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국조 제2라운드 ‘MB 정조준’ 내막

어차피 용두사미? 꼬리 자르고 도망갈라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자원외교국정조사가 제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4월 임시국회가 시작된 첫날인 지난 6일 여야가 특위 활동기간을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자원국조특위는 5월2일까지 유지된다. 그러나 기간만 연장됐지 달라진 것이 없어 자칫 도돌이표 활동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제2라운드의 최대 화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증인 출석 여부다. 만약 출두한다면 그동안 열리지 못한 청문회가 열리는 것은 물론 의혹들도 말끔히 정리될 수 있다. 그간 지리하게 끌고 오던 현안에 방점을 찍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정을 지켜보던 정계전문가들은 대부분 부정적으로 내다보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도 결사반대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다.

도돌이표
자원국조

자원국조특위 1라운드는 무의미한 공방의 연속이었다. 2014년 특위 출범을 앞두고 조사 범위를 결정하지 못한 여야는 설전을 주고받으며 극명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국조 기간이 길어 이명박정부 뿐만 아니라 그 전 정부까지 해도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다”며 “단순히 예산이 많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조사 범위를) 이명박정부에 국한하자고 하는 건 합리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홍영표 의원은 “건국 이래 모든 정부를 다 조사하자고 하면 짧은 기간 동안 방대한 내용을 밝힐 수 없다”면서 “이번엔 이명박정부 자원 개발에 중점을 두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원내협상을 통해 ‘모든 정부’로 합의 후에야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이후 화두는 증인 채택문제로 넘어갔다. 새정치연합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증인 채택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특위 출범 당시 회의석상에서 “국조에 누구나 응하는 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며 우회적으로 출석을 요구했다. 노영민 의원도 “이명박정권의 국부유출이 70조원에 이른다. 성역 없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야당의 요구에 여당은 결사반대를 표했다. 특히 이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당시 지식경제부장관을 지내며 자원외교를 총괄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 등 현 정부의 고위인사에 대해서도 증인 채택을 주장하자 ‘흠집내기’로 규정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자원국조특위 기간연장, 도돌이표 될라
여 ‘김대중·노무현정권도’…야 ‘MB만’

새누리당은 주무부처 장관을 불러서 충분한 사실관계 확인이 가능함에도 이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세우려 하는 것은 정치공세로 해석하고 “전직 대통령을 불러서 망신을 주고 폄훼하려고 한다면 정상적으로 국조가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대통령의 시간> 회고록 출간에 앞장 선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2014년 12월12일 여·야가 자원외교 국정조사를 실시하려는 것과 관련해 “이 사안을 국정조사한다는 것에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후 특위는 진도를 내지 못하고 같은 논쟁을 반복했다. 그러나 1라운드가 종료될 때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폭탄선언을 하면서 상황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새누리당은 자원국조에 대한 논의가 되기 시작할 2014년 8월부터 꾸준히 문 대표의 증인 출석을 주장해왔다. 새누리당 간사인 조원진 의원은 유병언씨가 경영하던 주식회사 세모가 참여정부 임기 한 달을 남기고 집중적으로 부채탕감을 받은 사실에 의혹을 제기하며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의원의 증인 채택은 의혹 해소를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불을 지폈다.


“이명박만!”
“노무현도!”

일각에서는 새누리당의 이러한 주장을 두고 이 전 대통령을 비호하기 위한 작전으로 해석했다. 한 야당당직자는 전형적인 ‘물귀신 작전’이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7개월여가 지난 2015년 4월, 문 대표는 자신도 증인으로 출두할 테니 이 전 대통령도 증인으로 채택하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새누리당은 내가 증인으로 나가면 이명박 대통령이 증인으로 나온다고 한다”며 “좋다. 내가 나가겠다.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나와라”고 선언한 것이다.

발언 직후 새누리당은 사태진화에 나섰다. 새누리당 간사로 있는 권성동 의원은 “이 전 대통령과 문재인 비서실장은 레벨이 다르기 때문에 이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부를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여론은 다르게 반응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뉴스타파>의 의뢰로 진행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증인 채택 여부에 대한 긴급 여론조사를 보면 이 전 대통령을 증인 채택해야 한다는 찬성의견이 67.2%로 17.3%를 기록한 반대의견의 4배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즉 국민 10명 중 7명 가량은 이 전 대통령의 증인 출석을 원하는 것이다.

지난 8일 여야는 5월2일까지 활동 기간을 연장한다는데 합의했다. 자원국조특위는 그간 100일간의 공방을 끝내고 기간 연장이냐 종료냐의 기로에 섰었다. 심각한 것은 그간 청문회 한번 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에 세금낭비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자원국조특위 위원들은 이미 억대의 비용을 들여 중동, 캐나다, 멕시코 등의 쿠르드 유전개발 사업장, 한국가스공사의 혼리버 광구, 한국석유공사의 하베스트 사업장으로 찾아가 현장조사를 벌였으나 마땅한 증거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2라운드 종료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야당 의원들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지난 2일 자원국조특위 야당 의원들은 이 전 대통령의 사저 앞을 찾아가 증인 출석을 요구했었다. 현장에 있던 새정치연합 김관영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청문회에 나와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야당에서 출석을 요구하는 사람은 총 64명, 새정치연합은 지난 7일 내부 검토를 거쳐 증인 명단을 새누리당에 새로 전달했다. 그러나 핵심 증인은 누가 뭐래도 다음의 5명으로 압축된다. 이 전 대통령, 이상득 전 의원, 최경환 경제부총리,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차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 등 5인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포함됐다.

정계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전 대통령의 증인 채택이 사실상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도 야당에서 출두를 요구하는 것을 두고 친박계에서는 박근혜정부 핵심 인사인 최경환 부총리를 압박하기 위함이 아니냐고 말한다. 자원외교를 말하고 있지만 박영준, 이상득 등 지난 실세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최경환 부총리는 이명박정부 시절 지식경제부장관을 역임했다. 친이계가 아님에도 이례적으로 중임을 맡았던 것. 야당에서는 그런 그를 두고 자원외교의 핵심역할을 한 게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1년6개월간 지경부장관으로 재직했다.

증인 채택
최대 화두


최 부총리가 받는 의혹은 다음과 같다. 2009년 한국석유공사는 캐나다에 있는 하베스트와 자회사 ‘날’(NARL)을 1조7000억원의 금액으로 인수했다. 그러나 인수 후 헐값에 되팔면서 약 1000억원가량의 손해가 났다. 야당은 인수 지시를 당시 지경부장관이었던 최 부총리가 했을 것으로 내다보고 국부유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에 대한 의혹도 크다. 강 전 사장은 최 부총리가 당시 장관으로 부임한지 한 달 뒤 장관실로 찾아가 최 부총리에게 인수 협상의 전반을 보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검찰은 강 전 사장을 출국 금지시키고, 석유공사로부터 관련 자료 전체를 제출받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의혹에 최 부총리는 2월24일 국정조사장에 출두해 직접 해명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보고를 전혀 받지 않았기 때문에 하베스트가와 ‘날’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고 답했다. 이에 야당 의원들이 장관으로서 몰랐다는 사실이 큰일이라고 채근하자 그는 “왜 큰일입니까? 장관 취임한 지 한 달도 안된 사람이 어떻게 다 압니까?”라며 되물었다.

이에 야당 의원들은 최 부총리에게 책임을 지고 부총리직에서 물러나라는 요구를 할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하게 흘러갔다. 국정조사장은 진실 규명과는 별도로 질문 태도와 답변 자세를 둘러싼 공방이 주를 이루었다.

문재인 “MB 나오면 나도 나가겠다”
성완종 자살로 수사 난항…특위는?

과거 이 전 대통령의 집사로 불렸던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이름이 다시 언론에 거론되기 시작했다. ‘MB자원외교 사기의혹과 혈세 탕진 진상규명을 위한 국민모임’이 김 비서관의 아들인 김형찬씨를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이다. 고발사유는 최 부총리에 대한 의혹과 같은 석유공사의 캐나다 하베스트 투자 실패 건이었다.


고발당한 김씨는 당시 석유공사의 해외 M&A 자문을 맡은 메릴린치 실무팀에서 근무했다. 석유공사는 하베스트 인수와 관련해 메릴린치와 자문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때 주고받은 제안서 안에 김형찬씨의 영문 이름인 피터 김(Peter Kim)이 확인된 것이다. 그가 속한 핵심 실무팀은 석유공사의 해외 M&A와 관련해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
 

김씨는 한국 메릴린치 서울지점에 상무로 특채됐고 현재는 지점장에 올랐을 정도로 승승장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 최측근의 아들이 이명박정부가 진행한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깊이 관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혹은 눈덩이처럼 쌓여갔다.

현재 자원외교 비리 수사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하면서 직격탄을 맞게 됐다. 검찰은 성 전 회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후 “불행한 일이 발생해 안타깝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에게 조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성 전 회장과 관련된 부분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중단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꼬리 자르기
몸통 놓치나

특위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여당 간사인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한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유감을 표하면서도 “국정조사와는 무관한 일”이라 선을 그었다. 야당 간사인 홍영표 새정치연합 의원은 “사태파악을 하는 중”이라고 답해 신중한 입장을 표했다.

정계에서는 이미 국정조사 때마다 나오는 ‘꼬리 자르기’가 이번에도 나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미 감사원에서 최 부총리를 비호하는 듯한 움직임을 벌인 바 있어 설득력이 있다는 지적이다. 감사원은 최 부총리가 국정조사장에서 한 발언이 감사원 조사결과와 상충되자 올해 초 갑자기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을 배임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사실이 있다.

이를 두고 복수의 언론은 기존 감사결과를 뒤집는 것일 뿐만 아니라 최 부총리는 보호하기 위한 ‘꼬리 자르기’라고 비판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문재인의 어떤 정치소신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의 발언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다. 문 대표는 지난 6일 새정치연합에서 진행한 정책엑스포에 참석한 자리에서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가 부족하다. 400명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행사장에 걸려있는 ‘국회의원이 몇 명이 적당한가?’라는 질문이 적힌 패널에 351명 이상에 한 표를 붙인 뒤 이 같이 말했다. 문 대표는 이어서 “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400 명은 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 정서는 이에 반발하고 나섰다. 누리꾼들은 “이유가 뭐냐?” “현재 있는 국회의원들만 정치를 잘하면 충분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새누리당은 ‘신중하지 못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박대출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의원) 정수 문제는 한두 명도 아니고 100명을 늘이자, 줄이자 할 정도로 가벼운 사안이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과거 문재인 대표의 발언을 거론하기도 했다. 문 대표는 대선후보 시절 안철수 당시 대표와 함께 국회의원 정수를 200명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국회의원 400명 발언, 무시무시한 후폭풍

논란이 확산되자 문 대표는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진화를 위해 끼얹은 것이 물이 아닌 기름인 것처럼 논란은 더욱 거세게 일고 있다. 문 대표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하나의 퍼포먼스였다. 가볍게, 장난스럽게 한 것이다. 다음에 더 준비해서 말씀 드리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는 “재미삼아 말하기에는 너무 중대한 사안이다.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때 (의원) 정수를 감축하겠다고 한 발언을 뒤집는 것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이군현 사무총장은 “아마추어적 오락가락 발언”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계산된 발언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지난 9일 문 대표의 발언에 대해 “의원 수를 확대하자는 것은 계산된 발언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문 대표는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고 싶은 것이다. 숫자를 늘리면 비례대표가 늘어난다”며 “비례대표는 국민이 뽑는 것이 아니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 뽑는다”고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했다. <목>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