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에 달한 ‘여혐’ 실태

여자는 ‘삼일한’이 답이라고?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최근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들 사이에서 ‘여혐’이라는 표현이 난무하고 있다. 여혐은 ‘여성혐오’의 줄임말로 주로 여성을 비난·조롱할 때 쓰인다. 한국 여성을 낮잡아 이르는 말인 ‘김치녀’ 등과 비슷한 의미를 품고 있다. 남녀 간 불신을 조장하는 여혐의 실태를 알아봤다.


여혐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이들은 여성 관련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를 ‘악의 축’으로 꼽는다. 이들에게 여성전용주차, 여성전용도서관, 여성전용임대주택, 여성전용흡연실, 여성전용지하철칸 등은 매우 불편한 정책이다. 되레 남성에게 역차별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줄곧 여성가족부 폐지를 외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일면 타당성이 있으나 표현방식이 다소 과격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반사적 혐오

여혐조장은 ‘여자는 삼일한(북어와 여자는 3일에 한 번씩 패야 한다)이 답이다’ 등의 게시물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 같은 글 대부분은 ‘XX녀’로 시작한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일부 여성들의 이야기나 여성 커뮤니티에 올라온 고민글 등으로 구성돼 있다. 댓글은 비난 일색이다. “오늘도 ‘여혐지수’(여성혐오 정도) 상승” “역시 김치녀” 등이다.

여혐현상이 나오는 데에는 대중매체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 속에서 오로지 돈만 밝히는 여주인공이 대표적이다. 한 화장품 회사는 ‘명품백을 얻기 위한 방법. 단 하나의 솔루션. 남자친구를 사귄다’는 문구 등을 사용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가수 브로(Bro)는 ‘그런 남자’라는 곡을 발표해 남자의 외적 요소를 따지는 여성을 비판했다. “키가 크고 재벌 2세는 아니지만 180은 되면서 연봉 6000인 남자… 그런 남자라면 약을 먹었니 미쳤다고 너를 만나냐.” 이 가사에서 청량감을 느낀 이들은 브로를 열렬히 응원하기도 했다.

얼마 전 중학교를 중퇴하고 IS(이슬람국가)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김군도 뚜렷한 여성혐오를 나타냈다. 김군은 SNS를 통해 페미니스트들이 싫어 IS대원이 되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김군은 지난해 10월 “지금의 시대는 남자가 차별을 받는 시대”라며 “페미니스트가 싫다. 그래서 IS가 좋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글만 놓고 봤을 때 김군의 IS 옹호가 전적으로 여성혐오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여성혐오가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여혐을 외치는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를 경멸한다. 하지만 이들이 이해하는 페미니즘은 실제 사회운동으로써의 페미니즘과 거리가 멀다는 의견이 다수다. 페미니즘은 19세기 말 여성 참정권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20세기 중반을 거치며 양성의 법적 평등을 넘어 사회의 문화적·정치적 불평등을 지적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유교적 가부장제가 강한 한국에서도 여성의 권리를 찾기 위한 움직임이 일었다. 그리고 2001년, 국가 차원의 여성정책을 관할하는 여성가족부가 출범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국에 제대로 된 페미니스트는 없다고 지적한다.

극단적인 성차별주의와 여성 혐오 정서
약자가 약자 괴롭히는 꼴…태도 바꿔야

이러한 와중에 지난 1월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페미니스트 정의가 잘못됐다며 수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페미니스트는 ‘여권 신장 또는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람, 여성을 숭배하는 사람 또는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로 정의돼 있다. 여성연합은 잘못된 정의가 오해를 키운다고 주장했다.

여성연합은 잘못된 정의를 ‘계급·인종·종족·능력·성적지향·지리적 위치·국적 혹은 다른 형태의 사회적 배제와 더불어 생물학적 성과 사회문화적 성별로 발생하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이론과 정치적 의제들’로 고칠 것을 제안했다. 페미니스트 또한 이러한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여성연합의 주장이다.

여성연합 성평등연구소는 디시인사이드, 다음 아고라 토론방, 네이버 뉴스 댓글란, 일간베스트, 네이트판 등 5개 사이트를 분석해 ‘온라인상 여성 혐오 표현 모니터링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이 보고서는 여성혐오를 외모, 성과 여성성, 연령 등으로 분류해 여성혐오 실태를 고발했다.

이 연구팀은 “일베의 경우 폭력적인 표현과 광범위한 여성 혐오 담론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성차별주의와 여성 혐오 정서는 극단적이고 일베와 같이 폭력적인 표현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 이미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또한 “결국 온라인 공간에서의 여성 혐오 정서로 대표되는 현재의 젠더 질서를 어떻게 재구성해 나갈 것인지 민·관과 이용자의 협력적 모색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여성의 지위가 향상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 여성의 삶은 그렇지 않다. 스위스의 민간 싱크탱크인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발표한 국가별 남녀 성평등 순위에서 한국은 조사대상 142개국 중 117위를 기록했다. 2010년 104위를 기록한 후 지속적으로 하락세다.

현재 나타나는 여혐현상은 약자가 약자를 공격하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약자 간 대립각은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존중·배려 필요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은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 “남성과 여성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 일하는 명실상부한 ‘양성 모두의 부처’로 거듭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하여 오는 7월부터 여성가족부의 정책 패러다임이 바뀌게 된다. 여성발전기본법이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전면 개정 시행된다.

여성가족부는 부처 명칭을 현재 영어 명칭 ‘Ministry of gender equality & family’처럼 ‘양성평등가족부’로 바꾸기에 앞서 7월 법 시행에 맞춰 우선 여성정책국을 양성평등정책국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이것이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볼 수는 없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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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밥도 아닌 트럼프 따라하기

죽도 밥도 아닌 트럼프 따라하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을 밑바탕 삼아 용꿈을 현실화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장 대표에게 영감을 준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화당 장악·대권 도전 과정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30년 넘게 이어진 미국의 문제점과 유권자의 불만을 꿰뚫었다. 장 대표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빙글빙글 정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지도부는 지난 6일 광주를 방문해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려고 했다. 그러자 광주전남촛불행동 등 광주 시민단체 회원들과 일부 시민들은 장 대표 일행의 참배를 막았다. 결국 장 대표 일행은 추념탑 앞에서 5초 동안 묵념한 후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같은 콘셉트 다른 행보 장 대표의 참배 시도엔 ▲국민 통합 ▲호남 구애 및 지역 현안 해결 ▲강경 보수 이미지 희석 등 이유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장 대표의 이후 행보는 참배를 시도했던 이유에 대한 의문을 자아낼 가능성이 있다. 광주북부경찰서는 장 대표 등의 참배를 막은 시민들에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재물손괴 등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민의힘 광주시당은 지난 18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일 집회는 신고되지 않은 불법 시위였고, 각종 욕설과 모욕으로 일관된 폭언·폭력이 난무한 아수라장이었다”며 “시민을 가장한 과격 단체와 특정 인사들이 국민의힘 당 대표의 참배를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지난 12일 내란 특검에 체포됐다가 이틀 후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돼 석방된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두둔했다. 황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원식 국회의장을 체포하라. 대통령 조치를 정면으로 방해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체포하라”는 내용의 비상계엄 동조 게시글을 올리는 등 행동으로 말미암은 내란 선전·선동 혐의를 받고 있다. 장 대표는 국회에서 대장동 항소 포기 규탄대회를 진행하던 중 황 전 총리 체포에 대해 “전쟁이다. 우리가 황교안이다. 뭉쳐 싸우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황 전 총리가 활발하게 부정선거론을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비판이 이어지자, 장 대표는 지난 13일 의원총회에서 부정선거론에 선을 그으면서 “전략적으로 한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장 대표·황 전 총리의 행적을 되새겨보면,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 구호는 미국 정치 드라마 <웨스트윙>에서 크게 화제가 됐던 대사 “나는 민주당원이다”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웨스트윙>에선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매튜 산토스가 상대 후보 에릭 베이커의 약점을 감싸는 연설을 한다. 에릭 베이커는 부인의 만성 우울증을 숨겼다. 이 때문에 논란이 발생하자, 매튜 산토스는 “어차피 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는데, 아닌 척 위선을 할 뿐”이라며 “지도자에게 완벽하다는 환상을 요구하면, 이는 단지 거짓을 종용하는 것”이라고 연설했다. 이어 “완벽한 후보·특혜를 줄 후보가 아니라 이상·희망·꿈을 공유하는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면 우린 자랑스럽게 ‘나는 민주당원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광주 방문 시도 이어“우리가 황교안이다” 트럼프 당선엔 30년 밑밥…어설픈 표절? “나는 민주당원이다”는 상대의 약점을 감싸면서 정치의 본질을 호소하는 이상적인 정치인의 상징으로 통한다. 하지만 황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의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를 두둔하면서 폭력적인 정적 숙청을 요구했다. “우리가 황교안이다”는 “나는 민주당원이다”와 극단적으로 대비될 수밖에 없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9월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장동혁 대표에 대해선 충청도에서 몇 안 되는 용꿈을 꾸는 분이란 평이 있었다”며 “그 용꿈을 망상에 가깝다고 보기엔 유연하게 정치를 한 분”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대표 취임 후 김도읍 정책위의장 임명 등 중도 보수 성향 유권자를 의식한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그에게서 ▲장외 집회 집착 ▲황 전 총리 두둔 ▲한 전 대표 퇴출 시도 등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좋아할 만한 행보가 더욱 두드러졌다. 이 때문에 그는 빙글빙글 회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광주 5·18 민주묘지 참배와 황 전 총리 두둔이란 극단적인 행보를 불과 며칠 사이에 보인 것도 장 대표 특유의 빙글빙글 정치를 상징한다. 강경 보수에 더욱 치중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 대표의 행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과정과 비교할 만하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과정엔 미국 민주당에 모여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리버럴 엘리트들에 대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반발이 큰 역할을 했다. 국민의힘 박민영 대변인은 지난 12일 유튜버 감동란의 개인 방송에 출연해 같은 당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의원을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알려진 김 의원은 윤 전 대통령 탄핵 표결 당시 찬성표를 던졌고, 특검법 3개에도 모두 찬성했다. 박 대변인은 “김 의원은 눈 불편한 것 빼고는 기득권인데, 장애인이라서 배려받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장애인에게 너무 많은 할당을 하는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 전 대표가 김 의원을 일종의 에스코트용 액세서리 취급을 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지난 17일 박 대변인을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박 대변인에게 엄중하게 경고할 뿐, 징계는 하지 않았다. 박 대변인의 발언과 장 대표의 미지근한 대응은 김 의원에게 강한 반감을 갖는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를 의식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시각장애인이자 여성이란 김 의원의 정체성과 그에 대한 박 대변인의 공격은 미국에서 만성 구조화된 정치적 올바름 논쟁의 흐름과 정확히 일치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쟁취는, 진보 진영이 신자유주의·정치적 올바름을 추진하면서 민주당이 월스트리트와 강하게 연계하자 국민이 여기에 반감을 갖게 된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딕 체니 전 부통령·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부 장관으로 상징되는 네오콘에 대한 반감도 큰 역할을 했다. 드라마 대사 표절?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강하게 추진된 신자유주의로 인해 산업 패러다임은 제조업에서 금융업으로 바뀌었다. 월스트리트의 힘이 더욱 막강해졌고, 미국 내 제조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로 이전하는 흐름이 가속화됐다. 지난 2008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국 내 중산층 몰락에 쐐기를 박았다.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막대한 세금을 대외 전쟁에 쏟아부었던 네오콘도 유권자의 큰 반감을 사서 몰락했다. 고립주의를 선호하는 미국 보수의 전통적인 흐름과 달리, 네오콘은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어 미국의 가치를 퍼트리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그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는다”는 것 때문에 네오콘은 오래 지나지 않아 몰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엔 미국 특유의 고보수주의가 함축됐다. 미국의 역사는 이주·개척의 역사다. 지금과 같은 세계 경찰의 위상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 확보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엔 지역 강국 정도의 위상을 가졌고, 현재의 미국 영토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주로 얻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서부 개척 시대를 다룬 영화가 흔하게 제작된다. 미국인이 광적으로 열광하는 시리즈 <스타트렉>과 <스타워즈>도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은유해 제작됐다. 건국 신화가 따로 없는 미국에선 이 양대 시리즈가 신화로 통한다. 미국 고보수주의의 핵심은 다른 나라의 전쟁·정치 개입에 반대하는 외교 정책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인위적으로 고립시켜 대륙 내 미국의 기득권을 지키자는 것이다. 미국의 국력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19세기엔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미국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 전 대통령은 1823년 “유럽은 아메리카에 새 식민지를 만들지 말고, 미국은 유럽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먼로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어 ‘명백한 운명’이란 구호하에 서부 개척에 몰두했다. 트럼프 대통령·JD 밴스 부통령은 지난 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왜 감사하단 말을 하지 않느냐”고 몰아붙였다. 미국이 지난 2022년 2월 이후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지원 규모는 약 820억달러(약 113조4880억원)이고, 전비는 670억달러(약 98조4591억원) 규모로 확인된다. 미국 상원은 지난해 4월 608억달러(약 89조3480억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첨단 무기 등 대규모 군사 지원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지지자들을 달랠 거대한 쇼가 필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상징 중 하나는 제1기 행정부 당시 멕시코 국경에 설치한 거대한 장벽이다. 미국 내 블루칼라들이 갖는 불만 중 하나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미국·멕시코 접경지역에선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이를 실질적 효과와 정치적 이벤트를 모두 거둘 수 있는 일거양득 상황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로망의 정치화 트럼프 대통령의 고보수주의 성향은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우리에게 방위비 분담금 100억달러(약 14조6942억원)를 요구했다. 내년에 우리가 부담해야 할 방위비 분담금은 1조5192억원이다. 지난 14일 공개된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엔 주한미군에 대한 330억달러(약 48조4948억원) 규모의 종합적 지원 내용이 담겨있다. 또 우리는 오는 2030년까지 미국산 군사 장비 구매에 250억달러(약 36조7385억원)를 지출해야 한다. 일본도 지난 5월부터 미국으로부터 주일미군 분담금 인상 압박에 시달려 매년 증액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부터 캐나다·그린란드·파나마 등 아메리카 대륙과 그 인근 지역으로 사실상 영토를 확장하려 하고 있다. 미국인에겐 영국·멕시코 등과 전쟁하면서 중·남부로 영토를 확장했던 19세기의 재림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고보수주의 성향은 각국에 안기는 관세 폭탄에서도 잘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그린란드 주민이 투표를 통해 미국 편입·독립을 결정한 상황에서 덴마크가 이를 방해하면 덴마크에 고액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세를 군사·외교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단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에 대해 “포퓰리즘”이란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는 관세 폭탄에서 잘 드러난다. 공화당은 지난 6일 진행된 뉴욕시장·버지니아 주지사·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 참패했다. 선거의 핵심 쟁점은 생활비 부담이었다. 뉴욕시에선 주거비가 급등했고, 뉴저지주에선 전기요금이 연 20% 상승했다. 특히 버지니아주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연방정부 인력 감축 방침과 셧다운 여파로 공무원들이 급여를 받지 못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커피·바나나·쇠고기·견과류 등 생활필수품에 대한 상호 관세를 면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방침 이후 생활필수품 물가가 급상승한 여파로 선거에서 패배하자 뒤늦게 상호 관세를 면제한 것이다. 특히 쇠고기는 미국 축산농가의 반발을 무시하면서 관세를 면제했다. 장 대표는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겉’만 빌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990년대 이후 미국 정치권이 주도한 변화의 여파로 서민의 삶이 악화한 흐름을 날카롭게 찌르면서, 이들의 바람을 선동적 언어로 표현해 대권을 거머쥔 것이다. 불만 조직화한 트럼프 지지율↓ 원인 장동혁 30년 넘게 진행된 신자유주의·개입주의에 대한 반감 때문에 강경 보수가 대규모 조직화한 영향도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도전에 날개를 달아줬다. 하지만 국내에선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전한길씨 등이 주도하는 강경 보수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매우 크다. 이들의 언행은 강경 보수의 틀을 벗어나면, 조롱 대상이 될 뿐이다. 아울러 미국에선 민주당이 신자유주의 질서를 주도했다. 이 때문에 공화당은 미국 특유의 고보수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시장경제·기업 경영의 자유 등 신자유주의 질서를 지지하는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부터 신자유주의 성향의 경제 정책을 유지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양당의 의견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아울러 양당은 특히 젊은 남성들이 민감하게 여기면서 비판하는 각종 검열을 적극적으로 진행한다. ▲셧다운제 도입 ▲확률형 아이템 규제 ▲게임물관리위원회 검열 논란 등 검열 논란은 정당을 불문하고 꾸준히 일어났다. 미국에선 민주당과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정치적 올바름 논쟁이 영화계로 이어져 <백설공주>와 <인어공주> 등 영화에 유색인종 주인공이 발탁돼 큰 논란으로 확산했다. 이런 논란을 주도하면서 서민을 훈계한 대표 세력은 월스트리트·각계 엘리트·언론이었다. 이 논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도전 과정에 큰 영향을 줬다. 국민의힘은 각종 검열 논란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과 별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처럼 젊은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유인하기가 쉽지 않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세력 중엔 불법 이민을 통해 미국에 입국한 멕시코인을 경계하는 기존 유색인종 유권자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흑인 중 8% ▲히스패닉 중 28% ▲아시아계 중 27% 등 득표율을 보였다. 지난해 대선에선 ▲흑인 중 13% ▲히스패닉 중 46% ▲아시아계 중 40%가 그에게 투표했다. 반면 장 대표는 지난 6일, 광주에서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지 못했고 국민의힘은 장 대표를 비난하는 시위를 한 시민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을 완전히 장악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장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더 찐윤(진짜 친윤)’에 의해 옹립된 재선 의원에 불과하다. 국민의힘은 장 대표 취임 이후에도 지지율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이는 전주보다 2% 낮아진 수치며, 지지율 42%를 기록한 민주당보다 18% 낮다. 심지어 전통적인 표밭 대구·경북에서도 지지율 42%를 얻는 데 그쳤다. 표밭도 위험하다 어설픈 표절은 죽도 밥도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여년 동안 누적된 미국의 문제점과 유권자의 불만을 꿰뚫은 후 유권자들이 향수를 느끼는 옛 로망을 자극해 대권을 거머쥐었다.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을 투표로 연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진정한 ‘트럼프 벤치마킹’은 아닐까? 장 대표는 꾸준히 정체되고 있는 국민의힘의 지지율에서 뭘 보고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