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1000호 특별기획 ②> 본지 달군 최고의 뉴스메이커 100인

말 많고 탈 많았던 그때 그 사람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1996년 5월 창간한 <일요시사>는 김대중정부의 탄생을 지켜봤고, 6·15남북공동선언과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 등 역사적인 사건을 두루 경험했다. 한나라당의 정권 탈환과 미국발 금융위기,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 입성은 <일요시사>에게도 큰 사건이었다. <일요시사>는 지령 1000호를 맞아 본지 지면을 달궜던 뉴스메이커 100인을 선정했다. 100인의 면면을 통해 <일요시사>가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봤다.

<일요시사>는 지난 4일 편집국 회의를 통해 1996∼2015년까지 신문에서 중점적으로 다뤘던 뉴스메이커 100인을 선정했다. 정치인, 기업인, 유명인, 연예인, 스포츠스타를 비롯해 범죄자를 항목에 집어넣었다. 각 포털사이트에서 매년 발표하는 '올해의 검색어'도 일부 참고했다. 표기의 혼란을 막기 위해 경어를 생략하고 본명 그대로 싣는다.

[편치 않았던]
[정치 20인]

1997년 12월 대한민국은 국가부도 위기를 맞았다. 김영삼정부는 IMF를 상대로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이른바 'IMF 사태'라고 불리는 사건의 요체다. 물론 대한민국이 어느 날 갑자기 부도를 맞게 된 것은 아니다. 김영삼정부의 외환관리정책은 너무 미숙했다.

더구나 김영삼정부는 부패했다. '소통령'으로 불렸던 YS의 차남 김현철(1)은 국회 한보특위 청문회장에 불려나왔다. TV로 생중계된 청문회는 많은 국민의 공분을 자아냈다. 김현철은 권력형 비리에 연루돼 구속됐다.

김대중(2)은 우리 역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룩했다. 6·15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하지만 그의 아들들은 김현철과 마찬가지로 권력형 비리를 저질렀다. 한국 현대사의 증인 김대중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말을 남기고 2009년 숨을 거뒀다.


6·15 선언의 또 다른 주역은 김정일(3)이었다. 김정일은 남북협력을 약속하고 일부 영토를 개방했다. 하지만 세계의 이목을 피해 핵개발을 추진하는 등 한반도 평화를 위협했다. 우리 언론은 김정일의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악마'라는 평가와 '솔직하고 거침없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교차했다. 독재자로 살았던 김정일은 2011년 사망했다.

그의 아들 김정은(4)은 아버지의 권력을 승계했다. 왕좌에 오르자 대규모 숙청작업을 단행했다. 2014년 초 '김정은 사망설'이 유포됐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충청권의 맹주였던 김종필(5)은 DJP연합을 통해 국무총리에 내정됐다.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한 그는 국회의원에 아홉 번이나 당선(또는 내정)된 실력자였다. 김대중정부와 결별한 뒤로는 독자 노선을 걸었다.

이회창(6)은 김영삼정부가 낳은 스타였다. 대법관으로 재직했을 당시 '대쪽 판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민주화 이후에는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한나라당 소속 대선 후보로 대권을 노렸지만 두 번 다 낙선했다. 독자 출마한 17대 대선에서도 큰 표 차로 낙선했다.

노무현(7)은 대통령 당선 전후의 파격 행보로 기대를 모았다. 의회는 노무현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상정해 의결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기각했으나 노무현에 대한 기성언론의 공세는 계속됐다. 검찰 수사를 받던 노무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후임인 이명박(8)은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를 등에 업고 청와대에 입성했다. 국밥을 먹는 홍보영상이 크게 히트했다. 임기 중에는 '촛불 수사' '4대강 사업' 등 크고 작은 논란에 휩싸였다. 이명박으로부터 서울시장 자리를 물려받은 오세훈(9)은 한때 잠재적인 대권 후보로 부상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박원순(10)은 시민단체 출신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2014년에는 재선에까지 성공했다. 그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했던 안철수(11)는 18대 대선에 출마했다가 자진 사퇴했다. 현재는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해 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노무현정부의 국무총리였던 고건(12)은 탄핵 정국 당시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했다. 이명박정부의 국무총리였던 정운찬(13)은 '세종시 수정안'을 설계했으나 계획대로 입안하지 못했다. 충청권 출신인 이인제(14)는 민선 1기 경기도지사를 지내고 대선에 두 차례 나왔으나 모두 낙선했다. 당을 옮겨 다니면서도 국회의원 6선에 성공해 '피닉제'라는 별명이 붙었다.

소통령 대쪽판사 피닉제 등 별명 다양
경영싸움 폭행사건 등 재계 명암 뚜렷

박근혜(15)는 18대 대선에서 51.6%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박근혜에게는 늘 아버지의 그림자가 따라 붙었다. 원세훈(16)은 국정원장 자리에서 댓글을 통한 대선 개입을 지시해 실형을 선고받았다. 전두환(17)은 거액의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다가 2013년에야 완납 의사를 밝혔다.

'친박'의 상징이었던 전여옥(18)은 대변인 당시 내뱉은 말들이 화제가 됐다. 비슷한 예로 유시민(19)은 논리정연한 말과 글솜씨로 주목받았다. 허경영(20)은 '화성인'스러운 돌출 행동으로 웃음을 안겼다. "내 눈을 바라봐"와 같은 희대의 유행어도 남겼다.

[신화와 몰락]
[기업 20인]

1998년 6월 남북관계의 물꼬가 터졌다. 정주영(21)은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 북한에 당도했다. 이를 기점으로 현대그룹은 금강산 관광까지 유치했다. 그러나 정주영은 편히 눈감지 못했다. 그룹 후계구도를 놓고 이른바 '왕자의 난'이 발발했다.

차남 정몽구(22)와 5남 정몽헌(23)이 대립각을 세웠다. 정몽헌은 2003년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정계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지는 아내인 현정은(24)이 물려받았다. 정몽구는 현대자동차그룹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켰지만 2007년 횡령·배임 사건 피의자로 법정에 섰다.

이건희(25)는 '삼성 신화'를 대한민국에 아로새겼다. 2009년에는 헌정 이래 최초로 단독 사면을 받았다. 2014년에는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했다. 그의 장남인 이재용(26)은 사실상 그룹 후계자로 지목됐다.

허창수(27)는 지난 2011년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됐다. GS그룹 총수 외에도 프로축구 구단 FC서울 구단주를 겸임 중이다. 박용만(28)은 두산그룹 회장이 된 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수락했다. 현대가처럼 '왕자의 난'을 겪고 법정에도 섰지만 트위터를 통한 소통 행보로 그룹 이미지를 제고했다.

김승연(29)은 지난 2007년 보복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다. 그렇지만 프로야구 구단 한화에 쏟은 투자가 많은 팬의 칭송으로 돌아왔다. 천안함 승조원 유가족을 그룹 채용에 배려하는 등 사회적인 활동에도 열심이다. 최철원(30)은 이른바 '멧값 폭행'으로 국민적인 지탄을 받았다. SK그룹 재벌 2세인 그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풀려났다.

이외에도 많은 기업인이 손가락질을 받았다. 정태수(31)는 한보그룹 사태가 터지자 휠체어에 앉았다. 고액체납자가 된 그는 행방불명 상태다. 김우중(32)은 1999년 대우그룹 해체와 함께 해외로 도피했다. 국내로 귀국해 실형을 선고 받았으나 2007년 사면됐다.

강덕수(33)는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었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몰락했다. 현재현(34) 역시 동양그룹 사태로 수많은 서민을 울렸다. 유병언(35)은 세월호 참사로 파생된 수사 과정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요란했던 '삼성X파일' 수사의 주인공은 이학수(36)였다. 통일교의 창시자 문선명(37)은 2012년 숨질 때까지 여러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문국현(38)은 한때 창조한국당 당수로 대권에 도전했으나 정권에 밉보인 죄로 정계를 은퇴했다.

대상그룹 장녀인 임세령(39)은 2009년 이재용과 이혼했다. 최근에는 연예인과 열애설에 휩싸였다. 엔씨소프트 김택진(40)은 '리니지'라는 게임으로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다.

[파문의 주인공]
[사회 20인]

밀레니엄 열풍이 불었던 1999년 도올 김용옥(41)은 국내 철학 강의의 새 지평을 열었다. 뒤이어 등장한 구성애(42)는 '아우성'이란 프로그램으로 대중에게 각인됐다. 강금실(43)은 노무현정부 당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법무부장관이 됐으며, 호주제를 폐지했다.

이라크에서 피랍된 김선일(44)은 2004년 유명을 달리했다. 다음해에는 이른바 '줄기세포 스캔들'이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황우석(45)은 그해 가장 많이 검색된 인물이었다. 2007년에는 신정아(46)라는 이름이 연일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같은 해 심형래(47)는 문제작 <디워>를 내놨다. 문화평론가 진중권(48)은 이 논쟁에 참여해 이름을 알렸다. 장자연(49)의 유서는 연예계의 판도라를 열었다. 불행히도 사건은 흐지부지 됐다. 신영철(50)은 이명박정부의 뇌관인 '촛불재판'에서 외압 논란을 자초했다. 사법부의 독립성이 땅에 떨어졌다. 조현오(51)는 잇따른 막말로 구설에 올랐다. 경찰청장으로 이명박정부를 적극 호위했다.


한국 가톨릭계의 큰 어른인 김수환(52)은 2009년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였다.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던 앙드레김(53)도 2010년 작고했다. 그를 기리는 각계의 추모 메시지가 쏟아졌다.

성접대 스폰서 혼외아들 발칵
연쇄·토막살인 아동폭행 경악

언론인 손석희(54)는 MBC를 떠나 JTBC로 옮기면서 화제가 됐다. 아나운서 김주하(55)는 불우한 가정사가 노출됐다. 혼혈인이자 성공한 뮤지컬 음악 감독인 박칼린(56)은 일약 스타가 됐다. '트위터 대통령' 이외수(57)는 존경과 모멸을 한 몸에 받았다.

남성연대로 유명세를 치렀던 성재기(58)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검찰총장후보로 거론됐던 김학의(59)는 사상 초유의 성접대 스캔들에 휘말렸다. 그를 밀어낸 채동욱(60)은 혼외아들 의혹으로 낙마했다.

[뜨거나 지거나]
[스타 20인]

1998년 개그맨 김국진(61)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유동근(62)은 사극 <용의 눈물>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홍석천(63)은 국내 연예인 가운데 최초로 커밍아웃했다. 그룹 GOD(64)의 콘서트장에는 수만명의 팬이 몰렸다.

배용준(65)은 드라마 <겨울연가>를 통해 한류스타로 등극했다. 유승준(66)은 병역기피 논란으로 국내에서 추방됐다. 개그맨 박준형(67)은 2003년 <개그콘서트>에 출연해 연말 시상식을 휩쓸었다. 같은 해 이효리(68)는 정규앨범을 발표하고 '섹시'의 대명사가 됐다.

이영애(69)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 드라마 <대장금>을 성공시키며 최고의 여배우가 됐으나 결혼과 동시에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 2007년에는 걸그룹 원더걸스(70)가 '텔미'를 유행시켰다. 2008년 최진실(71)의 자살은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해가 가도 애도 분위기가 이어졌다.

<슈퍼스타K>란 오디션 프로그램은 허각(72)의 인생을 바꿨다. 이듬해 신정환(73)은 원정도박 사건에 연루되며 방송가에서 퇴출됐다. 가수 싸이(74)는 '강남스타일'로 미국 음원차트를 휩쓸었다. 배우 설경구(75)는 재혼을 둘러싼 여러 루머로 몸살을 앓았다.

전지현(76)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김구라(77)는 '막말 파문' '억대 보증' 등 여러 논란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방송가에서의 존재감은 빛을 발했다.

방송인 노홍철(78)은 케이블TV에서 시작해 공중파를 장악했다. 현재는 음주운전 논란으로 자숙 중이다. 유재석(79)은 '유느님'으로 불리며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소신 있는 가수였던 신해철(80)은 최근 의료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국민에 힘 준]
[스포츠 15인]

IMF 사태로 온 국민이 시름하고 있던 당시 메이저리거 박찬호(81)와 프로골퍼 박세리(82)의 활약은 큰 힘이 됐다. 박세리와 함께 깜짝 스타가 된 '땅콩' 김미현(83)은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는 히딩크(84)와 태극전사들의 땀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축구선수 박지성(85)은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해 해외축구 붐을 일으켰다.

농구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김승현(86)은 코트를 휘저었다. '홈런왕' 이승엽(87)은 아시아 홈런기록을 갈아치웠다. '피겨여왕' 김연아(88)는 벤쿠버올림픽에서 전설적인 연기로 금메달을 따냈다. '마린보이' 박태환(89)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다른 메이저리거 추신수(90)는 초대형 계약으로 잭팟을 터뜨렸다. 쇼트트랙 영웅 안현수(91)는 러시아에 귀화해 선수 생활을 잇고 있다. 역도 금메달리스트 장미란(92)은 세계를 들어 올렸다.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93)은 격투기 선수로 변신했다. 배구 여신 김연경(94)은 해외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고, e스포츠 선수였던 홍진호(95)는 방송인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충격과 경악]
[범죄자 5인]

신창원(96)은 1997년 탈옥을 감행해 우리 사법당국을 농락했다. 조두순(97)은 아동 성폭행을 저질러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살인마 유영철(98)은 죄 없는 여성 수십명을 죽였고, 오원춘(99)은 경기 수원에서 끔찍한 토막살인을 저질렀다.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100)은 출소 이후에도 연예인 협박 사건에 연루되며 체면을 구겼다가 2013년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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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