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연기와 함께 사라진 3명의 목숨 “베르테르 효과?”
자신의 몸을 불태워 언 몸을 녹여준다는 숭고한 의미를 가지고 있던 연탄이 자살을 돕는 도구로 각광(?)받고 있다. 안재환씨가 연탄을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부터다.
베르테르 효과 우려
알려진 대로 안씨는 자신의 차 안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삶을 마감했다. 안씨가 사망할 당시 차안에는 연탄 2장이 있었고 그 중 한 장이 연소되어 있었던 것. 국립과학연구소의 부검결과는 사망 원인을 확실히 했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지난 16일 “고 안재환의 국과수 부검결과 직접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에 의한 질식사인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고 밝혔다.
안씨의 부검의 서중석 국과수 법의학부장은 “예상대로 일산화탄소 중독에 의해 숨진 것으로 결과가 나왔는데 혈액에서 일정정도 알코올 성분이 나온 것으로 봐서는 숨지기 전 소주 1병 이상을 마시고 만취된 상태에서 연탄불을 피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안씨의 죽음 이후 연탄을 이용한 자살사건이 연달아 이어져 우려감이 확산되고 있다. 유명인의 자살이후 자살률이 높아지는 베르테르 효과가 벌써 나타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마저 조성되고 있다.
연탄자살사건은 추석연휴였던 지난 13일 처음 발생했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사람은 고등학생이었다. 지난 13일 오후 1시50분경, 부산 동래구 온천동 모 호텔객실에서 고등학교 3학년 이모(18)군이 연탄 4장에 불을 피우고 침대에 누워 숨져 있는 것을 호텔 직원 장모(44)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결과 이군은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받다가 어학연수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난 11일 부모님 몰래 한국으로 귀국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울증을 앓던 이군은 부산의 호텔방을 잡고 연탄불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올해 12월 미국으로 유학을 갈 예정으로 입학준비까지 마쳤던 이군은 결국 연탄가스 중독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됐다.
경찰은 사망 현장에서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세요’라는 유서가 발견된 점과 우울증 증세로 신경정신과에서 치료를 받았던 점 등으로 자살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 중이다.
이뿐만 아니다. 추석 당일이었던 지난 14일에도 30대 2명이 연탄불을 피우고 목숨을 끊었다.
이날 오후 5시경 울산 북구 매곡동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 부근에서 김모(32·여)씨가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숨져 있는 것을 인근 아파트 주민 김모(35)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목격자 김씨는 “차 옆에 연탄이 떨어져 있어 안을 살펴보니 김씨가 고개를 젖히고 다리는 조수석 쪽으로 한 채 숨을 쉬지 않고 누워 있었다”며 “전날 이모님도 이곳을 지나면서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잠이 든 것 같다’고 했는데 다음날에도 똑같은 상태라 의심스러워 확인해 봤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의 차 안에서는 연탄불을 피우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덕과 연탄재, 유서가 발견되어 연탄질식자살의 정황이 포착됐다. 김씨는 유서에 “학원 운영이 잘 안 돼 고민이 많았다.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내용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같은 날 오후 2시25분 경에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천진해수욕장 인근의 한 모텔 객실에서 김모(36·인천시)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김씨가 투숙했던 객실에서도 피우다 남은 연탄과 화덕이 발견됐다.
경찰은 지난 9일 숨진 김씨의 아내로부터 “남편이 ‘나 먼저 갈게’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으니 찾아 달라”는 의뢰를 받고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한 끝에 모텔에서 김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처럼 안씨의 죽음을 따라 한 자살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는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베르테르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베르테르 효과란 독일의 문호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래했다. 소설 속 주인공 베르테르는 연인과 헤어진 뒤 자살을 택하는데 책이 출간된 후 유럽에서 모방 자살이 급증했다. 이를 두고 유명인의 자살 이후 자살률이 급증하는 현상을 두고 베르테르 효과란 말이 생겨난 것.
실제로 유명인들의 자살 이후 모방자살이 늘어난 현상은 비일비재했다. 2005년 2월 영화배우 이은주씨가 자살한 뒤 1개월간 자살 건수가 다른 해 같은 기간보다 58% 증가했다는 연구결과가 이를 보여준다. 또 정다빈, 유니 등 젊은 연예인들이 자살한 이후에도 자살률이 증가한 바 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니다. 2003년 홍콩 배우 장국영이 자살했을 때 홍콩의 남녀 6명이 장국영과 같은 방법으로 고층 건물에서 투신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자살 합리화 경향 높아져
전문가들은 유명인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자신의 자살을 합리화하는 전염효과를 갖게 돼 죽음이 해결책이라는 생각을 쉽게 함으로써 모방자살이 늘어난다고 입을 모은다. 또 언론에서 자살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공하면서 이 방법을 따라한 자살이 늘어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경우 모방자살의 위험에 더욱 노출되기 쉽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일부 청소년들은 인터넷에 연탄자살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 등을 묻고 있어 이 우려감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베르테르 효과로 인한 안타까운 죽음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도록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