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군' 국방부 졸책 실태

항상 일 터지고 수습하니 ‘엉망진창’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군에서 사건이 터지면 국방부는 극약처방을 내린다. 얼핏 보면 그럴싸한 정책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건지, 물음표를 짓게 한다. 이대로 가다간 국군이 오합지졸 당나라 군대가 될까 우려된다. 점점 산으로 가는 군대를 만드는 ‘졸책’들에 대해 알아봤다.

 
지난해 4월 경기도 연천군에 있는 육군 28사단 977포병대대 의무대 내무반에서 윤 일병이 선임병 5명과 초급 간부에게 지속적으로 폭행당해 사망했다. 윤 일병 폭행 사망사건의 주범인 모 병장은 법정에서 징역 45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리고 6월에는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육군 22사단 55연대 GOP에서 임 병장이 총기를 난사해 장병 5명을 살해하고 7명을 다치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임 병장은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 받았다. 

탁상공론 때문
병영혼란 여전
 
‘윤 일병 사건’과 ‘임 병장 사건’이 터진 이후 갖은 군 사건사고 소식이 쏟아졌다. 군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면서 ‘(군대에서)참으면 윤일병, 못 참으면 임병장’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군은 변화의 의지를 내비쳤다.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1차원적인 대책만 나왔다는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기는커녕 사건의 본질을 벗어나는 ‘졸책’들이 줄지어 나왔다.
 
국방부는 지난해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를 통해 20개 과제로 구성된 ‘병영문화 혁신안’을 제시했다. 국방부의 병영혁신안은 ▲장병 기본권 제고를 위한 군인복무기본법 제정 ▲구타 및 가혹행위 관련 신고포상제도 도입 ▲현역 입영대상자 판정기준 강화 ▲현역복무 부적합자 조기 전역 ▲GOP 부대 근무병사 면회제도 신설 등 20개 단기 및 중장기 과제가 포함됐다. 하지만 생색내기용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0월 육군은 ‘이등병(훈련병)-일병-상병 3계급 혹은 ‘일병-상병’ 2계급 체계를 기본으로 한 계급체계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갓 입소한 훈련병들에게 훈련병이 아닌 이등병 계급장을 달아주고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로 배치되면 바로 일병 계급을 부여해 ‘이등병 괴롭히기’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우수병사만 병장계급을 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군대문화를 개선한다는 이유로 다양한 계급 단순화 방안들이 쏟아졌다. 여기에는 병사의 숙련도에 따라 계급을 부여하자는 파격적인 제안도 있었다. 계급 단순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군 복무기간이 36개월이던 시절 만들어진 계급제도를 복무기간이 크게 단축된 현재에도 유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계급 단순화의 당사자인 장병들은 부정적이다. 부대마다 차이는 있지만 병 상호간에는 계급을 떠나 ‘호봉’ 개념이 자리하고 있어 계급체계 단순화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사고 터질 때마다 비슷한 처방 내려
급하게 내놓는 정책들 실효성 물음표
 
군대 내에서 사용하는 명칭도 도마에 올랐다. 국방부는 지난달 16일 병사들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보호 관심 병사’ 명칭을 10년 만에 폐기하기로 했다. 이날 국방부는 “지난해 22사단 총기 난사사건과 28사단 윤 일병 사건 직후 부각된 관심병사라는 용어가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보호·관심병사 관리제도’라는 명칭을 ‘장병 병영생활 도움제’로 변경해 시행한다”고 밝혔다.
 
보호·관심병사 관리제도는 병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를 A급(특별관리), B급(중점관리), C급(기본관리) 등으로 구분해 관리하는 제도다. 지난해 말 기준 보호·관심병사는 A급 8433명, B급 2만4757명, C급 2891명 등이다. 국방부는 기존 3개 등급이었던 보호관심 병사 분류 그룹을 ‘도움’과 ‘배려’ 2등급으로 단순화했다. 관심 병사 명칭을 ‘도움 병사’ ‘배려 병사’로 바꿨다. 하지만 관심 병사 지정 여부는 비밀이었던 제도여서 결국 바뀐 것은 명칭뿐이라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본질 빗나가…

근본대책 전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였던 군 희망준비금 제도를 두고도 말이 많다. 희망준비금 제도는 전역하는 장병에게 100만∼200만원을 지급해주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희망준비금 제도는 공약 파기 수준이다. 국방부는 78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국고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병사들이 자신의 월급을 적립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바꿨다.
 
국방부에 따르면 희망준비금에 가입한 장병의 수는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1만4789명으로 집계됐다. 올해 병사 수는 약 44만1000여명으로 3.3%에 불과한 병사들만 희망준비금 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군 당국은 장병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본인 부담으로 희망준비금을 적립해도 참여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80% 수준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국방부는 지난해 9월 중순부터 ‘국군희망준비적금’이라는 이름의 상품을 출시했다. 연이율은 기간에 따라 국민은행은 4.4∼5.8%, 기업은행은 3.8∼5.3%의 금리를 적용한다. 그러나 최대 저축한도가 240만원이어서 제도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 상품을 통해 박 대통령이 공약한 300만원을 모으려면 군 복무 21개월 동안 매달 14만2800원을 적금으로 부어야 한다. 올해 장병들의 월급은 이등병 12만9400원, 일병 14만원, 상병 15만4800원, 병장 17만1400원이다. 2012년 국방부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 달에 1만원도 채 모으지 못한다고 응답한 병사는 63.2%에 달했다.
 
 
실효성이 의심되는 제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방부는 지난해 육군 25사단 1대대를 대상으로 ‘중대별 수신용 공용휴대전화’를 선보였다. 당시 국방부 관계자는 “25사단 1대대 예사 3개 중대에서 중대당 수신용 휴대전화 4대를 운용하고 있다”며 “각 중대의 계급별 생활관에 1대씩 지급, 일과시간이 아닐 때 공용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 제도 시범운용 초기 엿새간의 수신용 공용휴대전화 사용실적은 165건으로, 계급별로는 이등병 75건(46%), 일병 37건(22%), 상병 24건(15%), 병장 29건(17%)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수신용 공용휴대전화는 2세대(2G)폰이다. 같은 생활관의 병사 계급별로 대표자를 지정해 수신용 공용휴대전화를 지급한 뒤 같은 계급의 병사가 대표자에게 이 전화기를 가져다 사용하는 방식이다. 각 중대 행정반에서 2G폰을 보관하고 있다가 부모가 거는 전화를 바꿔주는 방안도 검토됐다.
 
하지만 연간 사용료가 60억여원 가량이고, 같은 계급의 대표자에게 이 전화를 빌려 쓴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이 제도의 실효성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부모가 장병에게 전화를 걸 수 있다는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소통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있을지 몰라도 자칫 잘못 운용되면 당나라 군대로 가는 지름길이 될 거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화상면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리 곱지만은 않다. 국방부와 미래창조과학부는 오는 10월부터 ‘화상면회 시스템’을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지난달 16일 국방부와 미래부는 이같은 내용이 포함된 ‘공개 SW와 loT(사물인터넷) 관련 기술개발·활용 촉진을 위한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군 내 사건사고 등으로 인한 장병 부모 등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직접 얼굴을 보면서 소통할 수 있는 화상면회 시스템을 공개SW 기반으로 구축한다. 시범운영은 5월부터 시작된다. 
 
이 같은 제도는 병영문화 개선의 일환으로 그 취지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장병 간 위화감이 조성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편부모 또는 부모가 없는 장병의 경우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소통의 활로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무기는 현대화
제도는 글쎄∼
 

육군의 ‘병사 전투체력 강화’ 방침을 놓고도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육군에 따르면 병사 교육훈련체계는 기존 핵심평가 과목인 사격, 정신교육, 체력단련, 전투기량 등 4개 부문에서 경계근무 요령을 추가한 5개로 늘어난다. 사격훈련은 구간을 정해놓고 사격하던 기지거리 사격(100m, 200m, 250m)에서 전투사격으로 바뀐다. 체력단련의 경우 기초체력과 2개의 전투체력 과목을 혼합한 형태로 바뀐다.
 
특히 전투체력 과목에는 군장메고 10km 급속행군, 5km, 뜀걸음 등이 추가된다. 군장 메고 10km 급속행군은 2시간10분 내에, 5km 뜀걸음은 40분 내에 주파해야 합격이다. 육군은 핵심 5개 평가과목에 대한 개인별 평가를 특급, 1급, 2급 등 3개 등급으로 분류할 예정이다. 특급 등급을 받으면 조기 진급 및 포상 휴가, ‘특급전사’ 명칭이 부여된다.
 
이러한 육군의 방침은 강군을 위한 노력으로 풀이된다. 전장에서 핵심은 보병이기 때문에 체력을 한계치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첨단 무기가 발전하며 군이 현대화되는 시점에 너무 강도 높은 훈련으로 장병들을 혹사시키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개인마다 다른 체력으로 경쟁을 유도하는 방식도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군 당국은 군대 내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신병영문화 창달 추진계획(2000년)’ ‘병영생활 행동강령(2003년)’ ‘선진병영문화 비전(2005년)’ ‘병영문화 개선운동(2011년)’ 등 비슷한 처방을 내놓았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
 
강군 위한 노력 없고 돈질만?
이면엔 ‘군피아’ 뿌리 박혀 
 

전문가들은 병영문화 혁신안에 병영 시설개선 등 장병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를 확대해야한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병영문화 혁신안에는 관련 예산확보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 독일식 ‘군사 옴부즈맨(국방 감독관) 같은 독립적인 외부감사기구 설치는 군사보안을 이유로 반영되지 않았다. 이처럼 군이 껍데기만 바뀌고 알맹이는 그대로다 보니 군 관련 문제는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군피아 논란도 여전하다.
 
최근에는 불량 방탄복 2000여벌이 특전사 장병들에게 보급됐다. 애초 시험운용에서 ‘생존률이 낮고 모든 면에서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군수담당 장교가 부적합 의견을 전부 빼낸 것으로 드러났다.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은 불량 방탄복이 임무수행에 적합하다는 내용으로 시험평가 문서를 조작한 육군 전모(49)대령을 지난달 24일 구속기소했다. 전 대령은 특전사 군수처장으로 근무하던 2010년 5월 군수업체 S사가 제작한 ‘다기능 방탄복’에 대한 예하부대 2곳의 시험평가 결과를 거짓으로 작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전사는 방탄복 성능이 대테러·침투 등 실제 작전에 적합한지 납품 전에 확인하기 위해 2009년 3공수여단 정찰대와 707대대에 문제의 방탄복을 시험 운용하도록 했다. 707대대는 “방탄 플레이트 등급이 낮아 생존율이 저조하다”고 평가했다. 또 ‘어깨보호대 때문에 사격 자세가 나오지 않는다’ ‘혼자 착용할 수 없다’ ‘신속하게 해체되지 않아 긴급 상황 발생 시 생존성이 낮다’는 등 모든 면에서 부적합하다는 결론을 냈다.
 
그러나 전 대령은 707대대의 이런 의견을 배제하고 야전부대 운용시험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특전사령관 결재를 거쳐 통과됐고 S사가 사업을 따내 2010∼2012년 세 차례에 걸쳐 13억원 상당 2062벌의 불량 방탄복을 납품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국정감사 등에서 불량 방탄복 문제가 제기되자 북한군의 신형 개인화기인 AK74 소총까지 막을 수 있게 개선된 방탄복으로 교체 중이다. 합수단은 S사를 압수수색하고 주변 금융 거래 내역을 살피며 해당 장교들과 금품 거래가 있었는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합수단은 박 중령도 수사가 마무리 되는 대로 재판에 넘길 방침이다.
 
우리 군 주력 전투기 KF-16 등의 정비대금 243억원을 빼돌린 예비역 중장 등 고위 공군 장교들도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업체 로비스트로 영입돼 정보수집과 수사무마, 정비대금 부풀리기에 적극 가담했다. 지난달 16일 합수단에 따르면 공군작전사령관과 공군교육사령관 출신인 천기광(68) 예비역 중장은 2008년 전투기 정비업체 ‘블루니어’에 영입돼 회장까지 지냈다. 이 회사는 공군 하사관 출신 박모(53·구속기소)씨가 세운 회사였다.

껍데기만 바뀌니
갈수록 점입가경
 
2009년에는 공군본부 장비정비정보체계개발단 과장을 지낸 우모(55) 예비역 대령이, 그 이듬해에는 항공전자장비 정비부대장 출신인 천모(58) 예비역 대령이 영입됐다. 이후 블루니어는 이들 예비역 장교 3명이 활약하며 주력 전투기 정비업체로 급성장했다. 그리고 2006∼2011년 KF-16 피아식별장치(CIT) 등 2902개 부품 정비 관련예산 457억원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합수단은 이들 예비역 장교 3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이처럼 군 문제 이면에는 ‘군피아(군대+마피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에게 군은 단지 돈을 벌기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군 정책이 제대로 나올리 만무하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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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