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 말년행보

끈 떨어지니 ‘동네북 신세’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2010년 금융권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신한사태’의 장본인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다시금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신한사태 당시 ‘치매’를 이유로 검찰 소환요구에 불응했던 그가 지난달 말 농심 사외이사직에 선임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라응찬 봐주기 수사’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라 전 회장은 사건발생 5년 만에 본격적인 소환 조사를 받았다. 여기에 시민단체의 추가고발까지 이어지면서 수사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농심은 기존 사외이사 두 명을 재선임하고, 신규 사외이사로 라 전 회장을 선임한다고 공시했다. 신임 사외이사 선임은 오는 3월20일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최종 결정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과거 ‘신한사태’와 관련한 검찰의 소환 요구에 ‘치매(알츠하이머성)’를 이유로 조사를 거부한 라 전 회장이 과연 경영진과 최대주주로부터 독립해 회사의 의사 결정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사외이사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일어난 것이다. 논란이 일자 농심은 지난 4일 주주총회 소집결의에 대한 정정 공시를 내고, 라 전 회장의 자진사퇴 사실을 알렸다.

이리 치이고
 
앞서 참여연대와 금융정의연대는 치매중증 환자를 사외이사로 선임할 리 없다며 라 전 회장 병력에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 2일 참여연대는 “검찰은 지금까지도 이 사건의 피고발인이자 중대 범법혐의의 당사자인 라 전 회장과 이 전 행장을 사법처리는커녕 소환조사조차 진행하지 않고 있다”면서 “검찰은 특히 라 전 회장의 불법 행위가 문제가 될 때마다 치매를 앓고 있어서 소환조사를 할 수 없다고 변명하고 발뺌해 왔는데, 이 같은 검찰의 해명이 거짓말이라는 것이 최근 드러나고야 말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치매 환자라서 소환조사를 할 수 없다고 검찰이 변명했지만, 라 전 회장은 보란 듯이 한 대기업의 중요 임원직으로 선임됐다”면서 “농심이 소환조차 응할 수 없는 치매 중증 환자를 사외이사로 선임할 리가 없다는 점에서, 검찰이 라 전 회장을 봐주기 해왔다는 의혹도 더욱 짙어지고, 국민과 언론에게 거짓말을 해왔다는 것도 사실로 확인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치매인데 사외이사를?
‘남산 3억원’ 검찰 조사 시작
 
2010년 벌어진 신한사태는 당시 이백순 신한은행장이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것이 발단이 돼 금융권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다. 라 전 회장은 명예회장 자문료 명목의 비자금 조성과 사용에 개입,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 측에 금품을 전달했다는 ‘남산 3억원 의혹’을 받았다. 이후 라 전 회장은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라 전 회장은 재판 과정에서 “신한사태에 따른 충격으로 치매 진단을 받고, 치료 중에 있다”며 법원의 증인 출석 요구에 불응해왔다. 하지만 이번 논란을 계기로 라 전 회장의 치매설이 거짓이었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라 전 회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하려고 했던 농심이 라 전 회장의 치매설을 모를 리 없었다는 것이다.
 
 
치매 환자로 보기 어려운 그간 행적도 문제로 지적됐다. 라 전 회장은 2012년 11월 신한사태와 관련된 공판에 치매를 이유로 불출석 했지만 2013년 12월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 재판 때는 출석한 바 있다. 2011년에는 인천 송도 잭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신한동해오픈’의 프로암대회에 모습을 나타냈다. 신한사태의 장본인 중 유일하게 이 대회에 참석해 그룹 내에 그의 영향력이 남아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여기에 지난해 8월에는 청바지 차림의 모습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나타나 신한은행 직원의 의전을 받으며 출국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이외에도 지난해 말에는 신한은행 동우회 송년회에도 참석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라 전 회장이 신한의 경영과 인사에 개입하고 있다고 봤다.
참여연대 측은 “2015년 1월 신한은행 동우회 소식지에 지난해 말 송년회 모임에 라 전 회장이 참석한 것으로 돼 있다”며 “서진원 신한은행장을 시켜서 참석자들에게 술을 따르게 하는 등 여전한 영향력을 과시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 등은 부실수사 의혹을 제기하며 라 전 회장의 검찰 소환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공식 해명자료를 통해 “엄정하게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고, 이내 6일 그동안 미뤄온 라 전 회장의 검찰소환 조사가 이뤄졌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검사 이선봉)는 라 전 회장을 피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고강도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라 전 회장을 상대로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와 함께 비자금을 조성해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 등 정치권에 전달하도록 지시한 사실이 있는지 등 의혹 전반에 대해 조사했다.
 
참여연대 신한사태 추가고발
신한 측 불똥 튈라 노심초사 
 
남산 3억원 의혹은 신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과 이 전 신한은행장의 과거 횡령 사건 수사·재판 과정에서 밝혀졌다. 검찰은 이 전 행장이 2008년 2월 중순 남산 주차장 입구에서 신원미상의 인사에게 3억원을 전달한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 돈이 누구에게 전달됐는지, 라 전 회장이 개입됐는지 여부는 밝혀내지 못했다. 라 전 회장은 남산 3억원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라 전 회장 조사 불과 3일만에 참여연대 등은 라 전 회장을 추가 고발했다. 지난 9일 참여연대와 금융정의연대는 라 전 회장과 이 전 행장, 서진원 현 신한은행장 등 7명을 신용정보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참여연대 등에 따르면 라 전 회장은 2010년 6월11일 당시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정동영·박지원·박영선 의원 등의 거래내역과 여수신정보,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조회한 혐의다.
 
 
참여연대 등은 신한금융지주가 신한사태 당사자인 신 전 사장과 그의 지인들의 금융거래정보도 무단으로 조회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의원이 “신한은행이 정치인들의 금융정보를 불법으로 조회했다”고 폭로해 사찰 의혹 파문이 일었던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다.

저리 치이고
 
금융감독원은 실제 정치인 계좌에 대한 조회가 이뤄졌는지, 동명이인 계좌인지를 밝히기 위해 신한은행에 대한 추가조사를 벌였다. 현재 제재심의위원회에 제대안건을 상정하기 위해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실제 정치인의 금융정보가 불법으로 조회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동명이인의 계좌라 하더라도 신한금융이 금융거래 등의 목적으로 이용하도록 된 고객의 신용정보를 다른 목적으로 조회한 것은 분명 불법행위라는 것이 참여연대 등의 주장이다.
 
갑자기 나타난 ‘라응찬 리스크’에 신한금융은 “이제 우리사람이 아니라서 언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하며 선 긋기에 나섰지만, 검은 그림자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라 전 회장의 조사로 인해 신한사태가 다시금 들춰질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신한의 조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신한은행 차기 행장은?
 
서진원 신한은행장이 지난 11일 오후 퇴원했지만 경영 복귀는 미지수다. 이에 따라 신한금융그룹은 차기 은행장 선입절차에 돌입했다. 앞서 서 행장은 건강악화로 지난달 2일 서울 시내 모 병원에 입원, 지난달 15일부터는 임영진 웰스 매니지먼트 그룹 담당 부행장이 행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신한금융은 서 행장의 공백이 길어지면서 차기 행장 선출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자회사경영발전위원회는 한 회장과 사외이사 3명으로 구성된다. 신한은행장은 신한금융지주 계열사 중 규모가 제일 크기 때문에 차기 회장으로 갈 수 있는 급행열차로 알려져 있다. 행장 후보로는 위성호 신한카드 사장, 조용병 신한 BNP파리바 자산운용 사장, 이성락 신한생명 사장, 김형진 신한금융지주 부사장 등 4대 잠룡들이 꿈틀대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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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