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르포> 난교클럽에선 무슨 일이…

평일엔 스와핑, 주말엔 집단성교

[일요시사 사회2팀] 유시혁 기자 = 늦은 밤, 술집이 즐비한 번화가를 걷다보면 간혹 ‘Membership Club’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호기심이 발동해 업소로 입장할라치면 굳게 닫혀 있거나 사장으로부터 출입을 제지당하곤 한다. 말 그대로 회원제로 운영되는 업소이므로 누구에게나 출입을 허용하지는 않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멤버십 클럽은 성 소수자들을 상대로 운영되는 게이바로 알려져 있으나 독특한 성적 취향을 지닌 사람들의 모임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한 멤버십 클럽에서 부부, 커플, 싱글들이 독특한 성 교류 모임을 가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기자가 직접 방문해봤다.

  
부부, 커플, 싱글들의 독특한 성 교류 모임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기자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해당 모임의 인터넷 카페 가입이었다. 이미 1만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이 카페의 정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카페가 요구하는 질문에 답해야만 했다. 가장 먼저 물어본 질문은 부부인지, 커플인지였다. 싱글이라고 적은 후 기자의 신체 사이즈와 나이, 그리고 직업, 성격, 가입경로에 대해 대답했다.
 
정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댓글 5, 게시글 1, 방문 2회 이상을 이수해야 했다. 일주일이 넘도록 정회원은 승낙되지 않아 대부분의 게시글 확인이 불가했다. 게시글의 제목만 보며 추적한 끝에 그들만의 모임 장소인 한 클럽의 이름을 알아냈다. 인터넷포털사이트인 다음과 네이버에 그 클럽을 검색해보았지만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글을 검색해 보니 클럽 관련 글 몇 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클럽 사장의 연락처를 알아낸 후 지난 23일 클럽 방문 예약을 문의했다. “매일 저녁 9시에 오픈하지만 금일은 예약 팀이 없으므로 내일 방문하시길 권한다는 운영자의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맘놓고 프리타임
주말마다 북새통
 

24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수사1팀에 전화를 걸었다. 클럽 방문 전에 법적 처벌에 대해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성매매업소가 아니고 서로 합의하에 성관계가 이뤄지는 업소이다보니 어떠한 법적 근거로도 처벌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날 밤 1030분 경기도 부천의 석촌로 184번길을 찾았다. 사장에게 전화를 걸자 한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카페는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을 만큼 철통보안이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사장이 기자를 마중 나왔다. 안내를 받고 클럽으로 들어섰지만 어두운 조명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입구 통로에는 1m 높이의 행거에 수많은 옷들이 걸려 있었다. 그 옷들은 대부분 야동에서나 볼법한 세일러교복, 가죽의상 등의 코스프레 의상이었으며, 벽면 가득 멋스러운 마스크도 걸려 있었다. 기자의 신분을 속이고 방문했기에 홈바에 자리를 잡은 후 사장과 마주했다. 카운터에서는 클럽 외부에 설치된 4개의 CCTV 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철저한 멤버십 클럽 운영을 위해 설치했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사전 방문 예약 없이는 그 어떤 손님도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단다.


 
사장은 클럽 방문 경로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카페 가입 후 호기심이 발동해 오게 됐다고 설명하자 그제야 사장은 미소를 보이며 상냥한 말투로 기자를 상대했다. 사장은 회원정보를 다시 한 번 확인한 후 기자의 회원 자격을 우수회원으로 변경해줬다.
 
중앙에 대형 침대…뒤엉켜 그룹섹스
커플 바꿔 관계…파트너 빌려주기도
 
은은한 조명만이 간신히 클럽을 비추고 있어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클럽 양 벽면으로 테이블이 5개씩 총 10개의 테이블이 있었으며, 클럽의 정중앙에는 대형 침대가 놓여 있었다. 족히 20명은 누울 수 있을 만큼의 커다란 빨간색 가죽침대였다. 홈바 우측편 복층과 테이블 끝 부분에도 침대가 2개씩 놓여 있었다. 분위기를 보아 인테리어용 침대는 아니었다.
 
사장은 휴대전화를 꺼내어 외국인들이 한 공간에서 그룹성교를 갖는 사진을 보여줬다. 주말이면 이 사진 속 장면이 클럽에서 재현된다고 설명해줬다. 평일에는 소수의 팀들만이 클럽을 방문하므로 주로 부부나 커플 간 상대를 바꾸어 관계를 갖거나 남자 측에서 싱글 남성에게 아내 또는 여자 친구와의 교감을 허락해주는 형태로 이뤄진다고 했다.
 

사장은 기자가 혼자 찾아왔다는 점을 고려해 싱글 남성과 싱글 여성 간의 관계도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주로 평일에는 3~4, 주말에는 15~20팀이 클럽을 방문하며, 방문 팀의 예약 현황은 카페 또는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팀은 부부나 커플이 80%, 싱글이 20%를 차지하며 주 고객층은 3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이라고 했다. 20대 커플과 50대 부부는 각 25% 정도씩 차지한다고 했다. 메뉴판을 살펴보자 가장 저렴한 메뉴는 1인 기준 맥주 10병과 과일안주 세트가 20만원이었으며 12년산 양주 가격은 27만원이었다.
 
찾는 부부 많아
자유로운 성관계
 
클럽에는 기자 외에도 6명의 손님이 한 테이블에 앉아 옹기종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30대 초반 커플이 한 팀이었으며 나머지 두 팀은 40대 부부인 것으로 보였다. 음악 소리에 그들의 대화 내용을 자세히 들을 수는 없었으나 농도 짙은 대화 내용을 포함한 일상 이야기들이었던 것 같다. 사장은 세 팀의 부부, 커플인데 다들 처음 보는 사이라고 설명해줬다.

 
부부 관계가 소원해진 부부의 출입이 잦다고 한다. 특히 남편의 경우 평소 부인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다가 뭇 남성들로부터 환대받는 부인을 보면 질투심을 느껴 애정이 더욱 생긴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사장은 클럽 방문 이후 관계를 회복한 부부들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젊은 커플들은 개방된 성 문화로 인해 자유롭게 상대방을 바꿔 관계를 가짐으로써 지루해진 커플 간의 관계에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단다. 사생활을 억압하는 연인 관계에 대한 회의감에 싱글라이프를 즐기는 싱글들 사이에서는 자유로운 성 관계가 가능하므로 인기란다. 불법 성매매 업소 출입으로 성병 위험 노출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싱글 남성도 있단다.
 
‘철통보안’ 회원제 멤버십 클럽
독특한 성적 취향 사람들 모여
 
단골손님에 대해 묻자 사장은 자동차딜러로 일하는 31세 미혼남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그는 작은 키에 통통한 체형이며 못생긴 얼굴의 소유자라고 했지만 서글서글한 성품과 애무 기술이 좋아 손님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라고 했다. 연회비 400만원을 지불한 그는 매주 술값 부담 없이 마음 놓고 와서 술을 마시며 부부나 커플의 여성을 탐한다고 한다.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는 27세의 여성은 연예인 못지않은 빼어난 외모와 몸매로 남성 손님으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누리나 부인 또는 여자 친구들의 시샘 또한 이기기 힘들다고 한다. 이에 그녀는 방문 예약 시 싱글 남성 5명 이상을 확보해 놓으라는 주문을 빼놓지 않으며 싱글 남성 모두와 함께 교감을 나눈다고 한다.
 
30세의 한 남성은 관음증환자로 이성과의 교감은 피하며 성교를 지켜보는 것에 만족한다고 한다. 그는 야맹증이라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밤 12시에 진행되는 프리타임(성교타임)에 가장 난감해 한다고 한다. 프리타임에는 최소한의 조명만 켜놓은 채 손님들간의 자유로운 성관계를 유도한단다.
 
클럽은 손님들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었다. 매주 수요일에는 쌔끈 데이가 운영되는데 말 그대로 정말 화끈하게 놀아야만 한다. 매달 진행되는 고정 이벤트로는 란제리코스듐 파티가 있으며 맘에 드는 사람을 지명해 함께 노는 초이스 미팅, 초보를 위한 초보데이, 무료로 마사지를 제공하는 마사지 이벤트, 패티쉬 파티도 진행한다.
 

원활한 클럽 운영을 위한 몇 가지 금지사항도 있다. 첫째 절대 상대 배우자의 허락 없이는 이성을 탐해서는 안 되며, 둘째 합의하에 이뤄진 관계에서 질투심으로 인해 분란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셋째 신상 유출이 염려되므로 사진 촬영을 금하며, 넷째 아무리 친하다고 해서 실명을 거론해선 안 되며 닉네임으로 호칭을 대신한다. 마지막으로 여성 손님에게는 일체 술값을 요구하지 않으며 성매매업소가 아니므로 상대에게 돈을 지불해서는 안 된다.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는 세 부부들은 번갈아가며 홈바 쪽으로 다가와 기자를 살폈다. 이는 낯선 이와의 관계를 위한 하나의 탐색전으로 보였다. 새벽 1시 무렵, 테이블에 앉아 있던 40대 여성이 잘생겼다며 친근감 있는 말투로 기자에게 말을 걸어왔다. 순간 당황해 얼굴이 화끈거리게 달아올랐고 대충 감사를 표했다. 여성은 사장에게 귓속말을 한 후 자리로 돌아갔다.
 
저 테이블의 다른 여성이 손님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데 어떠세요? 이 시간쯤 되면 보통 관계가 이뤄지거든요.” 사장이 기자에게 말했다. 당황스러움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생각을 해보겠다며 화장실로 몸을 피했다. 대형 침대를 지나다 테이블에서 입맞춤을 하는 한 커플을 목격했으며 여성들의 매서운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일반 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샤워시설이 눈에 띄었다.
 
나홀로족도 출입
싱글은 즉석교감
 
언제쯤 볼 수 있어요?” 사장에게 물었다. 이내 사장은 초보 부부 두 팀이나 방문해 관계 관전은 불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대답했다. 사장이 기자에게 호감을 표시한 여성과의 관계에 대해 재차 묻자 거절 의사를 밝혔고 사장은 더 이상의 요구는 하지 않았다. 이렇듯 상대 이성과의 관계에 있어 강요는 없으며, 반드시 합의하에 이뤄진다는 점도 강조했다.
 

새벽 130분이 돼서야 클럽을 빠져나왔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서 박스를 줍고 있는 한 할머니가 있었다. 취재 목적으로 방문했지만 기자도 남자인지라 호기심이 많았던 터, 할머니의 굽은 허리를 보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지만 기자의 입장에서 이들의 모습은 결코 좋아 보이지 않았다. 되레 우리 사회의 추악하게 변해버린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evernur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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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