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1000호 특별기획 ③> ‘2034년 모습은?’ 미리 가 본 2000호 시대

“미래를 알아야 변화 주도한다”

[일요시사 경제팀] 한종해 기자 = 창간 19년 만에 지령 1000호를 맞은 <일요시사>가 오는 2034년이면 지령 2000호를 내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19년 뒤 2000호 시대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타임머신을 타고 상상이 현실이 되어 있는지를 살짝 들여다보고 왔다.

2034년 봄 부산 앞바다, 김종민씨의 저녁 퇴근길이다. 자가용에 오른 김씨는 목적지 설정 후 잠에 빠져든다. 자가용은 해저터널로 접어든다. 내장된 센서가 앞차와 뒷차와의 거리를 계산, 속도를 자동 조절한다.
 
해저터널을 거의 빠져나올 무렵, 교통체증이 발생한다. 앞에서 달리던 차량의 컴퓨터 프로그램 기능 오류가 발생했나 보다. 조금 짜증은 나지만 체증은 이내 풀린다. 프로그램 제조사에서 원격으로 기능 고장을 해결하기 때문. 부산항에서 20여km 떨어진 심해도시에 위치한 김씨의 집까지 걸린 퇴근 소요시간은 불과 20여분이다. 중국과 일본, 한국을 잇는 해저터널이 있어 출장은 대도시마다 있는 국제버스터미널을 통해 다녀온다. 
 
중국과 일본
버스로 왕래
 
김씨의 주거구역은 깊이 500m의 심해다. 안전에 대한 불안감은 않다. 거대한 3D 프린터로 건설되어 한치의 오차도 없다. 해면에 있는 거대 태양광 집약시설로 에너지를 충당하고 부족한 부문은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한 발전기가 채운다. 식수 걱정도 없다. 2020년 국내 연구진이 해수의 완벽한 담수화를 이뤄내 언제 어디서 수도꼭지를 돌리더라도 물을 얻을 수 있다. 오히려 육지의 물보다 미네랄과 무기영양염류가 풍부해 심해 1000m에서 채취한 물이 ‘먹는 심층수’라는 이름으로 팔릴 지경이다.
 

김씨는 10년 뒤 집을 팔고 ‘달 기지’로 떠날 예정이다. 인류가 살 수 있는 제2의 행성을 찾아 떠난다는 20년 전의 영화 <인터스텔라>의 실현이 눈앞에 와 있다. 전 세계 우주공학 선두 국가들이 모여 만든 협의체에 의해 뜨거운 열과 추위, 각종 우주 방사선, 운석 등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할 수 있는 집이 첫 삽을 뜬지 오래다. 
 
달보다 상대적으로 척박한 환경인 화성에도 정착촌이 건설 중이다. 지난 2015년 네덜란드 회사 ‘마스원’은 화성인 후보자 100명을 선발해 8년 동안 건설, 전기, 장비 수리, 의료 등 화성 기지 건설에 필요한 기술을 교육했다. 그리고 2022년 9월부터 2년 간격으로 10명씩 화성으로 보내졌다. 당시 미국 MIT 연구팀이 제기한 ▲질식 논란과 ▲우주 방사선으로 인한 암 발병 확률 증가 ▲DNA파괴 ▲시력 감퇴 ▲골 손실 등 논란은 신형 우주복 개발과 로봇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잦아들었다.
 
500m 심해도시서 해저터널 이용 출퇴근
3D프린터 이용…한치 오차도 없는 건축
 
로봇은 일상이 됐다. 사람을 닮은 로봇 휴머노이드는 인간이 하기 힘든 위험한 작업부터 인간의 전반적인 삶에 퍼져 있다. ‘로봇과 사랑에 빠진 인간’을 주제로 한 뉴스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워낙 고가인 탓에 서민들은 구매가 어렵다. ▲청소, 세탁, 설거지, 정리정돈, 심부름, 음식조리 등을 수행하는 도우미 로봇 ▲아이들과 놀아주며 필요한 지식을 전달하고, 운동 파트너가 되는 교육용 로봇 ▲노인들의 말상대가 되고 간단한 건강을 체크하는 간병 로봇 등  한가지 기능에 특화된 로봇만 겨우 구매 가능하다.
 
부작용도 있다. 피부와 외모, 목소리까지 완벽 구현할 수 있는 탓에 로봇을 이용한 변종 성매매가 등장했다. 얼마 전에는 로봇 수십기를 이용한 기업형 성매매가 적발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국회에서는 연일 ‘로봇 성매매 특별법’을 둘러싼 논란으로 부침을 겪고 있다.
 
전 세계가 협의해 로봇이나 무인 자동차가 악용되는 것을 막고 있지만 테러집단은 개의치 않는다. 해커들을 동원해 기초 기술을 해킹, 무기로 쓰고 있으며 일부 선진국들도 자금력을 동원해 비밀리에 군사용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전 세계 시민단체들은 로봇의 상용화를 반대하는 격한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첨단 기술로 인해 실업은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택시, 버스, 트럭 등에 무인 기술이 접목되면서 운송업계는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자동차 사고가 0% 가까이로 줄어들어 보험사들은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해 분주하다. 교통경찰, 대리기사, 운전기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직업군이 됐고 자동차 공장에는 그나마 남아 있던 직원들까지 모두 로봇으로 대체됐다. 
 
실업 갈등 극대
인간 대신 로봇
 
현대사박물관으로 향했다. 불과 10년전까지만 해도 필수품이었던 스마트폰이 ‘구시대 유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람들은 대신 안경을 끼고 있거나 시계나 밴드를 차고 있다. 15년 전 이것저것 부품이 달려 거추장스러웠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가볍고 튼튼해 휴대가 용이하다. 뇌파를 인식해 전화를 걸고 받으며 생각만으로 문자를 확인하고 보낼 수 있다.
 
박물관 관람을 하던 한 남성이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주변 어느 곳을 둘러봐도 ‘119’에 도움을 청하는 이가 없다. 그런데도 구급대원들이 곧 등장했다. 쓰러진 남성이 손목에 차고 있던 ‘스마트 시계’덕분이다. 시계는 소지자의 건강상태를 체크해 이상이 생길 경우 즉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병원이나 경찰, 소방서에 신고를 접수한다. 
 
경찰서 조사실을 들여다봤다.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고 피의자로 보이는 한 남성이 의자에 앉아 헬멧을 쓰고 있다. 뇌의 기억정보를 읽어낼 수 있는 시스템이 탑재된 ‘브레인 스캔’이다. 브레인 스캔이 범죄현장의 목격자나 증인, 기억을 잃은 피해자 등에게 다양하게 쓰이면서 범죄율이 대폭 낮아졌다.
 
사람의 신체에 이식하는 바이오폰은 양산화를 앞두고 있다. 나노로봇을 뇌 속에 심어 사람의 생각과 기억을 인터넷 클라우드에 실시간 전송하고 여러 나노로봇이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건강상태 등을 체크, 질병을 예방하고 나아가 치료까지 하는 기술이다. 
 
 
PC방은 ‘가상현실방’으로 이름을 바꿨다. 일렬로 늘어섰던 컴퓨터와 의자 대신 캡슐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다. 게임은 캡슐 속에서 이뤄진다. 헬멧을 착용하고 캡슐 안으로 들어가서 누우면 눈앞에 가상세계가 펼쳐진다. 가상세계 속 캐릭터는 내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약간의 ‘포샵’ 작업은 가능하지만 현실 모습을 기반으로 한다. 생각만으로 움직이고 타격을 입었을 경우 일정의 고통도 따른다.
 
2011년 성균관대 하이브리드컬처연구소가 제출한 용역보고서 내용도 현실화됐다. 한국인들은 첨단 디지털 기능이 추가된 스마트 의류를 일상적으로 입고 있으며 주변온도에 맞춰 스스로 변하는 지능성 방한복, 주변환경에 따라 색이 바뀌는 카멜레온 의류, 손상을 스스로 진단하고 회복시키는 지능형 소재로 된 의류 등은 제조업체에 따라 디자인만 다르다.
 
보호자와 일정거리 이상 떨어졌을 때 반응하는 미아방지용 의류와 각종 상황에 따라 기능을 변화하는 산업안전용 의복, 어지간한 폭발에도 안전한 소방복, 적으로부터 모습을 감추기 위한 스텔스 기능 전투복, 해충을 차단하는 살충용 의복, 스스로 오염을 정화하는 박테리아 제거 의복, 진흙탕에 넘어져도 더럽혀지지 않는 의복 등 기능도 다양하다.
 
주택의 스마트화도 이뤄져 내부환기, 온도·습도조절, 조명 밝기 등은 물론 거주자의 건강상태, 위험상황을 검사해 스스로 대응한다. 재택 근무가 증가하면서 주택은 현재의 잠만 자는 공간에서 업무와 휴식, 자녀교육 또는 가족의 생활공간 등을 모두 소화하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샀다가 예상과 다른 상품이 도착해 교환 또는 환불하는 사태도 급감했다. 화면에 나오는 물건은 홀로그램 기술을 통해 집안에서 질감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면 속 상품

직접 만져본다
 
학원은 사양산업이 됐다. 만국어 번역기 덕분이다. 외국의 교육 콘텐츠들이 우리말로 실시간 번역돼 공급되므로 굳이 외국에 유학을 갈 필요가 없다. 사이버 및 원격 교육 발달로 인해 학교에 가는 날이 대폭 줄어들었다. 
 
바쁜 한국인들은 아침으로 빵과 우유 대신 캡슐형 음식물을 섭취한다. 함유량에 따라 한끼용 하루용으로 나뉘며 맛도 다양하다. 추상적으로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되는 식품이 아닌 실제로 노화를 더디게 하는 식품도 나온다. 줄기 세포를 이용해 손상된 장기를 되살리거나 인공 장기를 만드는 일이 쉬워지고 개인 유전자에 따른 맞춤 치료가 등장해 기대 수명이 크게 늘어났다. 암을 예방하는 신약이 출시되고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를 일으키는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의 백신이 시판됐다. 
 
수명연장으로 노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40% 내외까지 치솟았다. 한국 인구 4000만명 중 1700만명이 노인이다. 신촌, 홍대, 강남 일대는 노인들로 북적거린다. 노인정에서는 70세가 막내다. 발 좀 뻗으려면 80세는 되어야 한다. ‘똥차를 보면 운이 좋다’는 말 대신 ‘아이를 보면 운이 좋다’는 말이 널리 쓰일 정도로 아이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노인 전용 사우나·미용실·결혼정보업체가 생겨나더니 각 스포츠 리그에는 70세 이상만 출전이 가능한 ‘실버리그’가 진행 중이다. 노인들의 성 욕구 배출을 위한 노인 전용 불법 성매매 업소도 암암리에 운영되고 있다.
 
화성 정착·달기지 <인터스텔라> 현실화
로봇 수십기 이용해 기업형 성매매 적발
 

시선을 외국으로 돌렸다. 세계 경제는 미국이 아닌 중국과 인도가 주도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아프리카 콩고 정글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고 보르네오섬의 열대우림은 소멸됐다. 최대 풍속이 초속 67m 이상인 슈퍼태풍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빈도도 잦아져 미국 휴스턴, 뉴올리언스 등 해안가 도시는 ‘출입금지’ 구역이 됐다. 적도, 지중해, 아랍지방 일부에서는 폭염으로 인해 피부가 탈 정도다. 지구온난화 대비에 뒤처진 국가들은 비상이 걸렸다. 한국 정부가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에 위치한 ‘마스다르 시티’의 기술 도입을 서두르는 이유다.
 
한국인 연구진들은 마스다르 시티에 대한 기술 전수를 받고 있다. 한국 정부는 10년 전 완공되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아온 마스다르 시티의 국내 도입을 추진 중이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들은 이미 마스다르 시티를 도입했다. 
 
마스다르 시티에 없는 것은 단 세가지다. 탄소, 자동차, 쓰레기다. 여의도 면적의 4분의 3정도 크기로 세계 최초로 신재생에너지만을 사용한다. 어마어마한 넓이의 태양광 발전소를 통해 석유와 가스 같은 화석연료 대신 태양열에너지를 도시에 공급하고 자율주행 무인자동차와 경전철이 사람들의 발이 된다. 이 둘 모두 태양광으로 만들어진 전기와 자기장으로 움직여 탄소배출은 ‘0’다. 쓰레기도 소중한 자원이 된다. 생물학적 쓰레기는 분해해 비료로, 기타 쓰레기는 소각을 통해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노인 전체 40%
실버리그 도입
 
<일요시사>가 바라본 미래 전망은 모두 맞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번 미래 예측은 <2040 유엔미래보고서>와 ‘성균관대 하이브리드컬처연구소 용역보고서’, 국가과학기술위원회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제4회 과학기술 예측조사 결과’, 통계청의 ‘2013∼2040년 장래인구추계’ 등 각종 자료를 토대로 하고 있는 만큼 어느 정도의 신빙성은 있다. 미래는 아는 것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다.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한국 대표가 “변화할 미래의 모습을 알아야 대비는 물론, 우리 삶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han10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3000호 시대’ 2053년 모습은?
투명망토 입고 텔레포트 한다
 
2053년, 전 세계 최고 격전지는 남극이다. 2048년 남극조약 만료로 인해 세계 강대국들이 남극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한국은 열 번째로 큰 영유권을 보유하고 있다. 1위는 첫 번째로 남극 전진기지를 세운 미국, 2위는 러시아 그 뒤는 중국, 영국, 프랑스, 칠레, 아르헨티나, 호주, 인도 등이다.
 
병원에는 ‘동면 주사실’이 생겼다. 10년 전 ‘동면’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신체 나이는 늘지 않은 채 잠에서 깨어나고 있으며 더 나은 미래를 보기 위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죽은 사람은 홀로그램으로 만나볼 수 있다. 사망한 가족은 디지털 형태로 유지되면서 마음만 먹으면 불러 내 대화할 수 있다. 배우, 음악가, 과학자, 정치인 등 사망한 유명 인사나 과거 역사적 인물들도 마음만 먹으면 직접 마주할 수 있다. 
 
부모는 태어날 아이의 성별은 물론이고, 신장, 피부, 머리카락과 눈 색깔 등 수백개 특성을 직접 결정한다. 배아가 형성되면 인공 자궁에서 성장하고 아이의 지능과 행동, 성격까지 부모 의견에 따라 만들어진다. 해당 기술은 수많은 보수 종교 단체로부터 인체 상용화라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부모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에 나왔던 ‘투명망토’와 ‘텔레포트’라고 불리는 원격이동의 실현도 눈앞에 와 있다. <해>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