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1000호 특별기획 ①> ‘5000만 대한민국 현주소’ 국민의 4대 의무 대해부 ③교육

개천서 용? 돈 없으면 공부도 못한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쿠레레(currere)’는 ‘달리는 것’이란 의미를 지닌 라틴어다. 이 단어는 이후에 ‘커리큘럼(curriculum)’의 어원이 된다.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달리는 경주마처럼 주위를 살피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과정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비유다. 일요시사가 지면 1000호까지 발간되는데 걸린 시간은 20여년. 그 기간 동안 열심히 달려온 대한민국의 교육을 <일요시사>가 되짚어본다.

한 언론에 따르면 대한민국 교육은 지난 20년간 15회나 변화했다. 전년과 동일한 경우는 겨우 5회뿐이었다. 그마저도 2년을 넘긴 사례가 없다. 그만큼 수험생은 매번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정작 수능을 치는 것은 학생이었지만 그들의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정권의 입맛에 따라 변화하기 일쑤였다.

죽어가는
공교육 현장

전문가들은 “대입의 기본인 수능은 변별성과 객관성이 충분히 있지만, 교육당국 스스로 ‘문제가 있다’며 위정자의 입맛에 맞춰 자꾸 손을 대다 보니, 오히려 개악하는 교각살우를 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대부분의 국민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난이도 조절도 매년 실패했다. 그해가 어려웠다면 다음해는 물수능(난이도가 아주 낮은 수능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으로 나오기 일쑤였다. 시소처럼 들쭉날쭉하는 난이도에 피해사례는 속출했다. 문제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수능 후 정신과 치료를 받는 학생까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수험생 우울증’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스트레스에 의한 반작용도 심각한 수준이다. 수능일 전후로 사회면을 보면 꼭 지나친 음주에 의한 사건사고 소식이 전해진다. 문제는 그 주인공이 수험생이라는 점이다. 2004년 한 언론을 통해 보도된 그 당시 세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일부 대입수험생들은 수능이 100일정도 남은 최근과 같은 시기에 그 동안 쌓인 피로와 액운을 한 잔 술로 씻어 내리며 스트레스를 풀고 심기일전의 기회로 삼자는 의미를 부여한 백일주를 마시며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백일주를 마실 때 더 많이 마실수록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네 종류의 술을 모두 마셔야 네 영역을 모두 잘 치룰 수 있다는 식이다. 백일주를 쉬지 않고 한 번에 마셔야 한 번에 대학 간다는 이야기가 많이 퍼진다고 한다.’ 말 그대로 과열된 입시분위기가 만든 악습이요, 과도한 경쟁이 낳은 미신인 것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교실 풍경은 많이 변화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15개 이상을 유지하던 학급이 출산율 저하에 따른 학생 수 감소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산간지방을 중심으로 학교가 통·폐합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2001년 <연합뉴스>를 통해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경기도내 농촌지역의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통·폐합되거나 분교장으로 격하되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서 ‘도내 농촌학교 8개교를 인근 학교로 흡수통합하거나 분교장으로 개편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며 ‘계속되는 학생 수 감소로 인해 개별 학교체제를 유지하기가 힘든데다 교원 수가 줄어드는 등 교육여건마저 나빠지는 바람에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교실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심각했다. 지나친 입시위주의 교육문화가 정착되다 보니 사교육 비중이 늘어났으나 정작 공교육은 발빠른 입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였고 이는 교권이 무너지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지나친 암기위주의 수업도 학생의 흥미를 잃게 해 선생님들은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을 깨우기 바빴다.

교사의 체벌도 사회적 문제로 지적됐다. 학생의 뺨을 때리는 것은 기본이고 교실에 골프채를 들고 와 휘두르는 교사도 있었다. 반대로 체벌로 교사가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있었다. 체벌을 당한 학생이 장면을 촬영한 뒤 교사를 고소하거나 인터넷상에 유포하겠다며 협박하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제자는 스승을 존경하고, 스승은 제자를 사랑한다는 뜻을 지닌 사자성어 존사애제는 더 이상 현장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활개 치는
사교육 시장
 

2010년 경기도 김포에서는 체벌을 받던 여고생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16살 정양은 학교 운동장에서 체벌을 받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 지각을 했다는 이유로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던 중이었다. 이후 보건실로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정양은 끝내 숨지고 말았다. 정양은 신장 수술을 2번이나 받은 적이 있는 등 입학 당시부터 몸이 약했던 ‘주요보호학생’이었다는 점에서 학교 측의 좀 더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했다는 여론이 많았다.


체벌에 의해 자살하는 경우도 있었다. 광주에 위치한 고등학교에 다니던 한 남학생은 자율학습에 2시간 동안 빠졌다는 이유로 담임교사에게 발바닥을 지휘봉으로 100여대를 맞았고 결국 모 놀이터 정자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공교육 약화·사교육 강화·유학 활황
공급중심서 수요중심으로 시장 변화

 

문제가 커짐에 따라 2011년 3월18일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학생에 대한 신체적 처벌을 금지하는 ‘체벌금지법’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는 지금도 문제로 지적될 만큼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현장의 교사들은 실효성 없는 법으로 오히려 문제만 크게 만든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균관대학교 양정호 교육학과 교수가 ‘2013년 교수·학습 국제 조사(TALIS·Teaching and Learning International Survey 2013)’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대한민국에서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하는 교사가 갈수록 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갈수록 무너지는 교권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무관하지 않다.

한편 사라지지 않는 군대식 체벌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일보>에서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수원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A양은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교복을 줄여 입은 학생을 불러 뺨을 때렸다”며 “국어 선생님은 ‘나는 체벌 금지법이니 학생인권조례니 신경 안 쓰니 신고할 테면 신고하라’고 소리 질렀다”고 말했다.

이렇듯 급변하는 입시 제도, 교사의 체벌 등으로 공교육은 힘을 잃어간 반면 사교육 시장은 점점 과열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2015년 한국소비자원이 제공하고 JTBC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초등학생 자녀 한 명당 투자되는 한 달 사교육비가 평균 37만원으로 조사됐다.

또한 초등학생 41%는 입학하기 전부터 사교육을 받았다고 답했다.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사교육에 노출된 것이다. 사교육비에 지친 학부모들은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경쟁위주의 입시 제도부터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현실은 요원하기만 하다.

교육부가 통계청과 공동 실시한 ‘2014년 사교육비·의식조사에 대한 분석 결과’를 보면 2014년 사교육비 총 규모는 약 18조2000억원으로 나타났다. 2013년에 비해 줄어들었다곤 하나 여전히 큰 규모를 자랑하는 사교육 시장은 결국 가계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측면에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금액의 총액도 그렇지만 양극화 현상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소득격차가 늘어나면서 계층 간 교육에 투자하는 비용의 차이가 심해지게 되었고 결국 이는 부의 대물림 현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결국 계층의 고착화 현상이 나타나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고소득층의 교육비 지출액이 저소득층보다 8배 정도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는 이 같은 사교육비 증가의 원인으로 예체능 과목에 대한 수요 증가를 꼽는다. 자료에 따르면 예체능 사교육비는 2011년 4만6000원에서 이듬해 4만2000원으로 떨어진 뒤 2013년부터는 2년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음악과 미술, 체육 등 예체능의 1인당 사교육비는 2013년 4만7000원에서 지난해 5만원으로 7% 증가했다. 대한민국 교육이 결국 취업과 무관하지 않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경향은 결국 ‘슈퍼맨’을 요구하는 대기업 문화와 단편적 평가 제도에 의한 폐해로 보여 진다.

떠나는 자식
기러기 증가

사교육은 그동안 입시와 취업 경향에 반응해 꾸준히 변화해 왔다. 인기 과목에 있어서 과거 수학이 주목을 받았다면 이후 영어 열풍이 불면서 영어 과목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바 있다. 수요가 증가하니 영어 전문 학원이 학원가를 점령했다. 그리고 이젠 영어 조기 교육 열풍을 넘어 ‘다언어 조기 교육’ 바람으로 번지고 있다.


학부모들이 자주 방문하는 웹사이트를 보면 이러한 경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그곳에선 영어, 중국어는 물론이고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 다개국 언어 학습을 위한 프로그램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언어를 학습하는 아이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려 자기 자녀의 실력을 공개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취업난이 사회적 문제로 거론되면서 취업 준비생들의 스펙이 상향평준화되다 보니 연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 지적한다.

그 외에도 사교육 시장은 고급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났다. 기존에 많은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되던 사교육이 점점 소규모로 변모되었고 이젠 1:1 과외 형식으로 이어진 것이다.

일부 대형 학원을 중심으로 프랜차이즈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고수익을 올리는 몇몇 학원이 몸집을 부풀려 기업화되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에 현재 골목에 위치한 중소 학원가는 시장 독점화를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터넷 강의 시장도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이는 2000년 4월27일 헌법재판소가 내린 과외금지 위헌결정이 기폭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지난 1980년 이후 제한적으로 허용되어 온 과외교육을 전면 허용함에 따라 온라인 강의에 대한 시장 선점 경쟁이 격화된 것이다.

특히 소비자들은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지 않고 맘에 드는 강사나 학원으로부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온라인 강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관심이 증폭되니 수요가 증가하게 되었고 결국 최근에는 대형 입시학원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수업과 온라인 수업을 병행하는 시스템까지 등장했다. 온라인 강의 시장의 활성화는 스타강사의 등장으로까지 이어졌다.

국내 사교육으로 성에 차지 않은 학부모들은 자녀를 조기 유학시키는 경향도 갈수록 늘어갔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인 2004년 대부분의 언론매체들은 해외 유학과 어학연수 비용 등으로 송금된 돈이 2조원을 넘어섰다고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2014년이 되면서 이는 3조원대로 증가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기 직전인 2007년 5조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것에 미치진 못하지만 그래도 아직 높은 수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잇따른 부작용도 나타났다. 특히 조기유학은 자녀 뒷바라지를 위해 부모가 동행하는 경우가 많아 비용이 몇 배나 더 들었고 ‘기러기 아빠’와 같은 부자연스런 가족관계를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현대에는 ‘맹부삼천지교’가 더 적합한 표현으로 보인다.

변함없는 건 입시전쟁 뿐
국영수만 잘하는 건 옛말

일각에서는 학부모들이 이렇듯 분별없이 조기유학에 매달리는 현상은 국내 사교육비의 부담 증대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서울대학교의 한 교수는 이러한 교육계 전반에 대한 총체적 문제에 대해 “공교육이 부실해 학부모의 위기 의식을 초래한 만큼 대안학교, 자립형 사립학교, 영재학교 등 다양한 교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이도 지난 20년을 되돌아보면 교육 문제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써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히려 자립형 사립학교의 경우 현재는 입시학원화 되어 많은 문제를 유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패한 수능
곳곳서 자살

지난 세월 동안 드러난 교육 문제에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공교육 정상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오늘내일의 얘기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결국 지난 20년은 공교육과 사교육, 그리고 유학 등 교육 전반에 대한 사항이 꼬리에 꼬리는 무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교육의 정상화는 요원하기만한 한 것일까. <일요시사>의 지면 2000호가 발간되는 다음 시점에선 과연 어떤 내용의 기사가 실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상한’ 대한민국 교육 현실

 

대한민국 교육에 대한 논의는 정치 얘기 만큼이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누구나 받아본 의무교육에 대한 실효성 부분은 온 국민의 관심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난 20년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공교육 기능의 약화, 그에 따른 사교육 시장의 확대, 조기교육 열풍, 봄철 황사처럼 퍼져간 유학바람 등 복잡다변화의 연속이었다.

근대교육의 아버지라 불린 요한 페스탈로치는 “교육의 진정한 목표는 머리와 손과 가슴이 적절하게 조화된 전인(全人)의 형성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교육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공교육·사교육을 떠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이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전인교육은 고사하고 암기 위주의 교육에 치우치게 됐다. 이에 대해 교육학을 가르치는 어느 대학의 교수는 “대한민국 교육을 아이로 치면 머리만 비대한 가분수다”고 안타까워했다.

비단 현장의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결과중심적 평가, 대입 위주의 입시제도 등을 보며 한숨짓는 국민이 태반이다. 이는 1994년부터 실시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때문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수능의 도입으로 기존에 대학입시 위주로 흘러가던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시키고자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경쟁을 더욱 과열시키는 양상이 됐다는 지적이다.

당시 보도된 기사를 보면 그러한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매년 성적을 비관해 투신자살하는 사례가 급속히 늘어난 것이다. 심지어 시험을 치르기 3일전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여고생의 사례도 있었다. 꿈 많던 학생들은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러한 현상들이 비단 수능의 도입 때문이라 단정 짓긴 힘들다.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정권에 따라 갈팡지팡하는 교육 제도와 매년 실패하는 수능 난이도 조절 실패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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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