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유승민 ‘4월 승부수’ 속내

2박3일 공들인 비수 ‘청와대 겨눴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4월 국회가 시작됐다.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해결해야 될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특히 세월호 1주기는 물론 공무원연금개혁, 자원외교국정조사 등에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9대 국회를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시험대가 막이 올랐다.

난항이냐 순항이냐. 4월 임시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에는 우려와 기대가 동시에 담겨있다.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는 현안들의 무게가 경중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하기 때문이다. 여당의 안살림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어깨가 그만큼 무거워질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현안산적
책임막중

유 원내대표 입장에서는 이번 임시국회가 위기이자 기회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2일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후 리더십을 보여줄 확실한 기회가 그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 등 몇몇 사안에 대해 본인의 목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김무성 대표와 겹쳐 폭발력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이완구 흔적지우기’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도 이번 임시국회는 유 원내대표에게 중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임 원내대표였던 이완구 의원이 총리로 부임하면서 넘겨준 현안들이 아직 많다. 이번 4월 국회를 통해 확실히 털고 가지 못한다면 원내대표단의 사기도 저하될 수 있다.

이에 지난 8일 유 원내대표를 포함한 원내대표단은 이완구 총리와 긴급 오찬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 모인 그들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비롯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경제활성화 법안처리 등 4월 임시국회 주요 입법 현안도 함께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회동은 이 총리의 제안으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청 간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양쪽 모두에게 필요한 자리였던 것으로 해석된다. 알려지기로 이 총리는 오찬에서 주로 공무원연금법, 경제활성화법 등 법안 통과에 관해 언급했다. 공무원연금법에 관해서는 소통을 통한 합의의 과정에 대해 말하며 야당의 적극적 지원을 끌어낼 것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창조경제 해법 아냐 증세없는 복지 허구” 일침
청와대 “논평 삼가겠다” 함구 속으론 부글부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수정이나 인양 문제에 대해서는 회동 때 특별한 얘기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회동이 끝난 후 이 총리가 “유가족들의 입장을 헤아리고 경청하며 국민 통합이나 화합 등 전체적인 면을 균형 있게 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오찬 회동이 있기 전 유 원내대표는 취임 후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가졌다. 그런데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야당에서 ‘명연설’ 얘기가 나오는가 하면 여당과 청와대에서는 ‘개인의 생각’으로 치부할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유 원내대표가 연설을 끝내고 단상에서 내려오자 야당 의원들이 몰려들어 덕담을 전했을 만큼 연설문 내용에는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사항 중 일부에 대해선 실패했다고 평가했으며 정책기조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도 거론이 됐다. 유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의 대선공약이었던 134조원의 공약 가계부를 더 이상 지킬 수 없다는 점을 반성한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현 정부의 캐치프레이즈인 창조경제에 대해서는 “성장의 해법이 아니다”라고 다소 단언하듯이 말했다. 당내 경제통으로 불리는 유 원내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더욱 날카롭게 들렸다는 후문이다.

세월호 인양
가족 한 풀자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유은혜 대변인은 이번 연설에 대해 “우리나라의 보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 명연설”이라고 평가했다. 집권여당을 향한 이례적인 칭찬이었다. 또한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교섭단체대표 연설에 찬사를 보낸다”며 “드디어 보수가 꿈을 꾸기 시작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례적인 여당 대표의 연설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새정치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은 개인 SNS를 통해 “야당 원내대표가 연설하는 줄 알았다”면서도 “말은 여당도 옳고 야당도 옳다는 황희 정승 같은 말씀이었다. 민생경제 파탄에 대한 뼈아픈 반성과 처방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야당의 한 당직자는 “어차피 선거용 아니냐”며 평가 절하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연설이 끝난 후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 박수소리가 나왔지만 당황한 듯 서로 얘기를 주고받는 의원들의 모습도 포착됐다.

김무성 대표의 반응도 화제가 됐다. 김 대표는 ‘유 원내대표의 연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신선하게 잘 들었다”면서도 “당 방침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는 유 원내대표의 연설에 포함되어 있는 재벌개혁에 관한 내용이 김 대표를 불쾌하게 만들었다고 내다봤다. 유 원내대표는 “재벌도 개혁에 동참해야 한다”며 “재벌대기업은 천민자본주의의 단계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해 재계를 중심으로 파문이 일고 있다.

청와대는 유 원대대표의 연설에 대해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는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석하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켜세운 점도 한 원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 원내대표는 “1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양극화를 말했다. 양극화 해소를 시대의 과제로 제시했던 그 분의 통찰을 저는 높이 평가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 언론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정부 경제기조 비판에 분위기가 좋을 수는 없다”고 전했다. JTBC가 뉴스를 통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 중 한 명은 평가 절하하는 어투로 “참 잘하더라. 대단한 정치인의 정치철학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원내대표의 연설을 두고 정치적으로 영리한 연설이라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들은 이번 연설로 여당 지도부와는 대립각을 세우게 됐지만 야당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게 됐다고 내다봤다. 이는 4월 국회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계산이 전제된 행보라는 것이다.

특히 ‘대화가 통하는 사람’으로 알려진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4월 국회를 마지막으로 임기가 종료가 되기 때문에 유 원내대표 입장에서 시간을 끌 수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세금·복지 문제를 여야합의기구를 통해 해결해 나가자고 유승민·우윤근 양 원내대표가 공통적으로 생각하고 있을 만큼 둘 사이는 정책적으로 ‘통’하는 것이 있다.

재벌·대기업
천민자본주의


새정치연합과 긴밀한 합의를 이뤄야 하는 개혁안은 ▲공무원연금개혁 ▲노동시장개혁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크게 3가지가 꼽힌다. 공무원연금개혁은 새누리당 입장에서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지만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연금특위 활동 시한을 두고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우 원내대표도 4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할 과제로 공무원연금개혁을 꼽은 만큼 대타협기구를 통한 합의 도출에 집중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시장개혁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도 주요 현안으로 분류된다. 노동시장개혁과 관련해서는 최근 한국노총이 대타협 결렬을 선언한 상태라 여·야 간 긴밀한 논의가 불가피하게 됐다. 향후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정부 주도의 법·제도 정비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측면에서 자칫 노동계의 반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경우에는 박 대통령과 김무성·문재인 대표가 지난달 17일 청와대 회동에서 4월 국회 처리를 합의했을 정도로 내수 진작과 일자리 창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당초 새정치연합이 요구한대로 보건·의료 부문을 제외키로 합의했기 때문에 조속한 처리가 예상된다.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루어질 전망이다. 특히 사드 같은 경우에는 한국배치를 놓고 청와대와 유 원내대표 간 갈등기류를 빚고 있어 결과가 더욱 주목된다. 유 원내대표는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야당은 북한이 핵 공격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란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사드 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당초 청와대·친박계의 만류에도 지난 1일 ‘사드 의원총회’를 강행했던 그였기에 적극적으로 나설 공산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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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4월 국회에서 다루어질 가장 중요한 현안은 따로 있다. 수면 위로 떠오른 세월호 1주기가 그것이다. 그동안 방치되다시피 한 세월호 인양 문제에 대해 4월16일 전에 윤곽을 잡지 못한다면 전국적으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질 공산이 크다.

이미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6일 세월호 선체 인양과 관련한 긴급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인양해야 한다’가 65.8%로 ‘인양하지 말아야 한다’의 16.0%와 비교해 4배가 넘는 수치로 나타났다. 만약 인양 문제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진다면 후폭풍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유 원내대표도 이를 의식해서인지 대표연설을 세월호에 관한 내용으로 시작했다. 특히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안산 단원고 2학년 허다윤양의 이름을 부르며 연설을 시작했다는 점은 국민여론을 많이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다윤 양과 함께 조은화, 남현철, 박영인 학생, 양승진, 고창석 선생님, 권재근씨와 권혁규군 부자, 이영숙씨…이렇게 9명의 실종자가 돌아오지 못했다”며 단상에서 세월호 실종자 이름을 한명씩 불렀다.
새정치연합 박완주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세월호 인양에 대한 의지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개선을 정부에 촉구한 점은 특히 야당으로서 환영한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유 원내대표의 세월호 언급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새정치연합이 ‘세월호 심판론’을 들고 나와 4·29재보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을 미연에 차단하기위한 목적으로 세월호를 이용한 것이라 주장한다.

보수 새지평
진보 아젠다

수많은 해석이 난무하고 있는 유 원내대표의 승부수. A4용지 87매 분량, 40분 가량 진행된 연설문을 이틀 밤낮을 새며 직접 썼을 정도로 유 원내대표는 이번 연설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당내에서 사전조율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유 원내대표의 연설 내용을 몰랐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여당 지도부내에 갈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박심(朴心)’으로 통하고 있는 이정현 최고위원은 MBC와의 인터뷰에서 “당내 조율과정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언급했고, 그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할 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보수성향의 정치전문가들 중 유 원내대표가 경솔했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이번 연설이 대정부질문이라면 괜찮지만 대표연설이기에 합의되지 않은 내용을 말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정치평론가들 사이에서는 당 지도부가 대표연설문 내용을 서로 공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다.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 새누리당 지도부 내에서 정책 방향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유가족 울린 유승민 연설, “실종자 가족 한 풀어드려야…”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지난 8일 선보인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이 화제다.

취임 후 처음 가진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유 원내대표는 “세월호를 온전히 인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설이 있었던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는 삭발을 한 세월호 유가족이 참석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유 원내대표는 유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희생자 295명, 실종자 9명, 그리고 생존자 172명을 남긴 채 1년 전의 세월호 참사는 온 국민의 가슴에 슬픔과 아픔, 그리고 부끄러움과 분노를 남겼다”면서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에게 국가는 왜 존재합니까? 우리 정치가 이 분들의 눈물을 닦아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되물어 유가족의 공감을 얻었다.

그는 이어서 “엊그제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인양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이 말씀이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 지난 1년의 갈등을 씻어주기를 기대한다”며 “기술적 검토를 조속히 마무리 짓고, 그 결과 인양이 가능하다면 세월호는 온전하게 인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세월호를 인양해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던 정부의 약속을 지키고, 가족들의 한을 풀어드려야 한다”며 세월호에 대한 연설을 마무리했다.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는 인양비에 대해서는 “세월호 인양에 1000억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막대한 돈이지만 정부가 국민의 이해를 구하면 국민들께서는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고 동의해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 있던 전명선 세월호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유 원내대표의 발언에 대해 “바른 생각”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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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