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이 쓰는' 일상 신조어 대해부

눔프족, 금사빠녀, 꼬돌남…알고 계십니까?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국립국어원이 온·오프라인 매체 139개를 조사해 ‘2014 새 낱말’ 334개를 선정했다. 이를테면 ‘눔프족’ ‘뇌섹남’ ‘금사빠녀’ 등이다. 이 같은 신조어의 등장은 작금의 다양한 사회현상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신조어 탄생 배경과 그 쓰임새를 알아보자.

 
국립국어원(원장 민현식)은 2013년 7월부터 2014년 6월까지 각종 매체에 등장한 새 낱말(신어) 334개를 조사해 2014년 신어를 발표했다. 국립국어원은 이번 2014년 신어 자료집에는 ‘눔프족’(복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복지비용을 위한 증세에는 반대하는 사람),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 주관이 뚜렷하고 언변이 뛰어나며 유머가 있고 지적인 매력이 있는 남자), ‘금사빠녀’(금방 사랑에 빠지는 여자), ‘꼬돌남’(꼬시고 싶은 돌아온 싱글 남자) 등 우리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반영하는 신어들을 수록했다.

한국어 맞아?
아리송한 신어
 
이번 신어에는 특정 행동 양상을 보이는 사람들의 무리를 가리키는 어휘가 27%(92개)나 됐다. 실속 있는 소비 경향과 관련된 ‘모루밍족’(제품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자세히 살펴본 뒤, 모바일 쇼핑을 하는 사람), 숨 가쁜 일상이 반영된 ‘출퇴근 쇼핑족’(출퇴근을 하면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컴퓨터 따위로 쇼핑을 하는 사람) 등과 사회 경제적 문제를 반영한 ‘오포 세대’(생활고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주택 구입을 포기한 세대), ‘앵그리맘’(자녀의 교육과 관련한 사회 문제에 분노하여 적극적으로 그 해결에 참여하는 여성) 등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특정 부류를 가리키는 접사로는 ‘-족’ ‘-남’ ‘-녀’가 적극적으로 사용됐다. ‘앵그리맘’(당면한 사회 문제에 분노하는 엄마)과 같은 외래어를 기반으로 만든 신어의 비율도 64%로 높게 나타났다.
 

주제별로 살펴보면 사회·경제(24%, 80개), 통신(14%, 47개) 어휘가 많이 나타났다. 지속된 경기 불황으로 인한 사회 경제적 어려움을 반영한 ‘임금 절벽’(물가는 지속적으로 오르는 데 반하여 임금은 오르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현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주거 절벽’(급격하게 오른 주거 비용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현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디 공포’(통화량의 축소에 따라 물가가 하락하고 경제 활동이 침체되는 현상에 대하여 느끼는 공포) 등이 그 예다. 특히 우리 사회를 ‘일자리 절벽’ ‘재벌 절벽’ ‘창업 절벽’ 등으로 설명한 <절벽사회>(고재학 저)에서 유래한 ‘절벽’계 어휘들이 다수 등장했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80%에 육박하면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먹스타그램’(자신이 먹은 음식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일) ‘인생짤’(그 사람의 인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잘 나온 사진), ‘광삭’(빛의 속도와 같이 매우 빠르게 삭제함) 등 통신 관련 어휘들이 쏟아졌다. 음식 관련 어휘는 ‘맛저’(맛있는 저녁), ‘부먹파’(탕수육을 먹을 때 소스를 부어 먹는 사람의 무리) 등이 있다. 
 
교육 관련 어휘에는 ‘돼지맘’(교육열이 매우 높고 사교육에 대한 정보에 정통하여 다른 어머니들을 이끄는 어머니), ‘자동봉진’(자율 활동·동아리 활동·봉사 활동·진로 활동을 줄여 이르는 말) 등이 있다.
 
감정을 표현하는 어휘는 ‘고급지다’(고급스러운 멋), ‘심멎’(심장이 멎을 만큼 멋지거나 아름답다), ‘심쿵’(심장이 쿵할 정도로 놀라움), ‘핵꿀잼’(매우 많이 재미있음) 등의 긍정적 어휘와 ‘노관심’(관심이 없음) ‘극혐오하다’(아주 싫어하고 미워하다)와 같은 부정적 어휘가 나타났다.

사회 비추는
시대의 거울
 
이외에도 300개가 넘는 신조어가 있다. 그중에서도 사용빈도가 높은 것으로 판단되는 신조어의 용례를 픽션을 가미한 스토리로 풀어봤다.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 A씨가 ‘개총’(개강총회) 뒤 ‘개파’(개강파티)참석했다. ‘독강족’(아는 사람 없이 혼자 강의를 듣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학과 행사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여사친’(여자 사람 친구)을 알게 됐고 술자리에서 ‘두둠칫’(춤추면서 박자에 맞춰 몸을 가볍게 움직이는 모양) 다가갔다. 그녀에게 반해 ‘갠톡’(개인 카카오톡)을 시도했지만 현실은 ‘읽씹’(메시지를 읽고 나서 답장을 하지 않는 행위)이었다.
 
 
그래도 A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그녀를 갈망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듀얼성형’(두 군데 이상의 신체부위를 성형함) 미인이었다. 조금 실망했지만 ‘런피스’(원피스를 입고 러닝화를 신은 차림) 스타일이 무척 끌렸다. 뿐만 아니라 ‘놈코어’(지극히 평범한 옷이나 소품들을 이용해 자연스러운 멋을 표현함)는 기본이었고 ‘긱시크’(세련되고 지적이면서도 괴짜같은 느낌을 풍기는 패션 스타일) ‘꾸러기룩’(장난꾸러기처럼 활동적인 쾌활한 느낌을 주는 옷차림)과 ‘꾸러기템’(쾌활한 느낌을 주는 옷이나 소품)까지 소화해냈다.
 
갈수록 넘쳐나는 신조어…도대체 뭔 말?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사회현상 반영
 
A씨는 ‘썸’을 타지 않았지만 JTBC <마녀사냥>을 시청하며 그녀와의 ‘그린라이트’(상대방이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신호)를 꿈꿨다. A씨는 그녀가 ‘꽃오빠’(외모가 꽃처럼 아름다운 오빠)를 좋아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나 A씨는 ‘소금남’(피부가 희고 쌍꺼풀이 없으며 큰 키에 마른 몸매를 지녀 여린 소년의 느낌을 주는 남자) ‘옴므 파베르’(화장용품에 관심이 많은 남성)와는 거리가 있었다. 물론 외모가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A씨는 기본적인 패션센스도 ‘뇌섹남’ 기질도 없었다. 대충하고 다녀도 인기를 한몸에 받는 ‘완얼’(완성은 얼굴) 동기가 부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껌딱지녀’(다른 사람에게 들러붙어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여자)였다. 남자친구가 잠시라도 붙어있지 않으면 안 되는 성향이었다. A씨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고민 글을 올렸다. 그러나 인기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닥눈삼’(닥치고 눈팅 삼 개월)이 필수였다. 해당 게시판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글을 게시해도 반응이 없었다. 괜히 글 하나 잘못 썼다가 ‘빛삭’(빛의 속도와 같이 매우 빠르게 삭제함) 혹은 ‘광삭’(빛의 속도와 같이 매우 빠르게 삭제함)되기 십상이었다.
 
일단 A씨는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들로부터 ‘예스잼’(재미가 있음)을 이끌기 위해 ‘평타취’(평균과 비슷한 수준) 게시물을 올리며 존재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고대짤’(너무 오래되어 더 이상 재미를 주지 못하는 그림이나 사진)이라는 둥 ‘저퀄’(질이나 수준이 낮음)이나 ‘발퀄’(품질이 뛰어나지 않음)이라며 ‘노관심’(관심이 없음)이라는 반응 일색이었다.
 
고민하던 A씨는 ‘어그로꾼’(인터넷 게시판의 성격과 맞지 않는 주제의 글이나 특정 대상에 대하여 악의적인 글을 습관적으로 올리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먹고 연예인 가십 글을 올렸다. 예상대로 뜨거운 반응이 나타났고 ‘극호감’(아주 좋게 여기는 감정)과 ‘극혐오’(아주 싫어하고 미워하다)가 명확하게 갈렸다. 그러면서 일부 연예인을 향한 마녀사냥이 시작됐고 ‘반도녀’(한국여자)라며 여성을 비하하기에까지 이르렀다. A씨의 어그로로 인해 인터넷 커뮤니티는 난장판이 됐다. 급기야 ‘고소미 드립’(즉흥적으로 상대방을 고소하겠다고 말하는 일)까지 넘쳐났다.

긍정·부정적
골고루 등장
 
이를 계기로 A씨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벗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녀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스트레스를 풀고자 ‘넌치’(저녁과 다음 날 아침 사이의 늦은 밤에 먹는 추가적인 식사) 때마다 ‘존맛’(음식이 매우 맛있음을 속되게 이르는 말) 메뉴를 즐겼다. 습관적인 넌치에 A씨의 몸은 갈수록 불었다.
몸이 무거워지자 게을러졌고 외출도 줄어들었다.
 

자연스레 ‘린백족’(의자나 소파에 앉아 편안하게 등을 기대고 온라인 쇼핑을 즐기는 사람)이 돼 쇼핑도 집에서 즐겼다. 이후 물건을 더 저렴하게 구입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모루밍족’(제품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자세히 살펴본 뒤, 모바일을 통해 구매하는 사람)으로 발전하게 됐다. 여기에 한 단계 더 나아간 ‘바이슈머’(국내에서 판매되는 가격보다 싼 값에 물품을 사기 위해 수입상을 통하지 않고 해외의 인터넷 쇼핑몰 따위에서 직접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가 됐다.
 
 
A씨는 이런 식으로 다양한 물품을 수집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지인을 통해 귀여운 새끼고양이 한 마리를 분양 받았다. 이내 ‘냥스타그램’(고양이의 사진을 주로 올리는 인스타그램)에 빠지면서 방 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후 A씨는 ‘갓수족’(경제 활동을 하지 않고 부모가 주는 용돈으로 직장인보다 풍족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은 시대)으로 전락했다.
 
온·오프라인 구분 없이 등장하는 줄임말
자칫 소통 방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할라
 
대구에 사는 직장인 B씨는 여름이 오는 게 두렵다. 대구의 여름은 조금 과장하면 아프리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프리카’(여름에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높아 지나치게 더운 대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B씨는 ‘솔캠족’(혼자 산이나 들 또는 바닷가 따위로 나가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자 ‘나핑족’(밤에 야영을 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다가올 더위를 피할 방법을 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캠핑이 대중화되면서 ‘레티켓’(여가 활동을 하면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서 불쾌하다.
 
그러나 여성은 예외다. 레티켓이 좀 부족해도 예쁘면 ‘츤데레남’(겉으로는 퉁명스럽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남자)으로 변한다. 그리고 페이스북 주소를 알아내 ‘페메’(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낸다. 이런 식으로 접근해 지금까지 수십 번이고 ‘삼귀다’(아직 사귀지는 않지만 서로 가까이 지내다) 단계까지 발전했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학부모 C씨는 소위 ‘돼지맘’(교육열이 매우 높고 사교육에 대한 정보에 정통해 다른 엄마들을 이끄는 엄마)이다. C씨의 아이들은 하루에 5개가 넘는 사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교육절벽’(과도한 교육비 지출로 인해 가정 경제의 부담이 과중되는 현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은 피할 수 없다.
 
C씨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의 성적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들은 ‘덕통사고’(뜻밖에 일어난 교통사고처럼 어떤 일을 계기로 갑자기 어떤 대상에 병적으로 집중하거나 집착하게 됨)를 당해 공부와 담을 쌓게 됐다. 급기야 ‘덕밍아웃’(한 분야에서 지나치게 심취하는 사람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일)까지 했다. 비뚤어진 건 아니지만 답답했다.

지속적 사용시
사전등재 결정
 
딸은 더했다. C씨의 딸은 ‘자방세대’(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 방송하는 세대)였다. 하루 온 종일 아프리카TV에서 ‘먹부심’(먹는 일에 대해 느끼는 자부심)을 부렸다. 치킨, 피자, 삼겹살 등 ‘위꼴샷’(위가 움직일 정도로 식욕을 자극하는 사진)을 올리며 별풍선을 받기도 했다. 딸은 ‘바이어트녀’(자전거를 타면서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 등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주 시청자라며 자랑스러워한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에는 다양한 신조어가 녹아 있다. 습관처럼 내뱉는 말 중에는 신조어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 국립국어원은 매해 조사 전 12개월에 걸쳐 발간된 대중 매체의 언어를 대상으로 자동 신어 조사기를 활용하여 신어 후보 항목을 추출하고, 비속어 제외 등의 신어 선정 기준에 따라 그해 신어를 최종 선정한다. 이렇게 선정된 신어는 이후 지속적인 사용 양상을 관찰하여 사전의 등재 여부 및 표준어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앞으로는 어떤 신조어가 등장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khlee@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