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1000호 특별기획 ③> ‘2034년 모습은?’ 미리 가 본 2000호 시대

“미래를 알아야 변화 주도한다”

[일요시사 경제팀] 한종해 기자 = 창간 19년 만에 지령 1000호를 맞은 <일요시사>가 오는 2034년이면 지령 2000호를 내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19년 뒤 2000호 시대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타임머신을 타고 상상이 현실이 되어 있는지를 살짝 들여다보고 왔다.

2034년 봄 부산 앞바다, 김종민씨의 저녁 퇴근길이다. 자가용에 오른 김씨는 목적지 설정 후 잠에 빠져든다. 자가용은 해저터널로 접어든다. 내장된 센서가 앞차와 뒷차와의 거리를 계산, 속도를 자동 조절한다.
 
해저터널을 거의 빠져나올 무렵, 교통체증이 발생한다. 앞에서 달리던 차량의 컴퓨터 프로그램 기능 오류가 발생했나 보다. 조금 짜증은 나지만 체증은 이내 풀린다. 프로그램 제조사에서 원격으로 기능 고장을 해결하기 때문. 부산항에서 20여km 떨어진 심해도시에 위치한 김씨의 집까지 걸린 퇴근 소요시간은 불과 20여분이다. 중국과 일본, 한국을 잇는 해저터널이 있어 출장은 대도시마다 있는 국제버스터미널을 통해 다녀온다. 
 
중국과 일본
버스로 왕래
 
김씨의 주거구역은 깊이 500m의 심해다. 안전에 대한 불안감은 않다. 거대한 3D 프린터로 건설되어 한치의 오차도 없다. 해면에 있는 거대 태양광 집약시설로 에너지를 충당하고 부족한 부문은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한 발전기가 채운다. 식수 걱정도 없다. 2020년 국내 연구진이 해수의 완벽한 담수화를 이뤄내 언제 어디서 수도꼭지를 돌리더라도 물을 얻을 수 있다. 오히려 육지의 물보다 미네랄과 무기영양염류가 풍부해 심해 1000m에서 채취한 물이 ‘먹는 심층수’라는 이름으로 팔릴 지경이다.
 

김씨는 10년 뒤 집을 팔고 ‘달 기지’로 떠날 예정이다. 인류가 살 수 있는 제2의 행성을 찾아 떠난다는 20년 전의 영화 <인터스텔라>의 실현이 눈앞에 와 있다. 전 세계 우주공학 선두 국가들이 모여 만든 협의체에 의해 뜨거운 열과 추위, 각종 우주 방사선, 운석 등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할 수 있는 집이 첫 삽을 뜬지 오래다. 
 
달보다 상대적으로 척박한 환경인 화성에도 정착촌이 건설 중이다. 지난 2015년 네덜란드 회사 ‘마스원’은 화성인 후보자 100명을 선발해 8년 동안 건설, 전기, 장비 수리, 의료 등 화성 기지 건설에 필요한 기술을 교육했다. 그리고 2022년 9월부터 2년 간격으로 10명씩 화성으로 보내졌다. 당시 미국 MIT 연구팀이 제기한 ▲질식 논란과 ▲우주 방사선으로 인한 암 발병 확률 증가 ▲DNA파괴 ▲시력 감퇴 ▲골 손실 등 논란은 신형 우주복 개발과 로봇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잦아들었다.
 
500m 심해도시서 해저터널 이용 출퇴근
3D프린터 이용…한치 오차도 없는 건축
 
로봇은 일상이 됐다. 사람을 닮은 로봇 휴머노이드는 인간이 하기 힘든 위험한 작업부터 인간의 전반적인 삶에 퍼져 있다. ‘로봇과 사랑에 빠진 인간’을 주제로 한 뉴스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워낙 고가인 탓에 서민들은 구매가 어렵다. ▲청소, 세탁, 설거지, 정리정돈, 심부름, 음식조리 등을 수행하는 도우미 로봇 ▲아이들과 놀아주며 필요한 지식을 전달하고, 운동 파트너가 되는 교육용 로봇 ▲노인들의 말상대가 되고 간단한 건강을 체크하는 간병 로봇 등  한가지 기능에 특화된 로봇만 겨우 구매 가능하다.
 
부작용도 있다. 피부와 외모, 목소리까지 완벽 구현할 수 있는 탓에 로봇을 이용한 변종 성매매가 등장했다. 얼마 전에는 로봇 수십기를 이용한 기업형 성매매가 적발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국회에서는 연일 ‘로봇 성매매 특별법’을 둘러싼 논란으로 부침을 겪고 있다.
 
전 세계가 협의해 로봇이나 무인 자동차가 악용되는 것을 막고 있지만 테러집단은 개의치 않는다. 해커들을 동원해 기초 기술을 해킹, 무기로 쓰고 있으며 일부 선진국들도 자금력을 동원해 비밀리에 군사용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전 세계 시민단체들은 로봇의 상용화를 반대하는 격한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첨단 기술로 인해 실업은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택시, 버스, 트럭 등에 무인 기술이 접목되면서 운송업계는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자동차 사고가 0% 가까이로 줄어들어 보험사들은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해 분주하다. 교통경찰, 대리기사, 운전기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직업군이 됐고 자동차 공장에는 그나마 남아 있던 직원들까지 모두 로봇으로 대체됐다. 
 
실업 갈등 극대
인간 대신 로봇
 
현대사박물관으로 향했다. 불과 10년전까지만 해도 필수품이었던 스마트폰이 ‘구시대 유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람들은 대신 안경을 끼고 있거나 시계나 밴드를 차고 있다. 15년 전 이것저것 부품이 달려 거추장스러웠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가볍고 튼튼해 휴대가 용이하다. 뇌파를 인식해 전화를 걸고 받으며 생각만으로 문자를 확인하고 보낼 수 있다.
 
박물관 관람을 하던 한 남성이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주변 어느 곳을 둘러봐도 ‘119’에 도움을 청하는 이가 없다. 그런데도 구급대원들이 곧 등장했다. 쓰러진 남성이 손목에 차고 있던 ‘스마트 시계’덕분이다. 시계는 소지자의 건강상태를 체크해 이상이 생길 경우 즉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병원이나 경찰, 소방서에 신고를 접수한다. 
 
경찰서 조사실을 들여다봤다.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고 피의자로 보이는 한 남성이 의자에 앉아 헬멧을 쓰고 있다. 뇌의 기억정보를 읽어낼 수 있는 시스템이 탑재된 ‘브레인 스캔’이다. 브레인 스캔이 범죄현장의 목격자나 증인, 기억을 잃은 피해자 등에게 다양하게 쓰이면서 범죄율이 대폭 낮아졌다.
 
사람의 신체에 이식하는 바이오폰은 양산화를 앞두고 있다. 나노로봇을 뇌 속에 심어 사람의 생각과 기억을 인터넷 클라우드에 실시간 전송하고 여러 나노로봇이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건강상태 등을 체크, 질병을 예방하고 나아가 치료까지 하는 기술이다. 
 
 
PC방은 ‘가상현실방’으로 이름을 바꿨다. 일렬로 늘어섰던 컴퓨터와 의자 대신 캡슐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다. 게임은 캡슐 속에서 이뤄진다. 헬멧을 착용하고 캡슐 안으로 들어가서 누우면 눈앞에 가상세계가 펼쳐진다. 가상세계 속 캐릭터는 내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약간의 ‘포샵’ 작업은 가능하지만 현실 모습을 기반으로 한다. 생각만으로 움직이고 타격을 입었을 경우 일정의 고통도 따른다.
 
2011년 성균관대 하이브리드컬처연구소가 제출한 용역보고서 내용도 현실화됐다. 한국인들은 첨단 디지털 기능이 추가된 스마트 의류를 일상적으로 입고 있으며 주변온도에 맞춰 스스로 변하는 지능성 방한복, 주변환경에 따라 색이 바뀌는 카멜레온 의류, 손상을 스스로 진단하고 회복시키는 지능형 소재로 된 의류 등은 제조업체에 따라 디자인만 다르다.
 
보호자와 일정거리 이상 떨어졌을 때 반응하는 미아방지용 의류와 각종 상황에 따라 기능을 변화하는 산업안전용 의복, 어지간한 폭발에도 안전한 소방복, 적으로부터 모습을 감추기 위한 스텔스 기능 전투복, 해충을 차단하는 살충용 의복, 스스로 오염을 정화하는 박테리아 제거 의복, 진흙탕에 넘어져도 더럽혀지지 않는 의복 등 기능도 다양하다.
 
주택의 스마트화도 이뤄져 내부환기, 온도·습도조절, 조명 밝기 등은 물론 거주자의 건강상태, 위험상황을 검사해 스스로 대응한다. 재택 근무가 증가하면서 주택은 현재의 잠만 자는 공간에서 업무와 휴식, 자녀교육 또는 가족의 생활공간 등을 모두 소화하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샀다가 예상과 다른 상품이 도착해 교환 또는 환불하는 사태도 급감했다. 화면에 나오는 물건은 홀로그램 기술을 통해 집안에서 질감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면 속 상품

직접 만져본다
 
학원은 사양산업이 됐다. 만국어 번역기 덕분이다. 외국의 교육 콘텐츠들이 우리말로 실시간 번역돼 공급되므로 굳이 외국에 유학을 갈 필요가 없다. 사이버 및 원격 교육 발달로 인해 학교에 가는 날이 대폭 줄어들었다. 
 
바쁜 한국인들은 아침으로 빵과 우유 대신 캡슐형 음식물을 섭취한다. 함유량에 따라 한끼용 하루용으로 나뉘며 맛도 다양하다. 추상적으로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되는 식품이 아닌 실제로 노화를 더디게 하는 식품도 나온다. 줄기 세포를 이용해 손상된 장기를 되살리거나 인공 장기를 만드는 일이 쉬워지고 개인 유전자에 따른 맞춤 치료가 등장해 기대 수명이 크게 늘어났다. 암을 예방하는 신약이 출시되고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를 일으키는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의 백신이 시판됐다. 
 
수명연장으로 노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40% 내외까지 치솟았다. 한국 인구 4000만명 중 1700만명이 노인이다. 신촌, 홍대, 강남 일대는 노인들로 북적거린다. 노인정에서는 70세가 막내다. 발 좀 뻗으려면 80세는 되어야 한다. ‘똥차를 보면 운이 좋다’는 말 대신 ‘아이를 보면 운이 좋다’는 말이 널리 쓰일 정도로 아이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노인 전용 사우나·미용실·결혼정보업체가 생겨나더니 각 스포츠 리그에는 70세 이상만 출전이 가능한 ‘실버리그’가 진행 중이다. 노인들의 성 욕구 배출을 위한 노인 전용 불법 성매매 업소도 암암리에 운영되고 있다.
 
화성 정착·달기지 <인터스텔라> 현실화
로봇 수십기 이용해 기업형 성매매 적발
 

시선을 외국으로 돌렸다. 세계 경제는 미국이 아닌 중국과 인도가 주도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아프리카 콩고 정글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고 보르네오섬의 열대우림은 소멸됐다. 최대 풍속이 초속 67m 이상인 슈퍼태풍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빈도도 잦아져 미국 휴스턴, 뉴올리언스 등 해안가 도시는 ‘출입금지’ 구역이 됐다. 적도, 지중해, 아랍지방 일부에서는 폭염으로 인해 피부가 탈 정도다. 지구온난화 대비에 뒤처진 국가들은 비상이 걸렸다. 한국 정부가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에 위치한 ‘마스다르 시티’의 기술 도입을 서두르는 이유다.
 
한국인 연구진들은 마스다르 시티에 대한 기술 전수를 받고 있다. 한국 정부는 10년 전 완공되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아온 마스다르 시티의 국내 도입을 추진 중이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들은 이미 마스다르 시티를 도입했다. 
 
마스다르 시티에 없는 것은 단 세가지다. 탄소, 자동차, 쓰레기다. 여의도 면적의 4분의 3정도 크기로 세계 최초로 신재생에너지만을 사용한다. 어마어마한 넓이의 태양광 발전소를 통해 석유와 가스 같은 화석연료 대신 태양열에너지를 도시에 공급하고 자율주행 무인자동차와 경전철이 사람들의 발이 된다. 이 둘 모두 태양광으로 만들어진 전기와 자기장으로 움직여 탄소배출은 ‘0’다. 쓰레기도 소중한 자원이 된다. 생물학적 쓰레기는 분해해 비료로, 기타 쓰레기는 소각을 통해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노인 전체 40%
실버리그 도입
 
<일요시사>가 바라본 미래 전망은 모두 맞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번 미래 예측은 <2040 유엔미래보고서>와 ‘성균관대 하이브리드컬처연구소 용역보고서’,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제4회 과학기술 예측조사 결과’, 통계청의 ‘2013∼2040년 장래인구추계’ 등 각종 자료를 토대로 하고 있는 만큼 어느 정도의 신빙성은 있다. 미래는 아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다.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한국 대표가 “변화할 미래의 모습을 알아야 대비는 물론, 우리 삶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han10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3000호 시대’ 2053년 모습은?
투명망토 입고 텔레포트 한다
 
2053년, 전 세계 최고 격전지는 남극이다. 2048년 남극조약 만료로 인해 세계 강대국들이 남극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한국은 열 번째로 큰 영유권을 보유하고 있다. 1위는 첫 번째로 남극 전진기지를 세운 미국, 2위는 러시아 그 뒤는 중국, 영국, 프랑스, 칠레, 아르헨티나, 호주, 인도 등이다.
 
병원에는 ‘동면 주사실’이 생겼다. 10년 전 ‘동면’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신체 나이는 늘지 않은 채 잠에서 깨어나고 있으며 더 나은 미래를 보기 위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죽은 사람은 홀로그램으로 만나볼 수 있다. 사망한 가족은 디지털 형태로 유지되면서 마음만 먹으면 불러 내 대화할 수 있다. 배우, 음악가, 과학자, 정치인 등 사망한 유명 인사나 과거 역사적 인물들도 마음만 먹으면 직접 마주할 수 있다. 
 
부모는 태어날 아이의 성별은 물론이고, 신장, 피부, 머리카락과 눈 색깔 등 수백개 특성을 직접 결정한다. 배아가 형성되면 인공 자궁에서 성장하고 아이의 지능과 행동, 성격까지 부모 의견에 따라 만들어진다. 해당 기술은 수많은 보수 종교 단체로부터 인체 상용화라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부모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에 나왔던 ‘투명망토’와 ‘텔레포트’라고 불리는 원격이동의 실현도 눈앞에 와 있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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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