진로그룹은 97년 7월 프로농구단 ‘진로매카스’를 SK텔레콤에 매각했다. 99년에는 자회사 진로쿠어스맥주도 오비맥주에 매각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힘썼지만 악화된 경영 상태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진로그룹은 참이슬, 석수, 퓨리스는 하이트로 넘겼고 발렌타인 위스키도 페르노리카에 팔았다.
 
두꺼비 소주 히트치고 10여년 도피생활
한때 재계 19위 ‘주류킹’ 중국서 사망
 
결국 진로그룹은 2003년 법정관리와 계열사 분할 매각 등을 통해 한국증권거래소로부터 상장폐지를 통보받았다. 그리고 2005년 ‘하이트맥주 컨소시엄’을 통해 공중분해됐다. 2004년 4월에는 법원의 정리계획안 인가에 따라 장 전 회장의 진로 지분 전량이 소각됐다. 이 과정에서 장 전 회장은 수천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와 비자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아 징역 2년6월과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장 전 회장은 정치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회사를 키운 것으로 전해졌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비자금을 전달했다가 1996년 8월 징역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장 전 회장은 2005년부터 기약 없는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와 중국을 떠돌며 현지에서 ABA은행(아시아선진은행)과 부동산 개발회사, 스몰카지노 사업을 통해 틈틈이 기회를 노렸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히 ABA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탈세 혐의가 불거졌고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신뢰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회장은 거액의 세금을 납부하지 못해 한국에는 돌아가지 못하고 중국에 머물렀다.
 
2013년 장 전 회장은 2000년대 초 회사 경영권을 되찾기 위해 차명으로 사들인 진로의 부실채권 4000억원어치를 몰래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사기)로 전직 진로그룹 재무 담당 이사인 오모씨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한 바 있다. 진로그룹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던 2002년 오씨를 통해 진로의 부실채권을 사들였다고 고소장을 통해 밝혔다.

회사 망치고 
화려한 생활
 
당시 장 전 회장은 “고려양주 주식을 담보로 조달한 자금 150억원 등 총 897억원을 들여 진로 부실채권을 사들였다”며 “총 5800억원어치를 액면가의 10∼20%대 가격에 사들인 뒤 오씨에게 채권 관리를 맡겼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H사, C사, K사 등 차명회사가 동원됐다는 게 장 전 회장의 주장이다. 자신이 2003년 대검찰청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의 수사로 구속되자 오씨는 이 중 4000억원어치의 채권을 빼돌렸다는 것이었다.
 
고소사건의 시작은 장 전 회장이 취임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주 타계 후 88년 진로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장 전 회장은 사업 다각화에 열을 올렸다. 취임 첫해 진로유통센터 개장을 시작으로 89년 종합광고업 진출(새그린), 연합전선인수, 조선신약 인수, 건설업 진출(진로건설), 91년 통조림 제조업체 펭귄인수(진로종합식품), 92년 진로쿠어스맥주 설립, 94년 진로 베스토아 설립과 위스키 사업 진출 등 계열사를 대폭 늘렸다. 이렇게 사업 보폭을 넓히다 보니 계열사들에게 출자금, 대여금 및 지급보증으로 막대한 자금을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들 계열사는 지원에 비해 경영성과가 부진했다. 2조원이 넘는 자금 중 회수되는 금액은 일부였다. 결국 97년 외환위기를 정통으로 맞으면서 부도 위기를 맞았지만 정부가 그해 부도유예협약을 적용시켜 ‘진로 살리기’에 나섰다. 이때 금융권으로부터 800여억원을 지급받았다. 하지만 같은 해 9월 진로그룹은 조흥은행 서초동지점에 돌아온 어음 213억원과 상업은행 서초동지점에 제시된 당좌수표 83억원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 됐다. 이후 일부 계열사는 법정관리 수순을 밟게 됐고, 일부는 채권단에 의해 화의 인가(파산을 예방할 목적으로 채무 정리에 관하여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맺는 강제 계약) 결정을 받았다.
 
채무원금 상환을 5년 동안 유예 받는 게 진로의 화의조건이었다. 진로종합유통 등 7개 계열사는 자본잠식 상태가 심각해 제3자에 매각했다. 진로건설 등 7곳은 파산선고 혹은 폐업됐다. 1999년 진로쿠어스맥주는 OB맥주에 넘어갔고, 진로 발렌타인은 해외기업에 인수됐다. 당시 고소장대로라면 그룹 주력사인 진로를 뺏길 수 없다고 생각한 장 전 회장은 화의 중이던 진로의 부실채권들을 사모아 최대 채권자가 됐다. ‘재집권’ 시나리오로 풀이되기에 충분했다.
 
2년전 전직 재무담당 임원 고소
차명채권 4000억원 빼돌린 혐의
재판 결과는?…흐지부지 마무리 
 
58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 매입에 성공한 장 전 회장의 재집권 시나리오가 구체화되는 듯 했지만 2003년 9월 장 전 회장이 대검찰청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의 수사로 구속되면서 차질을 빚었다. 5496억원을 사기 대출받고 비자금 7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돼 5개월여 재판 끝에 1심에서 징역 5년6월의 싱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5년형을 받고 풀려났다. 그리고 4개월 뒤 가족과 함께 캄보디아로 떠났다.
 
당시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장 전 회장은 진로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전인 2002년부터 이미 캄보디아행을 계획했다. ‘찬삼락’(Chan Samrach)이라는 현지 이름도 취득한 상태였다. 장 전 회장은 캄보디아에서 찬삼락으로 살면서 ABA은행을 운영했다. 현지에서는 ‘진로은행’으로 통했다. 1996년 진로그룹에 의해 설립된 은행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3년 진로그룹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 채권단 관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장 전 회장은 은행과 함께 부동산 개발회사, 경견장, 스몰카지노, 단란주점까지 손을 댔다. 금융 브로커로 알려진 김재록씨와 소주회사를 설립하는 ‘55 프로젝트’도 진행했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장 전 회장이 캄보디아에서 사업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훈센 총리의 장녀 ‘훈마나’(Hun Mana)의 비호 덕분인 것으로 전해진다. 훈마나는 캄보디아에서 ‘로비 대상 1순위’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훈마나는 캄보디아에서 정치권력, 언론 등을 장악하고 있었다. 장 전 회장과 훈마나와 모종의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훈센 총리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총리직을 유지하며 장기 집권하고 있다.
 
그러나 장 전 회장은 ABA은행 매각 과정에서 탈세를 하는 등 문제를 일으켜 캄보디아 관리들에게 신뢰를 잃고 캄보디아를 떠나 중국으로 건너갔다. 2012년 2월에는 중국 북경 왕진 소재에 체류 중인 것이 한 언론을 통개 공개됐다. 그는 이곳에 머물면서 중국인 사장을 앞세워 ‘이다양광’이라는 게임업체를 설립하고 운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업체뿐 아니라 다양한 사업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회장은 2013년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국내에서 사업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세금을 너무 많이 물려 한국에서는 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국세청은 장 전 회장을 고액 세금 체납자로 분류해 관리 중이었다.

갑자기 사망
의문점 없나
 
장 전 회장은 진로그룹을 공중 분해시킨 장본인이지만 해외에서 화려한 도피생활을 했다. 그런데 장 전 회장이 사망하면서 앞서의 고소 건과 관련된 4000억원대 돈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도대체 이 돈은 어디로 흘러들어간 걸까.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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