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망신 부르는 ‘국뽕’을 아십니까

한류 마케팅 자화자찬 “독 된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요즘 인터넷 상에서 ‘국뽕’이란 말이 흔히 쓰이고 있다. 국뽕은 ‘나라 국’과 ‘히로뽕의 뽕’의 합성어로 국가에 대한 자긍심에 과도하게 도취해 있는 것을 조롱할 때 사용된다. 이와 함께 ‘똥송’이라는 말도 함께 등장하고 있는데, 동양인이라 죄송하다는 의미로 서양인이 동양인보다 태생적으로 우월하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국뽕과 똥송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무비판적인 한류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두 유 노 김치(Do you know Kimchi)?” “두 유 노 싸이?” “두 유 노 유나 킴(김연아)?”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베스트 3다. 실제로 한국에 온 해외 유명인들은 국내 입국장이나 기자회견장에서 가수 싸이의 ‘말춤’을 춘다. 미국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윌 스미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톰 행크스는 인터뷰 도중 “햄을 프라이팬에 구워서 김치와 드셔보세요”라는 진행자의 말에 얼떨떨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국내 방송에 출연해 김치를 먹거나 싸이의 강남스타일 말춤을 추라고 강요받는 외국 유명인들의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Do you know?”
김치·싸이·연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외국인만 보이면 저돌적으로 다가가 김치, 싸이, 김연아, 독도 등에 대한 생각을 묻는 “두 유 노…” 시리즈는 유행처럼 번졌고 점점 불편한 모습이 연출됐다. 누리꾼들은 “엎드려 절 받기 같다”며 국가에 대한 자긍심에 과도하게 취하는 것을 경계했다. 이때쯤부터 나라 ‘국’과 히로뽕의 ‘뽕’의 합성어로 국가에 대한 자긍심에 과도하게 도취해 있는 것을 조롱하는 ‘국뽕’이라는 말이 나왔다. 한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이 시기에 미국 국무부 브리핑에서 한국 통신사 기자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알고 있느냐?”고 묻는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논란을 키웠다. 여기에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미국 배우 휴 잭맨에게 걸그룹이 맨손으로 김치를 찢어 먹여주는 장면이 더해지면서 “국뽕 극혐(극도로 혐오)” 등이 일상적으로 쓰이게 됐다. 한류를 강조하는 방식이 낯간지럽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현상에 많은 사람들은 피로감을 호소했다. 급기야 한 누리꾼은 ‘외국인이 한국에서 입으면 좋을 티셔츠’라는 제목의 합성사진을 게재하기도 했다. 그의 자료에는 백인 남녀 두명이 흰색과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티셔츠에는 “나는 싸이, 강남스타일, 독도, 김치, 박지성, 김연아를 알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선명했다. 외국인에게 던지는 국뽕 질문을 정면으로 꼬집었던 것이다.
 
 
국뽕을 조롱하는 일명 ‘국뽕맨’도 등장했다. 국뽕맨은 독도와 태극기를 배경으로 싸이의 머리, 박태환의 오른팔, 박찬호의 왼팔, 박지성의 오른다리, 김연아의 왼다리, 류현진의 모자를 쓴 모습으로 김치를 들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합성된 사진이다. 맹목적 애국주의 낌새가 발견되면 누리꾼들은 어김없이 국뽕맨에게 S.O.S를 쳤다. “국뽕맨 도와줘요”라며 국뽕 맞은 사람들을 조롱했다. 폭소를 자아내는 국뽕맨 사진은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퍼져 국뽕의 심각성을 널리 알렸다.
 
외국인만 보면 자동적으로…“두 유 노?” 
해외 스타 방한 시 싸이 말춤 통과의례
 
국뽕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 역사갤러리에서 시작됐다. 이곳에서는 언젠가부터 “단군 이전 한민족이 세계 4대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지역 수메르 왕국을 세웠다” “명나라 황제 주원장조차 조선의 군사력을 두려워했다” 등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 흘러나왔다. 한국사를 미화하는 이들이 증가하면서 역사 마니아들 사이에서 국뽕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후 국뽕은 ‘일간베스트(일베)’ 저장소에서 자주 사용됐고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까지 뻗어갔다. ‘우리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게시물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국뽕이다” “극혐이다” 등 댓글이 달리면서 맹목적 애국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국뽕에 대한 반발로 ‘국까(국가를 까다)’라는 말도 생겨났다.

우리 것 감싸기

‘국뽕’ 반대
 
그러면서 함께 등장한 것이 ‘똥송’이라는 표현이다. 똥송은 동양인이라 죄송하다는 의미로 서양인이 동양인보다 태생적으로 우월하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국뽕 관련 게시글 등이 나올 때면 서양인에게 보여주기 너무 민망하다며 “똥송합니다”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국뽕과 똥송은 바늘과 실 같은 존재다.
 
애니메이션 <김치 워리워>가 국뽕과 똥송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재미동포 강영만 감독이 제작한 <김치 워리어>는 2010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발주해 정식 입찰과정을 거쳐 세금 1억5000만원이 제작지원금으로 투입된 작품이다. <김치 워리어>는 김치 전사가 김치의 효능으로 말라리아, 돼지독감 바이러스 등을 물리치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이다. 2011년 유튜브에 15편짜리 동영상이 오르면서 세간에 화제가 됐다.
 
김치 전사는 배추 머리를 하고 초록색 쫄쫄이를 입은 복면인이 괴성을 지르며 총각김치 쌍절곤을 휘두르면서 돼지 콜레라균들을 무찌른다. 젓갈을 뿌리면 모기 형상을 한 말라리아균들이 흩어지고, 1000년 묵은 김치 냄새를 뿌리면 적들이 몰살된다. 김치 전사의 여성 파트너는 빨간 쫄졸이를 입은 ‘고추걸’이다. 고추걸은 커다란 붉은 고추를 골프채로 날리는 기술을 사용한다.
 
 
<김치 워리어> 입찰요청서에 따르면 이 작품의 목적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코미디 액션 장르로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 및 국내에서도 어필할 수 있는 홍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여 김치의 우수성 홍보 및 세계화’이고, 5개월의 용역기간 동안 ‘해외 어린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김치 애니메이션 캐릭터 개발, 재미 요소를 극대화할 수 있는 액션 코미디 장르의 김치 애니메이션 제작, 국내외 TV, UCC 동영상 사이트와 박람회 홍보용 스팟 영상 제작, 국내외 UCC 및 초등학교, 미국 TV 어린이쇼, 아리랑TV 등에 제작된 애니메이션 배포’하는 것이다.
 
김치 워리어 이야기는 제목만큼이나 지극히 간단하다. 김치 전사가 ‘질병마왕’이 보낸 병균 또는 바이러스들을 김치 관련 무기로 물리치는 내용이 계속 반복된다. 김치 전사가 위기에 빠질 때면 고추걸이나 스승인 ‘대사부’, 옹기로 만든 로봇 ‘옹기봇’ 등의 도움을 받아 질병을 퇴치한다. 작품 내에서 김치는 말리라, 광우병, 신종플루, 스페인 독감 등 그 어떤 질병이라도 물리칠 수 있는 ‘만병통치약’으로 묘사된다. 김치 냄새나 젓갈 등은 일종의 ‘화생방 무기’처럼 사용된다.
 
맹목적인 애국주의 열풍 
왜곡된 외부시각만 키워
 
애니메이션을 본 누리꾼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독도&사스’ 편에서는 과거 조상들이 김치로 만든 그물로 곡식을 보호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날아가는 새들이 김치 그물에 닿자마자 바로 추락해서 죽는 장면이 등장한다. 외국인들 입장에서 본다면 김치는 독극물에 가까웠다.
 
게다가 김치의 매운맛은 고추장에서 나온다는 등 김치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 담겨 있었다. 또한 고추걸의 캐릭터는 일본의 ‘닌자’와 유사해 한국적인 느낌이 거의 없었다. 더 황당한 건 ‘김치 워리어와 신종플루의 아들’ 편이었다. 미국을 구한 김치 전사에게 오바마 대통령이 의료개혁법안에 김치를 포함시키겠다고 하는 장면이 나온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우스꽝스러웠다.
 
 
묵은 김치로 적을 물리치는 내용은 오히려 외국인에게 나쁜 인상만 심어줬다. 실제로 ‘김치 워리어’를 검색해보면 작품을 조롱하는 외국인들의 반응을 볼 수 있다. 김치 워리어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여론의 화살은 정부의 김치 마케팅으로 향했다. ‘한국’ 하면 ‘김치’밖에 생각해내지 못하는 1차원적인 사고방식을 지적한 것이었다.
 
어설픈 한류

오히려 망신
 
논란에도 불구하고 <김치 워리어>는 지난해 미국 LA에서 열린 웹콘텐츠 시상식 ‘웹페스트’에서 3관왕은 차지했다. 그러나 ‘LA 웹 페스트’의 문제점이 발견됐다. 세계적인 시상식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했다. 참가작 251편 모두 최소 1개 이상의 상을 받았고, 3개 이상의 상을 받은 작품은 12편이 넘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우리나라 지도에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돼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한국 홍보를 위해 만들었다던 <김치 워리어>가 혈세로 일본해를 홍보하고 있다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주먹구구식 투자가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사기만 저하시킨 것이다.
 
<김치 워리어>와 함께 ‘김치 칵테일’도 논란이 됐다. 유명 맛 칼럼니스트인 황교익 향토지적재산본부 연구위원은 자신의 블로그에 ‘한바탕 웃고 싶으면 한국관광공사로!’라는 제목의 글에서 “관광공사 업무에 ‘국민 웃기기’가 있음이 분명하다”며 김치 칵테일을 소개한 바 있다. 황 연구위원은 광광공사가 운영하는 한식세계화 홍보사이트(Koreataste.org)에 올라온 김치 칵테일을 한식 세계화 실패작의 예로 들었다.
 
황 연구위원이 올려놓은 한식 세계화 홍보 사이트에는 ‘김치 블러디 메리(Kimchi bloody mary)’라는 이름으로 김치 칵테일이 올라왔다. 제조 과정과 완성된 모습이 사진과 함께 소개돼 있었다. 김치 국물, 마늘, 소주, 토마토 주스 등을 섞어 만든 붉은색 칵테일이었다. 얼음과 마늘을 띄어놓고 양념이 된 배추 잎을 세워 담가 놓았던 것이다. 참신함과 독창성과는 거리가 던, 황당 그 자체였다. 분위기 좋게 한 잔 걸치는 칵테일이라기보다는 대학교 MT에서 억지로 먹는 ‘벌칙주’나 ‘생일주’ 같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였다.
 
김치 칵테일 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자 누리꾼들은 “손발이 오글거린다” “보기만 해도 토가 쏠린다” “이게 무슨 한류냐”는 등 비난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말도 안 되는 괴음료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치 칵테일 사진을 올린 장본인은 한국관광공사가 아닌, ‘AnsanAnswer’라는 아이디의 외국인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이 외국인이 어떤 의도를 갖고 사진을 올린 지는 의문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식 마케팅의 진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재단이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활용해 한식 마케팅을 벌인다. 지난 16일 농식품부는 외국인들에게 한식문화를 정확하게 알리기 위해 한식 해설서 <맛있는 한국여행>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이 해설서는 한국의 게스트하우스를 배경으로 주인공인 외국인이 한국 식문화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총 4장으로 1장은 아빠의 손님상 이야기로 한식 상차림, 식기 소개 및 식사 예절 등을 담았고 2장은 손맛 좋은 엄마의 이야기로 깊은 맛 장류, 발효와 김치, 김장문화, 한식의 특별한 조리법을 소개했다.
 
3장은 최신 트렌드를 좋아하는 아들의 이야기로 세계 속 한식의 위상과 다양한 한국의 길거리 음식 및 현대적인 한식 이야기를 담고 있고, 4장은 외국인 친구가 많은 막내딸의 이야기로 실제 외국인에게 한식에 대한 안내를 하면서 필요한 팁 등을 수록했다.
 
특히 외국인들이 궁금해 하는 북한음식, 한·중·일 음식의 공통점과 차이점, 외국인이 즐겨 찾는 한식 10선, 외국인들이 자주 묻는 질문과 답 등도 담았다. 농식품부는 이 해설서를 방한 외국인과 가장 가깝게 만나 소통하는 관광통역안내사의 보수교육교재로 활용토록 관련기관에 배포할 계획이다. 아울러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한식당과 한국 및 한식홍보 기관 및 업체의 종사자들도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할 예정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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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