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1000호 특별기획 ①> ‘5000만 대한민국 현주소’ 국민의 4대 의무 대해부 ④근로

일해야 한다고? 있어야 하지!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러시아 대 문호 막심 고리키는 ‘일이 즐겁다면 인생은 극락이다. 괴로움이라면 그것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일은 개인의 인생과 분리 될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도 마찬가지며, 국민이라면 4대 의무 중 하나인 ‘근로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헌법 탄생 6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근로의 환경은 역동적으로 변화했다. <일요시사>는 오늘날 대한민국 ‘근로의 의무’의 핵심인 근로 환경의 현주소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등 각종 통계 지표를 기준으로 살펴봤다.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가지며, 국가는 근로의 의무의 내용과 조건을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하도록 헌법에 규정하고 있다. 사회주의국가는 국민의 근로 의무가 특히 강조되며 강력한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 하지만 자유주의 국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이 때문에 근로 의무의 법적 성격에 관해 견해가 갈라진다. 
 
근로의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로하지 않는 자에 대하여는 생활 보호를 하지 않는다는 윤리적 의무로 보는 견해와, 국가가 공공의 필요에 의해 근로할 것을 명할 때는 이에 복종해야 할 법적 의무로 보는 견해가 있다.
 
죽어라 일해도 
간신히 끼니만
 
근로의 의무에는 이를 이행하지 않는 자에 대해 생존권 보장이 당연히 부여되지 않는 ‘전제조건’이 있다. 또 국가가 법률상 부과하는 근로를 제공할 의무로서 측면도 가진다. 그러나 근로의 의무는 헌법상의 다른 원칙, 즉 직업 선택의 자유나 강제 노역의 금지 등에 위배되어서는 안 된다. 
 

헌법에서 근로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라고 말하며,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정부는 1953년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근로의욕을 향상시키고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향상을 위해 근로기준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임금, 노동, 시간, 유급 휴가, 안전 위생 및 재해 보상 등에 관한 최저 노동 조건을 정하고 있다. 이는 국민경제 향상과 근로의 의무를 이행하는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이다. 하지만 한국 고용 시장과 근로의 질이 양적·질적인 면에서 모두 악화돼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최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산출한 2015년 기준 월별 표준 생계비를 보면 초등학생 자녀 2명을 둔 4인 가구의 한 달 생활비는 527만859원에 달했다. 이 조사는 4년마다 실시하며, 조합원에 대한 실태조사를 토대로 모형을 만들고 통계청의 물가지수를 반영해 이뤄진다. 500만원이 넘는 생활비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주거비와 의료, 교육비 등이었다. 가구 구성원별로는 1인 가구의 경우 189만441원, 2인 가구는 327만1240원, 3인 가구는 424만9780원 등이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임금은 이 같은 생활비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기준 상용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315만297원이었다. 임시·일용직을 제외하고 한 달을 정기적으로 일하는 근로자들의 월급도 4인 가구가 한 달에 필요로 하는 금액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임금근로자 상당수가 빚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부자만…돈이 돈을 버는 세상
일하지 않고 앉아서 배불리기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저임금 근로자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월21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최근 공개한 ‘2014 임금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근로자 중 3분의 2미만을 받는 저임금 근로자 비율은 25.1%로 파악됐다. 이는 OECD 평균인 16.3%를 훨씬 웃도는 수준으로, 25.3%를 기록한 미국 다음으로 높다. 이어 아일랜드(21.85%), 캐나다(21.7%), 영국(20.5%) 순이다. 일본은 14.3%, 호주와 독일은 각각 18.9%, 18.3%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기준 300인 미만 중소 제조업체의 평균 월급은 219만3867원이다. 기본급만 보면 158만4688원으로 전체 임시·일용직 월급(136만8000원)과 비교해도 차이가 크지 않다. 
 
또 OECD 기준 1990∼2013년 임금증가율은 1.69%를 기록해 일본(1.05%), 미국(1.33%), 스위스(1.25%), 호주(1.35%) 등을 웃돌았다. 그러나 시간당 임금 기준을 적용할 경우 일본이나 이탈리아보다 임금이 낮다는 분석이 나왔다. 보고서 발간에 참여한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풀타임 근로자의 연간 총임금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노동시간이 고려되지 않는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며 “노동시간이 긴 한국 근로자의 경우 시간당 임금이 일본 등보다 낮다”고 설명했다.
 
한국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심한 차별이 일반화된 가장 큰 이유로는 아직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시하지 않고 있는 근로기준법이 꼽힌다. 일례로 현대자동차에서 최근까지도 자동차의 왼쪽 바퀴를 조립하는 정규직과 오른쪽 바퀴를 조립하는 비정규직 간 임금은 배 가까이 차이 났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하게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추상적인 규정이어서 실효성이 낮다는 평가다. 
 
물가 뛰는데 
월급은 기어
 
이로 인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임금 불평등도 심화됐다. 고용부가 최근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에게 제출한 ‘2009∼2013년 임금현황’ 자료에 의하면 300인 이상 대기업 정규직 직원의 임금이 5∼299인 기업의 임금보다 배 정도 많았다. 야근은 중소기업 직원들이 더 많이 한다는 설문결과가 있었지만 지난해 11월 고용부 자료를 보면 초과근무 수당은 대기업이 더 많다. 그러나 중소기업 근로자가 받은 월평균 초과근로수당은 5만8837원으로 300인 이상 기업(33만938원)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 교수는 “OECD 평균이 2001년 16.9%에서 2012년 16.3%로, 한국의 임금불평등이 OECD 회원국 중 높은 수준”이라며 “지난 10년간 임금불평등이 다소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금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임금 10분위 배율은 한국이 OECD 회원국 중 세번째로 높았다. 2001년 8위(4.09)에서 껑충 뛰어오른 것이다. 임금 하위 10% 노동자와 상위 10% 노동자의 임금비율을 나타낸 임금 10분위 배율은 2012년을 기준으로 한국이 4.71%을 기록했다. 국가별로는 미국(5.22%), 이스라엘(4.91%), 한국 순이다.
 
 
OECD의 피용자보수 통계에 따르면 한국 풀타임 근로자의 2013년 구매력 환산 임금(3만6354달러)은 이탈리아(3만4561달러)나 일본(3만5405달러)보다 약간 높고 프랑스(4만242달러)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다.
 
한국은 성별별 임금 격차가 아주 큰 국가로 분류된다. OECD가 2012년을 기준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남녀 근로자 간 임금 격차는 37%에 달한다. 남자가 100만원의 월급을 받으면 여성 근로자는 63만원밖에 못 받는다는 뜻이다. 남녀 간 임금 격차는 2001년(39%) 이후 10년 넘는 기간 동안 개선되지 않고 있다. OECD 평균(15%)보다 두 배 이상 격차가 크다. OECD 회원국 가운데서는 가장 높다. 물론 직종이나 산업 등을 감안하지 않은 성별 임금 비교라는 한계는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는 개선되고 있는 추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우리가 가진 임금 체계의 문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같은 기간 일본은 34%에서 27%로 격차를 줄였다. 헝가리(11%)와 비교해도 세 배 이상 남녀 간 임금 격차가 크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는 “여성들이 유통업이나 사회서비스업과 같은 저임금 업종에 몰려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며 “업종별 시장임금을 조정하고, 여성 근로자가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여성 친화적인 일자리 확보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한 학력별 임금 차이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은 고졸과 같은 중간학력을 가진 근로자가 중졸 이하의 저학력 근로자에 비해 29%나 임금을 더 받는다. 반면 중간학력을 가진 근로자는 전문대졸 이상 고학력 근로자에 비해 47%나 적게 받는다. 이런 격차는 OECD 회원국 가운데 각각 8위, 10위에 해당할 정도로 심하다. 문제는 학력에 따른 이런 임금 차이가 20여년 동안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2002년 저학력과 중간학력 간 임금 격차는 2012년과 같은 29%였고, 고학력과 중간학력 간 임금 격차는 43%였다. 권 교수는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는 대부분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 격차와 맞물려 있다”며 “중간학력이나 저학력자는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에 많이 취업해 있는 반면 고학력자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중심으로 취업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다 보니 고교생 대부분이 대학으로 진학하려 하고, 노동시장이 왜곡되는 것”이라며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것이 이중 노동시장을 해소하는 지름길”이라고 덧붙였다.

넘치는 비정규직
저임금 근로환경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지난해 국내 직장인 89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야근을 일주일 평균 7시간6분 동안 했다. 대기업(6시간18분)이나 외국계 기업(6시간12분)보다 1시간 정도 많다. 야근이 많은 것은 우리나라 특유의 장시간 노동 문화 탓이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대부분 최소 인력으로 일하기 때문에 야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유휴인력이 없다보니 주말이나 대체휴일도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한국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이 해마다 감소 추세에 있지만 OECD 기준으로는 여전히 ‘장시간근로 국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1989년 주44시간제와 2004년 주40시간제(주5일제)가 도입된 결과다. 연간으로 따지면 한국 취업자의 근로시간은 2163시간으로 1990년 2677시간에 비해 20년간 500시간 이상 감축됐다. 그럼에도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멕시코, 그리스 등과 함께 장시간근로 국가군에 포함됐다. OECD 평균은 1770시간이다.
 
근로시간은 또 고용률과 반비례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통해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선 근로시간이 더 줄어들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현재 근로시간이 가장 긴 멕시코의 고용률은 61.0%인 반면,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네덜란드의 고용률은 74.3%다. 이는 고용률 증가는 근로시간 감소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는 지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607만7000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32.4%를 차지한다. 정부는 출범 초 국정과제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고용전환을 강화, 정착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비정규직은 오히려 증가하면서 600만명을 넘어섰다.
 
하루종일 일해 밥값도 못벌어
일거리 없어 백수·백조 넘쳐 
 
정부와 기업은 정규직 근로자들이 과보호되고 있으며, 노동시장이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고 말한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가 2011∼2013년 3년간 국내 500대 기업 중 35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13년 근로자들의 평균 근속기간은 10.32년으로 집계됐다. 500대 기업에 입사해도 일하는 기간이 10년 남짓인 셈이다. 30대 그룹 계열 대기업(169개)으로 범위를 좁히면 평균 근속연수는 9.70년으로 더 낮아졌다. 한국수력원자력 등 500대 기업에 포함되는 공기업을 제외하면서 평균이 낮아진 것이다.  
 
기업이 노동시장이 과보호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른 통계는 또 있다. OECD가 발표하는 고용보호지수(고용보호법제의 수준을 지수화한 것)를 보면 한국은 2.17로 OECD 평균 2.29를 밑돈다. 정규직에 대한 고용보호지수 역시 OECD 국가 중 22위에 불과하다.  
 
지난해 하반기 출간된 ‘2013년 비정규직 이동성 국가별 비교’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비정규직 중 근무한 지 1년 후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은 11.1%에 불과했다. 3년 후 전환되는 비율도 22.4%에 그쳤다. 회원국 평균 53.8%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이다. OECD는 “유럽에서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가는 ‘디딤돌’인 것과 다르게 한국에서는 ‘덫’이 될 위험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비정규직 수가 계속 느는 원인은 ‘법에 구멍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기간제법은 비정규직의 사용 기간만 2년으로 제한하고 있을 뿐 사용 사유는 규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업이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무분별하게 비정규직을 사용해도 제재 받지 않는다. 정부도 이를 모르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비정규직은 불가피하게 고용 유연성을 필요로 하는 부분 때문에 허용하는 것인데, 기업들이 비용 절감 차원에서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 문제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에 상시·지속적 업무에 정규직 고용을 의무화하는 규정과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는 불가피하고 객관적인 사유를 명시하자는 주장은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나아졌지만…
아직 갈길 멀다
 
비정규직 차별 금지와 사용 사유 제한 원칙을 법에 명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광표 노동사회연구소장은 “일시적, 간헐적 사유가 있는 일자리까지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것이 아니다”면서 “문제는 그 사유 규정이 없어서 마음대로 비정규직을 고용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 소장은 이어 “현재 노사정위원회에서도 기간제 기간만 자꾸 논의하는데, 중요한 것은 기간이 아닌 (비정규직) 사용 사유”라고 지적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고용률-실업률 비교
 
지난달 취업자 수 증가 폭이 7개월 만에 30만명대로 떨어졌다. 특히 고시준비생, 구직단념자 등을 포함한 체감 실업률은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인 11.9%까지 치솟았다. 

1월 고용률(58.7%)은 10개월 만에 가장 낮았고, 실업률(3.8%)도 지난해 4월(3.9%)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청년 실업률은 9.2%로 전체 실업률(3.8%)의 3배에 육박했다. 정부의 고용 목표는 15∼64세를 대상으로 OECD 기준 고용률 70% 달성으로 하고 있다. 독일,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의 고용률은 70%가 넘는다. 

기업의 투자와 생산, 고용과 소비가 꼬리를 물고 확대돼야 경제가 성장하지만 고용이 악화되면서 결국 정부의 세수(세금 수입)도 부족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의 세수결손 규모는 10조9000억원에 이르러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고용이 양적으로 늘어난다고 해도 질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실질 가계소득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지난 1월 고용 증감에서 50대 이상 고령자 취업 비중이 여전히 높은 실정이다. 50대(19만1000명)와 60대 이상(17만4000명)에 비해 청년층(15∼29세)의 취업자 수 증가 폭이 2만7000명에 그쳤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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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